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또 하나의 꿈 (5)
이번에 불펜 문을 열고 나오는 투수는 정인규였다.
“이번에 만날 투수는 정인규 선수입니다. 이 선수도 낯선 선수인데요. 소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정인규 선수는요, 지금 저희 에이전시에서 선수들을 지도해 주고 있는 코치입니다.”
“오호, 드림에이전시의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게 이분의 활약 덕분이었군요.”
“특히 투수들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 정인규 코치의 등판을 앞두고 투수 선수들이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드림 에이전시 선수들은 과연 우리 코치님이 직접 던지는 건 잘하시나 지켜보고 있겠는데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런 무대에 서본 게 처음이라 안 그래도 떨릴 텐데, 그런 점 때문에 더 부담이 많이 될 겁니다.”
정인규가 긴장했다는 것은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인규 선수가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던지는 게 처음이라서요. 아침부터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하더라고요.”
“과연 드림에이전시의 코치님은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함께 지켜보시죠.”
타석에 선 정인규의 제자가 헬멧을 벗어 정인규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정인규가 여유 있게 인사를 받아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힘겹게 숨을 고른 정인규가 드디어 공을 하나 던지려는데,
공이 정인규의 손을 떠나기도 전에 주심이 경기를 멈춰 세우며 다가갔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정인규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더욱 진하게 번졌다.
“정인규 선수가 지금 굉장히 긴장했네요. 투수판을 안 밟고 던졌어요. 저도 야구 중계를 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긴장할 거라는 건 예상을 했는데요. 이렇게까지 떨 줄은 몰랐네요.”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선수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사이 정인규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정인규 선수가 공을 던질 수 있을까요?”
“자기 이름이 찍힌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꼭 서보고 싶어 했거든요. 긴장감을 좀 풀어야 후회 없이 던지고 내려올 텐데요.”
긴장한 정인규가 안타까웠는지 수비를 하고 있던 소영준과 박성주, 서성민이 마운드로 다가갔다.
소영준이 정인규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이야기를 건네며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세 선수가 던진 농담 덕분이지 이제야 정인규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정인규의 피칭이 시작됐다.
-펑!
-볼!
-펑!
-볼!
하지만 던지는 공마다 스트라이크 존을 모두 벗어나고 있었다.
“프로가 아닌 선수가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아무래도 쉽지는 않죠. 그런데 지금 정인규 선수에게는 잘 던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던져야 해요.”
내 말이 그에게도 들렸는지, 이번에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향했다.
-펑!
-스트라이크!
“드디어 첫 번째 스트라이크가 들어갔습니다.”
“잘했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돼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네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 존을 향하자 타자의 배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틱!
빗맞은 타구는 2루수 서성민을 향해 날아갔다.
서성민은 편안하게 공을 잡아 아웃카운트로 연결했다.
“정인규 선수가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올리며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찍힌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진 날이었거든요. 정인규 선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정인규의 입꼬리가 이제야 조금 올라갔다.
이제 오늘 경기의 마지막 이닝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잠시 강현우 대표님이 자리를 비우셨거든요. 그 대신에 함께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시청자분들께 인사해 주시죠.”
“안녕하세요. 곧 재규어즈 유니폼을 입게 될 최우진입니다.”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될 선수와 함께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우진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얼마 후면 진짜 프로 선수가 될 텐데요. 준비는 많이 하셨어요?”
“에이전시 선배님들 만날 때마다 이것저것 많이 여쭤봤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벌써 프로 팀에 들어간 것 같아요.”
“재규어즈 선배들은 많이 도와주나요?”
“그럼요. 서성민 선배님하고 한교진 선배님이 정말 잘해주세요. 왓슨 선배랑 스콧 선배가 없는 게 아쉽기는 한데, 제가 가서 열심히 해봐야죠.”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최우진 선수가 재규어즈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기를 바라겠습니다.”
그사이 경기장에는 다시 경기가 이어질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자, 얘기 나누는 사이에 벌써 마지막 이닝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이제 마운드에는 대한민국의 마무리 투수죠. 최정환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요즘 제가 정말 부러운 선배거든요.”
최우진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최우진 선수는 최정환 선수의 어떤 점이 가장 부럽나요?”
“패스트볼의 위력이 엄청나잖아요. 정환 선배님은 그냥 편안하게 던지는 것 같은데도 150km/h를 쉽게 넘으니까요. 저는 구속이 빠른 편이 아니라서, 이번에 에이전시 전지훈련 갔을 때 어떻게 하면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최우진 선수가 150km/h를 넘는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엄청난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우진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정환 선수를 만났다는 건 이제 오늘 경기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겠죠.”
“진짜 재밌는데 정말 아쉬워요.”
“하지만 마지막 남은 이벤트가 있으니까요.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사이 준비를 마친 최정환이 피칭을 시작했다.
-펑!
-우와!
-펑!
-우와!
최정환의 시원시원한 패스트볼에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최정환 선수의 패스트볼은 정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직접 보니까 저도 빨리 저런 공을 던지고 싶어요.”
이어지는 타자와의 승부에서도 최정환은 압도적인 패스트볼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웃 카운트가 두 개 올라갔다.
“이제 오늘 경기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말 그분이 나오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제 곧 등장하실 그분이 과연 누구일까요? 함께 지켜보시죠.”
잠시 후,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수 교체입니다. 중견수 강현우!
-와아아아아아!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장내 아나운서의 한마디에 경기장은 오늘 중에 가장 뜨거워졌다.
나는 배트를 움켜쥔 채로 천천히 타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이 꿈을 꾸는 것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드디어 이 선수를 만날 시간입니다. 바로 드림에이전시 강현우 대표님입니다.
-대표님이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선 모습을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요. 진짜 멋지네요.
-정말 그때 그날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내가 타석으로 걸어가는 동안 관중석에 있는 팬들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줬다.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나는 타석에 서자마자 헬멧을 벗어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팬들의 응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강현우 대표와 최정환 선수의 관계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모두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강현우 대표가 1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붙은 선수가 바로 최정환 선수죠.
-저도 그때 경기를 직접 보고 있었거든요. 사실 정말 무섭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최우진 선수가 강현우 선수를 병원에서 만나서 사인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네, 맞아요. 같이 캐치볼도 했었거든요. 진짜 야구 선수를 만나서 캐치볼까지 해보고 나니까 저도 야구 선수가 정말 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도 시켜달라고 졸랐거든요.
-그렇다면 강현우 대표님이 오늘의 최우진 선수가 있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도 되겠는데요?
-그럼요. 만약에 대표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진짜 야구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못 했을 거예요.
-그 당시에는 두 분 모두 이런 인연으로 연결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겠죠?
“후우-”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타석에 서서 배트를 움켜쥐었다.
타석의 흙, 배트의 질감 그리고 경기장의 분위기까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느껴지는 어느 것 하나 잊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시 후 날아올 공을 기다리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최정환이 갑자기 주심에게 사인을 보내더니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스파이크 끈을 풀고는 다시 천천히 묶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잠시 경기가 중단되자 관중석에서는 더욱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어디서 봤던 광경인데요!
-우와. 낭만적이에요.
덕분에 나는 다시 한번 헬멧을 벗어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팬들이 보내주는 함성이 심장이 울릴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최정환이 신발 끈을 묶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경기장과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나를 향해 멈추지 않고 손뼉을 쳐주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서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자 신발 끈을 다시 묶은 최정환이 공을 던질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정말 타격할 시간이 다가왔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내쉬며 배트를 움켜쥐고 섰다.
포수와 사인을 확인한 최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글러브에서 공을 꺼냈다.
최정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공을 들어 올려 나에게 보여줬다.
-지금 최정환 선수가 강현우 선수에게 자신이 공을 잡은 그립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패스트볼을 던지겠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과연 강현우 대표가 최정환 선수의 패스트볼을 시원하게 때려낼 수 있을까요?
나 또한 최정환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정말 최정환이 공을 던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유니폼을 입은 나, 가득 찬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응원 그리고 마운드에 서 있는 최정환까지.
지금 이 순간은 나의 1군 첫 번째 타석이자 마지막 타석이었던 그날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후우- 후우-”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데뷔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제구력이 떨어지는 투수였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 최정환이라는 선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였다.
그 말은 그가 던진 공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올 가능성이 0%나 다름없다는 의미였다.
이제 최정환의 와인드업이 시작됐다.
나는 왼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 힘을 모았다.
최정환의 손을 떠난 공은 빠른 속도로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스트라이크였다.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배트를 돌렸다.
따아아아악!
‘이거다!’
맞는 순간 내 손에 느껴지는 감정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자, 멀리 날아갑니다! 경기장의 가장 먼 코스를 향해 쭉쭉 뻗어가고 있습니다!
-우와아아! 넘어갈 것 같아요!
나를 포함해서 경기장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날아가는 타구를 향하고 있었다.
타구는 빠른 속도로 담장을 향해 비행했다.
그리고 결국 공은 여유 있게 가운데 담장을 넘어갔다.
-호오오오옴런! 강현우 선수가 최정환 선수의 패스트볼을 상대로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우와! 대박이에요!
-강현우 선수가 최정환 선수를 상대로 대형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나는 2루심이 손가락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정말 내가 홈런을 쳤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자 한교진이 베이스를 가리키며 나에게 다가왔다.
“선배, 저기서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교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나는 1루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팬들이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1루에 도착하니 서성민을 만날 수 있었다.
“대표님, 축하합니다.”
“선배 감사해요.”
나는 서성민과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2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2루에서 소영준은 물론이고 외야에서 달려온 왓슨과 나준호, 오석훈까지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대표님, 진짜 대박이야. 이걸 넘겨버리네.”
“와우, 판타스틱 홈런!”
“대표님, 다시 선수로 뛰어도 될 것 같은데?”
“선배, 이따가 공 가지고 올게요.”
나는 네 선수의 축하를 받으며 2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 이제 3루로 향했다.
3루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수는 박성주였다.
“선배, 이렇게 힘이 좋았어요? 제일 멀리 날아갔어요.”
“운이 좋았어. 얻어걸린 거야.”
이제 나는 3루 베이스를 지나 홈 베이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홈 베이스에는 한교진과 함께 마운드에서 내려온 최정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교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최정환과도 세리머니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는데,
최정환이 두 팔을 벌리더니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선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이제까지 지나왔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잠재우기 힘들었다.
나는 최정환의 등을 두드리며 잠시 동안 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환아, 정말 고맙다.”
-강현우! 강현우! 강현우!
-최정환! 최정환! 최정환!
이제야 관중들의 환호성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나에게는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림 에이전시의 자선대회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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