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첫 연봉 협상 (2)
-오석훈의 적정 연봉을 7천 5백만 원에서 8천만 원 사이로 생각하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선수들의 연봉을 깎으려는 단장 스타일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단장과 운영팀장에게서 각각 하나씩 정보가 보였다.
운영팀장에게서 보인 정보가 당장 이 자리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쉽긴 했다.
하지만 단장에게서 보이는 정보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우리가 책정한 연봉이 최소 8천만 원에서 9천만 원 정도였으니, 조율만 잘 이루어진다면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그러시죠.”
나와 김민환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우선 이런 말씀부터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에 단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아시다시피 올해도 우리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수입도 줄어들고 모기업의 지원도 작년만 못해서 구단 운영비가 많이 삭감됐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무난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터라 저부터 서도 지금 같은 상황이 낯설게 느껴질 정돕니다. 우선 그 부분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단장이 치고 나오자 김민환이 멈칫했다.
“일단 천천히 얘기를 나눠보시죠.”
김민환은 말려들지 않으려고 불필요한 답을 피했다.
“그럼 에이전시에서 준비해오신 내용부터 먼저 들어볼까요?”
단장은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김민환이 나에게 눈짓하며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는 단장과 운영팀장에게 내가 만들어온 자료를 한 장씩 나눠줬다.
자료를 받아든 두 사람이 한 장씩 천천히 넘겨보며 내용을 읽어갔다.
“오석훈 선수는 올해 43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중간에 교체 투입된 2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발 출전이었습니다. 140타석 동안 타율은 0.343, 24타점, 4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아직까지는 단장과 운영팀장의 표정에 큰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1군 콜업 이후에는 바로 주전 우익수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WAR은 1.25, wRC+는 130.5를 기록했습니다. 버팔로즈 소속의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 아니라, 리그 전체에서 비교해 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잠깐만요. 여기서 오류가 몇 가지 보이네요.”
단장이 몸을 앞으로 당기며 끼어들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오석훈 선수는 시즌 후반에 겨우 합류했죠. 콜업되던 당시에 상위권의 몇몇 팀들은 이미 순위 싸움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가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위권 팀에서도 주전 선수들이 많이 빠지고 어린 유망주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려가고 있기도 했고요. 그렇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 이 성적이 오석훈 선수의 진짜 능력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이미 준비해둔 부분이었는지 단장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반박했다.
“사실 말씀하신 부분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내용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없이 확실하게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지금 버팔로즈의 주전 우익수는 오석훈 선수라는 점입니다. 마지막까지 오석훈 선수가 주전으로 출전하기도 한 데다, 포지션 경쟁자라고 할 수 있을 다른 선수들의 이번 시즌 성적과 비교해 봐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나도 이미 예상한 반박이라 당황하지 않고 준비한 데로 대답했다.
“우리 팀 주전 우익수였던 곽승찬 선수가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타격감이 무너진 탓에 오석훈 선수의 성적이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곽 선수가 내년에 자기 컨디션을 되찾는다면 오석훈 선수의 입지는 위태로워지지 않을까요?”
“만약 내년에 곽승찬 선수가 자기 컨디션을 찾는다고 해도 주전 우익수는 오석훈이 되어야 팀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근거가 뭐죠?”
단장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버팔로즈 홈구장은 국내에서도 큰 편에 속합니다. 메이저리그 구장과 비교해도 넓은 편에 속하죠.”
내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대화를 이어가자, 옆에 있던 김민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곽승찬 선수가 부진에 빠졌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타격감이 떨어져서겠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단장이 웃음기가 싹 빠진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답했다.
“단순히 그 이유가 아닙니다.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타구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못하면서 펜스 앞에서 잡히는 공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다음 장을 넘겨보시면 지표로도 잘 나와 있죠.”
내 말을 듣고는 단장과 운영팀장이 한 페이지를 넘겨 자료를 살폈다.
“시즌 초라면 홈런이 됐을 법한 공이 점점 수비수에게 잡히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더더욱 자신의 타격 밸런스를 찾지 못하게 되는 거죠.”
“곽승찬 선수가 우리 구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아무리 경기장이 크다고 해도 홈런 타자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곽승찬 선수가 최고의 컨디션을 되찾는다고 해도 지금 우익수 자리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라도 확실한 2루타, 3루타를 터뜨려줄 수 있는 오석훈 선수가 더 가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머리를 굴려봐도 더 이상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단장이 잠시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연봉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단장의 물음에 김민환이 대화를 이어받았다.
“운영이 어려우시다고 하니 구단 측에서 먼저 제시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저희 쪽에서 먼저 제시하죠. 잘 아시겠지만 저희는 고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전체적인 구단 운영비가 삭감된 탓에 선수단 연봉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려움도 많고요.”
단장이 자신 앞에 놓인 서류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올해 저희의 고과 산정 기준으로 평가해 보니 오석훈 선수는 6천만 원 정도가 적정한 것 같은데. 동의하시나요?”
6천만 원이라고?
단장의 정보창에서 얻은 내용은 물론이고, 최소 8천만 원을 예상한 우리 최소치에도 한참 모자라는 액수였다.
“하……. 단장님. 혹시 석훈이 올해 연봉이 얼마였는지 모르고 계신 겁니까?”
“올해가 5천만 원이었죠.”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묻는 김민환과 달리 단장이 아무 일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데 6천이라니요. 올해 15홈런 100타점 페이스로 친 겁니다. 버팔로즈에 이 정도 성적을 거둔 선수가 몇이나 있습니까?”
“저런 페이스로 144경기를 치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올해 우리 팀 성적이 좋지 못했던 것도 충분히 반영하셔야죠.”
“버팔로즈가 연패를 끊고 마지막까지 포스트시즌 순위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오석훈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잖습니까.”
단장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얼굴이 붉어진 김민환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석훈 선수가 잠깐 반짝 잘하다가 부진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순진한 전임 단장이 데뷔하고 몇 년 반짝한 거 믿고 크게 인상해 줬는데, 그러고서 다음 시즌에 어떻게 됐나요?”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1군 콜업되자마자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버팔로즈 뉴스는 온통 오석훈 기사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연봉보다 인상해서 제안한 겁니다. 올해 우리 팀이 포스트시즌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평화로워 보이는 단장과 달리, 김민환의 얼굴은 폭발할 것처럼 점점 더 붉어졌다.
“단장님. 시즌도 끝나서 이제부터 바쁘실 텐데 번거롭게 여러 번 만나지 마시고 깔끔하게 오늘 끝내는 쪽으로 가시죠.”
“저희 쪽 제안에 도장 찍으시면 깔끔하게 끝납니다.”
김민환이 단장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피곤함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졌다.
협상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눌러앉은 느낌이었다.
“단장님. 혹시 올해 버팔로즈 고과 기준이 바뀌었나요?”
“기준 자체는 안 바뀌었습니다. 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액수에 약간의 조정이 있는 것뿐이죠.”
나는 단장의 말이 끝나자 나서 펜을 들고 무언가 적어가며 계산하는 척했다.
“그럼 평소 같았으면 오석훈 선수한테 8천 정도는 줄 만할 거 같은데, 맞나요? 올해 액수가 조정됐다고 하시는 걸 고려해도 7천 5백만 원 정도로는 계산이 됐을 것 같은데.”
갑자기 내가 꺼낸 구체적인 숫자를 듣자 단장과 운영팀장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어…… 어떤 기준에서요?”
“기준이라기보다는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분석해 본 겁니다. 이제까지 버팔로즈에서 다른 선수들 연봉 협상했던 것도 참고해 보니 그쯤 되겠더라고요.”
시선이 갈 곳을 잃으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단장을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나는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계속 뭔가 적는 척했다.
“우선 오늘은 이 정도로 하시죠.”
단장이 갑자기 일어나자 옆에 있던 운영팀장도 깜짝 놀라 엉겁결에 일어났다.
“뒤에 다른 선수들 협상도 해야 해서요. 얘기가 너무 길어지네요.”
이 모습을 본 김민환이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결국 의자를 세게 밀치며 일어났다.
“예상은 하고 왔지만 올해도 역시나 쉽지 않네요.”
김민환이 단장을 노려보며 짜증스럽게 답했다.
“시간 다 된 거 같은데. 성주는 어디쯤이래? 벌써 도착했나?”
고개를 돌린 단장이 운영팀장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운영팀장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박성주 선수 말씀하시나요? 아마 오늘 안 올 겁니다.”
“죄송합니다. 박성주 선수랑 이미 약속이 되어있는 거라. 내일 다시 말씀 나누시죠.”
단장이 나를 향해 애써 여유로운 척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이 말씀을 안 드렸네요. 마침 저희가 박성주 선수 협상을 대신 진행하게 됐거든요.”
“무슨……? 박성주 선수는 에이전트가 없는 걸로 아는데요.”
“아직 소문이 거기까지는 안 났나 보네요. 어제 저희랑 에이전시 계약 맺었습니다.”
내가 서류 속에서 박성주와 맺은 계약서 사본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단장이 눈을 가늘게 떠 내용을 읽어보더니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박성주 선수랑 약속한 시각이 된 거면, 박성주 선수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멍하게 서 있는 단장을 향해 두 손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김민환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밝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단장님, 어서 앉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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