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자 변함없이 프로야구의 시즌이 시작됐다.
이제까지와 다를 것 없는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 생긴 중요한 일상의 변화 중에 하나는 아침부터 야구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맺은 도널드 왓슨과 오석훈은 물론이고, 마이클 스콧 또한 개막전부터 메이저리그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혹시 세 선수가 맞대결을 펼치기라도 하는 날은 모든 에이전시 직원들이 모여서 함께 경기를 시청했다.
한국에서 경기를 하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도 가슴 깊은 곳에서 짜릿함이 느껴졌다.
오전을 시작으로 오후에도 야구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 시즌 최고의 FA 선수로 평가받는 소영준은 일거수일투족이 집중을 받았다.
FA를 앞둔 선수에게는 주장을 잘 맡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실력을 인정받은 소영준이 이번 시즌 펠리컨즈의 주장을 맡았다.
소속팀 펠리컨즈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이번에도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하위권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소영준만큼은 달랐다.
2년 연속 3할 20홈런이라는 기록 도전은 물론이고 더그아웃의 리더로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역할도 부족함이 없었다.
스카이코퍼레이션에서는 소영준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그의 존재를 미국 구단에 알리느라 분주했다.
그 덕분에 펠리컨즈 경기를 보러 오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버팔로즈에 잔류해 시즌을 시작한 박성주도 FA 사상 최고액으로 잔류를 하게 된 만큼 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에 부응하듯이 개막전 첫 타석에서부터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 이어 4연타석 홈런을 완성했다.
개인 통산 처음으로 5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향한 기분 좋은 첫걸음을 내디뎠다.
나준호와 고지훈은 시즌 첫 경기부터 각각 4번 타자와 1선발로 나서며 팀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거액의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었음에도 여전히 모범 FA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두 선수의 꾸준한 자기 관리 덕분에 나이가 한 살 더 들어도 기량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교진은 변함없이 시즌 초반부터 주전 포수 마스크를 썼다.
새롭게 팀에 합류한 외국인 투수와도 좋은 호흡을 보이며 개막전부터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었다.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한교진과 호흡을 맞추는 정민우 또한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재규어즈의 선발 로테이션에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정민우의 존재 덕분이었다.
드디어 프로 선수가 된 최우진은 프로 데뷔전에서 선발 등판해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데 이어서 프로 첫 등판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덕분에, 데뷔 첫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등판에서도 꾸준하게 5이닝 이상을 소화해 주며 선발 투수로서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4선발 정민우에 이어 5선발 최우진 덕분에 재규어즈는 스콧과 왓슨의 빈틈을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선대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던 이주혁도 에이전시 업무를 최소화하며 체계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몇몇 구단이 관심을 표시해 준 덕분인지 자신감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프로 무대에 설 만한 몸 상태를 만든다면 곧바로 계약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활약 덕분에 매일 야구를 보는 것 자체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서 트라이아웃으로 합류한 선수들을 포함하면 우리 에이전시에서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이 어느덧 50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예전처럼 내가 직접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있었다.
과학적으로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전문 심리 상담사까지 초빙해서 선수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허전하고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하루하루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선수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대표님, 오늘 잊지 않으셨죠?”
어느새 다가온 정인규가 나에게 말했다.
“그럼요.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선수들도 진짜 기대 많이 하더라고요.”
“후- 떨리네. 그럼 출발해 볼까요?”
나는 정인규와 함께 우리 에이전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미리 예고가 되어있었던 만큼 선수들이 이미 훈련장에 모여있었다.
정인규가 잠시 몇 가지 전달 사항을 이야기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자, 그럼 이제 모셔보겠습니다. 드림 에이전시 강현우 대표님입니다!”
정인규의 소개에 맞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선수들 앞으로 다가갔다.
“와아아-”
선수들은 뜨거운 환호로 나를 맞아줬다.
나는 선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자주 왔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못 와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열렬하게 환호해 주시니까 더욱 그렇네요.”
“잘생겼다!”
한 선수의 외침에 나는 미소로 답하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요즘 훈련하는 데 불편한 점 있나요?”
“정말 좋습니다!”
선수들이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훈련은 할 만해요?”
“네, 즐겁습니다!”
“어? 정말 훈련이 즐거워요?”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에게 물었다.
“어…….”
“훈련이 즐거우면 안 되는데? 인규 코치한테 훈련을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둬야겠네요.”
“아…….”
순식간에 선수들의 표정에 어두움이 내려앉았다.
“농담입니다. 훈련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즐기면서 하면 좋죠. 앞으로도 즐겁게 훈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긴장했던 선수들이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 코치들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겠습니다.”
“네!”
선수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여러분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왔어요. 궁금한 점이나 고민거리가 많을 텐데,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당장 해결을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에이전시에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줄게요.”
선수들이 한참 동안 머뭇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쉽게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했다.
그러다 한 선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내가 손으로 가리키자 선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이제 곧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데요. 계속 야구를 해도 괜찮을까요?”
이곳에 있는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의 질문을 듣자마자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서른 살. 고민스러울 수 있는 나이죠. 지금 야구를 한 지가 얼마나 됐죠?”
“고등학교 때 시작해서 이제 10년 정도 됐습니다.”
그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부상을 당해 은퇴를 결정했던 그 시기가 떠올랐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사실 저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서른 살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에 부상을 당했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게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전성기를 달릴 시기에 은퇴한 거예요. 그렇게 될 거라고 조금이라도 예상이나 했을까요? 말 그대로 정말 막막했죠.”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절망적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돼서 여러분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최정환 선수한테 정말 고마워요.”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야구를 한다고 해서 최고의 야구 선수로 성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1등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거고, 방향을 조금 바꿔서 저처럼 에이전트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나는 한 번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혹시나 야구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시간들이 절대 헛된 건 아닐 거예요. 저도 선수 생활을 했던 시간들이 에이전트를 하는 동안에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혹시 완전히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지금 하는 경험이 도움이 될 거예요. 헛된 시간이라는 건 없으니까요.”
질문을 던졌던 선수의 표정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
“또 다른 질문 있나요?”
그러자 또 다른 선수가 손을 들었다.
“저는 냉정하게 말해서 타고나게 잘하지는 못하는 거 같은데요. 제가 프로에 갈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답을 기다리는 선수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선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얼마나 타고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하는 건 어렵죠. 하지만 프로에 간 선수 중에도 나이가 들어서 잘하게 된 선수들이 적지 않잖아요.”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가깝게 우리 에이전시의 서성민 선배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지 않나요? 30대 중반이 다 되도록 주전급 선수가 아니었죠. 게다가 방출까지 당했고요.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훈련을 통해서 지금 자리까지 갔거든요. 솔직히 서성민 선배가 타고난 선수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선수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한데 결국에 지금 최고라고 부르는 선수들 중에는 대부분이 타고난 거 아닌가요? 특히 소영준 선배는 그냥 놀면서 하는 거 같은데도 엄청 잘하잖아요.”
“소영준 선수가 놀면서 하는 거 같아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그 선수에게 되물었다.
“어……. 솔직히 아주 열심히 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요? 노는 시간도 꽤 많으신 거 같고요.”
“하하하하.”
그 선수의 한마디에 웃음바다가 됐다.
웃음이 잦아들자 나는 대화를 이어받았다.
“저는 소영준 선수하고 어린 시절에 학교를 같이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은 소영준 선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요.”
나는 시선을 돌려 다른 쪽 선수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영준이가 중고등학생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같은 학교 동기로서 질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야구를 잘했어요. 볼 때마다 저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었죠. 그리고 물론 영준이가 노는 것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에요.”
선수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려는 순간 나는 곧바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했어요. 영준이는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야구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누구보다 야구를 잘하고 싶은 선수가 될 거라는 의지도 정말 강했죠. 중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자기는 프로선수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노력하면서 지냈으니까요.”
어느새 선수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영준이가 노는 모습만 보일지도 몰라요. 저렇게 노는데 어떻게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천재라고 생각하겠죠.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영준이가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면 그런 얘기는 안 나올걸요?”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단적으로 몸 보세요. 시즌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휴식기 때도 체중에 큰 변화가 없어요. 그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다들 잘 아시잖아요.”
나의 물음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이런 선수에게 그냥 천재라서 잘하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영준이뿐만 아니라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다 마찬가지예요. 뒤에서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훈련하고 있거든요. 그걸 보고도 그들이 천재니까 잘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아까 그 선수가 다시 손을 들고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도 열심히 훈련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여기에 있는 선수들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나는 질문을 던진 선수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직원이 다가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이고, 아쉽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요.”
“아아.”
선수들이 아쉬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저도 많이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어느새 실내 연습장은 선수들의 박수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다시 선수들을 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앞으로도 드림에이전시는 여러분과 변함없이 함께할 겁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를 바라고요. 지금까지 강현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