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첫 연봉 협상 (4)
오석훈과 박성주가 럭비공을 주고받으며 마당을 달리고 있었다.
초겨울의 찬 바람이 불어오는 날인데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가고 있었다.
“떨어졌어. 아웃.”
“에이, 이거는 아니지.”
바닥에 떨어진 럭비공을 보며 오석훈이 억울하다는 듯 박성주에게 외쳤다.
“이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어.”
“네가 이상하게 던졌잖아.”
“무슨 소리야. 다시 해.”
“솔직히 네가 던지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
“무슨 소리야. 나 3루수야. 송구가 얼마 정확한데. 송구 실책도 거의 없어.”
“나는 우익수잖아. 내가 훨씬 멀리서도 정확하게 던지거든. 외야에서 홈으로 던져서 어시스트한 거 못 봤어?”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한 운동일 뿐인데.
어느새 둘 다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입가에 걸려있던 웃음을 이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승부처를 앞둔 비장함까지도 느껴졌다.
“이번에는 떨어트리지 말고 받아.”
“제대로 던지기나 해.”
다시 공을 집어 든 박성주가 타박하듯이 말하자 오석훈의 눈빛이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다.
“시―작!”
박성주의 외침을 시작으로 서로 럭비공을 이리저리 주고받으며 또 한 번 마당을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오석훈이 아슬아슬하게 잡으며 위기가 왔지만 겨우 놓치지 않고 잡아 던지며 달리기는 이어졌다.
공을 떨어트리지 않고 출발점까지 돌아오고 나서야 두 사람이 멈춰 섰다.
얼굴에는 아까보다 땀이 더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좀 잘하네.”
“내가 잘 잡아줘서 된 거지.”
박성주가 숨을 헐떡이며 오석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한 번 더해.”
“이제 그만하고 다른 거 하자. 계속 몸만 풀 거야?”
럭비공을 들고 있던 오석훈의 얼굴에는 아직도 억울함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창가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문을 열었다.
“밥 먹을 시간 다 됐어. 들어와서 밥 먹어.”
내 목소리가 들리자 오석훈과 박성주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 됐어요?”
“이미 지난 지 오래됐어.”
“벌써요? 언제 이렇게 됐어요?”
“너네 열심히 하길래 웬만하면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계속 보고만 있다가는 영영 안 끝날 거 같아서 불렀어.”
괜한 승부욕 때문에 훈련이 쓸데없이 과열되어가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심하게 배가 고프기도 했다.
나는 오석훈과 박성주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박성주가 지나가던 조리사를 향해 크게 인사했다.
얼마나 우렁찼는지 실내가 울릴 정도였다.
조리사가 몸을 들썩이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며 자리를 비켜줬다.
“저는 여기 와서 다 좋지만 무엇보다 진짜 제일 좋은 게 밥이에요. 어떻게 매번 이렇게 만들어주시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들던 박성주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맛있게 먹어. 오후에도 열심히 훈련해야지.”
나는 밥을 먹으면서 나준호 협상용 자료를 읽고 있었다.
“우와. 준호 선배 FA 계약도 형이 하는 거예요?”
오석훈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내가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이번에는 대표님 옆에서 보고 배우는 정도?”
“우와. FA 협상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박성주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해보고 나서 어땠는지 알려줄게.”
“나중에 우리도 FA 되면 선배가 해줄 거죠?”
“당연하지. 너희 둘은 나한테 꼭 맡겨야지. 그때 가서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오석훈과 박성주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장난기 가득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선배 배신 안 해요. 석훈아, 너도 그럴 거지?”
“당연하죠.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데로 안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갑자기 선배가 다른 에이전시로 가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박성주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더니 물었다.
내가 다른 에이전시로 간다고?
그럴 일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우리 회사에 전혀 불만도 없고 고마운 점만 있었다.
임예지 대표가 내 의견에 반대한 적도 없었고, 적극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고 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굳이 떠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떠나게 되더라도 너희 둘한테만큼은 미리 얘기할게.”
“에이……. 미리 얘기하는 거로 되나요.”
박성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럼?”
“우리도 데려가야죠. 선배네 회사로.”
“그래, 콜. 그런 일 생기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무조건 데려갈게.”
“약속하는 거죠?”
박성주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 둘 놔두고 혼자 떠나지는 않는다.”
나는 박성주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옆에 있던 오석훈도 급하게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휴일이라는 것을 모두 반납하고 협상 준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일 있을 오석훈과 박성주의 연봉 협상은 물론이고 조만간 시작될 나준호 FA 협상까지 동시에 준비해야 해서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었다.
연봉은 소속 선수들과 에이전시의 수입에 직결되는 데다 언론을 통해서 모두에게 공개되는 탓에, 에이전시의 역량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거라서 어느 것 하나도 가볍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아직 내가 담당하고 있는 선수가 많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시기가 오기 전에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위잉-
메시지가 왔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최정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선배님 덕분에 연봉 협상 잘 마쳤습니다. 내년에는 정말 운동에만 집중해서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 내보겠습니다.
내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걸렸다.
당장 내 계좌에 돈 한 푼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 마음만큼은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 * *
버팔로즈 단장과의 두 번째 미팅이었다.
참석한 사람도 달리진 게 없고 앉은 자리까지 같다 보니 첫 번째 협상 날과 헷갈릴 정도로 비슷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눈에 띄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단장 얼굴에 핏기조차 느껴지지 않던 첫 번째 미팅과 다르게 오늘만큼은 여유가 느껴졌다.
며칠 사이에 무언가 준비를 하고 왔으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어떤 내용이 튀어나올지 궁금했다.
두 번째 만남이라 서로 악수를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고는 바로 자리에 앉다 보니 단장과 운영팀장 위에 보이는 내용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운영팀장을 흘끗 보니 지쳤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와 처음 만났던 날에는 최저연봉 선수들과 통보에 가까운 협상을 했을 테니 지칠 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 다른 선수들과의 협상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이미 높은 연봉을 받고 있거나 이번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과의 협상은 간단하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그런 선수들은 연봉 협상만 대리해 주는 에이전트와 일하고 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
서로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서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협상이 이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그런 연봉 협상을 며칠씩 진행하다 하다 보면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따라서 원활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조금 감성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선수들하고 연봉 협상하시느라 정신없으시죠?”
나는 단장과 운영팀장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가지고 온 커피를 하나씩 건넸다.
단장에게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운영팀장에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두 사람이 취향이 어떤지는 지난 미팅 때 마시던 모습을 보고 예상했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는 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고. 바쁘실 텐데 이런 것까지 준비해 주시고.”
운영팀장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옆에 있던 단장도 슬쩍 미소를 보이며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에 무거운 이야기가 오가다 보면 지금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리 없다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소하더라도 호의를 베풀어준 상대에게 무턱대고 고성을 치기는 어렵겠지.
“그럼 어제 내용에 이어서 진행해 보실까요?”
이제 옆에 있던 김민환이 끼어들어 협상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시죠.”
단장이 뜨거운 커피를 몇 번 불어 한 모금 마시고서는 대답했다.
“기존 제안에서 큰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면 오늘도 결론 내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리 김 팀장님, 성격도 참 급하시네.”
김민환의 단호한 표정을 본 단장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구단 쪽 의견부터 들어보죠.”
“이거부터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단장이 손짓하자 운영팀장이 회의 테이블 옆에 있던 모니터에 자료를 띄웠다.
“오석훈 선수와 비슷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연봉 자료입니다. 버팔로즈 선수도 있고 다른 팀 선수들도 포함돼있습니다.”
자료를 가리키고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이야기하는 단장의 모습에서는 자신감이 한껏 느껴졌다.
“올해 오석훈 선수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출장 경기가 40경기 정도라서 표본이 적었던 경우에는 보통 20-25% 정도를 인상해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수치로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단장이 말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김민환이 헛기침을 크게 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오석훈 선수의 성적이 상당히 뛰어났다는 점을 고려해서 40% 인상 정도면 적절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내년 구단 예산이 축소된 상황이라는 것도 고려한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요.”
“40% 인상이면…….”
“2천만 원 인상해서 7천만 원입니다.”
단장이 기다렸다는 듯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답했다.
“이 정도면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
“음…….”
김민환이 머리를 굴려보지만 반박할 무언가를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 옆으로 나를 흘끗 보는 것이 느껴졌다.
터무니없이 낮은 제안도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가 원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드디어 이걸 쓸 타이밍이구나.’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던 자료가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벌떡 일어나서 단장과 운영팀장에게 하나씩 건넸다.
“제가 어제 드린 자료에서 이게 빠졌더라고요.”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단장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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