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첫 연봉 협상 (5)
나는 총 네 장을 꺼내 나를 포함한 모두의 앞에 한 장씩 나눠줬다.
“이게 뭐죠?”
“올해 프로야구 구단별 유니폼 판매량 데이터입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내 앞에 두었던 자료를 집어 들었다.
“올해 판매된 버팔로즈 유니폼의 15%가 오석훈 선수의 이름을 붙이고 팔려나갔습니다. 8월에 콜업돼서 고작 시즌의 1/4 정도밖에 안 되는 43경기를 뛴 선수가 기록한 겁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단장과 김민환의 표정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오석훈 선수의 SNS 팔로워 수가 지금 버팔로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2군에 있던 시절에도 그를 보기 위해서 팬들이 멀리까지 찾아왔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얘기도 아니죠. 게다가 올해 1군으로 콜업된 이후에는, 경기를 뛰면 뛸수록 팔로워 수가 멈추지 않고 증가했습니다. 오석훈은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나는 들고 있던 자료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단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유니폼 판매량만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듯이, 이미 올해 오석훈 선수가 경기 외적으로도 구단에 안겨준 매출이 적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주전 우익수로 풀타임 출장까지 하게 된다면 버팔로즈의 유니폼 판매량은 단위 자체가 달라질 겁니다.”
이번에는 단장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이런 상황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출장 경기 수만 가지고 다른 구단 선수들과 비교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운영팀장님?”
운영팀장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음…….”
단장과 운영팀장의 침묵이 이어지자 회의실에는 잠깐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적막을 깨트리는 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확실하게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 마지막 한 방을 던질 타이밍이었다.
“이번에 FA 최대어로 꼽히는 나준호 선수가 저희 회사 소속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FA 이야기를 꺼내자 단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덕분에 잠시나마 내가 갑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팔로즈 입장에서도 나준호 선수 정도면 진지하게 영입을 고려해 볼 만한 상황이지 않나요?”
“그건…… 그렇긴 합니다.”
나준호의 주 포지션이 오석훈과 겹치기는 해도, 나준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포지션의 중복 문제는 둘째치고 일단 데려오고 나서 고민하는 게 현명했다.
둘 중 한 명의 포지션을 좌익수나 중견수로 옮긴다면 엄청난 공격력에 탄탄한 수비까지 갖춘 완벽한 외야진을 꾸릴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워낙 많은 팀들이 나준호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선수 본인의 의견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니 이 자리에서 버팔로즈가 무조건 영입할 수 있을 거라는 확답을 드리는 건 무리이긴 합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우선 협상할 수 있는 자리 정도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말을 어떻게 약속할 수 있죠?”
두 눈이 반짝이던 단장이 미세하게 떨리는 두 손을 감추고 싶은지 깍지를 꼈다.
“그 협상을 제가 담당하게 됐으니까요.”
나는 단장을 보며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단장이 운영팀장에게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내며 의자를 밀치고 몸을 일으켰다.
김민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금은 과장된 손짓으로 여유를 과시했다.
잠시 후.
밖에서 대화를 마친 단장과 운영팀장이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협상은 마무리됐다.
나와 김민환은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버팔로즈 사무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걸었다.
띵.
마침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태우기 위해 도착한 엘리베이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타는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와 김민환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신나서 격하게 하이파이브까지 하니 엘리베이터가 흔들거릴 정도였다.
오석훈 1억 원, 박성주 9천만 원.
두 선수 모두 우리가 처음 목표로 설정했던 것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마쳤다.
나의 첫 연봉 협상에서 짜릿한 결과를 얻어냈다.
“중요한 계약도 잘 끝냈는데, 약속 없으면 저녁 먹고 가는 거 어때?”
“그럴까요?”
김민환의 물음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와 김민환은 근처에 있던 치킨집에 들어왔다.
직장인들이 퇴근했을 시간이긴 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제일 편해 보이는 자리로 가서 앉을 수 있었다.
“사장님, 여기 프라이드로 두 마리랑 생맥주 500mL 두 잔이요.”
종업원이 다가오자 김민환이 메뉴판도 펼쳐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내 의사를 묻지는 않았다.
아무리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역시나 유쾌하지는 않았다.
계약을 잘 마친 기분 좋은 날이라서 다행이지.
“여기가 프라이드를 진짜 잘 튀겨. 마음에 들 거야.”
“기대해도 되죠?”
김민환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아-”
갑자기 몇몇 사람들의 큰 함성이 들렸다.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보고 있던 TV 화면을 보니 한국시리즈가 중계되고 있었다.
마침 드래곤즈의 나준호가 또 하나의 홈런을 날린 순간이었다.
나준호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내야 다이아몬드를 달리고 있었다.
화면 속 드래곤즈의 팬들이 뿜어내는 응원 열정은 말 그대로 용광로에서 쏟아지는 열기만큼이나 뜨거워 보였다.
“저 친구 몸값 올라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김민환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분 좋은 거 맞죠?”
“사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아.”
“왜요? 소속 선수가 잘되면 기분 좋지 않나요?”
“좋긴 하지……. 근데 좋으면서도 기분이 좀 그래.”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직원이 생맥주 두 잔을 우리 앞에 놓았다.
“한잔하자.”
짠.
나는 김민환과 잔을 부딪치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키야. 역시 일 끝내고 마시는 맥주 맛이 최고야.”
맥주잔을 내려놓은 김민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과자를 몇 개 집어먹으며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김민환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아 참. 팀장님, 혹시 예전에 야구 한 적 있어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멈칫한 김민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한 적 있는 거죠?”
“어떻게 안 거야? 아무도 모를 텐데.”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 맞아요? 이메일 아이디부터가 powerhitter던데. 너무 노골적으로 알려주는 거 같은데?”
“정말 그거만 보고 알았다는 거야?”
김민환이 도저히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팀장님 몸만 봐도 예전에 운동을 좀 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허…….”
허탈하다는 듯 김민환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안 하게 된 거예요?”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지. 난 정말 하고 싶었는데.”
한숨을 내쉬며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났는지 김민환의 눈빛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못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야구하려면 돈 많이 들잖아. 내가 학교 다니던 때는 우리 집에서 그 정도로 지원해 줄 만한 여력이 안 됐어. 요즘보다는 덜하겠지만 그때도 돈 많이 들었어.”
“아…….”
“그때는 나름 유망주 소리도 들었는데 말이야.”
취미 수준을 넘어서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학교 야구부에 매달 내는 회비,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글러브나 배트 같은 용품비, 사교육과도 같은 레슨비는 기본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학교에서 겨울에 해외로 전지훈련까지 간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추가됐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 원 이상의 지원이 필요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감당하기 쉽지 않은 거액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김민환이 조용히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혼자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치킨 두 마리가 우리 앞에 놓였다.
보기만 해도 바삭바삭하다는 게 느껴지는 치킨이었다.
“이야. 오늘도 기가 막히네. 먹어봐. 맛있을 거야.”
우울함이 가득했던 김민환의 눈빛이 치킨을 보더니 완전히 달라졌다.
“저도 이런 스타일 치킨 좋아하는데.”
“정말? 현우 씨가 뭘 좀 아네. 치킨을 먹는다는 게 닭고기를 먹는 것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고기를 둘러싸고 있는 튀김도 치킨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자신과 취향이 같다는 게 만족스러운지 김민환이 신나서 이야기했다.
“이거부터 드세요.”
나는 다리를 하나 집어 김민환에게 건넸다.
“어……. 고마워. 그리고 어서 먹어. 내가 다 먹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치킨을 먹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의 대부분이 사라져있었다.
배고픔이 사라질 때쯤 되자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오늘 버팔로즈랑 계약도 끝났으니까 내일부터는 임 대표님이랑 FA 협상 준비하면 될 거야.”
“FA 협상하면서 팁 같은 거 있어요?”
나의 물음에 김민환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음……. 어떤 선택이 가장 선수를 위한 걸지 고민해 봐.”
“선수를 위한 선택이요?”
“FA가 되면 모든 팀하고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 선택지가 너무 많아져도 결정하기가 힘든 법이잖아.”
“그래요……?”
솔직히 김민환이 한 말이 바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선수 입장에서 FA 계약은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인 데다, 평소에 해왔을 연봉 협상과는 다르게 장기 계약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선수와 에이전시가 꼭 같은 생각을 한다는 법은 없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도 생길 거고. FA 협상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쟁터나 마찬가지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TV 화면에서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고 1차전을 승리한 드래곤즈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되겠네.”
김민환이 맥주잔을 나를 보며 들어 올렸다.
나는 그와 맥주잔을 부딪치고 남아 있던 맥주를 모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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