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무엇이 선수를 위한 걸까 (1)
한 시즌의 마무리이자 클라이맥스인 한국시리즈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FA 협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방에서 나준호의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자료를 만드는 중이었다.
이전부터도 알고 있었지만, 경기 영상을 보는 내내 기가 막힌다는 말이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아마 나준호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자세히 본다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컨택트, 파워, 스피드, 수비, 송구 능력까지 말 그대로 타자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춘 5툴 플레이어였다.
데이터로 나타나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모든 지표에서도 논란의 여지 없이 리그 최상위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경기력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건 시간 낭비나 다름없었다.
아마 이번 협상의 관건은 어느 구단에서 얼마나 좋은 조건을 제시하느냐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나준호의 소속팀인 드래곤즈에서는 무조건 잔류시키겠다는 의사를 시즌 중에도 여러 번 표시했고, 다른 팀들도 적극적으로 노릴 게 분명하니 치열한 경쟁이 붙을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시리즈가 한참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나준호가 내년 시즌에 어느 팀 유니폼을 입고 있을지에 대한 기자들과 팬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선수를 무슨 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잔류시키겠다는 드래곤즈와, 은근히 물밑에서 영입 의사를 내비치는 다른 국내 구단들, 그리고 정규 시즌 경기에도 종종 스카우트를 파견해 그를 관찰했던 다수의 메이저리그 구단까지.
이번 FA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가 나준호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나준호가 벌써 특정 팀과 계약을 진행하는 중이고 분위기도 좋은 상황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물론 에이전시에서 협상을 진행한 부분이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근거가 전혀 없는 루머였다.
어찌 되었건 이런 이야기가 돌면 돌수록 영입을 원하는 구단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에이전시와 접촉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고 있을 테니, 나쁠 것도 없었다.
공식적으로 FA 협상이 가능한 날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나에게도 관계자들의 전화가 멈추지 않고 걸려오겠지.
위이잉-
진동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발신자는 이수민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 너머에서 이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 씨. 요즘 많이 바쁘죠?
“아마 예상하시는 대로일 거예요.”
-그러실 거 같았어요. 근데 혹시…….
이수민이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려는지는 직접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접촉 못 하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겠죠……? 그냥 소문인 것 같긴 했는데, 혹시나 진행된 게 있는 건가 해서요.
“확실한 건 아직 어떤 구단하고도 제대로 이야기 나눠본 적 없다는 거예요.”
-그럼 하나만 더.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려는 의지도 있는 거예요?
“메이저리그요? 글쎄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본 게 없긴 한데. 구체적인 제안이 오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죠?”
-이번 스토브리그, 재밌겠는데요?
“근데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하나도 없어요. 뭐라도 나오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
-정말이죠?
“그럼요. 대신 기사 잘 써줘야 해요.”
여러 팀과 협상을 해가는 과정에서 언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분명히 한 번쯤은 찾아올 것 같았다.
이수민과의 통화를 마치고 손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뻐근한 몸이 풀리는 기분을 느끼며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똑. 똑.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선배, 잠깐 나와 보세요!”
“무슨 일인데?”
문을 열어보니 박성주가 서 있었다.
“무슨 일 있죠. 근데 직접 가서 봐야 하는 거예요.”
“직접?”
“빨리 가요. 어서.”
내 뒤에 선 박성주가 어깨를 두 손으로 짚더니 나를 데리고 나갔다.
박성주가 나를 멈춰 세운 곳은 거실이었다.
그곳에는 오석훈도 있었다.
“왜 나와 보라고 한 거야?”
나는 박성주와 오석훈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달라진 거 없어요?”
“뭐가 달라졌다는…… 어?”
내 시선은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TV에서 멈췄다.
전에 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다.
“이게 뭐야?”
“저희가 돈 모아서 새로 장만해 봤어요. 경기 분석하는 데 도움 될 것 같기도 하고, 종종 쉬면서 TV 볼 때도 훨씬 좋을 것 같아서요.”
“이거 사이즈가 엄청 큰 것 같은데?”
나는 처음 보는 사이즈의 TV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85인치에 8K예요.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으로.”
“허! 그럼 엄청 비싼 거 아냐?”
“가격이야 비싸긴 하죠. 근데 선배가 우리 연봉 많이 받아주셨잖아요. 차를 한 대 사드릴까 했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는…….”
나는 둘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면서 부담감도 느껴졌다.
“연봉은 너희가 잘했으니까 많이 받은 거지. 내가 뭐한 게 있나.”
“내년에는 연봉 더 많이 받아서 더 비싸고 좋은 거로 보답하겠습니다.”
오석훈과 박성주가 갑자기 허리를 구부리며 인사했다.
“나오신 김에 게임 한판 하고 가세요.”
“갑자기 무슨 게임?”
박성주가 TV와 그 옆에 있는 무언가를 조작하니 화면이 바뀌었다.
“머리 식히는 데는 게임만 한 게 없잖아요.”
바뀌는 화면을 잠시 기다려보니 TV 화면에 Major League Baseball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게임이라는 게 설마…….”
“게임하는 게 단순히 노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이기도 하잖아요.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볼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이거 참. 내가 실전에서는 너희들보다 못하겠지만, 게임으로는 나 이기기 어려울 텐데.”
자꾸 헛웃음이 튀어나왔지만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에이. 저도 만만치 않아요.”
“지는 사람이 방 청소해 주는 거야.”
“콜.”
나는 옆에 있는 컨트롤러를 집어 들며 TV 앞에 앉았다.
뒤에 있던 오석훈도 신이 나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것과는 다르게 박성주는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5:0이라는 스코어는 둘째치고, 박성주는 안타를 하나도 때려내지 못했다.
게임과 현실은 이토록 괴리가 컸다.
* * *
“우리 둘이 먼저 얘기 좀 나누고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밝은 표정의 임예지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회의가 시작됐다.
“나준호 선수도 곧 도착할 거예요. 혹시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개인적인 친분이 있진 않습니다. 따로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어서요.”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선수에게 좋은 계약을 안겨주는 거니까요.”
내 대답을 들은 임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협상 준비 좀 해봤나요?”
“네.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보이기는 하는데요. 일단 제 나름대로 초안은 만들어봤습니다.”
나는 들고 온 자료 중 한 부를 임예지에게 건넸다.
임예지가 첫 페이지부터 한 장 한 장 넘기며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나준호 선수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경기력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FA 요건을 갖추는 데 시간이 꽤 걸린 편이라, 나이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을 것 같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임예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음……. 경기력 부분에서는 정말 약점이 하나도 없나요?”
“부족한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나준호 선수의 약점을 꼽아본다면, 볼넷을 골라낸 것에 비해서 삼진이 많기는 했습니다.”
“삼진 비율이 높다…….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장타를 노리는 선수다 보니 삼진을 당하는 횟수가 많아지는 건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해도 올 시즌에는 특히나 삼진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에서 몇 장을 넘겨 데이터를 직접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준호 선수는 데뷔 이후에 한 번도 볼삼비(삼진 대비 볼넷 비율)가 0.5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0.32로 낮아지더니, 그마저도 올해는 0.24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렇군요.”
“이 부분이 약점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나머지 강점들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수준인 선수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내 말에 임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나머지 자료를 살펴봤다.
꼼꼼하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빼놓지 않고 살펴보더니 자료를 내려놓았다.
“2년 전에 당한 무릎 부상의 후유증에 대해 지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어떨까요?”
“아……. 그 부분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요.”
나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술이 잘 끝나기는 했어도 거의 1년 동안 재활에 매달려야 했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경기력에만 집중하느라, 그가 당했던 큰 부상을 간과하고 있었다.
“올해 FA 시장에서 나준호 선수가 최고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에이전트가 최고의 계약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도 놓쳐서는 안 돼요. 그 사소한 하나하나가 계약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테니까요.”
“보완해서 다시 준비해 보겠습니다.”
“이 부분 말고도 혹시 감점 요인으로 제기할 수 있을 만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세요.”
“네.”
나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를 적어두었다.
똑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준호 선수. 어서 오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나준호가 들어오자마자 임예지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이번 협상을 옆에서 도와 줄 강현우 씨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준호가 나를 보며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나준호가 나보다 2년 선배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와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니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잘 부탁해요.”
나준호가 편하게 인사를 건네주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와 악수할 수 있었다.
-드래곤즈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준호에게서 보이는 정보창의 내용 덕분에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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