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무엇이 선수를 위한 걸까 (6)
나와 방금 어깨를 부딪친 사람은 얼마 전에도 만났던 임승진 드래곤즈 단장이었다.
그에게서 보이는 정보창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준호가 다른 구단과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문에 다급해졌다.
-FA 계약 이후에 구단이 샐러리캡 제한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머리가 복잡하다.
샐러리캡.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였다.
만약 제한된 총액을 넘어가게 될 경우에는 페널티를 부과받게 된다.
팀 사이에 균형을 맞춰서 리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규정이었다.
구단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서 한 선수에게 무턱대고 높은 연봉을 제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준호를 제외하고도 3명이나 더 FA 선수가 있는 드래곤즈로서는 골치 아픈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정보창에 보이는 내용은 나중에 고민해 보고,
우선 나와 강하게 부딪친 그가 걱정됐다.
“단장님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럴 수도 있죠.”
드래곤즈 단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두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우 씨, 이번에…….”
조심스럽게 입을 연 드래곤즈 단장이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끊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리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단장님 죄송한데…… 사실 지금 제가 화장실이 많이 급해서…….”
“아! 어서 들어가세요. 급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하하.”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손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휴우-
덕분에 겨우 늦지 않게 화장실로 들어와 볼일을 마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이번에 또 한 번 느꼈다.
손을 씻으며 아까 드래곤즈 단장에게서 보였던 정보를 다시 떠올렸다.
드래곤즈에서 분명 나준호를 간절하게 필요로 한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샐러리 캡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알아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양쪽에 윈윈이 될 수 있는 계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드래곤즈의 다른 FA 선수들의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혹시라도 이적을 선택한다면 고연봉 선수가 빠지는 만큼 연봉 총액에 여유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만약 다른 선수들이 모두 잔류 계약을 맺게 돼서 드래곤즈에서 지급할 수 있는 연봉에 한계가 있다면?
그럼 방법이 없는 걸까…….
* * *
나는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임예지가 이번에는 조재원 엔젤스 단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옆에 가서 섰다.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려고 했는데.
“오. 강현우 씨. 만나서 반가워.”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조재원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꾸뻑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눈이 커졌다.
-협상 초반부터 공들였던 재규어즈 이상훈과의 계약이 임박해서 설레고 있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이번 주 안으로 빠르게 계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이상훈과 계약이 임박했다니?
재규어즈에서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이유가 엔젤스 때문이었던 걸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상훈이 이적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게다가 그 팀이 엔젤스라는 것.
두 가지 모두 누구도 예상조차 하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내가 만약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고 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소식이었다.
나는 얼굴에 드러났을지도 모를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슬쩍 눈을 피했다.
그러자 조재원이 다시 임예지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YJ에 우리 구단 소속 선수는 없는 거 같던데?”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잠시 고민할 때 임예지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기는 했지만 표정에 큰 변화는 없었다.
“YJ에서 우리 선수들한테 아직 관심이 없는 이유라도 있으신가?”
“음……. 적당한 선수가 있다면 저희야 언제든 환영이죠.”
“단장이 돼서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우리 팀이 몇 년 동안 하위권에 있던 덕분에 유망주들이 꽤 많긴 하잖아. 앞으로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꽤 많을 텐데. 잘 생각해 봐. 우리가 같이 노력해서 모두한테 좋은 결과를 얻으면 좋잖아?”
엔젤스 단장이 나와 임예지를 번갈아 흘끗 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선수들을 저희가 다 영입해버리면 나중에 연봉 협상하기 힘드실 텐데요.”
“하하하. 내가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임예지의 농담에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이번에 협상 분위기는 어때?”
역시 지금 시기에 단장들의 최고 관심사는 협상이었다.
“나쁘지는 않던데요. 필요한 선수는 어떻게든 잡으려는 의지도 보이고요.”
“아무래도 그렇지? 다들 구단 형편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FA 영입할 때 되면 어디서 가져왔는지 큰돈을 척척 내놓더라고.”
아직은 나만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엔젤스도 그중 하나였다.
“덕분에 저희 같은 사람이야 좋죠.”
임예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잠시 후, 대화를 마친 조재원이 자리를 떠나자 나는 조용히 임예지에게 물었다.
“대표님, 근데 엔젤스 단장 말도 맞지 않나요?”
“무슨 말이요?”
“엔젤스에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 편인데 지금까지 한 명도 영입을 안 한 이유가 있나요?”
“음…….”
임예지가 잠시 나를 흘끗 보더니 대답했다.
“아직은 적당한 선수를 찾지 못했으니까요.”
적당한 선수가 없다는 말인가?
최근 몇 년 동안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가장 실력 있는 선수들을 끌어모은 팀인데.
아직 엔젤스라는 팀의 성적이 그리 신통치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면면만 본다면 가능성 있는 선수가 여럿 있었다.
야구를 가볍게 즐기는 팬들도 알 수 있을 법한 내용을 임예지가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최근에 1순위 지명 선수만 해도 엔젤스에 몇 명인데요?”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받은 선수라고 해서 우리 에이전시에 필요한 고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물론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을 받았다고 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엔젤스 선수 중에는 그냥 1순위 지명 선수 정도가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들도 여럿 있잖아요.”
“야구 성적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니까요.”
“그럼 어떤 걸 보고 판단해야 하는 거죠?”
“야구 잘하는 선수를 필요로 하는 곳은 구단이죠. 우리 같은 에이전시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혼란스러워진 것과는 다르게 임예지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
“우리는 야구 성적을 올려주는 사교육 학원 같은 회사가 아니에요. 우리의 고객인 선수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줘서, 그들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죠.”
“그럼 유망주 선수를 도와서 야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걸 이룰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반대로 고객이 될 선수도, 우리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줄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죠.”
“그게…… 무슨 의미죠?”
“우리 회사는 이미 여러 스포츠 종목의 국내 최고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팀 내에서 나름 인정받는 선수가 된다는 거 정도로는 우리 회사의 가치를 높여줄 수가 없어요. 국내 야구 팬들 이외에도 관심을 가질 정도의 실력이 있거나 충분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선수 정도는 되어야 하죠. 우리 회사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요.”
그럼 리그 에이스급이거나 인기 많은 선수들만 회사의 매니지먼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일까.
“……그런가요.”
내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답하는 순간, 우리 옆을 지나가던 또 다른 사람이 임예지에게 대화를 건넸다.
그 덕분에 나는 잠시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약속된 시각이 되자 본격적인 시상식이 진행됐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시상식을 관람했다.
포지션별 골든글러브는 하나둘씩 자기 주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준호도 예상대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나는 수상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힘차게 손뼉 치며 그들을 응원했다.
꿈꾸던 순간을 맞이한 선수들이 가슴 뜨거워지는 수상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릴 때는 관객석에 앉아 있던 나에게도 울컥하는 감정이 찾아왔다.
다만 나와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과 함께 자리하지는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그들과 이 자리에서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지 않겠냐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봤다.
내가 선수를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 * *
시상식이 모두 끝나고 나와 임예지는 지하주차장에서 각자 차에 타려던 참이었다.
“현우 씨. 오늘 고생 많았어요.”
“제가 고생은요. 오늘 정말 재밌었습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시상식장에 와보고 포토존에서 플래시 세례도 받아봤다.
어딘가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임예지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임예집니다.”
밝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것도 잠시, 전화기 너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임예지의 얼굴이 곧바로 심각한 얼굴로 변했다.
“네. 알겠습니다.”
임예지가 전화를 마칠 때쯤에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흘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현우 씨. 우리가 할 일이 좀 많아지겠는데요?”
“무슨 일 있나요?”
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가?
지금 임예지 입가에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입꼬리를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도저히 무슨 이야기가 오간 걸까.
“나준호 선수 문젠데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임예지의 입에서 나올 말에 집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신분 조회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네? 메이저리그요?”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들었을까 걱정스러워 주변을 살폈다.
신분 조회는 영입 제안을 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야구협회에 신분 조회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은 나준호를 영입하고 싶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다는 의미였다.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한 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임예지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메이저리그라는 단어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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