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무엇이 선수를 위한 걸까 (7)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봐도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메이저리그로 승격이 됐을 때와 그렇지 못해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경우에 받게 되는 연봉이 다른 스플릿 계약이었다.
게다가 계약 기간도 2년이나 2+1년으로 길지 않은 데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해준다는 보장 조항도 포함하지 않은 조건이었다.
단기 계약이라 새로운 나라와 무대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고, 선수로서 최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시기에 장기 계약을 포기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혹시 모를 나준호의 부상에 대비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다.
반면에 메이저리그 구단의 제안이 국내 구단의 것과 비교해서 확실히 더 나은 점이 하나 있긴 했다.
만약 메이저리그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를 소화하기만 한다면,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신 계약 기간 자체가 짧다 보니 보장받을 수 있는 총 금액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나준호가 메이저리그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절실한 목표를 가진 게 아니라면, 선택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준호의 얼굴에는 조금씩 실망스러움이 번져갔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다.
임예지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나준호 선수 생각은 어떠세요?”
“음……. 저에 대한 평가가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나준호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준호 선수에 대해서 낮게 평가한다기보다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것 같아요.”
“네…….”
내가 애써 포장해 보려고 해도 달라지지는 않는 듯했다.
“국내 구단 쪽 제안은 그대로인가요?”
“아직까지는 지난번에 얘기 나눴던 대로예요.”
“그렇군요.”
나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메이저리그 구단 쪽 제안이 만족스럽지 않아 실망스럽다.
-좋은 계약을 위해서는 영구결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꿈이 있다고 해도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국내 무대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도 이루기 쉽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는 나준호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국내 쪽 제안은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나준호는 표정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필요한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나와 임예지는 사무실을 나서는 나준호를 배웅해 주고 다시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나준호 선수가 최종 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계약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라도 봐도 될 것 같네요.”
“네? 마무리 단계요?”
나준호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전혀 못 한 거 같은데?
“메이저리그가 상당히 큰 변수였는데,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게 확인이 됐으니까요.”
“아…….”
“이제 버팔로즈 쪽 제안에서 옵션 부분을 보장 금액으로 바꾸는 데 포인트를 맞춰 보죠. 옵션이 35억 원이나 된다는 게 너무 커 보이네요.”
“다른 구단하고도 더 얘기를 나눠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올해 현실적으로 나준호 선수 정도 되는 계약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팀이 얼마 안 될 거예요. 그걸 고려해 보면 다른 구단이 끼어들 가능성도 높지 않을 것 같고, 드래곤즈가 이제 와서 기존 제안에서 총액을 30억 원 이상 늘린 계약을 제시할 가능성도 희박할 테고요.”
아마도 임예지는 당연히 더 많은 돈을 제안한 버팔로즈와 추가 협상을 진행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모르고 있는 변수가 남아있었다.
-협상 초반부터 공들였던 재규어즈 이상훈과의 계약이 임박해서 설레고 있다.
만약 시상식 날 엔젤스 조재원 단장에게서 확인한 내용대로 된다면, FA 시장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다른 FA 외야수 중에 이적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팀에서도 제안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시장에서 나준호 선수와 비교할 만한 선수 중에 이적 가능성이 있을 선수가 있나요?”
임예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재규어즈 이상훈 정도면 다른 팀에서도 충분히 노려볼만할 것 같은데요.”
“이상훈 선수라……. 이적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이상훈 정도 되는 선수를 재규어즈에서 잡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잡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잡지 못할 가능성은 있죠.”
임예지가 내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
“나준호 선수가 드래곤즈를 떠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예상했을 팬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재규어즈가 이상훈을 놓친다면, 나준호 선수를 노릴 수도 있다는 말일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 선수가 빠진 외야진을 메우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핵심 선수를 데려오는 게 가장 확실하니까요.”
“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당장 결정하는 것보다 아직은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임예지가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일단 계약이 당장 마무리되는 것을 잠시 미뤄 놓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시간만 잠시 미뤄 놓았을 뿐이었다.
최고의 계약을 맺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 * *
“현우 씨? 현우 씨!”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어, 수민 씨 왔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 그냥 잠깐 다른 생각 좀 한 거예요.”
이수민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되게 일찍 오셨네요?”
“그게…… 사무실이랑 가까워서요. 금방 도착하더라고요.”
“어떤 거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사는 날이니까 마음껏 드세요.”
이수민은 최정환의 승부조작 자진신고 단독 보도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까지 했다.
게다가 야구 팬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기도 했다.
잠시 후, 우리는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나준호 선수 계약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아직 이야기 나눠보는 중이에요. 당장 결정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라서요.”
“메이저리그 쪽 제안이 괜찮나 봐요?”
“그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해요.”
“그럼…… 이야기 나눠보고 있다는 상대가 국내 구단인가 봐요?”
“어?”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유추가 되어버릴 줄이야.
“지난번에 시상식에서 했던 말이 그냥 말실수는 아닌 거네요?”
“하하하……. 아예 없는 말은 아니긴 하죠.”
“지금 협상하고 있는 다른 팀이 어딘지…… 말해줄 수 있어요? 비밀로 할게요.”
이수민이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대신에 아직은 오프 더 레코드예요.”
“그럼요. 당연하죠.”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이수민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혹시라도 들을까 이수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버팔로즈요.”
“어, 정말요?”
“네.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의외네요.”
이수민의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점에서 의외예요?”
“나준호 선수가 드래곤즈 말고 고민하는 팀이라면 당연히 재규어즈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 재규어즈.”
재규어즈의 연고지는 나준호가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도시였다.
그렇게 본다면 재규어즈로 이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말 이상훈이 엔젤스로 이적하는 게 확정된다면, 재규어즈에서도 나준호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게 분명하기도 했고.
“하긴, 재규어즈가 이상훈을 잔류시키는 데도 돈이 많이 써야 할 테니까 나준호 선수까지 영입하기는 무리가 있겠죠?”
“그, 그럼요.”
“혹시 이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기도 할까요? 이적 시장에서는 전혀 예상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아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을 먹었다.
“그럼 드래곤즈에 남는 건 거의 확실한 거죠? 나준호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갈 리는 없잖아요.”
“그럼요. 그럴 리 없게 해야죠.”
“표정을 보니까 뭔가 있는 거 같긴 한데요?”
이수민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승진 축하해요. 승진하고 나니까 어때요?”
* * *
시즌이 끝나 경기장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요즘 에이전시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기는 했지만, 점점 내근의 좋은 점을 느껴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내 자리에 앉으려는데, 김민환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현우 씨, 지금 바로 대표실로 가봐.”
“무슨 일 있어요?”
“언뜻 듣기로는 나준호 문제인 거 같던데.”
김민환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나준호 선수한테 무슨 문제 있대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일단 나는 벌떡 일어나 대표실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임예지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임예지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들어와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으며 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현우 씨, 혹시 나준호 선수랑 연락됐나요?”
“연락이요? 그저께 만나서 회의한 이후로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는데요.”
임예지가 내 말을 듣고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여러 번 두드렸다.
“나준호 선수랑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잠깐 무슨 일 있는 거 아닐까요?”
프리시즌에 편하게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게 특별한 건 아니었다.
“어제부터 계속 핸드폰이 꺼져있어서요.”
“핸드폰이 꺼져있다고요?”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무슨 일 있으면 얘기를 했을 것 같긴 한데…….”
“현우 씨가 직접 가보는 거 어때요?”
“그럴까요……?”
“그동안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 수소문해 보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에게는 외근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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