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무엇이 선수를 위한 걸까 (8)
나는 5시간을 달려 나준호가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내가 이동하는 동안에도 임예지와 김민환이 구단과 주변 선수들에게도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나준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드래곤즈 경기장 근처에 도착하고 나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과연 나준호 선배는 지금 어디 있을까?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고 싶을 테니 혼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평소에도 혼자서 자주 가던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런 곳이라면…….
짚이는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했다.
예전에 야구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 내용을 보았던 게 생각났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이동해 보자.
* * *
부우우우웅-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곳은 드래곤즈 홈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항구였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나준호가 있는지 찾으러 돌아다녔다.
다행인 점은 이곳 항구에서 사람이 앉아 있을 만한 곳이 그리 넓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그가 나준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나준호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맥주라도 한잔하고 있을 법했는데, 그냥 물 한 병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몸 관리에 신경 쓰는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했다.
나는 나준호의 어깨를 주무르며 인사를 건넸다.
“선배, 여기 계셨네요?”
“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어?”
나준호가 나를 보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선배라면 여기 계실 것 같았는데, 제 예상이 맞았네요.”
나는 자연스럽게 나준호 옆에 앉았다.
“머리 식히고 싶을 때마다 종종 찾는 곳이거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조용하기도 하고 바다도 볼 수 있고.”
-드래곤즈를 떠날 수도 있다는 말에 슬퍼하는 아들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
-이제 조만간 마음의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여러 가지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시길래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 했어요.”
“아……. 잠깐 혼자서 고민 좀 하고 싶었어.”
나준호의 말대로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곳이긴 한 것 같았다.
바다를 보고 앉아 있으니 나 또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FA가 되면 되게 기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네.”
“머리가 복잡하시죠?”
“그렇기도 하고, 나라는 선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서 냉정한 성적표를 받아든다는 게 솔직히 그렇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보내온 제안이 만족스럽지 않았으니 실망스러울 법도 했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세요?”
“아내는 내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라고 하고, 딸이야 아직 어려서 괜찮은데, 우리 아들이 문제네. 버팔로즈 이적하면 여기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하니까 하루 종일 펑펑 울더니, 그 후로는 나랑 말도 안 하려고 해.”
“여기가 되게 좋았나 봐요.”
“여기서 태어나기도 해서 그런지 애정이 정말 크더라고. 그렇게 좋아하고 있었는지 이번에 알았어.”
응원하는 구단을 바꾼다는 건, 국적을 바꾸는 것과 맞먹는 일이긴 했다.
“생각은 좀 정리가 되셨어요?”
“글쎄……. 이제 그냥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원래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잖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재규어즈는 어떠세요?”
“재규어즈? 거기서도 영입 제안이 온 거야?”
나준호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구체적인 제안이 온 건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상황이라서요.”
“음……. 재규어즈?”
나준호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만약에 버팔로즈랑 조건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면, 그래도 버팔로즈보다는 재규어즈가 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부모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고.”
일단 재규어즈를 그나마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만큼은 큰 수확이었다.
“근데 아직 이적 시장이 끝난 건 아니니까요.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정해진 것 같은데. 여기서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까?”
“그래도 선배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봐야죠.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렇게 말이라도 해줘서 고맙네.”
나준호가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프로 선수가 팀을 옮기는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받아들여야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잖아.”
나준호는 해탈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저녁 먹고 갈 거지? 여기까지 왔으니까 내가 대접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시즌도 끝났는데 내가 바쁠 게 있나.”
“저야 감사하기는 하죠.”
“빨리 가자. 기가 막힌 데로 데려가 줄게.”
나는 나준호와 함께 항구를 떠나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한 식사를 대접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으로 야구 선수 나준호가 아니라, 아들과 딸을 둔 아빠 나준호를 만날 수 있었다.
* * *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임예지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스마트폰이 고장 나서 연락이 어려웠던 거라고 하며,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둘러댔다.
굳이 나준호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임예지도 가만히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을 뿐,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위이잉-
임예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더니 화면만 보고도 씨익 미소를 보였다.
“네, 단장님.”
통화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임예지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니 누구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시면 오늘 바로 뵙죠. 단장님이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고, 이번에는 저희가 찾아뵙겠습니다.”
임예지가 마지막까지 밝은 미소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 씨. 지금 바로 출발하죠.”
“재규어즈인가요?”
임예지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왔구나.
“회사 차 준비해두겠습니다.”
“아니요. 기차 타고 갈 거예요.”
굳이 갑자기 기차라니?
장거리 운전을 안 해도 된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라는 건 분명한데.
차로 가는 게 여러모로 편한 게 사실이기도 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임예지의 모습을 보니 한가롭게 그런 질문을 던질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나도 급한 대로 필요한 짐들을 챙겼다.
쉴 틈 없는 외근이었다.
* * *
스토브리그 기간에 에이전트의 일거수일투족은 팬들 사이에서 중요한 정보가 됐다.
어느 팀과 협상을 진행하는지를 유추하는 떡밥으로 던져지기도 했다.
더욱이 나와 임예지는 모두 얼굴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라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했다.
└강현우랑 임예지 방금 기차 타러 가는 거 봤다. 재규어즈나 호크스랑 협상하러 가는 듯.
└요즘 호크스 단장 일하는 거 보면 그 XX 머릿속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을 리가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재규어즈? 안 그래도 지금 외야 자원 포화상태인데.
└나준호 고향 팀이라서 영입해 주는 건가. 그림 나쁘지 않잖아.
└못해도 100억은 써야 할 텐데 고향 팀이라고 해서 그 돈을 지르겠냐. 그 돈 있으면 차라리 다른 포지션 보강하는 데 써야지.
└나준호급 선수는 영입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데려오고 다른 선수를 내보내는 게 맞지.
└근데 드래곤즈에서 놓칠 리가 있나. YJ에서 몸값 올리려고 알바 푼 듯.
└하긴 나준호 정도 되는 프랜차이즈 놓치면 드래곤즈도 뒷감당 안 되지.
우리가 기차 타는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 덕분에 벌써 커뮤니티에는 나준호와 재규어즈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재규어즈 이상훈이 이적한다는 소식까지 알려진다면 엄청난 소용돌이가 칠 게 분명했다.
우리를 태우고 출발한 기차가 도착하는 데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했다.
팬들 분위기를 살피면서, 재규어즈 단장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와 임예지는 택시를 타러 이동했다.
그 사이에 우리 둘을 알아본 듯한 사람들이 주변에 몇몇 눈에 띄었다.
“대표님. 사람들이 벌써 알아보는 거 같은데요?”
“그냥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하세요.”
이제는 사진을 찍는 소리까지 들렸다.
나와 임예지가 이 시기에 특정 도시에 함께 나타났다는 건, 사실상 협상하러 왔다는 걸 대놓고 드러낸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걸어 나갔다.
“저기 혹시 강현우 선수 아니세요?”
결국 나를 알아본 팬이 다가왔다.
“아, 저 그게…… 맞긴 한데요.”
“저 진짜 팬인데. 혹시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나요?”
감사하기는 한데, 지금 상황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오늘은…….”
“찍고 오세요. 시간 충분해요.”
어, 정말 찍고 오라고?
못 찍게 막을 줄 알았더니 완전히 반대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어진 나는 다가온 팬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더니 옆에 있던 다른 팬도 다가왔다.
그렇게 나를 알아봐 준 팬들과 몇 분 동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소규모 팬미팅을 마치고 나와 임예지는 택시에 올라탔다.
물론 목적지는 재규어즈 구장이었다.
“우리가 협상하러 왔다는 걸 그냥 이렇게 대놓고 알려도 괜찮을까요?”
“이왕이면 빠르게 진행해 보는 게 좋잖아요.”
구단 사이에서 경쟁을 붙이겠다는 의미인 건가.
우리가 탄 택시는 오래 걸리지 않아 재규어즈 홈구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굳이 누군가의 안내를 받지 않아도 단장실을 찾아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똑. 똑.
노크를 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어서 오세요. 임 대표님. 현우도 같이 왔구나?”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과 함께 무언가 쫓기는 듯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미 이유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미소가 한편으로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