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무엇이 선수를 위한 걸까 (10)
드래곤즈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험난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도 점심시간이 다 되어야 도착할 것 같았다.
창가 쪽 자리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을 내다봤다.
이적 협상을 처음으로 맡고 나서 불과 며칠 사이에 정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다.
FA 협상을 이제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드래곤즈와 무난하게 협상을 마치고 계약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구단들이 의외로 매력적인 제안을 들고 왔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를 눈여겨봤다.
그사이에 재규어즈 프랜차이즈 이상훈이 4년 100억 원으로 엔젤스로 이적하면서 FA 시장을 뒤흔들 만한 빅 뉴스가 터졌다.
덕분에 나준호의 시장 가치가 협상 초반보다 더 높아지는 반사이익도 누릴 수 있었다.
얼마 전 드래곤즈와의 첫 번째 협상과 오늘 두 번째 협상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상황만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고 하지 않던가.
비슷한 포지션인 이상훈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다면 선수로서 가치가 낮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오늘 협상에서 확실하게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잔류 선택지는 없어지게 된다.
선수로서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으면서도 영구결번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협상에서 무언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생각하니 손에 땀이 절로 쥐어졌다.
* * *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나준호 선수가 확실히 실력 있는 선수이긴 한가 봅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이리저리 소문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렇죠. 우승팀 핵심 선수인데요.”
여유 있게 던지는 말과는 달리 단장의 눈빛에서 불안함을 지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나는 단장과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메이저리그 쪽하고는 어떠십니까?”
“조율 중입니다. 요즘 워낙 이곳저곳에서 제안이 많이 들어와서요.”
“재규어즈 쪽에서도 급하게 제안한 거 같던데…….”
“드래곤즈 얘기부터 해보죠. 드래곤즈 제안이 좋으면 다른 구단 제안이 어떤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 그렇긴 하죠.”
“드래곤즈에서는 어떠세요. 처음보다는 돈을 조금 더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바로 돌진해 들어오자 단장이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음……. 저희 쪽에서도 모기업에 나준호 선수를 꼭 잡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어필했습니다. 그래서 동의를 해주시기도 했고요.”
일단 다행이었다.
“저희가 처음에 계약금 55억 원에 연봉 10억 원을 제안드렸는데요.”
“네. 그러셨죠.”
“거기에 옵션 조항을 추가하면 어떨까 합니다.”
여기에 옵션을 더한다고?
더 이상은 계약금과 연봉을 손대기가 어렵다는 걸까.
옵션을 더한다고 해도 재규어즈의 보장액이 120억 원이니, 드래곤즈의 95억 원과는 차이가 너무 컸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회의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른 FA 선수들하고 계약은 잘 진행되고 있으신가요?”
“그거야 뭐…… 계약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구단 샐러리캡이 많이 타이트한가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죠?”
“구단 샐러리캡에 문제가 생길 것 같어서 고민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 그걸, 어떻게 아셨죠?”
너무 놀랐는지 단장이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답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올해 우승을 했으니 전체적으로 선수단 연봉이 올라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테고. 게다가 내년에도 FA 요건을 갖추는 선수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인데, 구단에서는 샐러리캡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단장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거 같으니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았다.
“구단 차원에서도 샐러리캡을 넘기지 않으면서 FA 협상을 진행해 보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아봤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더군요. 내년까지는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내후년부터는 아슬아슬하긴 합니다.”
“…….”
“어느 구단이 우승하자마자 우승 멤버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고 싶겠습니까. 하나하나 우리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들인데요.”
나는 단장과 눈을 마주치며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그럼 단장님, 차라리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가져온 가방에서 제안서를 꺼내 단장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제가 아이디어를 한번 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 구단 샐러리캡 문제도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단장이 제안서를 가져가서 신중하게 읽어내려갔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단장의 얼굴에는 흥미로움이 번져갔다.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할까요?”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규정집을 아무리 뒤져 봐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던데요.”
확신에 찬 내 목소리를 듣자 단장의 입가에는 이제야 미소가 지어졌다.
총액을 충분히 늘리면서도, 매년 지출해야 하는 금액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대신에 저희가 제시한 옵션 조항은 그대로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시겠죠?”
드래곤즈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대신 옵션 조항의 난이도를 대폭 낮췄다.
장기 부상을 당하지만 않으면 무난하게 달성할 만한 수준이었다.
실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구단주께 보고하고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승인받은 총액 한도를 넘어가는 거라서요.”
“그럼요. 대신 오래 기다려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구단에서도 지금 난리거든요.”
“네. 바로 보고해서 최대한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단장의 몸이 들썩거렸다.
나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만약 이번에 나준호 선수를 놓친다면 드래곤즈는 구단의 역사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 * *
드래곤즈 단장과 협상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임예지와 나준호는 이미 도착해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회의는 시작됐다.
임예지는 들고 온 서류 두 개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총 세 팀과 구체적인 제안을 주고받았고, 오늘 버팔로즈와 드래곤즈까지 재협상을 마쳤어요.”
“메이저리그 쪽에서는 새로운 제안이 없었나요?”
나준호의 눈에서 빛이라도 나올 것처럼 반짝였다.
“지난번에 얘기 나눴던 그대로예요. 계약 기간 연봉, 메이저리그 승격 조항까지 처음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요.”
“아……. 그런가요?”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나준호가 의자에 자신의 몸을 던지듯 기댔다.
“대신에 국내 구단의 제안에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임예지가 가장 왼쪽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버팔로즈와 어떤 추가 협상이 진행됐는지는 나도 아직 몰랐다.
“우선 재규어즈는 옵션 10억 원을 포함해서 4년 130억 원이에요. 계약금 40억 원에 연봉 20억 원씩이요.”
구체적인 액수를 듣자 나준호도 놀랐는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버팔로즈는 옵션 없이 4년 120억 원. 대신 계약금이 60억 원에 연봉 15억 원이에요.”
옵션을 포함한 총액은 재규어즈가 매력적이지만, 버팔로즈는 즉시 받게 되는 계약금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버팔로즈의 첫 제안에서는 옵션 비중이 꽤 높았는데, 추가 협상으로 전부 보장금액으로 바꾸었어요.”
옵션이 35억 원이나 됐던 첫 번째 협상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성과였다.
게다가 계약금의 비중을 무려 50%로 높인 것도 대단했다.
“계약금 비중이 낮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옵션 10억 원을 더 받을 수 있는 재규어즈가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나준호 선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팀이기도 하고요.”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던 나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마친 임예지가 설명을 이어가라며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드래곤즈 쪽 제안에는 특별한 게 있나요?”
임예지의 손짓과 목소리에서는 조금의 기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잠시 후에도 그럴까.
드래곤즈와의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드래곤즈에 조금 특이한 계약을 제안해 봤습니다.”
“특이한 계약이요?”
임예지와 나준호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과 각각 시선을 맞췄다.
“계약 기간이 꼭 4년이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
“나준호 선수가 올해 나이가 서른셋이죠. 이번에 4년 계약을 한다면 서른일곱에 계약이 끝날 겁니다. 그렇죠?”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나준호가 FA 권리를 취득한 시기가 늦은 편이었으니까.
빠르면 20대 후반에도 FA 요건을 채우는 선수들과 비교해 본다면 확실히 늦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계약을 따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아무리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도,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선수에게 거액을 제안할 팀은 없을 테니까요.”
팔짱을 낀 채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임예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음 FA 계약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FA를 포기한다니, 무슨 말이죠?”
이제 슬슬 본론을 말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6년 계약입니다.”
임예지의 눈썹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6년 계약을 할 수 있나요?”
나준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규정에 안 된다고 쓰여있지도 않으니, 선수하고 구단이 서로 동의한다면 문제 될 게 있을까요?”
내가 올라오는 동안 드래곤즈 구단주의 승인을 받았다는 답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세부 조건은 어떻게 되죠?”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은 임예지가 차분하게 물었다.
“계약금 40억 원. 연봉 15억 원에 옵션 20억 원까지. 총액 150억 원입니다.”
“150……억 원이요?”
“옵션도 까다롭지 않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전부 받을 수 있을 만한 내용입니다.”
한 번 열린 나준호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상 은퇴하는 날까지 드래곤즈에서 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준호 선수 등 번호를 드래곤즈의 첫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요.”
“와…….”
나준호가 입을 다물지 못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자, 그럼. 세 구단 중에서 어디가 좋은 선택지일지 같이 이야기 나눠볼까요?”
나는 드래곤즈 제안서를 테이블에 놓으며 여유로운 미소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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