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새로운 목표 (1)
나준호와 임예지 그리고 반대편에는 임승진 드래곤즈 단장과 운영팀장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임예지 옆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준호와 드래곤즈 단장이 각자 앞에 놓여있던 계약서에 각각 서명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서로 주고받아 또 한 번의 서명과 날인을 했다.
두 장의 계약서에 서명과 도장 날인이 모두 완료되면서 계약은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계약 축하드립니다.”
옆에 있던 임예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며칠 동안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했던 순간이 스치고 지나갔다.
볼펜을 내려놓은 나준호와 단장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나준호 선수, 우리 내년에도 열심히 해봅시다.”
“경기장에서 좋은 성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서로 밝게 웃으며 두 손을 맞잡은 지금 이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했다.
나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기자실로 이동하실까요? 이미 기자분들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운영팀장의 안내를 받아 기자실로 이동했다.
기자회견의 주인공이 앉을 자리 뒤로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오늘 날짜까지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크게 빛나지는 않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런 것을 꼼꼼하게 준비해두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이른 아침에 열리는 기자회견이었는데도 적지 않은 기자들이 기자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어젯밤에 내가 미리 언질을 해줘서 기자 중에서 가장 먼저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을 이수민도 앉아있었다.
이수민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나준호와 임예지 그리고 단장이 기자회견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나준호가 중앙에 앉고 임예지와 단장이 각각 좌우에 앉았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운영팀장이 마이크를 집어 들어 진행을 시작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자리해 주신 기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나준호 선수와 드래곤즈의 재계약과 관련해서 기자회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여러 기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운영팀장이 가장 먼저 손을 든 기자 한 명을 지목하자, 기다리고 있던 구단 관계자가 달려가 마이크를 건넸다.
“우선 나준호 선수 계약 축하드립니다. 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셨을 드래곤즈 팬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나준호가 앞에 놓인 마이크 위치를 조절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드래곤즈에서 데뷔하고 이번 시즌에는 창단 처음으로 우승하는 순간에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제 이름과 드래곤즈를 떼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드래곤즈에서 우승하는 모습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이 마무리될 때는 제 등 번호를 드래곤즈 영구결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준호가 말하는 동안에도 기자들이 타이핑하는 소리가 기자실을 가득 채웠다.
아까 질문했던 기자가 다시 한번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많은 야구팬이 이번 계약 소식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국내 리그에서 6년이라는 장기 계약이 이루어진 건 처음인데요. 어떻게 해서 이런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었나요?”
단장이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며 이야기했다.
“저희 드래곤즈와 나준호 선수 사이에는 협상 초반부터 이미 충분히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YJ 에이전시에서 6년 계약이라는 좋은 아이디어까지 제시해 주셨습니다. 팀 프랜차이즈 선수와 은퇴하는 날까지 함께하고 싶은 저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럼 에이전시에서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신 건가요?”
이번에는 임예지가 마이크로 몸을 당겼다.
“에이전시가 해야 하는 고민은 딱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선수에게 가장 좋은 계약을 안겨줄 수 있을까? 저희는 에이전시로서 해야 하는 그 유일한 고민에 집중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번 계약은 마무리가 된 것과는 별개로 아직 나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있었다.
선수에게 가장 좋은 계약이라는 게 무엇일까?
이번에는 다행히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만약 계약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이 충돌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기자회견을 듣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물음이었다.
임예지의 답변이 끝나고 다시 운영팀장의 지목을 받은 다른 기자가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다시 나준호 선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드래곤즈와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루지 못하게 됐는데요.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메이저리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의 무대였습니다. 솔직히 아쉽지 않다는 건 거짓말일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의 가치를 가장 잘 인정해 주는 팬과 구단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요.”
기자회견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기사는 시시각각 업로드됐다.
나는 기자회견을 들으면서 스마트폰으로는 기사와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봤다.
└ 6년 계약 ㄷㄷ 그럼 서른아홉까지 뛰는 거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계약이 되는구나.
└엄청 큰 돈인데 안 아까워 보이는 거, 나 혼자만 그러냐.
└나준호 영구결번 확정! 소리 질러!!!
└드래곤즈 2년 연속 우승 가즈아!
└ YJ 일 진짜 잘하네.
└재규어즈만 완전 새됐네. 국대 외야수까지 잃었는데 이제 어쩌려나.
팬들이 선수는 물론 우리 에이전시와 구단에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선수와 에이전시, 구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며칠 동안 몸도 힘들고 머리도 복잡했던 것들이 한 번에 싹 쓸려가는 기분이었다.
“저기…….”
그러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는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누구……시죠?”
갑자기 다가온 낯선 남자를 위아래로 살폈다.
틀어짐 없는 넥타이부터 반짝반짝 광나는 구두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입고 걸친 것 하나하나가 비싸 보이기도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스카이 코퍼레이션의 김상욱이라고 합니다.”
“스카이 코퍼레이션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김상욱이 미소를 지으며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저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스포츠 에이전시입니다.”
“아…….”
드디어 기억났다.
미국의 3대 스포츠 에이전시로 꼽히는 회사 중 하나였다.
미국은 스포츠의 나라라고 불리는 나라답게 스포츠 에이전시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과는 비교한다는 게 민망할 정도로 격차가 어마어마했다.
그가 건넨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얼떨결에 그 남자와 악수를 했다.
-아시아 시장 진출을 추진하면서 적합한 인재를 찾고 있다.
-강현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근데 저한테는 무슨 일로……?”
“잠시 대화를 좀 나눠보고 싶어서요.”
“저랑요?”
입가에 미소를 보이던 김상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거절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궁금한 점도 있고, 묻고 싶은 말도 있어서요.”
“일단 기자회견이 끝나야 가능할 거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나의 말에 김상욱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명함에 제 연락처 있습니다. 현우 씨께서 편하신 시간에 연락해 주시면 제가 계신 곳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네……. 그럼 이따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여전히 입가에 밝은 미소가 걸려있는 김상욱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그가 건네준 명함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명함을 뒤집어보니 뒷면에는 영어로 가득했다.
* * *
“현우 씨. 고생 많았어요.”
“대표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몇 주 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했던 굵직한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번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거예요? 6년 계약이요.”
임예지가 나를 보며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0년짜리 장기 계약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불가능할 이유는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내 얘기를 들은 임예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왜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이제까지는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저도 이틀 전까지만 해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럼 만약에 드래곤즈에서 6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나요?”
만약에 6년 계약을 거절했다면…….
재규어즈가 제시한 거액의 제안을 거절하고 드래곤즈의 레전드로 남아달라는 말은 완전히 힘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준호가 이적을 결심하는 것도 이상할게 없었다.
“그랬다면…… 아마 이적을 피할 수는 없었겠죠?”
“피할 수 없었다…….”
임예지가 내가 한 말을 되뇌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깜짝 이적 소식을 전해주는 것도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요?”
“나준호 선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했으니까요.”
임예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결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아이디어를 가져온 셈이군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이긴 하죠…….”
무슨 의미일까?
“이제 보니 휴머니스트라고 해도 실력만 있다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네요.”
“네……?”
“당분간은 바쁜 일 없을 거예요. 몇 달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며칠 푹 쉬고 오세요.”
임예지가 밝은 웃음을 보이더니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걸어가는 임예지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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