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작은 날갯짓이 불러온 나비효과 (3)
“죄송합니다.”
박성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빠짐없이 다 얘기해 준 거 맞나요?”
“네. 다 한 것 같은데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니, 내가 잠들고 나서도 계속 방송을 했었나 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이후에 했던 이야기 중에서는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었다.
“알겠어요. 박성주 선수는 잠깐 밖에 나가 계시겠어요?”
“네…….”
박성주가 기어갈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갔다.
회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임예지가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이번 문제는 제 잘못이 가장 큽니다. 박성주 선수가 SNS를 자주 사용한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설마설마 했더니 결국 이런 문제가 생기네요.”
임예지는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 책임이 더 컸다. 박성주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난 이후 바로 연봉협상과 나준호 FA 계약에 집중하느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닙니다. 제가 박성주 선수를 잘 관리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내 사과에 임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고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찾아 보죠.”
“아니 근데 이런 일로 징계까지 한다는 게 어이가 없네요. 솔직히 성주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김민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막말로, 석훈이 성적 좋아진 것도 버팔로즈 2군 육성 시스템 덕분에 된 건가요? 우리 현우 씨가 제대로 도와줬으니까 된 거지.”
우리 현우 씨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뜬금없이 오글거리게 왜 이러는 거지.
뭐, 대충 짐작 가는 이유가 있긴 했다.
-작년 고과 평가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기분이 좋다.
물론 적대적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반응을 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민망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번 일로 구단 내부의 문제가 드러났을 뿐이지 박성주 선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건 아니니까, 여론을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이슈가 박성주로 인해 시작되긴 했지만 박성주 자체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문제로 지적받고 있던 버팔로즈 2군의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비판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여러 야구계 인사와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는 금방 예상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찍찍 내뱉는 반말에 내가 들고 갔던 자료를 면전에서 찢어버리던 그 눈빛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또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롭게, 그 사람이 2군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버팔로즈의 2군 육성 체계가 엉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해야 여론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임예지가 나를 보며 물었다.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죠. 지금 여론의 화살이 우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현우 씨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
내 말에 김민환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부답스럽다…… 제발 그만 좀 해라.
“비난받아야 하는 건 망가진 버팔로즈의 시스템이지, 박성주 선수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버팔로즈에서 박성주 선수한테 웬만해서는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요?”
“박성주는 다음 시즌 버팔로즈 4번 타자니까요.”
냉정하지만 현실이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야구를 못하는 선수에게는 일벌백계라는 명목으로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
하지만 야구만 잘한다면 무려 음주 운전을 해도 몇 년의 자숙 기간이 지나고 조용히 복귀시키는 게 현실이었다.
임예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혹시라도 중간에 논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언론사에 자료 만들어 보내서 기사 써달라고 요청하죠. 매체에서 최대한 빠르게 기사 업로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대신에 정확하게 팩트만 넣어서요. 절대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네. 지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버팔로즈 징계위원회에 제출할 소명자료 준비도 문제없도록 진행해 주시고요.”
“네.”
나는 임예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민환과 함께 급하게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 * *
나와 김민환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기사가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자료까지 찾아서 제공해 주는 게 빠를 것 같았다.
내가 버팔로즈 육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룬 칼럼을 찾아서 정리하는 동안, 김민환은 옆에서 그 내용과 맞는 실제 경기 자료를 찾았다.
이진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담지 않고 팩트를 기반으로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 이진원에 대한 비판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물론 모두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는 내용만으로 구성했다.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부분이라 자료를 만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죠?”
나는 노트북을 돌려 김민환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내가 정리한 글을 읽어내려가던 김민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정말 흠잡을 곳 하나 없이 훌륭하네. 그런데 혹시…….”
김민환이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현우 씨, 혹시 이진원 감독한테 무슨 악감정 있는 건 아니지?”
“제가요? 제가 왜 그분한테 악감정이 있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이제 와서 이진원과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면, 지금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분명히 나는 팩트를 기반으로 했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우리 선수를 보호하는 게 중요하기는 한데, 크게 보면 이진원 씨도 현우 씨 선배일 텐데. 선배를 이 정도로 비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아서.”
“제가 없는 일을 지어낸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기사가 제 이름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야 한데……. 아무리 그래도 좀 ”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우리 선수가 빨리 멘탈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줘야죠.”
“그렇긴 하지.”
급박한 척 하고 나서야 김민환의 질문 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수민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까지 해서 부탁했다.
이수민은 최대한 빠르게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업로드된 이수민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독의 경기 운영이 이 정도면 구단 개혁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이라도 싹 바꿔라. 이러다 팬 다 떨어져 나가면 어쩔러고 그러냐.
└버팔로즈 단장님 제발 이 기사 좀 읽어주세요.
└주변에 많이 알려서 이 기사 조회 수 1위로 올립시다!
팬들의 화살은 완벽하게 우리의 의도대로 이진원 감독과 그의 라인이라고 불리는 코치들을 향했다.
게다가 다른 매체의 후속 보도도 줄지어 이어졌다.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버팔로즈 육성 시스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더 이상 이슈의 출발점이 된 박성주의 이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
나는 에이전시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박성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박성주는 오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갔다.
“성주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
내 말에도 박성주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 말도 안 들리겠지.
나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밝고 유쾌한 모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많이 낯설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오석훈이 다가왔다.
“형. 성주는 좀 어때요?”
“괜찮을 리 있겠어. 자기 이름이 이렇게 오르내리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일일 텐데.”
나는 들고 온 캐리어를 힘없이 구석에 두었다.
“그나저나…….”
오석훈은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구단에서 이번에 제대로 뒤집어엎을 거 같던데요.”
“버팔로즈에서?”
“네. 스프링캠프 가기 전까지 코치들 보직 개편도 제대로 다시 할 거라던데요.”
“그래? 누구한테 들은 거야?”
“친한 프런트 직원이 말해줬어요. 그래서 지금 코치님들도 단장님하고 한 명씩 면담하고 있대요.”
“정말?”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박인 건…….”
오석훈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어갔다.
“이진원 감독도 이번에 잘릴 가능성이 높대요.”
“진짜?”
15년이 넘도록 버팔로즈에서 끄떡없던 이진원이었다.
더구나 버팔로즈 사장과도 자주 만날 정도로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이진원을 최민성 단장이 쳐낼 수 있을까?
지금 버팔로즈에 제일 필요한 결정인 건 맞지만 절대 쉽지는 않을 거다.
“그게 진짜 가능할까?”
“쉽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이번에는 단장님이 제대로 벼른 것 같다던데요.”
이진원이 내 눈앞에서 종이를 찢으며 고함치는 순간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내게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었다.
“그리고 김용민 코치님도 나가기로 했대요.”
“뭐? 김용민 코치님이 왜?”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김용민 코치가 국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타격 코치라는 걸 버팔로즈에서 모를 리 없을 텐데.
“단장님 만나서 사임하겠다고 직접 말했다는 거 같더라고요.”
“직접 그런 얘기를 했다고? 확실한 거야?”
“이건 제 생각인데요. 성주가 타격 얘기하다가 그 말이 나온 거라. 그것 때문에 그러신 거 아닐까요?”
설마 스스로 사임을 선택할 줄이야.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타격 코치 입장에서는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가 절대 아닌데…….
김용민 코치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워졌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그리고 이따 성주 밥 꼭 먹으라고 해.”
“업어와서라도 식탁에 앉혀둘게요.”
나는 피식 웃으며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아!
그러다 무언가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돌아와 문을 열고는 고개를 집어넣었다.
“석훈아?”
“네?”
“김용민 코치님 집이 어딘지 알아?”
사실 직접 만나보는 건 처음이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