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작은 날갯짓이 불러온 나비효과 (4)
“여기쯤인 거 같은데.”
내비게이션이 인도해 주는 데로 따라가자 주택 단지가 나왔다.
단독 주택이 모여 조그마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동네였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주소 표시를 확인해 보니 오석훈이 알려준 주소와 같았다.
“여기 이 집인가 보네.”
우선 몇 발자국 뒤로 가서 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해 봤다.
거실과 방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일단 누군가 집에 계시는 건 확실했다.
다만 미리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는데,
이런저런 것을 꼼꼼하게 따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온다고 해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대문으로 다가가 인터폰을 누르려는데.
“어?”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이 어두워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얼굴이 조금씩 보였다.
바로 김용민 코치님이었다.
나는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직접 인사드리는 건 처음입니다. 강현우라고 합니다.”
“아, 네가 강현우구나. 그래. 이야기 많이 들었다. 만나서 반가워.”
김용민이 웃으며 악수를 건네왔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 공부가 더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버팔로즈 구단으로부터 미국 마이너리그 연수를 제안받았다.
이미 타격 이론과 코칭 능력에서 국내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분이 공부가 더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니.
이래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나한테?”
“네.”
“그래. 들어가지.”
김용민이 대문을 열고는 밝게 웃으며 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김용민 코치와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 * *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게. 마실 거라고 가져올 테니.”
“네.”
김용민이 잠시 밖으로 나가자, 나는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렸다.
책장에는 야구와 심리학 관련 책들을 포함해서 논문이 꽂혀 있었다.
나는 눈길을 끄는 책 한 권을 조심스럽게 꺼내 봤다.
중요한 페이지에는 색깔별로 포스트잇이 깔끔하게 붙어있었다.
영어로 된 책도 여러 권 볼 수 있었다.
책상 위에는 최근 미국에서도 타자와 투수를 분석하는 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스탯캐스트 자료가 놓여 있었다.
변화하는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서둘러 의자에 다시 앉았다.
문이 열리며 김용민 코치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김용민은 나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내가 즐겨 마시는 찬데. 아마 몸이 따뜻해질 거야. 어서 마셔 봐.”
“잘 마시겠습니다.”
나는 올라오는 연기를 몇 번 불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향기와 함께 몸이 따뜻하게 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다 찾아오고.”
김용민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순간, 김용민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 참, 안 그래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저한테요?”
“성주한테 어퍼스윙보다 레벨 스윙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조언을 해줬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내 생각에 성주 같은 거포 선수한테는 어퍼스윙으로 발사 각도를 높이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물꼬를 어떻게 터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이런 식으로 먼저 이야기를 해주니 고마웠다.
“성주처럼 파워가 좋은 선수라면 홈런 칠 가능성이 높은 어퍼스윙으로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이미 직접 봤듯이,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장외 홈런도 칠 수 있을 만한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이 방법이 성주에게만큼은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거지?”
김용민의 표정에는 흥미로움이 번져갔다.
“홈런을 싫어하는 타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성주는 엄청난 파워까지 갖춘 선수다 보니 홈런을 더 많이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죠.”
아마 파워가 좋은 선수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선수가 무리해서 어퍼스윙까지 하려다 보니 높은 코스에는 거의 대처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공을 맞혀내는 정확도도 계속 떨어졌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타율은 낮고 어쩌다 운 좋을 때만 홈런을 때려내는 영양가 낮은 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선수를 좋아하는 구단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내 말을 듣고 생각을 정리하던 김용민이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음……. 근데 타구를 조금이라도 높은 각도로 보내야 안타를 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데이터로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지 않나?”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뜬공 혁명 이론이었다.
안타 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공을 높이 띄워 보내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이 이론을 받아들여서 효과를 본 타자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유행이 돌고 돌듯 야구 전략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그리고 유행하는 전략이라고 해도 어떤 선수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뜬공 중에서도 제일 타율이 높은 타구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입니다. 직선으로 강하게 뻗어가는 타구는 수비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까다롭기도 하고요.”
나도 중견수 수비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직선에 가깝게 날아오는 공이 가장 대처하기가 까다로웠다.
“음…….”
“그리고 성주 정도의 파워라면 라인드라이브 타구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홈런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김용민의 표정에는 흥미로움이 번져갔다.
타격 전문가와 깊이 있는 야구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이 대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석훈이는 어떻게 된 거지? 타격을 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던데.”
“석훈이 타격에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는지 김용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석훈이가 타격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수비에서 안정감을 주지 못해서 스스로 위축된 게 가장 컸습니다. 석훈이가 가장 자신 있는 수비 포지션인 우익수로 고정된 이후부터는 압박감을 털어버리고 경기장에서 자기가 가진 타격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허……. 나는 전혀 생각 못 한 부분인데?”
“저도 석훈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에이전트가 옆에 있던 덕분에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던 거로구만.”
“과찬이십니다.”
짧은 탄성을 내뱉은 김용민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드디어.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무슨 오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성주가 SNS에서 했던 말 때문에 구단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구단 얘기가 나오자 김용민의 입가에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 얘기를 들으셨을 때 당연히 기분이 나쁘셨겠지만, 성주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전혀 아닙니다. 성주는 코치님에게 누구보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타격 자세를 찾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꺼내다가 오해가 생긴 것뿐이지, 절대 코치님의 역할이 무의미했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내 얘기가 끝나자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오늘 그 얘기를 하러 온 건가?”
“네. 물론 성주가 직접 와서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주가 지금 일로 인해서 심리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게다가 코치님께서 사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크게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저라도 하루빨리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김용민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그 말을 듣고 나서 유쾌하지는 않았지. 그런데 단순히 그 일 때문에 사임하는 건 아니네.”
“네? 그럼 무슨 이유로…….”
“오늘 자네랑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심을 더 굳힐 수 있게 됐어.”
내가 방금 대화하는 중에 실수한 거라도 있나?
코치님의 표정과 반응만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며칠 동안 곰곰이 혼자 생각하다 보니. 내가 아직도 야구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코치님께서 야구를 모르신다고 말씀하시면…….”
“자네가 보여주지 않았나. 그것도 두 번씩이나.”
“제가요?”
오석훈, 박성주와 관련한 것을 말하는 건가?
“나도 아직 더 배워야 할 것 같아. 마침 구단에서도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잠시 미국에서 배우고 오려고 하네.”
“그럼 마이너리그에서 연수 받으신 뒤에는 다시 돌아오시는 겁니까?”
“벌써 거기까지 알고 있나?”
이런……. 또 튀어나왔다.
“어쩌다 보니 듣게 됐습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터라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글쎄……. 돌아왔을 때 내가 합류해도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만. 버팔로즈가 변화하는 데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야.”
“코치님이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너도나도 모셔가려고 하겠죠.”
그의 코칭을 거쳐서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로 성장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오늘 처음 얘기를 나누는데 별 얘기를 다 하게 되는구먼. 허허.”
“코치님과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김용민이 나를 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또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그나저나 성주 그 녀석은 어때? 괜찮아?”
“이런 일을 겪은 게 처음이어서 그런지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가서 성주 그 녀석에게 전해줘. 너무 이런저런 고민하지 말고 프로답게 열심히 훈련하고 있으라고.”
“네.”
“옆에 이렇게 훌륭한 에이전트가 있다고 하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그 이후로도 야구를 주제로 한 우리의 대화는 거의 밤을 새울 정도로 이어졌다.
오랜만에 야구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원 없이 나눌 수 있었다.
일단 김용민 코치와의 오해는 해결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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