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스프링캠프 (1)
12월과 1월 두 달간의 비활동기간이 끝나면 구단의 스프링캠프가 시작된다.
잠시 멈춰있던 프로야구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 일상도 다시 바빠졌다.
겨우내 열심히 훈련한 오석훈과 박성주의 몸은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탄탄해져 갔다.
오석훈과 박성주는 1군 스프링캠프지로 합류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혹시라도 들뜬 마음에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될까 걱정돼서 신신당부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2월 1일이 되자마자 둘은 미국에서 진행되는 버팔로즈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40일 정도 미국 애리조나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시범경기 날짜에 맞춰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같이 지내던 두 명의 식구가 동시에 빠져나가자 허전함이 크게 느껴졌다.
대신 마당에서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 주는 루피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구단에서 숙소부터 훈련까지 모두 관리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 도와줘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지, 혹시 훈련하면서 특별하게 필요한 부분 정도만 확인하고 지원해 줄 예정이었다.
나와 김민환은 연습경기에 맞춰 현지로 이동해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올 예정이었다.
본격적인 연습경기가 시작될 2월 말이 되자 나도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출국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는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다.
특히 출발하기 전날에는 잠이 오질 않아 거의 밤을 새우게 됐다.
드르르-
캐리어와 함께 걷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공항은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와.”
오랜만에 오는 탁 트인 공항을 보니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현우 씨, 공항 처음 와 봐?”
내가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본 김민환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처음 와본 건 아닌데, 정말 오랜만이긴 해요.”
“이따가 비행기 타면 눈 돌아가겠네.”
“팀장님, 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전지훈련 갈 때는 타고 다녔어요. 가까운 곳이어서 그렇지.”
“쓰읍, 아닐 텐데?”
나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는 김민환의 표정을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비즈니스 클래스.
출국 수속이 이렇게 빨리 끝날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가벼운 짐만 들고서는 항공사 라운지로 향했다.
내 눈앞에는 수많은 메뉴가 펼쳐져 있었다.
웬만한 뷔페보다 메뉴가 훨씬 다양하고 맛있어 보였다.
“우와, 우와…….”
쩍 벌어진 내 입은 닫힐 틈이 없었다.
이러다 턱이 빠지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한가득 담아서 김민환과 마주 앉았다.
“허어억.”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김민환의 접시였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담을 수 있죠?”
작은 접시에 음식을 담는 스킬이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떻게 하면 음식을 높이 쌓으면서도 저렇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거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조금만 먹어. 가면서 기내식도 먹어야 하니까.”
“마실 거는 안 드세요?”
“아, 중요한 걸 잊었네.”
음식을 먹으려다 말고 벌떡 일어난 김민환이 샴페인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어서 먹자.”
그렇게 우리는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일 얘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팀장님은 먼저 이동하신다고 했죠?”
“어. 나는 중간에 바이킹스 캠프로 이동할 거야. 현우 씨는 계속 남아서 버팔로즈랑 더블즈 캠프 왔다 갔다 하면서 관리해 주면 돼. 차로 1시간 정도니까 그렇게 멀지 않을 거야.”
“바이킹스 캠프까지 가시는 게 쉽지는 않겠네요.”
“이 정도면 편한 거지. 미국에서 호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 요즘에는 그나마 우리 선수들 구단이 대부분 미국으로 많이 오는 편이라 다행이지.”
“비행기 타고 여러 나라 다니면 재밌지 않아요? 좋을 거 같은데.”
“장거리 여행이 얼마나 힘든데.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돌아다녀야 해.”
김민환이 나를 철없는 아이 보듯 하며 말했다.
비행기 타느라 힘든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다르려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됐다.
처음 보고 경험해 보는 비즈니스 좌석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가장 편하고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넓은 좌석이었다.
“와. 다리를 이렇게까지 뻗어도 여유가 있네요.”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가 접어보며 넓은 자리를 만끽했다.
“저기 현우 씨. 그만하는 게 어때? 주변 사람들한테도 다 들릴 거 같은데.”
주변을 살피던 김민환이 민망한 듯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요? 근데 진짜 좋긴 하네요.”
나는 그러고도 몇 번 더 발을 뻗어봤다.
김민환이 그런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는 동안 좀 자 둬. 도착하면 낮일 테니까.”
김민환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바로 잘 수가 없었다.
비즈니스의 안락함을 흠뻑 느끼면서 현지에서 올라온 기사들을 살펴봤다.
과연 처음 가보는 1군 캠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 * *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현지 코디네이터와 만날 수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동안 잘 지냈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민환하고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인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인사해. 이쪽은 우리가 있는 동안 현지 가이드를 맡아줄 이주혁 씨고. 여기는 누군지 알지?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강현우 씨.”
김민환이 나와 이주혁을 번갈아 보며 소개해 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현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옆에서 도와 드릴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밝게 웃는 이주혁과 악수를 나누었다.
정보창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있다.
-자신도 투수가 될 수 있는지 평가받아보고 싶다.
탄탄해 보이는 몸과 굳은살이 느껴지는 손을 보니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강현우 님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주혁이 나와 김민환을 번갈아 보며 묻자 김민환이 답했다.
“현우 씨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
“그래도 그건 좀…….”
이주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당분간은 현우 님 정도로 불러 주세요.”
“그게 좋겠네요. 우선 숙소 근처로 가서 식사 먼저 하시죠.”
나와 김민환은 이주혁의 안내를 받으며 미리 준비돼있던 차에 타서 이동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근처에 있는 타코 가게로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무슨 의미인지 모를 외국어가 들리고 영어로 가득한 메뉴판을 보니 미국에 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옆에서 메뉴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추천까지 해준 이주혁 덕분에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냈어?”
타코를 입에 가득 넣은 김민환이 이주혁을 보며 물었다.
“다음 학기에 졸업이라서요. 준비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벌써 졸업이야? 시간 진짜 빠르네.”
김민환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러게요. 어느새 보니까 그렇게 됐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현우 씨한테 설명을 안 해줬네. 여기 주혁 씨는 유학생이야. 임 대표님하고 친분이 있는 사이기도 하고 야구를 하고 있기도 해서 파트타임으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김민환이 나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어? 야구 선수세요?”
“아뇨 선수는 아니에요. 그냥 야구를 좋아해서 학교 다니면서 취미 생활하는 정도입니다.”
이주혁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머쓱한 듯 대답했다.
“그냥 취미 생활이라니. 여기서 경기도 뛰고 있지 않아?”
김민환이 휴지로 입을 닦으며 이주혁에게 물었다.
“정식 경기라고 하기는 어렵고 동아리 활동 같은 개념에 가깝죠.”
“에이, 겸손하기는. 얼마 전에 보니까 구속이 130km/h 후반은 나오겠던데.”
“정말요?”
나는 김민환의 말에 깜짝 놀라 이주혁을 바라봤다.
140km/h의 구속을 꾸준히 던질 수만 있다면 국내 프로야구 투수들의 평균 구속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냥 취미 수준이라고 할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대학 야구팀에서 같이 뛰는 선수들 따라서 훈련하다 보니까 좋아지고는 있는데, 그 선수들하고 비교하면 아직 멀었죠.”
“메이저리그 가려고 하는 친구들하고 비교하면 되나. 지금 그 정도면 한국 와서 선수로 뛰어도 될 거 같은데.”
“에이. 제가 무슨 선수로 뛰겠어요. 그냥 즐기는 거죠.”
이주혁이 무덤덤하게 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근데 버팔로즈가 내일부터 연습경기하는 거 맞지?”
“네. 오늘은 자체 연습 경기고요. 내일부터는 대학팀하고 연습 경기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몸 상태 어떤지 정도만 가볍게 보고 들어가자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쓰레기를 정리해서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데.
“억!”
돌덩이 같은 무언가와 부딪쳤다.
“I’m sorry. Are you Ok?”
외국인이었다.
“You’re welcome.”
외국인과 첫 대화를 나눴다는 신기함도 잠시.
-불펜 투수가 아닌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
-구속이 빨라지지 않아 고민스럽다.
처음으로 외국인에게서도 정보창이 보였다.
마이클 스콧이라는 외국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 씨 괜찮아?”
“괜찮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여러 번 했다.
그나저나 뭔 놈의 몸뚱이가 이렇게 단단해?
* * *
버팔로즈가 캠프를 차린 훈련장은 숙소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와!”
눈앞에 펼쳐진 훈련장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드넓은 운동장에 동서남북으로 야구장이 4개나 있었다.
타자들이 타격 훈련을 할 수 있는 배팅케이지와 투수들이 피칭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여러 선수들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까지도 훈련하기에 완벽했다.
이런 곳이라면 밤새 훈련하더라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해? 빨리 들어가자.”
“네.”
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겨우 부여잡고 김민환을 따라 스프링캠프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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