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스프링캠프 (2)
“형!”
“선배!”
나를 본 오석훈과 박성주가 전력을 다해 달려왔다.
고작 몇 주 떨어져 있었는데 몇 달 만에 만나는 것 같았다.
“요즘 훈련은 어때? 몸은 괜찮아?”
“따뜻한 데서 훈련하니까 더 좋아지는 거 같아요.”
박성주가 자신의 컨디션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 위로 보이는 정보창이 아니더라도 박성주의 표정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직 시즌 시작한 거 아니니까 너무 오버페이스 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조심해.”
“걱정 마세요. 코치님들도 귀에 박히도록 말해주고 계세요.”
나는 미소와 함께 박성주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오석훈을 바라봤다.
“석훈이 너는 어때?”
“저도 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박성주와는 다르게 표정에서부터 걱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타격감이 좋아지지 않아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시즌이 끝나면 실전 경기를 뛰지 않으니 타격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시즌은커녕 시범경기도 하지 않은 시기인데 벌써 타격감 고민을 하고 있다니.
정말 오석훈다운 고민이었다.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럼요……. 열심히 해봐야죠.”
오석훈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이런 성향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만든다는 문제도 있었다.
흔들리지 않도록 옆에서 멘탈 관리에 신경을 써줘야 할 것 같다.
잠시 후, 버팔로즈 자체 연습경기가 시작됐다.
타자들은 1군과 1.5군으로 팀을 나누어서 진행됐다.
승부보다는 컨디션을 조절하고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만큼, 공식 경기 룰과는 조금 달랐다.
투수마다 미리 정해진 투구 수가 넘어가면 3아웃이 되지 않아도 이닝이 종료됐고, 반대로 투구 수가 남았다면 4아웃까지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투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틱!
딱!
아직 투수들의 구속이 올라오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변화구보다는 빠른 공 위주로 컨디션 조절에 집중했던 탓에 타자들이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안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탄탄하다고 평가받는 버팔로즈의 수비는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1군 팀 3번 타순에 이름을 올린 오석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펑!
“스트라이크.”
초구에 자신 있게 스윙을 했지만, 공이 날아오는 궤적과는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타격감이 좋은 건 아니었다.
펑!
“스트라이크.”
거의 땅에 떨어지는 변화구인데도 기다리지 못하고 배트가 따라 나왔다.
그리고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빠른 공을 하나 걸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틱!
자신 없이 한 스윙으로 공이 빗맞으며 2루수 정면으로 향하는 땅볼이 되었다.
오석훈이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해보았지만, 2루수가 무난하게 잡아서 이웃시킬 수 있는 타구였다.
1루 베이스를 지나쳐 속도를 천천히 줄이던 오석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섰다.
“석훈이는 아직 감이 안 좋네.”
배트에 빗맞는 순간 김민환도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내더니 안타까워했다.
“아직 스프링캠프니까요.”
“점점 감 찾아가겠지?”
“당연하죠.”
“그래. 올해는 아마 일낼 거 같아. 내가 촉이 좋잖아.”
김민환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맞춰줬다.
경기는 계속 진행됐다.
다음은 버팔로즈의 4번 타자가 된 박성주였다.
배트를 휘두르며 나오는 모습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졌다.
집에서 볼 때는 그냥 장난기 많은 애 같았는데 그라운드에서만큼은 달라 보였다.
이제 정말 4번 타자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투수가 포수와 여러 차례 사인을 주고받았다.
사인 교환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투구의 결과를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직 구속이 올라오지 못한 상황에서 밋밋하게 들어온 변화구는 타자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따악!
박성주의 배트는 초구부터 자신 있게 돌아갔고, 배트에 맞은 공은 날아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박성주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배트 스피드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오! 오오!”
이미 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커진 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김민환과 이주혁의 탄성도 들렸다.
타구는 쭉쭉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홈런!”
공이 펜스를 완전히 넘어가자 나는 두 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김민환, 이주혁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실전 경기가 아니라도 홈런이란 건 언제나 짜릿했다.
팀 자체 연습경기라 그런지 박성주는 특별한 세리머니를 하지는 않았다.
홈런 세리머니를 볼 때마다 항상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조용하게 넘어가니 심심하긴 했다.
대신 나 혼자 주먹을 불끈 쥐며 짜릿한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요즘 자주 보네요.”
“어? 단장님.”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최민성 버팔로즈 단장이었다.
연봉과 FA 협상에 박성주의 징계위원회까지, 어쩌다 보니 이번 겨울에 가장 많이 만난 단장이었다.
“석훈이하고 성주 보러 오셨나 봅니다?”
“네. 아픈 곳 없이 훈련하고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나와 눈이 마주친 단장이 고개를 돌려 연습경기가 진행 중인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잘하고 있긴 한데. 여기에다 나준호까지 있었으면 완벽했을 것 같은데…….”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나는 거기에다 한마디를 툭 던졌다.
“버팔로즈에는 석훈이가 있잖습니까. 이미 리그 최고 우익수가 될 선수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세요.”
“저희도 이번 FA 시장에서 제대로 돈 쓸 준비가 돼 있어서 그런지, 계속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라운드를 보는 최민성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는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번에 버팔로즈에서 구단 분위기 바꿔보려고 제대로 마음먹은 거 같던데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는지 최민성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줬다고나 할까요. 단단히 박혀 있는 돌을 빼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에 기회가 된 거죠.”
“앞으로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오히려 박성주가 일으킨 해프닝이 고마웠을지도 모르겠다.
“석훈이하고 성주는 올해 잘할 수 있겠죠?”
“중심 타선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두 선수 모두 자기 역할은 충분히 해줄 테니까요.”
“구단에서도 철저하게 관리를 하긴 할 겁니다만, 에이전시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야 시즌 끝나고 연봉 협상을 편하게 하실 테니까요.”
“넉넉하게 준비하고 있으셔야 할 겁니다.”
내 말을 듣은 최민성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 나준호 선수 6년 계약, 현우 씨가 제안한 거라면서요?”
“네.”
최민성이 잠시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손을 내밀었다.
“우리 가깝게 지내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많을 거 같은데.”
“단장님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럼 한국 돌아가서 또 뵙겠습니다.”
악수를 마친 최민성이 멀어져갔다.
그러자 김민환이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휴. 저거는 진짜 여우야 아주. 와서 뭐라 그래?”
“그냥…… 석훈이랑 성주 잘할 거 같냐 이런 얘기요.”
“그럼 우리 애들인데 잘하겠지. 개판 치겠어? 말 같지도 않은 거 물어보고 있어.”
얼마 전 연봉 협상이 떠올랐는지 김민환은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최민성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피식 웃음이 터졌다.
계속 이어진 경기에서 오석훈은 여전히 감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고, 박성주는 여러 차례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 * *
다음 날은 더블즈 훈련장으로 가는 날이었다.
한 시간 정도 차로 이동해야 하는 곳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가볍게 숙소를 나선 나와는 달리 김민환은 가져온 짐을 모두 챙겨 나왔다.
YJ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는 또 다른 선수 고지훈과 인사하고 바이킹스가 캠프를 차린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묵직한 김민환의 캐리어까지 싣고서 출발했다.
“고지훈이라고 알지?”
김민환이 앞뒤 없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네. 잘 알죠.”
고지훈은 언더핸드 오른손 투수였다.
더블즈에서 2-3선발 투수로 꼽히고 있었고, 다른 팀에 가더라도 그 정도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좋은 투수였다.
국가대표로도 뽑혀서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던 선수라서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허리를 한껏 숙여 아래에서 공을 던지는 투구 폼 때문에 잔부상에 자주 시달리는 편이고, 체력 소모가 커서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한다는 게 약점이었다.
“올해는 특히나 그 친구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해.”
“이번 시즌 끝나면 FA죠?”
“맞아. 그래서 그런지, 원래도 예민한 스타일인데 얼마 전에 보니까 더 장난 아니야.”
김민환이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FA를 앞둔 시즌에는 선수들이 예민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협상을 하면서 계약을 앞둔 직전 시즌 성적만으로 선수 가치를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직전 시즌에 보여준 퍼포먼스의 임팩트를 무시할 수도 없을 테니까.
“올해 150 이닝 이상 던져주기만 하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쉽지 않겠죠?”
“어휴. 그러면 좋기야 하겠는데, 그냥 부상만 없이 보내주기만 해도 땡큐지 뭐.”
시큰둥한 김민환의 표정에서는 기대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더블즈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을 훈련장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둘러보던 김민환이 누군가를 보고서는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나는 이주혁과 함께 김민환을 따라갔다.
“지훈아.”
김민환의 목소리를 들은 고지훈이 글러브를 든 채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지금 몸 상태는 어때? 훈련하는 데는 문제 없어?”
“좋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요.”
“이야. 몸도 잘 만들었네.”
김민환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지훈의 어깨와 팔을 만지작거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강현우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인사를 건넸다.
“어…… 그래요.”
별로 인사하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낯을 가리는 걸까, 등판을 앞두고 예민한 걸까.
-시즌을 마치면 FA를 앞두고 있어 극도로 예민한 상태다.
-초반부터 페이스를 무리하게 끌어올리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예민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시즌 초반부터 페이스를 무리하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건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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