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스프링캠프 (4)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에 있던 공터에서 이주혁의 도움을 받아 스콧과 대화를 이어갔다.
“네가 정말 야구 에이전트라고?”
스콧이 나에게 급격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내가 에이전트, 그것도 야구 에이전트라는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였다.
“와우!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오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기 시작했다.
스콧의 격렬한 손짓과 표정만으로도 그의 감정 상태가 지금 어떤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주혁을 거쳐야 했지만 말이다.
“스콧이 자신은 선발 투수로 뛰고 싶은데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네요.”
“음…… 그런 상황이군요.”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불펜 투수가 아닌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
-구속이 빨라지지 않아 고민스럽다.
내 눈에 보이는 정보창은 외국인을 상대로도 정확했다.
문득 이 선수의 능력치나 현재 상황이 어떤지까지 보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던지는 구종이 뭐래요?”
내 질문을 통역으로 전달받은 스콧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구종을 말해줬다.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에 커브, 체인지업, 투심도 던질 줄 안대요.”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다섯 가지나 된다는 건 선발 투수로서 필요한 무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중에서 제일 자신 있는 건요?”
“포심이랑 슬라이더래요.”
스콧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한껏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정말 자신 있다는데요.”
“직접 던지는 걸 봐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보이는 정보창만으로는 조언해 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장비랑 공 가져올까요?”
“지금 가지고 있어요?”
“네, 틈틈이 연습하려고 들고 다니거든요.”
“그럼 좋죠. 스콧만 괜찮다면요.”
이주혁이 스콧에게 지금 던질 수 있을지 의사를 물었다.
이번에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도 그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오 마이 갓! 거절할 이유가 없지, 나한테 너무 좋은 기회야!”
이번에는 멈추지 않는 감탄사에 주먹을 불끈 쥐는 리액션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이주혁이 글러브와 공을 가져왔다.
스콧이 이주혁과 캐치볼을 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단순히 몸을 풀기 위한 캐치볼이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느새 포수 장비를 갖춰 입은 이주혁이 묵직한 포수 미트까지 장착하고 나서는 자세를 낮췄다.
어느 정도 몸이 풀렸는지 스콧이 제대로 피칭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이주혁 뒤로 가서 스콧의 공을 제대로 보기로 했다.
빠른 공을 보는 게 아직 살짝 두렵긴 했지만,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공을 잡고 생각을 정리하던 스콧이 심호흡을 한 번 고르고는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펑!
“우와.”
포심 패스트볼의 힘이 엄청났다.
실내 연습장이 아닌데도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어후, 장난 아닌데요?”
두꺼운 포수 미트를 끼고도 얼얼한지 이주혁이 손을 꺼내 몇 번 흔들었다.
“이 정도면 국내 원 탑일 거 같은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여기서 더 빨라질 수 있을 거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공이었다.
이 정도 투수에게 선발 로테이션을 맡기지 않는 이유는 뭘까.
펑!
“아우, 아파.”
이번에는 이주혁이 손바닥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괜찮아요?”
“Are you Ok, Bro?”
깜짝 놀라 다가온 스콧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처음이라 그런 건데 괜찮아요.”
벌떡 일어난 이주혁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 다시 미트에 손을 끼웠다.
하지만 더 하다가는 다칠 것 같았다.
“여기까지만 해야 할 거 같은데요.”
내가 먼저 나서서 만류했다.
노하우 없이 프로급 선수의 공을 받다가는 부상을 당하기 쉬웠다.
“저는 진짜 괜찮아요.”
“아니에요. 이러다가 진짜 손가락 다쳐요.”
이주혁을 보니 스스로 고집을 꺾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직접 스콧에게 말하는 수밖에.
“Scott. Um…… Tomorrow. Pitching…….”
스콧도 안간힘을 쓰며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모습이었다.
에이.
혼자서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다시 이주혁에게 말했다.
“내일 버팔로즈 경기에 나온다고 했잖아요. 피칭하는 모습은 그거로 보면 되니까 경기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하죠.”
“아……. 그래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시무룩해진 이주혁을 보자 스콧이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주혁이 영어로 이야기해 주자 스콧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일 보여줄게.”
* * *
다음 날, 버팔로즈 훈련 캠프에서 펼쳐지는 연습 경기를 보러 갔다.
오석훈과 박성주의 경기력만큼이나 마이클 스콧의 실전 경기 모습도 궁금했다.
혹시 오석훈과 박성주와 승부를 겨룬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궁금했다.
불펜으로 투입될 예정이기는 했지만, 스콧이 2이닝 정도 소화할 거라고 했으니 맞대결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이주혁과 함께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 현지 대학팀과의 경기다 보니 외국인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 중에는 상대 팀 선수 에이전트도 있을 테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있을지도 몰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주혁이 상대 팀과 미국 대학 야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줬다.
“지금 상대하는 선 데빌스는 애리조나 주립대 팀이에요. 대학팀이기는 해도 꽤 실력 있는 팀으로 꼽혀요. NCAA 1부 리그 소속에다가, 해마다 꾸준하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기도 하고요.”
“투수진이 탄탄한 팀인가 봐요? 스콧 정도 되는 투수도 선발로 뛰기가 어려운 거 보면.”
“투수진도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완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닐 거 같은데요.”
“그럼 스콧이 선발로 못 뛰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저도 그 부분까지는 잘…….”
그 정도 실력은 가진 투수는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인 건가.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 알겠지.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앉은 곳 근처에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첩과 펜을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분명히 구단이나 에이전시 관계자인 게 틀림없었다.
얘기를 나눠보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무턱대고 들이대 볼까.
외국이라 그런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 자신 있게 나서보자.
못하면 어때? 저 사람도 한국말 못할 거 아냐.
나는 결심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어? 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더니 내가 말을 걸어보려고 했던 그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나랑 텔레파시가 통한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 사람이 나를 지나치더니 누군가와 두 손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었다.
바로 이주혁이었다.
나는 잠시 얼떨떨하게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영어로 무어라고 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현우 님. 이분은 스티븐 폴이에요.”
“Hi. Nice to meet you.”
나는 자신 있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폴이 나를 보며 웃으며 손을 잡았다.
-아시아 출신 선수에 깊은 관심이 있다.
-한국 프로팀의 경기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폴은 애리조나 구단 스카우트예요.”
애리조나?
내가 아는 그 애리조나가 맞나.
“메이저리그 팀 애리조나요?”
“네. 맞아요.”
정말 맞다고?
드디어 내가 메이저리그 관계자와도 만나게 되다니.
“폴. 이쪽은 한국 야구 에이전트예요.”
에이전트라는 말에 폴이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는 이주혁에게 누군가 물었다.
“버팔로즈에서 누구 매니지먼트 하냐고 묻는데요.”
“right fielder, third base…… 3rd, 4th hitter…….”
어설픈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정보는 충분히 전달된 것 같았다.
폴이 3, 4번 타자라는 단어를 듣더니 눈빛이 반짝이며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석훈과 박성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어느새 경기가 시작할 시간이 됐다.
경기 중에 틈틈이 이야기 나눠보는 수밖에.
원활한 대화를 위해 이주혁이 가운데에 앉고 나와 폴이 그 옆에 앉았다.
스프링캠프인 만큼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중요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직접 와서 보고 있으니 이왕이면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보는 오석훈과 박성주는 어느 정도일까?
“근데 폴은 어떤 선수 보러 오신 거래요?”
“오늘 선발로 나오는 투수요.”
“버팔로즈?”
“아니요. 상대 팀이요. 올해 드래프트에서 지명할 수도 있나 봐요.”
“오…….”
말하는 느낌상 최상위 순번은 아닌 것 같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면 좋은 투수이긴 한가 보다.
버팔로즈의 공격이 먼저 진행됐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관심 가지는 선수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더 집중해서 지켜보게 됐다.
펑!
펑!
아주 빠른 공을 던지는 건 아니었지만 구석구석을 찌르는 안정적인 제구력으로 승부를 펼쳐갔다.
게다가 귀한 왼손 투수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에는 스트라이크처럼 날아오다가 절묘하게 뚝 떨어지는 변화구로 타자가 배트를 휘두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대단한데요.”
나는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저래서 메이저리그에서 관심 가지나 봐요.”
이주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폴은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에 무언가 계속 적고 있었다.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진 나와는 달리 폴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 공을 던지는 투수는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한 건가.
타석에는 버팔로즈 2번 타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3번 타자인 오석훈이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공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웅.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기 전에 빠르게 승부를 할 생각이었는지, 타자는 초구부터 과감하게 스윙을 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하지만 투수가 패스트볼과 똑같이 들어오다가 살짝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걸어왔다.
볼 배합을 어떻게 할지는 포수의 역할이 크지만, 그걸 직접 던지는 건 온전히 투수의 역량이었다.
지금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포수의 영리한 두뇌 싸움을 완벽하게 실현해 주고 있었다.
틱!
타이밍을 완전히 뺏긴 타자의 스윙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1루까지 전력질주해서 달려보았지만 공이 먼저 도착했다.
“아웃!”
순식간에 2아웃이 되었다.
그리고 타석으로 들어서는 다음 타자는 지난 시즌부터 버팔로즈의 붙박이 3번 타자로 낙점된 오석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