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스프링캠프 (5)
오석훈이 배트를 만지작거리며 타석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아직 경기력을 걱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는 건 분명하긴 하지만.
메이저리그 관계자 앞에서 눈도장을 찍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 투수의 표정에서는 이제 편안함은 물론 자신감도 느껴졌다.
상대 팀 1, 2번 타자를 가볍게 아웃시켰으니 이제 여유가 생겼을 법도 했다.
“플레이 볼!”
오석훈이 타석에 들어서자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포수의 사인을 받자마자 한 번에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역시 초구는 패스트볼이었다.
오석훈이 서있는 반대편의 가장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이런 볼은 배트에 맞춘다고 해도 파울이거나 내야 땅볼이었다.
스트라이크 콜을 들은 오석훈이 타석에서 다리를 하나 빼더니 배트를 몇 번 휘두르며 꽤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기다리던 심판이 오석훈을 부르며 타석에 서라는 손짓을 할 정도였다.
타자들이 타격감이 안 좋을 때 자주 나오는 행동이었다.
“플레이 볼!”
심판의 콜로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포수의 사인을 받은 투수가 이번에도 한 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수의 리드가 훌륭한 데다 투수와 호흡도 잘 맞아 보였다.
투수가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어, 뭐야? 갑자기?”
오석훈이 허리를 숙이고 배트를 짧게 잡으며 번트 자세를 취했다.
톡!
짧게 잡은 배트에 맞은 공은 땅에 몇 번 튀며 투수 쪽을 향해 굴러갔다.
속도를 잘 떨어트리기는 했지만, 번트 타구의 코스가 아쉬웠다.
조금 더 3루수 방향으로 갔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너무 투수가 잡기 쉬운 방향이었다.
다만 상대 투수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지기 위해서는 몸을 완전히 돌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재빠르게 공을 잡은 투수가 몸을 돌려 1루로 강하게 던졌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수비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이 날아갔을 1루 베이스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오석훈이 보이지 않았다.
오석훈은 이미 엄청난 속도로 1루 베이스를 밟은 뒤에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스피드였다.
번트 코스가 완벽하지도 않았고 상대 투수도 좋은 수비를 했는데도 여유 있게 세이프가 됐다.
투수도 입을 벌린 채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석훈의 승부수는 나쁘지 않았다.
타격감이 아직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데다 상대 투수의 제구력이 워낙 좋은 상황이니 이렇게 변칙적으로 승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옆에 있던 스티븐 폴의 표정에서 큰 변화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손은 빠르게 무언가를 적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타석에 들어오고 있는 선수는 4번 타자 박성주였다.
박성주의 타격감은 지금 최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니 어떤 승부를 펼칠지 궁금했다.
그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져서 더욱 기대됐다.
폴도 4번 타자스러운 체격이 있는 선수가 들어오니 눈을 반짝였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마운드에 선 투수와 포수가 꽤 오랜 시간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사인을 받아든 투수가 글러브를 가슴 앞으로 가져와서 1루를 바라보며 멈춤 동작을 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어?”
1루에 있던 오석훈이 전력을 다해 2루로 달렸다.
“Run! Run! Run!”
상대 팀 더그아웃에서 큰소리로 외치며 주자의 도루를 알렸다.
포수가 공을 글러브로 받자마자 반쯤 일어나며 2루 베이스를 향해 던졌다.
2루 베이스로 급하게 달려온 2루수가 공이든 글러브를 오석훈에게 갖다 대봤지만.
“세이프!”
결국 도루까지 성공시켰다.
“오석훈 나이스!”
버팔로즈 더그아웃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순간이었다.
다시 박성주와의 승부가 이어졌다.
아까 투수가 던진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공이었지만, 박성주가 의도적으로 스윙을 했기 때문에 스윙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공이었다.
포수의 사인을 받은 투수가 한참 동안 2루를 바라보며 오석훈을 견제했다.
그러고는 빠른 슬라이드 스텝으로 공을 던졌다.
박성주가 스트라이크를 직감했는지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후웅.
하지만 공은 배트에 닿지 않고 포수의 미트 속으로 들어갔다.
패스트볼을 던지는 자세와 코스가 거의 유사하게 체인지업을 던졌다.
스트라이크처럼 날아오다가 어느새 속도가 느려지며 가라앉는 궤적을 보니 속지 않을 수가 없는 공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체인지업에 박성주도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저 정도면 메이저리그 갈 만하겠는데요.”
옆에 있던 이주혁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게요.”
괜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는 게 아니었다.
0 볼 2 스트라이크로 타자에게 불리한 카운트가 되었다.
투수 입장에서는 여유 있는 상황이니 볼 하나쯤 던지면서 타자의 타이밍을 흩트려 놓을 수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면 제구력이 좋은 투수이니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공으로 승부를 걸어올 수도 있었다.
이래서 구속이 빠른 투수보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훨씬 무서운 법이지.
투수가 다음 공을 던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다가 낙차가 크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볼!”
다행히 이번에는 떨어지는 타이밍이 조금 빨라서 어렵지 않게 골라낼 수 있었다.
1 볼 2 스트라이크.
아직도 투수가 유리한 카운트였다.
어느덧 네 번째 공이었다.
“후우.”
투수가 주저하지 않고 공을 던졌다.
공은 빠른 속도로 스트라이크 존 높은 코스로 날아왔다.
아까와는 반대로 높은 코스를 노려서 공으로 삼진을 잡아내려는 전략이었다.
방금 낮은 코스의 공을 던진 다음이라 타자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데다,
어퍼스윙을 주로 하는 홈런 타자를 상대할 때 효과적인 전략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박성주가 보통의 거포와 다르다는 걸 이들이 알 리가 없겠지.
딱!
빠르게 돌아간 배트는 공을 정확하게 맞춰냈다.
“오! 와!”
공은 내 시선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쭉쭉 뻗어갔다.
2루에 있던 오석훈이 어느새 3루를 지나 홈을 향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듯했지만,
턱!
날아가던 공은 펜스 상단을 때리고 떨어졌다.
거의 홈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2루에 편안하게 도착한 박성주가 밝게 웃으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홈 베이스를 밟은 오석훈의 득점으로 점수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실력이 뛰어난 투수를 상대로 좋은 승부를 펼쳐줬다.
나는 시선을 돌려 폴을 바라봤다.
과연 폴은 박성주의 경기력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오석훈과 박성주를 상대로 실점한 이후, 상대 투수는 다시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아직은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는 대학팀이라 수비에서 불안함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위기관리 능력까지 갖춘 투수 덕분에 추가 실점을 하지는 않았다.
상대 선발 투수는 미리 정해둔 투구 수를 채웠는지 3이닝을 던지고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4회로 이어지는데,
“벌써 올라오네요.”
이번에 올라온 투수는 마이클 스콧이었다.
“제법 아우라가 있는데요?”
그는 과연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버팔로즈 하위 타선부터 승부하게 됐다.
2이닝 정도를 소화할 거라고 했으니 아마도 오석훈, 박성주와 맞대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펑!
펑!
펑!
“우와…….”
스콧이 첫 타자부터 패스트볼만으로 3구 삼진을 잡아냈다.
-구속이 빨라지지 않아 고민스럽다.
분명히 스콧의 정보창에서는 구속이 빨라지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던지는 모습을 보니 구속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패스트볼 장난 아니네요.”
이주혁은 어제 스콧의 볼을 받으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왼쪽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손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아파요.”
말과는 달리 표정에서는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다시 시선을 그라운드로 옮겼다.
스콧은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도 변함이 없었다.
펑!
펑!
후웅.
위력적인 패스트볼에 우타자가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 수 없을 슬라이더까지.
겨우 배트에 맞추더라도 안타는커녕 힘에 밀려 파울 존에 떨어졌다.
당황한 타자들이 커트를 해서 파울을 만들어 내며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가 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세 명의 프로 타자를 너무나 손쉽게 아웃시켰다.
아무리 연습경기이고 하위 타선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국내 프로야구 선수가 대학생 선수에게 압도당한 것 같아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도 들었다.
버팔로즈의 수비가 끝나고 다시 공격 차례가 됐다.
역시나 마이클 스콧이 두 번째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올라왔다.
1번 타자부터 상대하는 타순이었다.
펑!
펑!
패스트볼의 위력은 역시나 보통이 아니었다.
타격 기술이 좋은 버팔로즈 1번 타자를 상대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승부에서는 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빠르게 잡고 나서 공을 다섯 개나 더 던졌는데도 아웃시키지 못했다.
계속되는 커트에 집중력이 살짝 무너졌는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들이 늘어났다.
결국 볼넷으로 선두 타자를 출루시켰다.
“근데 이번에는 거의 패스트볼만 던지네요.”
“그러게요. 패스트볼이 좋긴 한데, 변화구 좀 섞어가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하지만 뒤이어 타석에 선 2번 타자를 상대로는 또다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네.”
그리고 다시 3번 타자 오석훈이었다.
이번에도 빠르게 패스트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자신 있게 꽂아 넣는 것은 확실한 강점이었다.
이제 세 번째 공을 던지려는 데.
포수와의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이 처음으로 길어졌다.
스콧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포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몇 번의 사인을 주고받고 난 후에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공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스콧은 힘겹게 숨을 고르고는 공을 던졌다.
어?
미세했지만 분명히 공이 날아오는 궤적이 이제까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타이밍을 뺏으려는 전략이었는지 속도가 확연히 느린 공이었다.
구속도 느리고 회전수도 적었다.
체인지업인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던지는 체인지업은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변화 없이 밋밋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공은 타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였다.
역시나 오석훈의 배트는 여지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따악!
배트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경기장에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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