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6
6화>
YJ 스포츠에이전시 (1)
“안녕하세요.”
“어! 강현우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처음 마주친 직원이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오늘 면접 일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겠지만, 내가 한때 프로 선수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데뷔전에서 부상을 당해 쓰러졌던 선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떻든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YJ 스포츠에이전시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직원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사무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회의실이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주세요. 대표님 곧 오실 겁니다.”
“예.”
“혹시 주스랑 커피 중에 어떤 거로 드릴까요?”
“커피로 주세요.”
“따뜻한 거로 드릴까요?”
“아니요. 시원한 거로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곳 커피 맛은 어떤지 궁금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줬다.
맛을 보니 요즘 유행하는 캡슐커피인 듯했다.
한 모금 마신 커피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회의실 한쪽에는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대형 보드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드래곤즈 에이스이자 국내 최고 타자로 꼽히는 나준호를 비롯해 축구, 농구, 배구, e-스포츠의 유명 선수들의 유니폼이 액자에 담겨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면접 보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지금 만나는 상대가 국내 최고 스포츠에이전시의 대표여서 바쁘긴 하겠지만, 약속 시각에 늦는다는 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때 밖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톤으로 추측해보면 그리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더니 회의실 문이 열렸다.
“현우 씨, 미안해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이곳 YJ 스포츠에이전시 대표인 임예지였다.
밝은 미소에, 깔끔한 베이지색 세미 정장을 입은 그녀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방금까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 사람이 순식간에 활기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만만치 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회사를 설립한 당시에는 국내에 스포츠 에이전시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고 에이전트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왜 필요한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임예지는 자신 이름의 이니셜을 딴 YJ 스포츠에이전시를 설립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국내 최고의 스포츠에이전시로 평가받는 회사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강현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임예지예요.”
그녀가 밝은 미소로 손을 내밀어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었다.
“편하게 앉으세요.”
나는 임예지가 가리키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x$!의 성장이 만족스럽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임예지의 머리 위로도 정보창이 보였다.
선수들에게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녀도 야구와 관계된 인물이라 그런 것일까.
그런데 이제까지 봐왔던 화면과 달리 특수 문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왜 특수 문자가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대표에게 지금 가장 고민거리인 선수가 누구인지만 알 수 있다면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을 텐데…….
결정적인 힌트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다.
최근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니라 성장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되어있으니 어린 선수일 확률이 높았다.
이미 리그에서 인정받는 스타급 선수들이 주로 소속된 YJ 에이전시의 특성상, 다행히 어린 선수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요즘 성장이 더딘 선수라면……?
내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임예지가 자리에 앉으며 들고 온 서류를 내려놓았다.
“제가 많이 늦었죠. 미안해요. 앞에 미팅이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아닙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날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 임예지가 들고 온 이력서를 살피며 말했다.
“유성환 감독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보통 그런 얘기 잘 안 하시는 분인데, 강현우 씨 칭찬을 많이 하시던데요.”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내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 순간, 방금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임예지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근데 현우 씨는 에이전트가 되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저는 선수들을 돕고 싶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 선수들이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음……. 그런 거라면 에이전트가 아니라 구단 코치가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가 듣기로는 재규어즈에서 코치 제안도 했다던데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구단의 제안을 받고 이미 오랜 시간 고민한 내용이었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야구 테크닉만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맞는 멘탈 관리부터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팀과 감독을 만나는 것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만 빠져도 문제가 생기죠. 그렇기 때문에 구단 소속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대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프로 선수에게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프로 선수는 결국 팬들이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수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팬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선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기도 하고요.”
“현우 씨가요?”
“네. 저의 1군 경력은 고작 한 경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홈런은 말할 것도 없고 안타 하나도 못 쳐봤습니다. 선수 인생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고요. 제 의지와 관계없이 은퇴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만 보면 저는 완전히 실패한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말하다 보니 보잘것없던 당시의 내 모습이 생각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팬 중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1군 데뷔전에서 머리를 크게 다쳐 일주일간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던 선수가 깨어나 기어코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복귀전이라는 이유로 2군 경기가 TV 중계까지 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보면 프로야구 선수 강현우는 경기 성적이 좋지는 못했지만,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선수였습니다.”
“성적은 나빴지만 사랑받았던 선수였다?”
“그렇습니다.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 놓고 최고의 경기를 한다고 해서 프로 스포츠가 사랑받는 건 아닐 겁니다.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프로팀 코치가 아니라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따로 연습을 한 건 아니었지만 오래 고민했던 내용이었기에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심각한 표정의 임예지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임예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현우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느 정도는요.”
어느 정도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게 빠졌네요.”
“……?”
“우리 YJ 스포츠에이전시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시예요. 프로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든 우리와 계약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여기가 아닙니다. 5년 뒤에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고요.”
임예지의 날카로운 눈빛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됐다.
임예지의 표정에는 단호함을 넘어선 결의마저 느껴졌다.
“팬들의 사랑.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최고의 에이전시라면 남들이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죠. 팬들의 사랑을 받는 건 물론이고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를 키워내는 것. 우리 YJ 스포츠에이전시에서는 그걸 이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임예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현우 씨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나요?”
“물론, 자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테스트 한 번 해봐야겠네요.”
임예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우리 YJ 스포츠에이전시에 같이 일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게 뭔가요?”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거라…….
-@x$!의 성장이 만족스럽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드디어 이 정보를 활용할 타이밍이 됐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는 확률 싸움이었다.
YJ 스포츠에이전시 소속 선수 중에 어리면서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할 만한 선수는 이지윤, 최주현, 오석훈이 있었다.
우선 이지윤.
불펜 투수지만 1군에서 나름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최근 경기력도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지윤은 일단 제외.
다음은 최주현.
얼마 전에 2군으로 내려갔다.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경미한 부상을 당해 회복 중이라 들었다.
잔 부상이 많다는 약점을 갖고 있으니 정답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선수였다.
마지막으로 오석훈.
데뷔 초에는 1군 라인업에도 들어갔지만 최근에는 2군에서 주로 뛰고 있다.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완벽한 타격 메커니즘을 갖춘 최고의 타자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타격왕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선수라 여러 코칭스태프가 그를 지도했지만, 프로 5년 차 임에도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셋 중에서는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오석훈이지 않을까?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YJ 스포츠에이전시가 아직까지 해내지 못한 일을 제가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못한 일이요? 그런 게 있나요?”
임예지의 표정에선 그런 건 있을 리 없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석훈 선수. 제가 맡아보겠습니다.”
그 순간 임예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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