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스프링캠프 (7)
가까이 다가는 것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정보창은 볼 수 있었다.
-자신도 투수가 될 수 있는지 평가받아보고 싶다.
이렇게 틈틈이 훈련하고 있던 거였구나.
나는 뒤에 조용히 서서 이주혁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펑.
와인드업으로 시작해서 체중 이동에 다리를 쭉 뻗는 스트라이드까지.
“오.”
일단 기본기는 잘 갖추고 있었다.
던질 때 그립을 보니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까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구종을 골고루 연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체격 조건이 큰 편은 아니라서 구속이나 구위는 조금 아쉬웠다.
훈련에 완전히 몰입했는지, 뒤에서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방에 들어있던 공이 이제 다 떨어졌는지, 글러브를 내려놓고서 공을 줍기 시작했다.
나도 다가가서 공을 함께 주웠다.
“누구…… 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나라는 것을 확인한 이주혁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여기서 매일 훈련하는 거예요?”
“매일까지는 못하고요……. 그냥 틈날 때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주혁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잠깐 지켜보니까 기본기는 잘 갖춰져 있던데요.”
“유튜브로 영상 찾아서 따라 했는데, 친한 선수들이 종종 원 포인트 레슨도 해줘서 도움 많이 받았어요.”
“진짜 대단하네요.”
“별말씀을요.”
이주혁이 머쓱해하며 웃었다.
“진지하게 프로 도전도 해봐요.”
“네? 제가요?”
“그럼요. 내가 도와줄게요.”
“도와주신다면 저야 감사한데…… 제가 프로에 도전할 수준이 될까요?”
솔직하게 말해서 1군에서 뛰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이 자리에서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렇게까지 해온 사람이라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주혁 씨가 도전해 보고 싶잖아요.”
“네……? 그렇긴 하죠.”
“진짜 도전하고 싶은 거라면 해봐야죠. 나중에 시간 지나면 시도조차도 못하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 가서 지금 이 순간이 후회되면 어쩌려고요.”
이주혁이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해왔던 방법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 건 걱정 마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주혁의 표정에서 조금씩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계속 미국에 있는 거예요?”
“아니요. 졸업하고 나서는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잘됐네요. 그럼 한국 들어오면 같이 훈련해요. 우리 회사 선수들하고 훈련하다 보면 도움받을 수 있는 것도 많을 테니까요.”
“정말요? 선수들하고 같이 훈련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안 될 거 있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갑자기 이주혁이 허리를 굽혀 나에게 인사했다.
“일단 연습이나 다시 시작해 봅시다.”
나는 바닥에 있던 공을 하나 집어 들어 이주혁에게 건넸다.
“공 한번 던져보세요.”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이주혁의 오른쪽에 서서 슬로우 모션 모드로 바꿨다.
“한번 찍어볼게요. 직접 보면서 이야기해 주는 게 제일 좋으니까.”
“네.”
이주혁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공 던질 준비를 했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내쉬더니 힘차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펑.
역시 아까 멀리서 봤을 때부터 보였던 문제였다.
나는 이주혁에게 다가가 촬영한 영상을 보여줬다.
“지금 투구 폼에서 문제는 글러브를 들고 있는 손이에요.”
영상을 다시 돌려 공을 던지는 순간에서 멈췄다.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면서 왼손으로는 글러브를 몸 쪽으로 당기고 있죠?”
“네.”
“그렇게 던지다 보니까 힘이 분산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이주혁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글러브를 몸으로 당기는 게 아니라, 몸이 글러브로 간다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나는 공을 던지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며 직접 보여줬다.
“아하!”
“지금처럼 왼손을 당겨버리면 던지는 힘이 약해져요. 무게중심이 앞으로 나가면서 힘을 받아야 하는데 왼손은 역방향으로 힘을 주고 있는 거죠. 당기지 말고 몸을 밀면 아마 구속도 올라가고 제구도 훨씬 쉬워질 거예요.”
나는 가방에서 새로운 공을 하나 꺼내 이주혁의 글러브에 넣어줬다.
“다시 한번 해보세요.”
“네.”
“후우-”
펑.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느껴져요?”
“네. 이거 하나 바꾸니까 편하게 던져지는 거 같은데요.”
“그리고 이제는 웨이트 트레이닝만큼 유연성 훈련도 해야 해요. 허리랑 어깨 회전이 정확한 타이밍에 되게 하려면 유연성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주혁이 스마트폰을 꺼내 하나하나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이주혁의 훈련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 있으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 * *
늦게까지 훈련을 함께했더니 다음 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겨우 눈을 떠서 더블즈 캠프를 찾았다.
오늘은 버팔로즈와 더블즈의 연습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두 팀이 가까운 곳에 캠프를 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연습경기가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 있었다.
더블즈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고지훈이었다.
그의 투구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고지훈은 허리를 숙여 공을 아래에서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다.
투구 폼의 특성상 구속은 느리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으로 승부를 하는 선수였다.
고지훈의 컨디션이 좋은 날 그가 던진 공이 움직이는 모습을 타석에서 보고 있으면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가 없다고 들었다.
그러니만큼 가까이에서 직접 보면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혹시 오늘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경기를 보고 있는지 한참을 두리번거려 봤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플레이 볼!”
예정된 시간에 연습 경기가 시작됐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고지훈의 변화구에 버팔로즈 타자들의 배트가 여지없이 돌아갔다.
우타자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슬라이더와 스트라이크처럼 오다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 역으로 솟아오르는 커브 그리고 빠르면서도 치기 좋게 날아오는 법이 없는 싱커에 투심 패스트볼까지.
가지고 있는 변화구를 골고루 테스트해 보듯 던지는 데도 타자들이 공을 쉽게 맞추지 못했다.
아직 타자들의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았을 시즌 초라는 걸 고려해도 대단하긴 했다.
“와……. 변화구가 장난 아니네요.”
고지훈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던 이주혁이 입을 떡 벌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3번 타자 오석훈이 들어왔다.
보통 오른손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를 상대로는 왼손 타자가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이번 승부는 어떻게 될까.
지난 경기에 마이클 스콧을 상대로 홈런 맛을 봤으니 자신감을 어느 정도는 찾았을 게 분명했다.
고지훈도 오석훈을 의식하는지, 직전 타석과 달리 신중하게 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왼손 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며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구속이 빠르지 않아서 공략하기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결코 아니었다.
직선으로 오지 않고 마지막에 변화하며 들어오다 보니 배트에 정확하게 맞춘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처음 공은 그냥 기다리며 볼 생각이었는지, 오석훈은 그대로 서서 공이 들어온 코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지훈이 던진 다음 공이 포수를 향해 날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웅.
“스트라이크.”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던 오석훈이 속았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래에서 던진 패스트볼이 솟아올라오는 것처럼 날아왔다.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은 타자가 무의식적으로 배트를 휘두르게 만들기 좋은 공이었다.
게다가 아래에서 던지다 보니 그 착시효과는 훨씬 강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스트라이크처럼 날아오다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줄어드는 체인지업이었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에 좋은 공이었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역시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긴 오석훈이 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스윙했다.
오석훈이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고지훈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렇게 버팔로즈의 1회 공격이 마무리됐다.
수비를 마친 더블즈 선수들이 더그아웃을 향해 달려왔다.
고지훈이 오른손으로 허리를 만지며 들어갔다.
“공이 진짜 좋네요.”
“아무리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말을 들어도, 국가대표까지 뽑혔던 선수니까 뭔가 다르긴 하죠.”
아마 이번 시즌을 잘 마치고 FA가 되면 영입하려고 하는 팀이 한둘은 아닐 게 분명했다.
올해 32살이니 내년 시즌에는 33살.
타자와 달리 투수는 나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지션이었다.
투수의 첫 번째 FA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그다지 길지 않았던 더블즈의 공격이 끝나고 다시 버팔로즈의 공격 이닝이 돌아왔다.
여전히 스코어는 0:0 이었다.
역시나 고지훈이 마운드에 다시 올랐다.
이번 상대는 4번 타자 박성주였다.
박성주는 우타자이기도 하고,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를 상대로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고지훈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자신의 컨디션을 상대 팀 4번 타자에게도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것 같아 보였다.
고지훈이 포수와 사인 교환을 마치고 다리를 쭉 뻗어 허리를 숙여 거의 땅에 닿을 듯한 곳에서 공을 놓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컨디션이 좋은 박성주의 배트도 초구부터 주저하지 않고 공을 맞히기 위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슬라이더가 점점 박성주에게서 멀어졌다.
후웅.
배트에 닿기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게 꺾여 나갔다.
“체인지업, 슬라이더 둘 다 완벽하네.”
핵심 타순의 오석훈과 박성주를 상대로도 거침이 없었다.
흔히 FA를 앞두고 각성하는 FA로이드라는 게 이런 것일까.
타석에 선 박성주도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박성주가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승부를 끈질기게 이어가기는 했지만,
결국 박성주의 타구가 빗맞으며 내야 땅볼로 아웃됐다.
뒤이어 타석에 선 5번, 6번 타자와의 승부도 다르지 않았다.
타자들이 헛스윙을 연발했고, 겨우 배트에 맞은 공은 빗맞아서 내야를 벗어나지도 못했다.
아웃 카운트 세 개를 너무나도 편안하게 잡아냈다.
고지훈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팀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뒷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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