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시즌 개막전 (2)
팬들이 응원해 주는 함성이 커질수록 박성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팬들은 박성주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제발 아웃만 되지 말아달라며 애타게 기도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 오오 오오. 박성주 홈런! 날려버려 박성주!”
이곳에 있는 많은 팬들은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주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최고다.’
박성주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개막전도 별거 없네.’
오히려 점점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박성주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마운드에 선 투수는 아직도 안정된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플레이 볼.”
심판의 콜이 들리자 어쩔 수 없이 투구 준비를 했다.
박성주가 타석에서 기다리는데, 오석훈이 둘만 알고 있는 수신호를 보냈다.
‘오케이. 접수 완료.’
박성주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표정 변화 없이 투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투수가 드디어 공을 던지기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2루 간다. 2루!”
오석훈이 전력을 다해 2루 베이스를 향해 달렸다.
안 그래도 밸런스가 흐트러진 투수는 같은 팀 수비수들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밸런스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스트라이크존보다 한참 낮은 코스로 들어온 볼이었다.
포수가 공을 잡자마자 2루를 향해 던지려는 순간.
오석훈은 이미 2루 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고 있었다.
포수는 던지려는 모션까지만 취했을 뿐, 진짜 던지지는 못했다.
“세이프!”
“와아아아- 오석훈! 오석훈! 오석훈!”
이러다 1회부터 선취점 내는 거 아냐?
주자가 순식간에 2루까지 진출하자 버팔로즈 팬들의 기대도 커졌다.
기습 번트로 안타를 만들어내고, 초구부터 공격적인 도루 시도까지.
오석훈은 빠른 스피드로 상대 투수와 포수의 호흡을 빼앗고 정신없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결국 포수가 투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운드로 올라갔다.
두 선수는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로 잠시 대화를 나눴다.
-허허허. 오석훈 선수의 스피드는 압도적이네요. 달리는 동안에는 다리가 안 보여요.
-포수가 공을 잡았을 때는 이미 2루 베이스에 거의 도착한 거나 다름없었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포수가 던지지 않은 게 훨씬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주자 2루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박성주 선수가 짧은 안타만 때려준다면 충분히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오석훈 선수 정도의 스피드라면 충분할 겁니다.
포수가 다시 홈 베이스로 돌아가자 투수는 다시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박성주도 타석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투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초구까지도 볼이었다면. 이번에는 스트라이크로 들어올 확률이 높지.’
투수가 공을 던지자 박성주는 배트를 움켜쥐고 힘껏 스윙을 돌렸다.
후웅-
“스트라이크!”
하지만 박성주가 스윙을 다 하고 나서야 공이 포수 미트로 들어왔다.
-여기서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해 내네요.
-박성주 선수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마 박성주 선수는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을 겁니다.
‘1 볼 1 스트라이크. 카운트에 균형이 맞았으니 이제 투수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여기서 하나 정도는 보여주는 공을 던지겠지.’
투수는 2루 베이스에 있는 오석훈을 한 번 견제하는 자세를 취하고 난 뒤에 공을 던졌다.
펑!
“볼.”
공을 받은 포수의 미트는 박성주의 몸 쪽 높은 곳에 있었다.
‘방금 본 높은 공은 지워야 한다. 분명히 이번에는 낮은 쪽으로 승부해 올 거야.’
박성주의 예상대로 다음 공은 낮은 코스로 날아왔다.
‘이 정도면 배트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
후웅-
딱!
“와아아아!”
“오석훈 달려, 달려!”
-박성주 선수가 친 타구가 총알 같은 속도로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지나쳐갑니다! 두 선수가 아무리 몸을 날려봐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는 공입니다!
-2루에 있던 오석훈 선수가 재치 있게 공을 피하고 순식간에 3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주저 없이 홈까지 돌진하네요.
-좌익수가 이제 잡았는데요. 홈으로 던질 수 있을까요?
좌익수는 이미 홈에서의 승부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커트맨으로 서 있던 유격수를 향해 던졌다.
“세이프!”
박성주는 1루를 지나쳐 2루로 갈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지만, 다시 1루로 돌아왔다.
전광판의 버팔로즈 스코어가 0에서 1로 바뀌었다.
“박성주! 박성주! 박성주!”
1루 베이스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한 박성주는 팬들을 향해 기쁨의 주먹을 치켜들었다.
팬들의 환호성은 아까보다 더욱 켜졌다.
중계방송에서는 방금 상황을 여러 번 돌려가며 보여줬다.
-캐스터님은 방금 박성주 선수가 친 타구 속도가 얼마 정도 됐을 거 같으세요?
-제가 봐도 빠르긴 했으니까요. 음……. 160km/h는 넘지 않았을까요?
-175km/h로 찍혔습니다. 이 정도 타구 속도는요, 운이 나빠서 수비수 정면으로 가지만 않으면 안타가 되지 않을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다시 봐도 유격수가 몸을 날리기도 전에 이미 공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오석훈과 박성주는 시즌 개막전 첫 타석부터 깔끔하고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두 팀이 모두 기선제압을 위해 전력을 다한 덕분에 이후에도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호크스도 버팔로즈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9회 초를 끝으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최종 스코어는 2:3 버팔로즈의 승리였다.
버팔로즈가 1회에 득점한 1점을 지켜낸 덕분에 박성주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비록 경기 MVP는 한국 프로야구 데뷔 전에서 6이닝 1실점을 기록한 버팔로즈의 새로운 용병 투수가 차지하기는 했지만, 완벽한 첫 출발이었다.
* * *
“오 오오 오오. 박성주 홈런! 날려버려 박성주!”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박성주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물론 팬들이 우리 집에까지 찾아온 건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박성주였다.
경기장에서부터 이어진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아직도 자신의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몇 번째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오석훈이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걸어 다녔다.
나도 귀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언제까지 부를 거야?”
“워우우우. 날려어어어버려어어 박성주우우!”
창밖을 보더니 이제는 소울까지 담아서 불렀다.
참다못한 나는 손을 뻗어 박성주의 입을 막았다.
그럼에도 그의 흥분 상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선배 저는 오늘 너어어무 기분이 좋네요. 팀도 이기고 안타도 치고.”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고생 많았어. 그러니까 이제 좀 쉬어.”
“낮 경기를 하면 이게 좋네요. 하루도 이렇게 길고.”
두 손을 뻗으며 무용이라도 하는 것처럼 휘리릭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래. 어서 가서 내일 경기 준비도 해야지.”
나는 달래듯이 박성주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켜 보려고 했다.
“워우워어.”
“그래, 그래. 이제 그만.”
역시나 쉽지 않다.
다음 경기에서 홈런을 치려면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나서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후우-
이제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정신적으로 피곤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지친 몸을 소파에 던지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꺼내 다음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일은 더블즈 고지훈의 등판이 예고되어있는 날이었다.
* * *
고지훈은 평소 준비하던 대로 불펜에서 연습 투구를 준비했다.
싱커, 투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를 정확하게 각각 10번씩 던지며 감을 찾는 루틴이었다.
펑.
“나이스 볼.”
펑.
“오늘도 공 너무 좋다.”
더블즈 불펜 포수는 등판을 앞둔 선발 투수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고지훈은 진지한 모습으로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골고루 테스트하며 오늘 컨디션을 파악했다.
그중에서도 고지훈의 아래서 위로 던지는 커브는 마구로 불렸다.
하지만,
‘오늘따라 커브 각이 마음에 안 드는데?’
마지막 열 번째 커브를 던져보는데,
‘이건 아니야.’
고민하던 고지훈은 다가오던 포수를 향해 말했다.
“커브 몇 개만 더 던질게.”
“여기서 더요? 선배, 오늘 평소보다 많이 던지셨어요.”
“오늘 변화 각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도 너무 무리하시는 거 같은데.”
고지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불펜 포수의 어깨를 툭 쳤다.
“괜찮아. 몇 개만 더 부탁할게.”
“저야 괜찮긴 한데…… 그럼 다섯 개만 더 하시죠. 바로 등판도 하셔야 하는데 더 이상은 너무 많아요.”
“그래.”
불펜 포수의 간절한 부탁에 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펑.
펑.
그렇게 등판을 준비하는 루틴을 마쳤다.
더그아웃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던 고지훈에게 이상학 투수 코치가 다가왔다.
“지훈아. 첫 경기부터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우리 팀 어제 이겼으니까 압박은 조금 내려놔도 돼.”
‘팀이 이긴 건 이긴 거고, 내 등판은 내 등판이지.’
고지훈은 속으로 드는 생각을 겨우 억눌렀다.
“네. 걱정 마세요. 무리 안 합니다.”
이상학이 고지훈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고지훈은 구석에 앉아 명상을 하며 잡다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오늘 더블즈의 선발투수는 고지훈 선수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핸드 투수죠. 지난 시즌에는 12승 9패 163이닝을 소화하면서 4.1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거의 지면에 붙어서 공을 던지는 투수인데요. 구속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공의 움직임이 아주 좋은 투수입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 요건을 갖추죠?
-그렇습니다. 첫 FA 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10승을 거둬줄 수 있는 투수거든요. 아마 많은 구단들이 영입하기 위해 뛰어들 겁니다.
-이번 시즌에 FA로이드 기대해 봐도 되겠죠?
-제가 듣기로도 프리시즌에 준비를 아주 열심히 했다고 들었거든요. 더블즈 팬분들께서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연 고지훈 선수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지금부터 함께 지켜보시죠.
연습투구를 마친 고지훈은 이번 시즌 첫 번째 공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빠르게 승부 들어가자. 오늘 목표는 최소 6이닝이다. 올해만큼은 이닝을 많이 소화해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결의를 다진 고지훈은 포수에게 사인을 받았다.
첫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는 미리 정해두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구는 몸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다.
고지훈은 허리를 숙이며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러서 빠르게 아웃만 돼 준다면 땡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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