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시즌 개막전 (3)
고지훈의 공이 스트라이크처럼 치기 좋게 들어오자.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했다.
틱.
타자 앞에서 살짝 떨어졌던 탓에 배트는 공의 윗부분을 비스듬히 때릴 수밖에 없었다.
땅볼이 된 타구를 3루수가 무난하게 잡아 1루수를 향해 던졌다.
“아웃.”
첫 타자를 공 하나로 가볍게 아웃시켰다.
‘오늘 80구 정도 던진다고 치면, 6회까지 던지려면 이닝당 13구를 넘기면 안 된다.’
-고지훈 선수가 첫 타자부터 상당히 공격적인 피칭을 보여주는데요.
-원래도 삼진을 잡아내는 것보다는 맞춰 잡는 데 뛰어난 투수이기는 했는데, 여전합니다.
-투수가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타자들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돼요. 제구력이 워낙 좋은 선수기 때문에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더 힘들어져요.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2, 3번 타자에게도 전략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코스의 공을 던졌다.
볼 카운트가 밀린 상황에서 타자가 힘겹게 배트를 내보지만, 제대로 된 스윙을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고지훈 선수가 1회에 만난 세 타자에게 모두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고 있네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서는 제구력이 좋아야 하기도 합니다만, 무엇보다 배짱이 중요합니다. 안타를 맞을 게 두렵다면 저런 투구를 하기가 어렵거든요.
-투수에게 초구 스트라이크가 많이 중요하겠죠?
-물론입니다. 첫 번째 공이 스트라이크냐 볼이냐에 따라서 승부의 반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타자와 수 싸움을 펼칠 때도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고지훈 선수가 좋은 투수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고지훈! 고지훈!”
깔끔하게 한 이닝을 마무리하자 팬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고지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지훈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5회까지 더블즈는 한 점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5회 말이 끝나자, 관계자들이 나와 그라운드를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클리닝타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더그아웃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고지훈에게 이상학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지훈아. 오늘 여기까지만 던지는 거 어때?”
“네?”
“시즌 첫 경기고 승리투수 요건도 갖췄으니까, 무리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지금 스코어는 2:0.
리드하고 있긴 했지만 언제라도 한 방에 역전될 수 있는 스코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투구수도 63개밖에 안 됐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여기서 교체되는 건 너무 아까웠다.
“코치님, 한 이닝만 더 던지겠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이상학이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63개밖에 안 됐잖아요. 괜찮습니다. 힘들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이상학이 상대 타순이 적힌 자료를 넘겨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럼 6회에 올라가고. 대신에 혹시 위기 상황이 오면 교체하는 걸로 하자, 어때?”
“네. 알겠습니다.”
고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겨우 입가에 미소를 보인 이상학이 어깨를 쓰다듬으며 멀어졌다.
6회 초 더블즈의 공격이 끝나갈 때가 되었다.
‘하……. 약간 불편한데.’
등판을 준비하던 고지훈은 일어나다 말고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고지훈에게 허리 통증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언더핸드로 던지는 투수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통증이었다.
‘벌써 효과가 떨어진 건가……. 내일 에이전시에 말해 두기는 해야겠네.’
“선배. 이닝 끝났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 후배가 고지훈에게 다가와 알렸다.
“고맙다.”
고지훈은 후배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며, 글러브를 챙겨 들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갔다.
-고지훈 선수가 6회에도 마운드를 지키네요.
-지금 투구수도 63개에 불과하거든요.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6이닝 정도 소화하는 건 어려움이 없어 보여요.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던 선수였는데, 올해는 다를 수도 있겠는데요.
-아무래도 FA를 앞두고 있으니까요. 없던 힘도 튀어나올 만합니다.
첫 타석에서 땅볼과 뜬공으로 물러났던 상대 타자들은 이제 성급하게 승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펑.
“볼.”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도록 던져봐도 쉽게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지,
우타자에게는 슬라이더, 좌타자에게는 싱커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처럼 들어오다가 변화하는 공에는 자연스럽게 헛스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오늘 경기를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딱!
-제대로 맞았어요. 2루까지는 어렵지 않게 가겠는데요.
-이번 공은 가운데로 몰렸어요. 구속이 빠른 편이 아니다 보니까 실투에는 여지없이 장타가 나오네요.
타자는 여유 있게 2루에 도착했다.
2아웃 상황이기는 했지만, 오늘 경기에는 처음으로 득점권에 주자가 위치했다.
추가점을 기대하는 유니콘즈 팬들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상학이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왔다.
포수 양희찬도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더블즈 더그아웃에서도 움직이네요.
-고지훈 선수, 오늘 경기에서 정말 좋은 모습 보여줬습니다. 이번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호투였습니다.
‘위기 상황이 오면 바꾼다고 했지.’
고지훈은 아쉬움에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 떠 있는 상대 타순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투구 수는 74개에, 다음 타자는 7번 타자…….’
“지훈아. 고생 많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상학은 고지훈의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려고 하는데,
“코치님. 한 타자 남았는데, 다음 타자까지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고지훈은 공이 든 글러브를 움켜쥐었다.
“지훈아. 조급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는데, 앞으로 남은 경기 많다. 오늘도 정말 잘했어, 여기까지 한 걸로 충분해.”
“다음 타자가 오늘 제 공에 타이밍 못 맞추던데, 제가 승부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고지훈의 한마디에 이상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상학은 고개를 돌려 양희찬을 바라봤다.
“네 생각은 어때?”
“……타이밍을 못 맞추긴 했습니다.”
포수에게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이상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다음 타자까지만이다. 이번에 실점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어.”
“네. 걱정 마십시오.”
고지훈은 이상학을 향해 답하자마자 양희찬과 눈을 마주쳤다.
“마지막에 결정구는 그걸로 가자.”
“네. 선배님.”
고지훈이 보낸 신호를 곧바로 이해한 양희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상학과 양희찬은 고지훈을 마운드에 두고 떠났다.
-어? 교체를 안 할 생각인가 본데요.
-지금이 교체 타이밍이긴 한데요. 음……. 굳이 시즌 초부터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고지훈 선수가 더 던지겠다고 한 것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코치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떠나서 이번 결정은 이해가 안 되네요.
고지훈은 모든 집중을 자신의 손으로 모았다.
펑.
후웅.
특유의 칼날 제구로 헛스윙까지 유도하며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았다.
그리고 낮은 코스로 일단 하나 보여주고,
“볼!”
1 볼 2 스트라이크.
볼 하나쯤 더 보여줘도 괜찮은 카운트였다.
타자가 조급해지기도 하는 순간이기도 했고.
이제 승부구를 던져야 할 순간이었다.
포수의 생각도 같았다.
고지훈은 글러브에 손을 숨기고는 아까 포수와 약속했던 구종으로 그립을 바꾸었다.
‘후…….’
숨을 한 번 고르고,
마지막이 될 결정구에 온 힘을 담아 던졌다.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이야! 드디어 나왔네요.
-고지훈 선수의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는 떠오르는 커브가 언제 나오나 했거든요. 이런 중요한 상황에 저렇게 완벽하게 구사해 주네요.
-고지훈 선수가 교체를 마다하고 마운드를 지킨 이유가 바로 이거였네요.
-저 공은 정말 볼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저렇게 떠오르는 공을 타자 보고 어떻게 치라는 거죠?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고지훈 선수가 6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고지훈! 고지훈! 고지훈!”
더블즈 팬들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고지훈을 향해 함성을 목청껏 질렀다.
득점을 기대했던 유니콘즈 팬들은 얼굴을 감싸 쥐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 경기는 3:0으로 더블즈가 승리했다.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고지훈에게 MVP가 돌아갔다.
* * *
고지훈을 보는 임예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고지훈 선수, 어제 경기 보니까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고지훈은 임예지가 건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 시즌, 170이닝 기대해 봐도 좋겠죠?”
“열심히 준비했으니까요. 가능할 겁니다.”
고지훈의 커리어에서 한 시즌에서 170이닝을 넘게 던진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체력 소모가 큰 언더핸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약점이었지만.
국가대표에 뽑히고 평균자책점 10위 안에 이름을 올려도 언제나 이닝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FA를 앞둔 올해만큼은 보란 듯이 떨쳐내고 싶었다.
“지훈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경기력만 보여주면 돼요. 계약 관련해서는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건 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고지훈이 자신 있게 답하는 모습을 보며, 임예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런 임예지를 향해 고지훈이 말했다.
“그리고 요청드릴 게 한 가지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병원 치료 횟수를 좀 늘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이번 주부터 당장 가능할까요?”
“허리가 여전히 안 좋나요?”
찻잔을 내려놓는 임예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풀타임으로 소화하는 데 어려울 정돈가요?”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당장 못 던질 정도의 통증은 아니라서요.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임예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최대한 빠르게 예약 잡아둘게요. 아프기 전에 대비해야죠.”
“감사합니다.”
고지훈의 대답을 들은 임예지는 다시 찻잔을 들어 여유 있게 한 모금을 마셨다.
그때 고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
“……?”
“에이전시에서 훈련장을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저도 쓸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임예지가 시원하게 답하자, 고지훈의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숙식도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고지훈의 말에 임예지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가족들하고 떨어져 지내도 괜찮겠어요? 훈련장만 사용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올해는 훈련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요.”
“그래요? 선수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원해 줘야죠.”
“그럼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현우 씨한테 바로 얘기해둘게요. 지훈 선수가 편할 때 들어가면 돼요.”
“감사합니다.”
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