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친해질 수 있을까 (1)
오늘은 경기가 없는 휴식일이었지만, 우리의 실내 연습장에서는 실전 경기나 다름없는 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탕. 탕. 탕.
“오, 좋아. 나이스.”
피칭머신을 상대로 한 타격 훈련부터,
“으아아악!”
근육의 한계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헉. 헉. 헉.”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도 계속되는 체력 운동까지.
2시간 남짓의 오전 훈련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에이전시 트레이닝 파트에서 선수 상황과 컨디션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준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오석훈과 박성주 모두 훈련 시간만큼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오 오오 오오. 박성주 홈런! 날려버려 박성주!”
경기장에서 들었던 응원가가 훈련하는 중간에 종종 울려 퍼지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오전 훈련은 여기까지!”
“우아아. 아이고.”
오석훈과 박성주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지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이거 프로그램 누가 짠 거예요? 진짜 악마 아니야?”
주저앉은 박성주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오석훈도 지친 모습으로 옆에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악마가 나라고 봐야겠지?
내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한 건 아니지만, 방향성만큼은 완전히 내 아이디어였으니까.
시즌을 문제없이 완주하기 위해서 강력한 체력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을 부탁했다.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긴 했다.
그래도 체력 훈련을 충분히 해둬야 무더운 여름에도 컨디션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래도 오후 프로그램은 조금 수월할 거야.”
“네…….”
두 사람은 대답할 힘도 없어 보였다.
위이잉-
갑작스런 진동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전화가 오고 있었다.
김민환이었다.
“네, 팀장님.”
-애들 훈련은 잘 진행되고 있지?
“그럼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좋아. 근데 한 가지 미리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전화한 건데…… 고지훈이 거기 좀 들어가고 싶다고 했대.
“고지훈 선배 가요?”
-응. 대표님한테 직접 요청했나 봐.
“훈련장이 필요하다는 거죠?”
-훈련은 물론이고, 숙식까지도 하고 싶대.
“아……. 정말요?”
-아마 오늘 바로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아.
“오늘 바로요?”
-빨리 준비하고 싶은가 봐. 걔가 성격이 좀 예민한 편인 건 알고 있지? 아마 요즘은 더 심할 거야. 지훈이가 현우 씨 선배기도 해서 여러모로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잘 좀 부탁할게.
“네……. 그래야죠. 네.”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을 위한 공간이니 점점 식구가 늘어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렇게 까다로운 상대를 맞이해야 한다니.
내가 통화를 끝내자, 오석훈과 박성주가 다가왔다.
“고지훈 선배가 뭐를 어떻게 한대요?”
오석훈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어, 그게…… 고지훈 선배가 여기로 들어올 계획이래.”
“네? 여기서 같이 지낸다고요?”
“준비를 좀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오석훈과 박성주가 그대로 잠시 뻣뻣하게 굳었다.
“그 선배 좀 까칠하다고 하던데.”
오석훈이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블즈 애들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럼 이제부터 조용히 지내야 하려나?”
샤워를 할 때마다 가수로 빙의하는 박성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나 다름없었다.
“투수들이 아무래도 예민한 편이긴 하니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 * *
띵동.
그를 만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오석훈, 박성주과 함께 대문까지 나가서 고지훈을 맞았다.
“선배님, 어서 오세요.”
나는 문을 열고 나가며 입꼬리를 올리고 밝게 인사했다.
설마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사람이 있을까.
“오랜만이네, 반가워요.”
고지훈은 나를 향해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조용히 훈련에만 집중하고 싶다.
-훈련량에 비해 휴식 시간이 너무 짧은 상황이다.
그에게서 보이는 정보창의 결론은 요즘 훈련을 과하게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원래도 훈련 중독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가정이 있는 선수가 시즌 중에 여기서 숙식을 하며 훈련하고 싶다고 하기까지 했으니, 이것만으로도 정보창의 모든 게 설명이 가능했다.
“거기 두 사람한테는 내가 말 편하게 해도 되지?”
고지훈이 오석훈과 박성주를 보며 말했다.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오석훈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같이 좀 도와줄래? 짐이 좀 많아서.”
“네.”
내 옆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오석훈과 박성주가 고지훈의 차로 가서는 짐을 하나씩 들고 옮겼다.
집에 들어온 고지훈이 고개를 돌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나는 어느 방 쓰면 될까?”
“선배님께서 편하신 곳 고르시면 됩니다. 아직 저희 셋이서 쓰고 있어서요. 1층이랑 2층에 비어있는 방은 많습니다.”
고지훈의 방 선택을 앞두고 나와 오석훈, 박성주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과연 누구 옆방을 쓰게 될까.
1층에는 이미 두 명이나 있으니 확률이 낮지 않을까?
“2층이 1층보다는 소음이 적겠지?”
고지훈의 한마디에, 유일하게 2층을 사용 중인 박성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그럴 거예요.”
“그럼 내가 2층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소리에 좀 민감해서.”
“그럼, 그렇게 하시죠. 그럼 짐부터 바로 옮길까요?”
고지훈이 답변 대신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짐을 들어 2층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2층에도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방 중에서 박성주가 쓰고 있는 바로 옆방을 선택했다.
“아…… 뭐야.”
“괜찮을 거야. 별일 있겠어?”
박성주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건장한 운동선수 네 명이 같이 움직이니 많은 짐도 금방 옮길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지훈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훈련장은 지하에 있다고 했나?”
“네. 지하도 있고, 야외에도 장비 준비돼 있습니다.”
지하와 야외를 번갈아 보던 고지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지하로 내려갔다.
고지훈이 지하로 내려가고 나서야 우리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와. 오자마자 훈련부터 하네요.”
박성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게 하니까 국가대표도 뽑힌 거겠지.”
오석훈이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근데 훈련은 저렇게 열심히 하면서, 부상은 왜 그리 자주 당하는 건데?”
“야, 조용히 말해. 다 들리겠다.”
나는 박성주를 쿡 찌르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박성주는 고지훈이 못마땅한지 입을 삐죽하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문득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근데 지금 몇 시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오후 훈련 들어가야지.”
“벌써 훈련할 시간이에요?”
내 말 한마디에 오석훈과 박성주의 어깨가 동시에 축 처졌다.
“소화 다 됐지? 빨리 끝내고 쉬자. 저녁 먹고 나서는 내일 상대 팀 분석도 해야지.”
“하……. 휴식일이 휴식일이 아니네.”
“원래 학기보다 방학이 힘들잖아. 그래도 오후 훈련은 오전보다 짧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겠죠?”
“그럼. 얼마나 즐거워, 내일부터 또 팬들한테 환호받을 텐데.”
나는 오석훈과 박성주 가운데에 서서 어깨동무를 하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딱 한 사람이 늘어난 것뿐인데, 훈련장 분위기는 오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고지훈은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루틴대로 훈련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선발 등판을 마친 다음이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간단하게 마치고, 러닝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조용히 훈련에만 집중하고 싶다.
고지훈에게서 이 내용을 보고 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조용한 곳을 위해 2층으로 올라간 것도 그렇고.
소리에 민감한 것 같아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6년 선배가 주는 위암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같은 팀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어서 더 부담스러웠다.
러닝을 마친 고지훈이 땀을 닦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캐치볼을 해야 하는데 혹시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아……. 캐치볼이요?”
아직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받는 게 쉽지는 않긴 한데…….
“무리할 필요까지는 없어. 오늘은 그냥 혼자서 해볼게.”
“아니요. 가벼운 캐치볼 정도는 가능합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얼마 전에 정인규와 캐치볼을 했던 것과 또 다르긴 할 텐데.
볼의 움직임이 좋은 선수라서 공을 잘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형, 캐치볼 하는 거 괜찮겠어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오석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글러브를 하나 집어 들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을 하나 집어 든 고지훈이 나에게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아래에서 공을 가볍게 던졌다.
펑.
‘우와. 장난 아닌데?’
언더핸드 투수의 공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는데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볍게 던진 볼인데도 날아오는 동안 움직임이 많았다.
펑.
펑.
‘캐치볼 중에서 제일 하드코어네.’
변화구 없이 패스트볼로만 20구 정도 주고받았다.
캐치볼을 마칠 때쯤 돼서야 조금 적응할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처음으로 네 명이 함께 먹는 자리였다.
고지훈은 밥 먹으면서 특별하게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건가.
아직 그의 성격을 잘 모르겠다.
“어, 뭐야?”
고지훈이 깜짝 놀라자 우리 모두의 시선은 그가 보고 있는 곳을 향했다.
어느새 다가온 루피가 고지훈 다리에 앞발을 올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실내에서 지내는 거야?”
“그렇긴 한데…… 혹시 불편하세요?”
“많이 짖는 건 아니지?”
소리에 민감한 게 분명했다.
“많이 짖는 편은 아니에요.”
“그럼 괜찮아. 대신 2층으로는 못 올라오게 해줘.”
“네…….”
오석훈이 시무룩해졌다.
고지훈은 밥을 다 먹었는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씻어서 놔두면 되나?”
“물로만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두면 됩니다.”
고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헹군 식판을 식기세척기에 넣어 두고는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조용히 그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선배. 체할 거 같아요.”
박성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석훈이 이어서 말했다.
“저도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친해지면 괜찮아질 거야.”
내 말을 듣고도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시선은 2층을 향해 있었다.
……정말 그럴 수 있겠지?
아직은 처음이라 이런 거라고 믿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