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리그를 뒤흔든 소용돌이 (2)
투수 자원이 부족한 국내 리그 특성 때문에, 모든 팀이 용병 투수 선발과 국내 선수 육성에 공을 들였다.
특히 선발 투수가 내려간 다음에 불펜 투수를 어떻게 운용해서 경기를 마무리할지는 모든 감독이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A급 투수가 FA로 풀리면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울프스에게만큼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울프스는 리그에서 가장 강한 불펜 투수진을 갖추고 있었다.
필승조 투수를 상황에 맞게 로테이션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었다.
장수영은 그런 팀에서 불펜 투수로 던지고 있었다.
“선배님,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수영의 눈빛을 보니 단순히 투정 부리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무언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에이전시에서 감독의 경기 운영까지 간섭할 수는 없어.”
“그렇겠죠…….”
장수영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자세한 얘기는 구단하고 직접 만나서 나눠보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고. 아니 정확하게는 극히 희박할 거야.”
“하…….”
장수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우선. 지금 네가 정확하게 원하는 게 어떤 거야? 마무리 투수가 되고 싶은 거야?”
-지금보다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마무리 투수가 되어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다.
정보창에서 보여주는 내용으로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했지만, 혹시 빠진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무리 보직으로 갈 수만 있으면 좋기야 하겠죠. 근데 오승수 선배를 넘어서는 게 어렵긴 하니까요. 제가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나마 냉정하게 지금 상황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냥 무턱대고 되게 해달라는 식으로 떼를 썼다면 나로서도 정말 난감했을 텐데.
“대신에 지금처럼 원 포인트로 한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오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등판할지 안 할지 몰라서 항상 몸 풀고 기다려야 되는 건 똑같은데, 결국 등판해서는 공 3, 4개 던지고 끝나는 게 진짜 허무하거든요.”
게다가 다른 투수들과 똑같이 고생하고도 소화하는 이닝이 많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연봉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가 좌타자한테만 강한 것도 아니에요. 우타자 상대로도 잘 막아낼 자신 있거든요. 기회가 안 와서 그렇지, 등판할 수 있는 기회만 주면 내일이라도 보여줄 자신 있어요.”
열변을 토해내는 장수영의 표정에서는 억울함과 자신감이 동시에 겹쳐졌다.
“셋업맨을 맡아서 한 이닝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말이지?”
“꼭 한 이닝이 아니어도 돼요. 멀티 이닝 소화했을 때도 성적에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불펜 투수가 1이닝 이상을 던지는 것은 나로서도 반대였다.
“그럼 혹시 구단에서 안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고 싶어?”
“안 되겠다고 하면요?”
“지금 팀에서 기대하는 역할이 원 포인트 릴리프라고 하면서, 바꿔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음……. 그렇다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장수영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결국 푹 숙였다.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해줬나.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기는 했다.
어쩌면 선수에게 충격을 줄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장수영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
나는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장수영의 눈동자는 점점 커졌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울프스에서 쉽게 안 해줄 것 같은데요.”
“확률이 높다고 할 수는 없긴 한데. 너만 괜찮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게 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네. 그럼 저도 준비하고 있을게요.”
장수영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원래 계획대로라면 장수영을 잘 다독여서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바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어젯밤에 장수영과 나눴던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울프스 구단과도 직접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울프스 경기장을 찾았다.
잠시 후 단장과 이야기를 나눠서 원하는 부분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면 문제가 없이 끝나겠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못한다면.
어제 장수영과 이야기했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연락을 했는데도 울프스 단장은 흔쾌히 약속을 잡아줬다.
똑. 똑.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박영노 울프스 단장이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았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단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어, 그래. 오랜만이야. 반가워.”
대화를 언뜻 들으면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영노 단장과 이렇게 직접 대화를 나눠보는 건 처음이었다.
뉴스와 기사로 서로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 보니, 나도 왠지 모르게 잘 알고 지내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긴 했다.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나에게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은 나로서도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는 건 이제 전혀 낯설지 않았다.
-유격수와 2루수 수비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내야를 확실하게 강화할 수 있다면, 우승을 노려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써먹을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를 다 만나자고 하고.”
“잠깐 근처에 들를 일이 있어서요. 인사도 드리고,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요즘 많이 바쁠 텐데 고생이 많네.”
박영노 단장이 인품이 훌륭하다는 소문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장으로 우승을 다섯 번이나 이룩해낸 인물이었다.
따라서 야구와 구단 운영에 있어서만큼은 신중하고 냉정했다.
“무슨 얘기인지 궁금한데.”
“장수영 선수가 저희 회사 소속이라서요. 몇 가지 좀 여쭤보려고 합니다.”
“아, 잘 알고 있지. 안 그래도 수영이가 요즘 너무 잘해줘서 고마워. 에이전시에서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 덕분인 거 같아.”
박영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데, 성격 좋은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단장님께서는 장수영 선수가 울프스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말해 뭐 하겠어. 수영이는 우리 팀 핵심 선수지. 불펜 필승조에서는 유일한 왼손 투수이기도 하고, 타이트한 상황에서 역할도 완벽하게 수행해 주고 있잖아. 우리 팀이 강력한 불펜을 운용하는 데 빠지면 안 되는 상황인데. 더 말하는 게 입 아프지 않을까?”
박영노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당연히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근데 다만…….”
“……?”
“핵심 선수인 거 치고는 팀에서 등판 기회를 너무 안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제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박영노는 이번에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출전을 하고 있지 않나? 어제도 등판했으니 이번 시즌에도 벌써 세 경기에 출전한 걸로 기억하는데.”
장수영이 어제 경기까지 세 번 출전했다는 건 정확한 사실이었다.
“등판이야 했습니다만, 고작 1.1이닝 던졌습니다. 세 경기에서 모두 1이닝을 던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그건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요?”
“음…….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로군.”
박영노가 턱을 몇 번 쓰다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경기 중에 투수를 어떻게 기용할지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야. 내가 아무리 단장이라고 해도 경기장에서 감독이 하는 의사결정까지 관여하려고 하는 건 명백하게 월권 행위지.”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나도 감독과 생각이 다르지 않네.”
“네?”
“지금 우리 팀에서 중요한 상황에 믿고 내보낼 수 있는 왼손 불펜 투수는 수영이 딱 한 명이야. 오른손 투수는 여럿 있으니 상황에 따라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운용할 수 있지만, 왼손 투수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지.”
“……”
“팀에 한 명뿐인 중요한 선수라면 꼭 필요한 상황에만 등판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중요한 경기에서 못 뛰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해야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반대로 혹시라도 경기에 과하게 투입시키면 혹사시킨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 않겠나?”
중요한 선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껴 써야 한다.
장수영이 원하는 방향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뿐이지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설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 일단 이건 이 정도로 하고.
“그러고 보면 울프스 불펜이 강하긴 합니다. 다른 팀은 확실한 불펜 투수가 없어서 경기마다 곡소리 나서 정신없는데, 울프스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아이고. 우리라고 어려운 게 없겠어? 다 똑같이 어렵지. 아무리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고는 하지만, 불펜만 좋다고 우승하는 거 아니잖나.”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작년에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지만 드래곤즈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거두는 데 만족해야 했던 울프스였으니까.
-유격수와 2루수 수비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 확인을 해봐야겠다.
“작년에 1차 지명한 내야수도 앞으로 잘할 것 같아 보이던데요.”
“가능성이야 충분한 선수지. 근데 미래를 보고 뽑아온 선수라서 아직은 2군에서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여. 3-4년 정도 지나고 나면 확실한 주전으로 뛸 수 있지 않을까 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에이전시에서 영입이라도 하려고?”
박영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열심히 하는 선수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나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답했다.
* * *
박영노 단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울프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은 점점 더 확실해졌다.
이제 이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긴 한 거 같은데…….”
만약 이게 실제로 벌어진다면.
말 그대로 이번 시즌의 판도를 뒤바꿀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 되리라는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