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2
72화>
리그를 뒤흔든 소용돌이 (3)
나는 에이전시로 돌아와 장수영 그리고 박영노 단장과 나눴던 이야기를 했다.
“그런 상황이군요.”
“단장 얘기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서, 더 얘기해 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임예지는 내 말을 듣는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다.
“구단 단장하고 얘기를 해봐도 변화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감독을 직접 만나서 설득해 봐야 하나.”
김민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임예지를 번갈아 보면 말했다.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긴 합니다.”
“방법이 있다고?”
나의 한마디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어떤 방법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김민환이 적극적이었다.
“소속팀 단장이나 감독하고 얘기해 봤자 선수가 원하는 걸 얻어다 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남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제 머리로는 하나밖에 안 떠오르는데요.”
“설마……?”
김민환의 눈빛이 번쩍였다.
“다른 팀으로 보내주는 수밖에 없죠.”
“……!”
눈이 동그랗게 커진 김민환이 입을 쩍 벌리고는 쉽게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회의실에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을 깨뜨린 건 여전히 냉정함을 잃지 않은 임예지였다.
“트레이드를 추진하자는 말인가요?”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요.”
“근데 울프스가 장수영 선수를 트레이드할 생각이 있을까요? 리그에서도 귀한 왼손 투수인데요. 장수영 선수가 빠지면 중요한 상황에서 올릴 수 있을 왼손 불펜 투수가 없기도 할 테고요.”
임예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팀의 약점을 한 방에 보완할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와……. 장수영이랑 트레이드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 선수를 내놔야 하는 거야?”
신이 난듯한 김민환이 종이에 무언가 적어가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울프스에서는 어떤 선수를 필요로 할까요?”
임예지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지금 울프스의 가장 큰 약점은 내야 수비입니다. 그것도 수비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유격수와 2루수입니다. 몇 년째, 확실하게 주전이라고 부를 만한 유격수와 2루수를 키워내지 못해서 아주 골머리를 싸매고 있죠. 불펜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센터 라인 수비가 약한 팀이 우승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아니니까요.”
아무리 공격력이 좋고 투수력이 좋다고 해도, 수비가 안정되지 않은 팀은 절대 우승할 수 없었다.
특히 센터 라인이라고 불리는 중견수-유격수-2루수-포수로 이어지는 포지션에서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 만한 수비 능력을 갖춘 유격수를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반대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울프스 불펜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확실한 약점을 보강할 수 있다면, 불펜 투수 하나 내주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주전으로 뛸 수 있을 만한 유격수를 찾아야 하는 거면, 해봐야 몇 명 안 되겠는데?”
김민환이 생각나는 선수들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꼭 1:1 트레이드여야 할 필요도 없죠.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니까요.”
이미 1:1이나 2:2 트레이드는 물론이고, 4:3이나 4:4와 같은 대형 트레이드도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더 복잡하게는 세 팀이 엮인 삼각 트레이드를 단행한 적도 있었다.
다만, 트레이드는 두 팀이 모두 실리를 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사시키기가 어려웠다.
구단들이 물밑에서 오랜 시간 논의를 하고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성공시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리 있는 말이네요. 어찌 되었건 주전급 유격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면, 상대 구단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기는 하겠어요.”
“리그 정상급 불펜 투수를 얻으려면 그 정도는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왼손 투수인데요.”
“그렇죠. 재밌어지겠네요.”
임예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느 정도 생각해둔 상대 팀이 있나요?”
울프스를 제외한 9개 구단 중에서 장수영 같은 확실한 불펜 투수를 마다할 팀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당장 주전으로 뛰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유격수를 내어주면서까지 불펜 투수 보강이 필요한 구단은 2, 3군데로 추려졌다.
“아무래도 올해 우승이나 포스트시즌을 노리기 위해서 불펜 보강이 필요한 팀을 만나봐야겠죠. 재규어즈나 드래곤즈랑 먼저 이야기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불펜이 약하다는 것이 매 시즌이 고민거리인 재규어즈와, 2년 연속 우승을 위해 추가 전력 보강에 관심이 있을 법한 드래곤즈.
아마 이 두 팀 정도가 깊은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해보죠. 김 팀장님도 같이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민환이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대답했다.
“리그를 뒤흔들 만한 빅딜이 하나 터질지도 모르겠네요.”
임예지의 입꼬리도 올라가는 걸 보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 * *
나는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탕비실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지 생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캡슐 커피를 넣고 버튼을 누르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김민환이었다.
“현우 씨. 역시 여기 있었구나?”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직접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나눠봐야죠.”
“그럼 나는 뭘 도와주면 될까?”
김민환이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되게 적극적이네?
-대형 트레이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이 가득하다.
-자신도 트레이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
사실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둘이서 하는 게 여러모로 좋긴 했다.
김민환도 인맥과 노하우가 있으니 도움을 줄 능력도 있을 거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나야 고맙긴 하지.
“다른 구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필요하지. 그럼 연락이라도 한 번씩 돌려볼까?”
“좋죠. 그렇다고 장수영이라는 걸 티 나게는 말고요. 그냥 왼손 정상급 불펜 투수라는 정도만으로요. 아직 울프스하고 얘기된 것도 아니니까요.”
“아휴, 현우 씨는 나를 뭘로 보는 거야. 그런 거는 말 안 해도 잘 알지.”
확실히 신이 난 표정의 김민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순간 억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기자들한테는 따로 안 뿌려도 될까? 팬들 반응을 슬쩍 떠보는 것도 도움이 될 텐데.”
“그건 제가 따로 해볼게요.”
“오호라…….”
김민환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왜요?”
“이제 기자들하고도 좀 안다 이거지?”
“그래도 에이전트 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바로 연락할 기자 인맥 정도는 있어야죠.”
“누구? 그때 그 여자분?”
“알아서 뭐 하시게요.”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분하고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해?”
“일 있을 때는 하죠.”
“일 없을 때는?”
“일이 없는데 왜 연락해요.”
“하……. 진짜 재미없는 스타일이야.”
김민환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탄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에 집중하시죠. 며칠은 밤새워야 할 거 같은데.”
“그래. 일이나 해야지. 그럼 현우 씨는 지금 나갈 거야? 어느 구단부터 갈 생각인데?”
“일단 재규어즈부터 가볼까 해요. 언제나 불펜 투수가 나타나기만을 염원하고 있는 팀이잖아요.”
“좋은 생각이네. 그나저나 재규어즈는 진짜 투수 육성을 어떻게 저렇게까지 못할 수가 있지? 몇 년 동안 드래프트에서 투수를 그렇게 많이 뽑았는데, 선발진이 탄탄하기를 해, 불펜 투수가 강하기를 해.”
분명 재규어즈 육성이 부족하다는 걸 비판하는 말인데.
왜 나를 욕하는 것 같지?
틀린 말도 하나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연락 돌리시면서 특히 드래곤즈 쪽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바로 알려주세요.”
“바로 알려달라고?”
“드래곤즈에서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전력 보강에도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나는 거기부터 연락해 볼게.”
김민환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제 출발해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필요한 건 바로 연락하고.”
“네.”
내가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김민환이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몇 달 전에 김민환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할 만한 변화였다.
* * *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기차를 타러 이동했다.
가는 내내 고민이 계속됐다.
지금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게 맞을까.
FA 계약과 트레이드는 큰 차이가 있었다.
FA 계약은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협상이 완료되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팀과 카드를 맞춰보다가 안 되면 그냥 그대로 없던 일이 된다.
문제는 중간에 소문이 흘러나가는 경우였다.
구단에서 자신을 트레이드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트레이드가 다른 무엇보다 조용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유였다.
“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구단 입장이고, 지금 장수영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선수 본인도 이미 알고 있는 데다,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소문이 안 나는 것보다는 확실히 성공하는 게 중요했다.
나는 고민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나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 씨!
“수민 씨. 지금 통화 가능하죠?”
흥미로운 기사 거리를 찾은 기자의 반응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 * *
몇 시간 뒤, 나는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재규어즈가 하위권으로 떨어져 매우 스트레스 받고 있다.
-사퇴하라는 의견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조광훈의 표정에서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했다.
시즌 초반부터 팀이 부진에 빠지며 순위도 8위까지 떨어져 있었다.
지난겨울에 이상훈도 놓치고, 야심 차게 노렸던 나준호 영입까지 불발되면서 팀 전력에는 손실뿐이었다.
선수 영입을 책임지는 조광훈 단장에게 사퇴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재규어즈를 위해서 하나 제안을 좀 드리려고요.”
“이제 와서 무슨 제안? 차라리 나준호나 영입하게 해주지 그랬어. 나준호만 있었어도 훨씬 달랐을 텐데.”
이 제안도 상당히 매력적일 텐데.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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