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리그를 뒤흔든 소용돌이 (4)
“뭐? 왼손 불펜 투수라고?”
조광훈 재규어즈 단장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그게 누군데?”
“울프스 장수영입니다.”
“울프스가 장수영을 내놓는다고? 그게 말이 되나?”
“울프스 정도 되니까 말이 될 수도 있죠.”
“흠…….”
그런 여유가 부러운지 조광훈의 눈썹이 꿈틀댔다.
“확실한 거야?”
“아직 구단하고 얘기가 된 건 아닙니다.”
“에이 그럼 뭐야? 구단이 승인을 안 했는데 트레이드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조광훈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실망감이 내비쳐졌다.
“울프스가 필요로 하는 선수를 제안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얘기죠.”
“울프스가 원하는 선수는 누군데?”
“아무래도 실력이 있는 선수다 보니까 사이즈가 꽤 커지긴 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조광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재형이은 포함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재형이? 김재형을 주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팀의 주전 유격수를 내준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 재규어즈의 백업 유격수 정도로는 단칼에 거절당할 것이 분명했다.
“꼭 1:1로 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울프스한테 유격수도 받아오면 되죠.”
“……그래도 그렇지. 주전 유격수를 보내면, 내가 욕을 얼마나 먹겠어. 안 그래도 요즘 욕 엄청 먹고 있는데.”
조광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수영이 재규어즈 오는 순간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마무리 투수 걱정이 확실하게 해결되는 겁니다. 재규어즈에서 제대로 된 마무리 투수 가져본 지가 도대체 몇 년 전인가요?”
“하……. 그렇기야 한데.”
조광훈이 미간을 한껏 찌푸리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이 정도의 핵심 선수를 교환해 본 적은 없었을 테니, 고민스러울 만했다.
“다른 포지션은 안 돼? 최근에 상위 지명했던 유망주 2, 3명이면 카드 맞춰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요. 그건 절대 안 받아들일 겁니다.”
미래를 보고 뽑아 둔 유망주야 이미 울프스에도 있었다.
그들이 필요한 건 당장 주전으로 뛰어도 손색이 없을 선수였다.
더구나 장수영을 내줘야 한다면 더더욱.
“하……. 꼭 김재형이어야 한다고?”
조광훈과 눈이 마주치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좀 해보고 연락할게.”
“그렇게 하시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목소리가 재차 흘러들었다.
“다른 팀하고도 이야기 나눠보겠지?”
“물론 당연히 그래야죠. 재규어즈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뿐이고요.”
트레이드가 성사될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팀인 이유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더 이상 재규어즈의 팬인 주변 지인들의 원성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점이 컸다.
* * *
내가 재규어즈 단장과 만나고 온 사이에 김민환이 다른 구단 단장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워낙 대형 트레이드가 예상되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바로 구체적인 답을 해준 구단은 없었다.
일단 장수영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거론됐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에 이수민을 통해 조용히 던진 떡밥 하나는 국내 야구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다.
└필승조를 트레이드한다고? 그것도 왼손을?
└국내 리그에서 필승조 투수 트레이드가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것다.
└이런 건 엎어질 확률 100%라고 본다.
└근데 출처가 이수민이면 뭔가 밑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
└혹시라도 진짜 트레이드 되면 소용돌이 한 번 치겠다.
└왼손 필승조 투수라고 꼽을 만한 선수면 얼마 안 될 텐데.
└저게 장수영이긴 한 거지? 제일 유력하긴 할 거 같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울프스가 아무리 불펜이 탄탄해도 장수영 빠지면 필승조는 전부 오른손 투수밖에 안 남을 텐데. 트레이드하는 게 말이 되나.
└트레이드 밸런스 맞추려면 상대 팀 기둥을 뽑아야 할 듯.
└울프스는 어느 포지션을 받고 싶으려나?
└이미 폭망한 센터라인을 몇 년째 못 살려내고 있으니 수비되는 타자 받아와야지.
└아무리 장수영이라도 그런 선수를 보낼까?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선배. 선배.”
박성주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며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선배, 아직 못 만났구나? 당연히 무슨 일 있죠.”
“무슨 일인데?”
“고지훈 선배가 많이 이상해진 거 같아요!”
박성주가 나에게 귓속말을 하듯 말했다.
“뭐가 어떻게 이상해져? 부상이라도 당했어?”
그렇다면 정말 큰일인데.
“아니요. 몸은 멀쩡한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 부상이 아니라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훈련하는 데 갑자기 저랑 석훈이한테 처음으로 말을 걸어오더라니까요.”
에이 뭐야. 별거 아니네.
“그래? 그래도 좀 편해졌나 보네.”
“그냥 말을 한 게 아니라요. 그 표정이 진짜 달라졌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완전히 사람이 밝아졌다고 해야 하나?”
박성주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두 손으로 큰 액션을 취하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 와서 같이 지낸 지도 며칠 지났으니까. 조금 편해지지 않았겠어?”
“그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따가 선배도 직접 얘기 나눠보면 바로 알 거예요.”
박성주가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저벅. 저벅. 저벅.
마침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발소리라면 분명 고지훈이었다.
벌써 올라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그게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고지훈의 모습이 보이자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선배님, 훈련 끝내셨어요?”
“어, 그래. 현우야.”
고지훈이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주더니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냥 인사 정도만 가볍게 하고 올라갈 줄 알았는데.
“어제 집에 안 들어온 거 같더라?”
“네. 갑자기 지방에 좀 갈 일이 생겨서요.”
“아, 지방에 다녀온 거야? 고생이 많네.”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오늘이 처음인 거 같은데?
방금 박성주가 말했던 사람이 밝아졌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지훈이 무언가 고민하며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
“선물 준 거 말이야……. 정말 고마워. 수아가 엄청 좋아하더라고.”
“정말요? 다행이에요. 제가 다 뿌듯한데요.”
“네가 그걸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수아가 원래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하더라고. 애 엄마가.”
정보창아, 다시 한번 고맙다.
“요즘에 그 애니메이션 안 보는 애들이 없다더라고요.”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튼 고마워. 애가 정말 좋아했다고 말해주려고.”
마지막 말을 끝내자마자 고지훈이 어색하게 웃더니 몸을 돌리고는 다급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박성주는 고지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고 선배 이상하죠?”
“평소랑 다르긴 하네.”
“제 말이 맞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다니까요.”
나는 박성주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선물해 줬다는 게 뭐예요? 고 선배한테 선물한 거 있어요?”
“얼마 전에 고지훈 선배 딸 생일이더라고. 그래서 요즘 애들이 좋아할 만한 거 선물로 하나 드렸지.”
“아!”
박성주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손뼉을 쳤다.
“왜 그래?”
“그거 때문이구나.”
“무슨 말이야?”
“그 선물 덕분에 기분이 너무 좋은 거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이 좋아하니까 더 고맙기도 하고.”
“그럴듯하긴 한데. 이렇게까지 효과가 강력할 줄은 몰랐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내 입가에는 저절로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럼 이제 우리 다 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걸까요?”
“앞으로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긴 한데.”
“나이스!”
박성주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홈런이라도 친 것처럼 기뻐했다.
“근데 석훈이는 어딨어?”
“지금 아직 훈련 중일 거예요.”
“아직도 훈련을 해?”
“요즘 공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러던데요.”
“아무리 그래도 충분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직접 가서 이제 쉬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위이잉-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박영노 울프스 단장이었다.
“네, 단장님. 강현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박영노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어 있었다.
“네?”
-장수영을 누가 트레이드한다고 했어? 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구나.
하긴 9개 구단 단장들한테 얘기했는데, 울프스 단장만 모르고 있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였다.
“단장님. 제가 직접 뵙고 설명드리겠습니다.”
* * *
나는 다시 울프스 단장을 만나러 갔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한없이 밝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박영노의 눈빛에서는 날카로움까지 느껴졌다.
마주 보는 순간 움찔하게 될 정도였다.
“장수영 트레이드 이야기가 에이전시에서 흘러나온 게 맞는 건가?”
“네, 사실입니다.”
“이게 뭐 하는 행동이야. 어떻게 단장인 나도 모르는 트레이드 소문이 떠돌아다니게 할 수 있어!”
얼굴이 붉어진 박영노가 오른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한 번 내리쳤다.
“우선,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소문으로 접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박영노의 표정이 살짝 풀어진 느낌이었다.
“요즘 울프스의 경기를 보면서, 울프스를 위해서 제가 어떤 방법으로 도와드릴 수 있을까 이것저것 고민해 봤습니다.”
“……?”
“트레이드에 대해서 다른 구단에 문의를 했던 건 여러 선택지 중에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트레이드야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수영을 트레이드한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지난번에도 수영이가 우리 팀에 얼마나 중요한 선수인지 충분히 말했지 않나?”
이야기를 하면서 박영노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울프스에 불펜 투수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유일한 왼손 불펜 투수잖나. 리그에서도 이런 선수 찾기가 어려워. 그리고 수영이가 빠지면 그럼 우리는 경기를 어떻게 운용하라고.”
“그만큼 가치가 높으니 더 좋은 트레이드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만, 다른 선수는 몰라도 장수영은 안 돼. 절대 트레이드 불가 선수야.”
박영노가 나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당장 울프스로 와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 유격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요?”
“……뭐라고?”
나의 한마디에 박영노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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