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리그를 뒤흔든 소용돌이 (6)
“엔젤스는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엔젤스로 간다면 장수영 선수가 팀 내에서 3번째로 고연봉자가 되니까요.”
“네? 설마……?”
“엔젤스로 이적하게 되면 FA A등급으로 바뀝니다.”
FA를 선언하면 A, B, C 총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
그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소속 구단은 물론 리그 전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연봉을 얼마나 받고 있느냐였다.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있는 장수영은 고연봉자가 많은 울프스에서는 B등급이었지만, 엔젤스로 이적하면 A등급으로 바뀌게 된다.
B등급과 A등급의 가장 큰 차이는 FA로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그 선수를 영입한 팀이 원 소속팀에게 해주어야 하는 보상의 규모였다.
A등급일수록 보상의 규모가 커졌다.
따라서 장수영이 B등급에서 A등급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향후 FA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좋을 게 없었다.
임예지는 몇 년 후에 있을 FA 계약에서 장수영에게 생기게 될 불이익을 벌써부터 걱정한 것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선수가 원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B등급에서 A등급이 되는 불이익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김민환을 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테이블만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내가 직접 얘기하는 수밖에.
“등급이 올라가서 FA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선수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을 팀으로 옮겨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해준다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음…….”
임예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처럼 원 포인트 릴리프 역할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데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마무리 투수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1이닝을 확실하게 막아줄 수 있는 투수라는 이미지를 주는 게 훨씬 가치를 높이는 방법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해야 장수영 선수가 행복하게 경기를 뛸 수 있으니까요.
다른 어떤 말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임예지에게 말해서 좋은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현우 씨는 장수영 선수가 마무리 보직을 맡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셋업맨으로 잘하던 선수도 마무리 보직을 맡고 나서 무너지는 경우가 꽤 많은 걸로 아는데, 장수영 선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근거가 있나요?”
투수에게 9회가 주는 압박감은 다른 이닝과는 차원이 달랐다.
경기 초중반에는 실수를 해도 보완할 기회가 있지만, 마지막 이닝인 9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던진 공 하나로 인해서 경기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8회에 1이닝을 잘 던지던 투수가 9회에 등판해서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장수영 선수는 기본적으로 좌타자와 우타자를 상대로 고른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정교한 제구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서도 멘탈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터프한 상황에서 등판했을 때도 잘 막아낸 경험이 많습니다. 지금 당장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는다고 해도 문제없을 겁니다.”
내 말이 끝났는데도 임예지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고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엔젤스와의 트레이드 성사 가능성은요?”
“확실하게 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거론된 것 중에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엔젤스의 지영욱이 지금 울프스에 필요한 스타일의 선수라는 건 확실했으니까.
“일단 울프스에 전달해보죠.”
“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 김민환과 눈이 마주쳤다.
김민환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김민환도 자기가 이번 트레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겠지.
설레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나는 곧바로 박영노 울프스 단장을 만나러 갔다.
“엔젤스 지영욱?”
“지금 딱 울프스에 필요한 선수이지 않나요?”
“음…….”
“지영욱이 합류하면 수비 운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럴 거 같긴 한데.”
박영노가 제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영욱이 오면 참 좋을 거라는 건 분명한데, 장수영을 보내야 한다는 게 참…….”
“단장님, 메이저리그에서는 윈나우(Win-Now) 트레이드도 하잖습니까. 이렇게 트레이드해서 이번 시즌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다면 팀으로서도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지영욱을 영입하면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장수영을 내주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스럽다.
박영노가 지금 고민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10개 팀이 모두 같은 리그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생기는 고민거리였다.
혹시나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보다 내준 선수가 더 좋은 활약을 펼치기라도 한다면, 팬들의 비난 여론은 물론이고 당장 팀의 성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주전급 선수의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어려웠다.
“엔젤스에서 다른 얘기는 없었고?”
“그쪽에서는 확실히 정한 것 같습니다. 이제 단장님만 결정해주시면 됩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네?”
“그게 전부냐는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왼손 투수 하나 더해서 진행하는 건 얘기가 안 된 거야?”
“아아. 일단 저희 쪽에서 지금까지 협의가 완료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흠, 그래? 그럼 생각 좀 더 해봐야겠는데.”
박영노가 팔짱을 끼면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쯤이면 그쪽도 얘기가 끝났을 것 같은데.
그사이 나는 도착한 메시지가 있는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오케이.
내가 원하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럼 지금 바로 나머지 얘기도 해볼까요?”
“지금?”
나는 박영노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팀장님, 그쪽에서는 어떻게 얘기가 잘됐나요?”
-어. 일단 내용 전달은 다 했고. 잠깐 고민하시는 중이야.
“저도 박 단장님하고 같이 있으니 우리 다 같이 얘기 나눠보죠.”
나는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내려두었다.
“지금 통화하는 사람은 누구야?”
박영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지금 저희 회사에 김민환 팀장이 조재원 엔젤스 단장하고 만나는 중이었거든요. 박 단장님께서 원하셨던 부분을 얘기하기는 했는데, 조재원 단장도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라고 하네요. 직접 얘기해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허, 허허허.”
박영노가 나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테이블로 몸을 당겨 통화를 이어갔다.
-박 단장님. 엔젤스 조재원입니다.
“어, 그래. 조 단장, 오랜만이야.”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장수영이랑 지영욱은 기본으로 깔고 나머지도 카드 한번 맞춰보시죠.
“우리도 좌완 투수를 보강하기는 해야 해서 말이야.”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중간에 통화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가지면서 진행됐다.
협상이 결렬될 위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와 김민환이 적절하게 의견 조율을 해가며 위기를 극복해갔다.
일분일초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 * *
나는 단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뛰듯이 걸어가면서 문자를 적어갔다.
가장 먼저 이수민에게 트레이드 사실을 알렸다.
다만 트레이드가 행정적으로도 확실히 처리되고 난 이후에 기사를 올려 달라는 말과 함께.
문자를 전송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장수영은 아마 평소처럼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헉. 헉. 헉.”
숨이 헐떡일 정도로 속도를 내서 달리니 금방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팀 훈련을 하는 시간은 아닌지 모여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얘는 어딨는 거야?”
주변을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면서 장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왜 꼭 이럴 때만 안 받는 거야?”
도착해서 운동하고 있을 것 같긴 한데.
하는 수없이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장수영 선수 보셨나요?”
“장수영 선수요? 아까 사우나 하러 가던데요.”
“사우나요? 감사합니다.”
나는 곧장 사우나실을 향해 달렸다.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서라도 빨리 말해줘야 하나.’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내가 도착하자 장수영은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
“수영아!”
“어, 선배?”
장수영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지금 바로 짐 챙겨서 나와. 바로 이동해야 해.”
“네?”
“오늘부터 바로 라인업에 넣을 거래.”
아리송하던 장수영의 표정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선배, 설마?”
“생각하는 그거 맞을 거야.”
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갑작스럽네요.”
장수영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모를 감정이 올라오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나는 장수영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줬다.
장수영의 눈가는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촉촉하게 젖어갔다.
데뷔를 하고 7년을 몸담았던 구단을 갑자기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금방 챙기고 나올게요.”
“그래.”
장수영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여러 동료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짧은 이별 인사를 나눴을 장수영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갈까?”
“네, 가요.”
나는 장수영과 짐을 나눠 들고 경기장 밖으로 걸어갔다.
역대 울프스의 우승 순간과 영구 결번된 레전드 선수들의 사진을 보며 걸어갔다.
주차장에 도착해 짐을 싣고 차에 오르려는데.
“선배, 잠시만요. 혹시 조금 이따가 가도 되나요?”
“무슨 일 있어? 아주 여유 있는 건 아닌데.”
“아무리 급해도 감독님께는 따로 인사드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감독님? 그래야지.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장수영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경기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나는 그저 기다려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선수와 미리 얘기를 하고 진행한 트레이드지만, 정든 곳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쉬울 리는 없었다.
잠시 후, 눈이 붉어진 장수영이 차에 타고 난 뒤에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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