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8
78화>
게으른 천재 (2)
펠리컨즈가 벌써 하위권으로 떨어져 있는데도 많은 홈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필승불패 무적 펠리컨즈!”
“영원토록 사랑한다 최강 펠리컨즈!”
열정적인 팬들답게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응원가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펠리컨즈가 난적을 만났습니다.
-순위표만 봐도 두 팀의 차이가 드러나는데요. 공수가 탄탄하다고 평가받는 버팔로즈를 상대로 펠리컨즈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무엇보다도 수비 안정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펠리컨즈가 실책 없이 마무리한 경기가 없거든요. 선발 투수의 무게감이나 타격 성적이 밀리는 상황에서 수비까지 무너진다면 오늘 경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소영준은 8번 타자 유격수, 오석훈은 3번 타자 우익수 그리고 박성주는 4번 타자 3루수였다.
“플레이 볼!”
버팔로즈의 공격으로 1회 초가 시작됐다.
볼.
볼.
펠리컨즈의 선발 투수는 초반부터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딱!
결국 첫 타자부터 안타를 허용했다.
그리고 뒤이어 타석에 선 2번 타자에겐 볼넷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노 아웃에 주자는 1, 2루가 됐습니다. 초반 흐름이 좋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오석훈 선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다음 타자가 박성주 선수라서 피해 갈 수도 없어요. 반드시 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오석훈 선수 입장에서는 초구부터 노려볼 필요도 있어요. 위기 상황인 데다 직전 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켰기 때문에 아마 스트라이크를 던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석훈 안타! 오석훈 날려버려!”
버팔로즈 원정 팬들은 오석훈의 한 방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석훈이 타석에 서자 펠리컨즈 투수가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무언가 생각이 맞지 않는지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길었다.
그리고도 원하는 사인이 아니었는지 투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투수판에서 발을 뗐다.
“우우우우-”
“시간 끌지 말고 빨리해라.”
버팔로즈 팬들은 응원 막대를 바닥으로 향하며 야유를 보냈다.
-투수와 포수 사이에서 사인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일수록 투수가 포수를 믿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잠시 호흡을 고른 투수는 투수판을 밟고 다시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2루 주자를 흘끗 바라보고는 던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던졌다.
공이 스트라이크로 들어올 거라고 판단한 오석훈은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띡.
하지만 공은 제구가 되지 않아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향했고,
배트에 제대로 맞지 않은 타구는 유격수 소영준을 향해 바운드되며 날아갔다.
병살타를 직감한 오석훈은 전력을 다해 1루로 달렸다.
-오석훈 선수의 타구는 병살 코스로 날아갑니다. 초구부터 제대로 노려봤지만, 배트에 제대로 맞추지 못했네요.
그런데.
-어? 소영준 선수가 공을 한 번에 잡지 못했어요!
공을 한 번 떨어뜨리고 다시 집어 드느라 시간이 지체돼버렸다.
2루를 향해 달려오던 1루 주자는 이미 거의 2루 베이스에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소영준은 급하게 몸을 살짝 틀어 1루를 바라보고는 힘껏 던졌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진 오석훈을 아웃시키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세이프!”
1루심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두 팔을 벌리며 선언했다.
“와아아아아-”
“오석훈! 오석훈! 오석훈!”
버팔로즈 팬들의 함성은 아까보다 훨씬 커졌다.
전광판에는 펠리컨즈의 에러가 0에서 1로 바뀌었다.
펠리컨즈 선발 투수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유격수 소영준 선수의 에러로 오석훈 선수도 출루에 성공합니다.
-1회부터 에러를 기록하네요. 그것도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에러였습니다.
-병살타를 잡아내서 투 아웃을 잡아낼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무사 만루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거든요.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박성주 선수예요.
“만루홈런! 만루홈런!”
박성주가 타석에 들어서자 버팔로즈 팬들은 하나같이 만루홈런을 외쳤다.
반면, 펠리컨즈 팬들은 힘없이 주저앉아 낙담한 표정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무사 만루에서 상대 팀 4번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투수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인데요.
-투수 코치가 올라와서 분위기를 끊어주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상대로 펠리컨즈 투수 코치가 포수와 함께 마운드로 올라갔다.
투수 코치는 투수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누며 힘을 실어주고는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박성주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는 잠시 3루 주자를 바라보며 견제하고는 포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낮은 코스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이었다.
박성주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타격 자세를 취했다.
0 볼 1 스트라이크.
투수는 다시 포수와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그리고 투수는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던졌다.
박성주는 공이 높은 코스로 들어온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따아악!
타구는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비행했다.
세 명의 주자는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서는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 제대로 맞았습니다.
-과연 넘어가나요?
빠른 속도로 날아간 타구는 결국 중앙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홈런!”
2루심이 검지를 편 채로 손을 돌리며 홈런을 선언했다.
-와아! 결국 홈런을 치네요.
-4번 타자는 이런 거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한 방입니다.
-4번 타자 박성주의 만루홈런으로 버팔로즈가 순식간에 4:0으로 앞서나갑니다.
“와아아아아-”
“박성주! 박성주! 박성주!”
베이스에서 달리던 세 명의 주자와 박성주는 천천히 내야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했다.
박성주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며 만루홈런 세리머니를 했다.
하나둘씩 홈 베이스를 밟은 세 명의 주자들은 박성주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홈 베이스에 도착한 박성주는 세 명의 주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짜릿한 순간을 만끽했다.
그중에서도 오석훈이 박성주의 헬멧을 때리며 가장 즐거워했다.
반면, 펠리컨즈 선발 투수는 낙담한 표정으로 멍하게 외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량 실점의 빌미를 준 소영준도 애꿎은 모래만 발로 차고 있었다.
-실책 뒤에는 항상 실점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병살타를 잡아냈다면 1회를 큰 문제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요.
-제가 경기 시작 전부터 말씀드렸지만 펠리컨즈는 수비 능력을 지금보다 확실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요.
1회부터 승부가 기운 채로 시작된 경기의 양상은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버팔로즈 선발 투수도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며 펠리컨즈에게도 기회가 생기나 싶었지만, 탄탄한 버팔로즈의 수비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마다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호수비로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줬다.
이와 반대로 펠리컨즈의 수비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가볍게 마무리됐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수비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투수의 부담이 커져가기만 했다.
3회 초가 끝나는 상황에서 스코어는 7:1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3회 말에 첫 번째 타자로 8번 타자 소영준이 타석에 들어섰다.
-8번 타자 소영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1회에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된 실책을 저질렀는데요. 공격에서 활로를 뚫어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소영준은 배트 손잡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 시즌 지금까지 타율은 0.238.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타율이었다.
게다가 오늘 경기에서는 결정적인 실책까지 있었다.
소영준의 어깨가 다른 날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다만 오늘 등판한 버팔로즈 선발 투수가 에이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해볼 만한 승부였다.
‘제구력이 좋은 건 아니니까 급하게 승부하지 말고 실투를 노리자.’
투수가 던질 공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펑!
“스트라이크.”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0 볼 1 스트라이크.
의외로 스트라이크로 시작했다.
어차피 첫 번째 공은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마 이번에는 유인구로 들어올 게 분명하다. 기다리자.’
소영준은 타격 자세를 취했지만, 처음부터 휘두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투수가 던진 공은 분명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 뭐야? 그냥 노려야겠다.’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뒤늦게 반응하다 보니 타이밍이 완전히 늦었다.
‘두 개 연속 스트라이크를 던지네?’
0 볼 2 스트라이크.
타자로서는 완전히 불리해진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스트라이크처럼 들어오는 것 같으면 스윙하자.’
소영준은 심호흡을 하며 투구를 기다렸다.
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
‘확실히 스트라이크다!’
소영준은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바닥에 바운드될 정도로 뚝 떨어졌다.
후웅-
배트에 스치지도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고 1루를 향해 달리려는데, 포수가 빠르게 다가와 소영준의 몸에 글러브를 태그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공 세 개 만에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다.
소영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이후 경기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점 점수 차는 벌어졌고, 7회가 넘어가면서 주전급 선수들은 모두 교체됐다.
펠리컨즈의 완패였다.
* * *
나는 소영준에게 잠시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겨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녀서 잘 아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서로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많이 달라서 함께 어울려 놀았던 적은 전혀 없었다.
프로에 입단하고 나서도 소영준이 2군에 내려와 있을 때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다.
만나서 어떻게 말을 해가는 게 좋을까.
후배도 아니고 선배도 아니라서 오히려 더 난감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소영준은 전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커룸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라커룸에서 나오는 후배가 보였다.
“저기, 혹시.”
“어? 선배님.”
나와 눈이 마주친 후배는 꾸벅 인사를 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영준이 안에 있어? 한참 기다렸는데도 안 나오네.”
“영준 선배요? 이미 나가셨는데요?”
“벌써 나갔다고? 전혀 못 봤는데.”
내가 여기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클럽 가셨을걸요?”
“뭐?”
“빨리 나가시는 날에는 클럽 가시는 거 같더라고요.”
“어느 클럽인지 알아?”
후배에게서 클럽 이름을 듣자마자 급하게 경기장을 나섰다.
내일이 휴식일도 아닌데 클럽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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