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79
79화>
게으른 천재 (3)
경기장에서 30분쯤 달리자 클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클럽 주변은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려는데,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어쩌지.’
최대한 가려봐야겠다.
적당한 게 뭐가 있을지 주변을 뒤적여보니 모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버팔로즈 로고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최대한 깊게 눌러쓰고 차에서 내렸다.
늦은 밤이라 어둑어둑하니 빨리 지나가면 알아보기 어렵겠지.
차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클럽 입구로 다가갔다.
자연스러운 척 들어가려는데,
“어, 강현우 씨? 강현우 선수 맞으시죠?”
클럽 입구에 있던 직원이 나를 이리저리 보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이렇게까지 빨리 알아볼 줄이야.
“맞긴 맞는데요…….”
“오! 팬이에요.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직원은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쪽을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일단 악수를 받기는 했는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올려봤지만, 정보창이 보이지는 않았다.
“어서 들어가시죠. 귀한 분 오셨는데 좋은 자리로 만들어드려야지.”
“제가 여기 술 마시러 온 건 아니라서요.”
“괜찮아요. 할인 많이 해드릴 테니까 마음껏 드시다 가세요. 제가 정말 팬이거든요.”
목소리 톤이 한껏 높아진 직원이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정말로 지금 놀러 온 게 아니라서요…….”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되는지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영준 선수 만날 수 있어요?”
“아! 소영준 선수 일행이시구나.”
직원은 손뼉을 한 번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와 있었죠. 어떻게, 자리로 안내해 드릴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나는 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실내가 어두컴컴해서인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들어가더니 직원이 구석에 있는 룸 앞에 멈춰 섰다.
“여기예요.”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직원은 밝은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몇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도 깜깜해서 누가 누군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이런 곳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어? 현우 아니냐?”
“아, 거기 있었구나 영준아.”
“여기는 무슨 일이야?”
소영준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
짧은 거리를 걸어오는 데도 휘청휘청했다.
이미 술에 많이 취한 듯했다.
“경기 끝나고 보자고 메시지 남겨놨는데, 못 봤나 봐?”
“뭘 보냈어? 내가 핸드폰을 잘 안 봐. 무슨 일인데?”
힘들게 걸어온 소영준은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나를 잡고서야 겨우 버텨섰다.
“에이전시 일로 이런저런 얘기 좀 하려고 했는데…….”
“좋지, 사람이 살면서 그런 얘기도 좀 해야지.”
소영준이 갑자기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테이블로 데려갔다.
“일단 한잔해. 술이 좀 들어가 줘야 얘기가 술술 나오잖아. 그래서 우리한테 술이 필요한 거고.”
나는 술잔을 밀어내며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여기서 얘기하기가 왜 어려워? 이렇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데가 어딨다고 그래, 어?”
음악 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너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냐.
나는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내일 점심때 경기장에서 만나. 11시쯤이면 괜찮지?”
“그럼, 그렇게 하든가.”
소영준이 알겠다는 손짓을 했다.
“내일 보자.”
나는 소영준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그의 정보창에서는 무슨 내용이 보이는지 궁금했다.
-친구들과 만나 기분이 좋다.
-내일도 클럽에서 다른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경기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자기의 실책으로 팀이 대패를 당했는데도 그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말인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클럽을 빠져나왔다.
* * *
다음 날, 나는 소영준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 경기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젯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아플 정도로 너무 복잡했다.
다음 날에도 경기가 있는 상황에서 클럽에 갔다는 것도 그렇고, 야구에 대해서 전혀 고민을 안 한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경기장을 나가던 홈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욕설을 할 정도로 참혹한 경기력을 보여준 상황에서 말이다.
여러모로 이제까지 만난 선수들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경기장에 도착하고 보니 11시 10분 전이었다.
1시부터는 식사와 팀 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에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라커룸 근처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소영준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5분, 10분, 20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얘는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약속했던 11시가 넘어 11시 30분을 향해가는 데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소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뚜우-
‘전화도 안 받아?’
한참을 기다려봐도 소영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힘겹게 억누르며 나는 통화 시도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 여보세요.
다섯 번째 시도 만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야. 너 어디야?”
-나 집인데?
“11시에 나랑 보기로 약속했을 텐데?”
-지금이 몇 시지?
“12시 다 돼간다.”
-아, 미안하다. 어제 늦게 자서.
정말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팀 훈련은 몇 시부터 시작하는데?”
-1시.
“집에서 오는 데까지는 얼마나 걸려?”
-씻고 가려면 1시간은 잡아야지.
그럼 지금 출발해서 와도 바로 팀 훈련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 그럼 경기 끝나고 나랑 잠깐 보자.”
-오늘 경기 끝나고 약속 있는데?
“나 지금 에이전트로 와있는 거다. 무조건 나부터 만나. 아니면 바로 회사에 보고할 테니까.”
나는 소영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 녀석이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게 뻔했다.
* * *
그날 밤에 있던 경기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석훈과 박성주를 중심으로 한 버팔로즈 타자들은 어제에 이어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갔다.
오석훈은 출루에 성공할 때마다 빠른 발로 선발 투수를 흔들었고, 박성주는 필요한 상황마다 시원시원한 스윙으로 타점을 차곡차곡 올렸다.
이와는 정반대로 펠리컨즈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혼란의 연속이었다.
소영준은 여전히 불안불안한 수비를 보여주며 흔들리던 선발 투수를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타격에서도 터무니없이 큰 스윙을 연발하며 삼진 아웃을 당했다.
다만, 경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9회 말.
펠리컨즈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자 소영준의 마지막 타석에서.
따악!
-오! 제대로 맞았습니다.
-넘어가나요? 쭉쭉 뻗어가는데요.
-넘어갑니다! 홈런! 경기장 중앙에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네요.
-9회 말이기는 하지만 소영준 선수의 추격하는 1점 홈런이 터집니다.
“와아아아- 소영준! 소영준! 소영준!”
이미 스윙을 할 때부터 홈런을 직감한 소영준은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1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내야를 돌아 홈 베이스를 밟았다.
9회 말에 1점 홈런이 터지기는 했지만, 이미 점수 차가 많이 벌어진 경기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버팔로즈는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펠리컨즈 더그아웃 앞에 서 있었다.
단호하게 말해두기는 했지만, 소영준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먼저 나오는 소영준을 볼 수 있었다.
“소영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자 소영준은 깜짝 놀란 듯 멈칫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내가 이렇게 와있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술 약속 자리로 향했을 게 분명했다.
“어, 현우 왔구나.”
“여기서 잠깐 얘기 좀 하자.”
“어…… 그래.”
소영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겨우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나는 정보창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접촉했다.
-9회 말에 때린 홈런으로 한껏 흥분된 상태다.
-오늘 술자리에서는 기분 좋아 한턱 살 생각이다.
어찌 보면 극강의 긍정맨이라고 볼 수도 있으려나.
실수에 대해서 자책하지 않고 자신이 잘한 것만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타고난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나와 소영준은 로비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무슨 일인데?”
“요즘 컨디션은 어떤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러 왔어.”
“그걸 굳이 만나서 얘기할 필요가 있나? 전화로 물어봤어도 바로 답해줬을 텐데.”
소영준의 시큰둥한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컨디션은 어때?”
“전혀 문제없는데? 아픈 곳도 없고.”
“음……. 그래?”
컨디션도 괜찮고 아픈 곳도 없는 상황에서 경기력이 이렇게 엉망이라니.
“요즘에 타격이 잘 안되는 거 같던데?”
“타격? 문제가 있나?”
이제 소영준의 표정에는 짜증스러움도 느껴졌다.
“최근 데이터 보니까 타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던데.”
“나는 유격수잖아. 아무래도 수비 부담이 크니까 어쩔 수 없지.”
“수비 부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리고 아까 홈런 치는 거 못 봤어? 유격수 중에 이렇게 큰 홈런 칠 수 있는 선수 몇 안 돼.”
소영준은 아까 홈런 장면이 다시 떠올랐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점수 차가 한참 벌어진 상황에서 친 홈런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수비 에러도 작년보다 늘어나는 거 같던데.”
“그거야 유격수라서 어쩔 수 없어. 내야 수비수 중에서도 유격수한테 어려운 타구가 제일 많이 오거든.”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반응을 대신했다.
“근데 지금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가 뭐야?”
“수비에서 에러가 많이 나온다는 건 연습량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서.”
“뭐라고?”
소영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기본적인 부분에서 나오는 실수는 연습으로 충분히 보강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데뷔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팀 훈련 시간에 늦어본 적이 없어. 스프링캠프부터 시즌 끝나고 마무리 캠프 할 때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어떻게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
“…….”
“네가 수비를 잘했던 건 아는데. 외야수랑 내야수는 많이 달라. 유격수 자리에서 펑고만 받아봐도 알 거야. 외야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비 난이도가 높다고.”
소영준이 시간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다. 더 할 얘기 있으면 전화로 해.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우리 서로 개인 프라이버시는 존중하면서 지내자.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소영준이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아니, 잠깐…….”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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