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
8화>
YJ 스포츠에이전시 (3)
나는 아무 말 없이 김민환을 바라봤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혹시나 후유증이 있을까 봐 걱정이 돼서.”
김민환이 멋쩍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내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강남 한복판에 있는 식당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가성비 좋은 식단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김민환의 비아냥 섞인 말 때문에 기분이 안 좋기는 해도, 처음 보는 사이에 아무 말 없이 먹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마디 건넸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주기만을 기다렸는지 김민환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현우 씨는 궁금한 거 없어?”
“제가 오석훈 선수 지원하면서 해야 하는 업무가 뭔가요?”
“일 배우는 동안 석훈이 관리하는 일만 전담한다면 간단한 편인데.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경기 끝나고 매일 아침 리포트 보내는 정도면 될 것 같아. 그날 경기 결과부터 지금 몸 상태는 어떤지, 혹시 부상이나 불편한 곳은 없는지, 그날 어떤 훈련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뭐가 필요하다고 했는지까지.”
“그 정도면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니네요?”
설명이 끝나자마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답하자 김민환이 살짝 멈칫했다.
“그, 그렇긴 하지. 날마다 한 일을 그냥 서류로 적어서 전달해주는 거니까.”
“그렇군요.”
“대신 앞으로 3개월 동안 현우 씨한테 제일 중요한 건 석훈이의 성적이 좋아질 수 있느냐지. 회사에서 기대하는 만큼 성적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그럼 회사에서 오석훈 선수한테 제공해주고 있는 건 뭐가 있죠?”
“우리가 해주는 거야 많지. 매년 연봉협상은 기본이고, 시즌 끝나고 나서도 훈련하는 데 문제없도록 훈련 장소 섭외나 스케줄 관리, 식단 관리까지 해주고. 시즌 중일 때는 최근 경기력 분석한 자료랑 상대 팀 데이터 자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보내주고 있지.”
“그렇군요.”
나는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정말 자신 있어?”
“뭐가요?”
“3개월 동안 석훈이 경기력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냐는 거야. 에이전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분명히 한계가 있을 텐데.”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죠.”
“패기는 좋네.”
김민환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생각처럼 되게 만들 방법은 있고?”
“선수 스스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주고 있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김민환이 진심으로 궁금해한다는 게 느껴졌다.
“당연하죠. 근데 지금 들어본 것만으로는 특별한 게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이건 다른 선수들한테도 똑같이 해주는 거 아닌가요?”
“어…… 어떻게 보면 그렇기도 하지.”
“정말 이게 다라면, 오석훈 선수가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은데요.”
나는 일부러 ‘전혀’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자 김민환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거에서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YJ에 소속된 선수들은 보통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죠?”
“그렇지. 대부분 국내 구단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선수들이니까.”
“그런데 오석훈 선수는 아직 스타 플레이어라고 불릴 정도의 수준은 안 되죠. 인기가 많아서 스타 플레이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2군에서 뛰는 유망주일 뿐이니까요. 최근에는 2군에서도 헤매고 있으니, 아직도 유망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소속 선수를 깎아내리는 게 기분이 나빴는지 김민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에이전시에서 오석훈 선수를 스타 플레이어처럼 관리하고 있다는 거죠.”
“…….”
“이미 실력으로 국내 정상에 오른 선수들이야 자기한테 맞는 훈련 방법부터 컨디션 조절 노하우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으니 지금처럼 경기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없겠지만, 계속 성장해야 하는 유망주라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자기 것을 찾을 때까지 하나하나 도와주는 게 필요한 건데, 이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니 발전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럼 어떤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석훈 선수가 왜 부진한지를 알려주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줘야죠. 뜬구름 잡는 당연한 조언 말고요. 만약 구단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에이전시에서 대신 요구사항을 제안해 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근데 선수 한 명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나?”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겠죠.”
“음……. 이상적인 말이긴 한데. 현실에서 직접 실행하는 건 어려울 거 같은데?”
“이상적이요?”
이 방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봐. 선수협회 규정상 에이전트가 받을 수 있는 수수료는 선수 연봉의 최대 5%야. 이 말은 소속 선수의 연봉이 높을수록 우리가 받는 금액도 늘어난다는 거지. 그리고 에이전트 한 명이 여러 선수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게 현실이야. 그럼 누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연봉이 더 높은 선수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지. 한 선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그 선수를 돕는 데만 집중하다가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고객을 놓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니까.”
내 생각과 다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연봉이 낮아도, 성적을 올려서 높은 연봉을 받도록 키워낸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지금 손해를 보면서도 오석훈을 지원해주고 있었잖아. 더구나 앞으로 3개월 동안 전담 직원까지 붙여주기까지 하는데, 여기서 뭘 더 해줄 수 있지?”
“…….”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선수한테 전담 직원을 붙여주는 건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거야. 혹시라도 다른 선수들이 이 소식 들으면 난리 날걸.”
나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김민환이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왜? 원하는 일을 못 할 것 같아서 실망스러워?”
“그건 아니에요.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할 순 없죠.”
“그래. 일단 뭐, 하는 데까지는 해봐. 3개월이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니까. 뭐라도 바뀌는 건 있겠지.”
“네. 일단 해보죠.”
* * *
김민환과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버팔로즈 2군 경기장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버팔로즈와 재규어즈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보통 2군 경기장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중교통 인프라도 불편하고, 자가용으로 오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경기장이 작고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까워서 선수들을 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운 나는 김민환과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느낌이 새롭네…….”
불과 몇 주 전에도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왔던 곳이라, 외관상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선수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된 내 시선에는 익숙한 곳도 새롭게 느껴졌다.
사실 내가 선수로 뛰었던 시절에는 이곳으로 오는 게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이곳도 엄연히 프로 무대였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1군 무대로 가지 못 하고 있다는 열등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홈 팀 라커룸에 도착한 나와 김민환은 입구 앞에서 오석훈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시간에 나오라고 하는 게 괜찮을까요? 경기 시작하려면 30분도 안 남았는데.”
“잠깐 보는 건데 뭐. 그 정도는 괜찮아.”
“아…… 네.”
경기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는 선수 상황을 고려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첫날부터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번에는 꾹 참았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오석훈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온다.”
“팀장님.”
“석훈아, 어서 와.”
“어? 선배님도 계셨네요.”
나와 눈이 마주친 오석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미 서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문제없겠지?”
김민환이 손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오석훈에게 말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나 대신 현우 씨가 너랑 같이 다니면서 도와줄 거야.”
“정말요?”
“그래. 오늘부터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하게 됐어. 일 배우는 동안 너를 전담해서 도와줄 거야.”
“선배님, 아니…… 그럼 이제부터 뭐라고 불러야 하죠?”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형이요? 진짜 그래도 돼요?”
“그럼. 서로 편한 게 좋잖아.”
“알겠습니다, 현우 형.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오석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까지는 주변 상황으로 유추했던 거라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와 악수를 나누자 역시 오석훈의 머리 위에도 정보창이 보였다.
-자신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매일매일 경기를 뛰는 게 두렵다.
그때 멀리서 스태프가 오석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어서 들어가 봐. 오늘도 파이팅하고.”
“네. 이따 끝나고 봬요.”
오석훈이 나와 김민환을 향해 인사하고 스태프 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김민환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이제 서울로 다시 가볼 테니까.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해.”
“같이 경기 안 보시고요?”
“그렇게 복잡한 거 아니라며. 그럼 혼자 해도 충분하지 않나? 옆에 붙어서 하나하나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긴 하죠. 혼자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보고서 양식은 메일로 보내 놓을 테니까 확인해봐.”
“네.”
나는 쏜살같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김민환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그는 일 초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홀로 남은 나는 천천히 경기장을 향해 걸어갔다.
에이전트가 되어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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