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0
80화>
게으른 천재 (4)
“하……. 그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민환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고도 또 끝나자마자 클럽 갔다고?”
“다급하게 간 거 보니까 아마도 맞을 겁니다.”
“아우, 머리야.”
김민환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는 관자놀이를 힘껏 눌렀다.
“경기력이 완전히 엉망이면 강하게 한마디 하겠는데, 홈런은 그래도 종종 터지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치는 홈런마다 영양가는 없습니다. 대부분 1점 홈런인 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 홈런은 하나도 없죠.”
“그거야 나도 알고 있지. 근데 문제는 이렇게 하고도 소영준이 팀 내 홈런 1위라는 거야.”
“정말 최악이긴 하네요.”
그만큼 펠리컨즈의 팀 성적은 물론 선수 개개인의 성적도 암담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다른 방법 없겠어?”
“무슨 방법이요?”
“다 큰 성인이 클럽 다니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일단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선수가 사고 안 치고 성적만 잘 나오면 되잖아. 팀 성적이야 팀에서 고민할 일이니까.”
“어떻게 보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요…….”
“타격이랑 수비 퍼포먼스를 확실하게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겠어?”
김민환은 내가 오석훈의 성적을 높였던 것처럼 해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라고 선수의 퍼포먼스를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방법을 알려줄 뿐이지.
“일단 기본적으로 훈련량을 늘려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에는 온통 클럽 가서 놀 생각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성적을 잘 나오게 할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어디 못 나가게 붙잡아 놓고 훈련을 시켜야 할까?”
“프라이버시는 존중하면서 지내자는데요?”
“후……. 대표님한테는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김민환이 펜을 내려놓고는 두 손을 모아 팔짱을 꼈다.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죠. 우리가 굳이 거짓말할 필요 있나요?”
“나보고 지금 그렇게 보고하라고?”
김민환이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표현하듯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 번 더 만나서 얘기를 해보기는 할게요.”
“제발 꼭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김민환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실망이 클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요.”
“하…….”
내 말을 들은 김민환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 *
나는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식탁에 앉아 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오석훈과 박성주가 원정 경기를 떠나서 집을 비운 덕분에 숙소는 고요했다.
쿵. 쿵. 쿵.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어, 들어왔네.”
고지훈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수건 하나를 들고서 내려왔다.
“네. 식사하셨어요?”
“아까 오자마자 먹었어. 이제 소화도 시킬 겸 훈련하려고.”
고지훈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고서는 내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컨디션 괜찮으면 캐치볼 좀 받아줄 수 있을까?”
“캐치볼이요? 그럼요.”
“힘들면 괜찮아.”
“아니에요. 가시죠, 저도 꾸준하게 운동해야죠.”
“고마워. 일이 많아서 힘들 텐데.”
고지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내 어깨를 툭툭 만졌다.
-허리 통증이 다시 느껴져 내일 또 병원에 갈 계획이다.
지난번에 회의에서 들었던 병원 진료를 말하는 듯했다.
고지훈에게 허리 통증은 수년째 달고 다니는 고질병이었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에 아픈 곳이 없는 선수는 없었다.
잠시 후, 나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내려왔다.
가벼운 캐치볼이지만 혹시 모르니 가볍게 워밍업도 했다.
요즘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거의 안 하다 보니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고,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여주는 게 나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야구공을 만지면서 캐치볼을 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그럼 시작할게.”
“네. 준비됐습니다.”
고지훈이 공을 들어 올리며 나에게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후우-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날아올 공에 집중했다.
캐치볼을 이미 여러 번 했던 덕분에 날아오는 공에 대한 공포는 거의 극복해가고 있었다.
대신에 아직도 첫 번째 공을 받을 때는 긴장이 많이 됐다.
고지훈은 실전에서 투구하는 것보다 허리를 살짝만 굽히며 공을 던졌다.
펑.
“우와.”
나는 낮은 목소리로 탄성을 내뱉었다.
공이 글러브를 뚫고 지나갈 것처럼 강하게 파고 들어왔다.
가볍게 던진 공인데도 회전이 많아 힘이 느껴졌다.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불리는 투수의 공의 위력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글러브를 펴서 공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고지훈에게 던졌다.
펑.
공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순간의 느낌은 언제 느껴도 기분이 좋다.
펑.
펑.
캐치볼이 이어지면서 점점 공의 구속이 빨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스피드 건이 없는 탓에 내가 얼마나 빠른 공을 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아쉬웠다.
고지훈이 실전에서 던지는 수준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고지훈의 싱커나 투심은 변화가 많아 마치 뱀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날아왔다.
“패스트볼 하나만 더 던지고 변화구로 할게.”
“네.”
펑.
고지훈이 마지막으로 던진 공은 아마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빨랐을 것 같았다.
고지훈은 계속된 투구에 숨이 찬지 잠시 한 템포를 쉬어갔다.
“슬라이더 5개하고 체인지업 5개 순서대로 던질게.”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고지훈은 신중하게 공을 집어 그립을 바꿔 잡고, 잠시 호흡을 고르다 힘껏 공을 던졌다.
그런데.
“윽.”
고지훈이 낮은 신음을 내며 허리를 부여잡았다.
“선배 괜찮으세요?”
나는 고지훈에게 다급하게 다가갔다.
“어, 괜찮아. 마지막에 잠깐 흔들려서 밸런스가 무너졌어.”
고지훈이 나를 보며 괜찮다고 손짓했다.
허리에 통증이 심해진 건가?
그럼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허리 괜찮으세요?”
“원래 오늘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원정 때문에 하루 미뤘더니 이러네.”
“몸 안 좋으시면 오늘은 그만 휴식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이 정도는 괜찮아. 전력으로 던질 건 아니라서.”
고지훈은 내 글러브에 있던 공을 꺼내 가져갔다.
나는 일단 어쩔 수 없이 아까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잡을 준비를 마치자 고지훈은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까보다 준비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을 던지려는 순간,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도 엿보였다.
“윽.”
고지훈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신음을 내뱉었다.
공도 역시 잡기 어려운 곳으로 날아왔다.
나는 공을 던져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지훈을 바라봤지만, 그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후우-”
심호흡을 두어 번 깊게 내뱉고는 다시 공을 던졌다.
고지훈이 왼발을 쭉 뻗으며 공을 던지기 위해 허리를 돌리려는 순간,
“아악!”
실내 연습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큰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공은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서 굴러가고 있었고, 고지훈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 넘어졌다.
“선배!”
나는 곧바로 고지훈에게 달려갔다.
“으…….”
“괜찮으세요?”
“별일 아니야. 발 디딜 때 잠깐 흔들렸던 것뿐이야.”
하지만 고지훈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 바로 의사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아니야. 어차피 내일 병원 예약돼있는데 뭐.”
고지훈은 나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냥 오늘 바로 가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찜질하면서 쉬면 돼. 평소에도 이런 적 많아.”
투수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런 적이 많다는 건 분명히 문제일 텐데.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고 쉬시죠.”
“그러긴 해야 할 것 같아.”
고지훈은 내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먼저 올라가 볼게.”
“네, 혹시 몸 안 좋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고지훈이 알겠다는 손짓을 하며 연습장을 빠져나갔다.
정말 저런 몸 상태로 경기를 소화해도 되는 건가.
김민환이 걱정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고지훈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이잉-
옆에 두었던 스마트폰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화면을 보니 이수민의 전화였다.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이 있나?
“네, 이 기자님.”
-현우 씨, YJ 에이전시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거죠?
“어떤 거 말하는 거예요?”
-소영준 선수요.
갑자기 뜬금없이 소영준이 왜 나오지?
“소영준 선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모르고 계시는구나. 지금 저희 회사 사회부 쪽에서 내일 아침에 기사가 올라갈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스포츠 선수가 사회면에 등장한다는 건 좋을 리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민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서야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듣자마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수민 씨, 혹시 기사 막아줄 수 있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가서 해결할게요.”
-그건 걱정 마세요. 이제 저도 그 정도 힘은 가지고 있거든요.
이수민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이제까지 이수민에게 도움을 줬던 것에 대한 보답을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되다니.
너무 아까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지금은 일단 당장 올라갈 기사를 막았을 뿐, 이 정도에서 끝날 만한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녀석이다.
나는 서둘러 소영준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 * *
내가 도착한 곳은 경찰서였다.
“살다 살다 내가 이런 곳도 와보네.”
나는 다급하게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로비를 지키고 있는 경찰이 보였다.
“혹시 소영준 씨 여기 와있나요?”
“어떻게 오셨죠?”
“소영준 씨 에이전트입니다.”
“아. 이쪽 방향으로 복도 끝까지 쭉 들어가 보세요.”
경찰은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들어갔다.
늦은 밤인데도 건물 전체가 환하게 불 켜져 있었다.
복도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시끌시끌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형사과’라고 적힌 글자가 보였다.
맞게 찾아왔네.
조심스럽게 형사과로 들어간 나는 어렵지 않게 소영준을 찾을 수 있었다.
소영준은 굳은 표정으로 어떤 남자와 함께 형사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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