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게으른 천재 (5)
“저 아저씨가 먼저 시비 걸었다고요!”
“뭐? 네가 먼저 나 밀쳤잖아. 아니야?”
한 남자는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소영준을 보며 외쳤다.
“자자. 이제 그만 진정하시고요. 지금부터는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형사는 지친다는 말투로 남자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남자가 겨우 자리에 앉자 형사는 다시 타이핑을 시작하며 물었다.
“그럼 먼저 소영준 씨부터 말씀해 보세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나가고 있는데 이 아저씨가 저 보자마자 시비 걸었다니까요.”
“그게 다예요?”
“그렇다니까요.”
소영준의 표정에서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타이핑을 마친 형사는 시선을 옆에 있던 남자에게로 돌렸다.
“선생님도 말씀해 보세요. 어떻게 된 건지.”
“형사님은 내가 얘 때문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는지 알아요?”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퍽퍽 때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 보세요.”
“야구를 그딴 식으로 하니까 매번 지잖아! 그거 때문에 내가 주변 친구들한테도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데.”
“네?”
남자의 말에 형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형사님은 안 그래요? 펠리컨즈 야구 볼 때마다 속 안 터져요?”
“아니, 뭐…… 그건 그렇기야 한데.”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나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주 저것들은 우리 동네의 수치야 수치!”
“근데 그게 왜 제 탓이에요?”
“네가 게임 날려 먹은 게 한두 번이야? 그놈의 실책은 도대체 안 하는 날이 없어요!”
“이 아저씨가 진짜.”
소영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야구를 못하면 몸이 부서져라 연습을 해야지, 지금 여기 와서 이러고 술 처먹고 놀고 있는 게 말이 되냐고! 이러니까 몇 년이 지나도 그 모양이지.”
“뭐라고요?”
소영준이 다시 벌떡 일어나자 또 한 번 긴장감이 높아졌다.
“일단 두 분 앉으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가중 처벌받습니다.”
다른 형사가 다가와 두 사람을 한 칸 더 떨어진 자리에 앉혔다.
“내가 해도 그거보다 잘하겠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직접 해보시든가. 아저씨가 그 몸으로 홈런 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이래, 나도 홈런 쳐봤어.”
“동네 야구 말고요.”
두 사람의 신경전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었다.
나는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하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 혹시……?”
소영준과 신경전을 벌이던 남자가 가장 먼저 나를 알아봤다.
나는 그 남자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소영준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아 몰라. 길 가다 똥 밟았어.”
소영준이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뭘 밟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소영준의 한 마디에 남자는 다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잠시만요. 제가 얘기 잘 해볼게요.”
나는 중간에 서서 감정이 격해진 남자를 겨우 막아 세웠다.
“형사님, 밖에서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와도 될까요?”
“도망가는 건 아니죠?”
“저도 그렇고 소영준도 얼굴 알려져 있는데 설마 도망가겠습니까?”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형사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알겠다는 손짓을 했다.
나는 소영준을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옆에 있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그에게 건넸다.
-의도치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다.
-남자의 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일단 마셔.”
“여기는 왜 온 거야?”
“소속 선수가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다는 데, 에이전트가 그냥 가만히 있냐?”
“별일 아니야. 그냥 저 아저씨가 이상한 거지.”
소영준은 한숨을 내쉬며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뭔 소리야.”
내 말에 소영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면 내일 아침에 기사 나갈 거야.”
“…….”
“어느 프로야구 선수가 경기 끝나자마자 클럽에 가서 술 먹고 놀다가 시민하고 시비가 붙어서 연행당했다.”
“아니 나는 피해자라니까, 아무것도 안 했다고! 저 또라이 같은 사람이 갑자기 시비 건 거지.”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팬들이 그 선수가 소영준이라는 걸 밝혀내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미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닐 테고. 이름까지 밝혀지고 나면 후속 기사 줄줄이 터져 나오는 건 말 안 해도 뻔하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피해자냐 가해자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야.”
“…….”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기저기서 말이 많이 나올 거고, 최악의 경우에는 징계도 받을 수 있어. 안 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민감한 시기니까 말이야.”
“에이씨.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소영준은 다 마신 음료 캔을 찌그러트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일단 기사 나가는 거 막아줄게, 내가.”
“네가 어떻게?”
“그 정도 능력은 있어.”
나는 입꼬리를 올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대신 나랑 한 가지 약속만 한다면.”
“약속? 무슨 약속인데?”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부터 빨리 해결하고 알려줄게.”
나는 소영준과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소영준이 다시 자리에 앉는 동안에도 남자와의 신경전은 눈빛으로 계속됐다.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뭐야……?”
남자는 나의 행동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야구를 보시면서 불쾌한 기분을 느끼셨다면 변명의 여지 없이 저희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선생님 같은 팬이 계신 덕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을 위한 경기를 보여줘야 하는 게 저희의 의무죠.”
“그, 그게. 내가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야. 누구보다 펠리컨즈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
“그럼요.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흐음…….”
“앞으로는 야구 보시면서 즐겁고 감동받으실 수 있도록 제가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할 건데.”
“야구 좋아하시면 저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요. 저 강현웁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오석훈, 박성주 선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시죠? 거기에 더블즈 최정환도 있고요.”
“그럼 쟤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저 친구라고 못 할 이유가 있을까요? 한번 지켜봐 주시죠.”
나는 남자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나와 소영준은 경찰서를 나와 근처에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대화할 만한 곳이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아까 그 약속이라는 게 뭔데?”
“특별한 건 아니야.”
나는 들고 온 서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건 또 뭐야?”
“훈련 프로그램. 이제부터 이 스케줄로 훈련하면 돼.”
“누가 만든 건데.”
“우리 에이전시에 전문가들 많아.”
소영준은 얼굴을 찌푸리며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그러더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보였다.
“이게 지금 말이 돼? 고등학교 때나 하던 프로그램 아냐?”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만큼 적어둔 것뿐이야.”
“에이, 나 못 해.”
“그럼 지금이라도 기사 내보내라고 할까?”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소속 선수한테 도움 되는 일이라면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지.”
나의 단호한 한마디에 소영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스케줄 표를 다시 집어 들었다.
“하……. 근데 경기 끝난 뒤에 하는 훈련이 이렇게 많아?”
“당연히 경기 끝나고도 해야지.”
“이러면…… 나는 언제 쉬어?”
소영준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전에는 푹 자. 일찍 일어나라고는 안 할 테니까.”
“아니, 밤에 좀 놀기도 하고 해야지. 사람이 어떻게 훈련만 하고 살아.”
“아, 클럽을 가시겠다?”
“쉴 땐 쉬면서 해야지.”
“당분간 클럽은 금지.”
“야!”
“대신 실책 없이 10경기 소화하면 한 번씩 가는 거 어때?”
“음…….”
소영준은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나의 제안이 실현 가능한지 계산하는 듯했다.
“근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네. 내가 하고 싶어도 이 스케줄대로는 훈련할 수가 없어.”
“뭐가 문젠데?”
“연습장을 나 혼자 쓸 수는 없잖아. 구단 선수들이 다 같이 돌아가면서 써야 하는데, 나 혼자 어떻게 이렇게 많은 훈련을 할 수 있겠어?”
소영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 그런 문제가 있구나.”
“이런 고민도 안 하고 말한 거야? 실현 가능한 얘기를 해야지.”
불가능한 이유를 찾은 게 뿌듯한지 소영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근데 걱정 마.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어떻게 바로 해결할 건데? 구단에 얘기해도 이건 어려워.”
“아직 안 와 봤구나? 우리 에이전시 훈련장 잘돼 있어. 거기서 하면 되지.”
“에이전시 훈련장……?”
소영준의 얼굴빛이 급격하게 흙빛으로 바뀌었다.
“주소 보내줄 테니까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 이번에는 시간 절대 늦으면 안 된다.”
* * *
다음 날 아침.
다행히 소영준은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단둘이 숙소 야외 훈련장에서 내야 펑고를 시작했다.
나는 공이 가득 담긴 박스 세 개를 가져왔다.
공을 하나씩 집어서 소영준이 서있는 곳으로 날려 보냈다.
딱.
“스텝을 그렇게 크게 밟으면 어떻게 잡겠다는 거야?”
딱.
“잡는 타이밍이 너무 늦어. 앞으로 더 달려 나와야지.”
딱.
“어디로 던지는 거야! 마지막 송구까지 정확하게 해야지!”
체력이 떨어질수록 터무니없는 실책도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커졌다.
어느덧 소영준이 입고 있던 유니폼이 온통 흙먼지로 뒤덮였다.
펑고를 치는 내 손도 점점 아파 왔다.
대신 그만큼 노하우가 생기는지, 훈련하기 좋은 코스로 공을 날려 보낼 수 있었다.
몸을 날리지 않으면 잡을 수 없을 어려운 코스로도 문제없었다.
박스에 있는 공을 모두 비워내고 나자 소영준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헉. 헉. 이제 끝났지?”
“어, 오늘은 여기까지.”
소영준이 바닥에 드러눕더니 깊은숨을 쉼 없이 내뱉었다.
“몸 식기 전에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가다니? 방금 끝났다고 했잖아?”
“수비 훈련은 여기까지로 끝난 거고, 이제 타격 훈련해야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수비는 수비고, 타격은 타격이지.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빨리 일어나.”
“나 완전히 지친 거 안 보여? 여기서 어떻게 타격 훈련을 해.”
“그럼 앞으로 지친 날에는 감독님한테 경기 못 뛰겠다고 할 거야?”
“지금 그거랑 같냐?”
“다를 건 뭔데?”
나는 소영준의 팔을 잡아당기며 일으켜 세웠다.
소영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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