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2
82화>
게으른 천재 (6)
여태껏 포스트시즌이 아닌 경기를 이렇게 긴장하면서 본 적은 없었다.
나의 관전 포인트는 딱 하나였다.
과연 오늘은 소영준이 실책 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수비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으니 이번만큼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작으면서도 큰 기대였다.
오늘은 펠리컨즈와 호크스의 맞대결이었다.
펠리컨즈의 팀 상황이 좋지 않지만, 호크스도 못지않게 흔들리는 상황이라 나름 팽팽한 승부가 예상됐다.
-오늘 맞대결을 펼칠 펠리컨즈와 호크스는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연패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두 팀 모두 공격과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팀 분위기를 확실하게 뒤바꿀 만한 계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패 중인 두 팀의 맞대결이니 어느 한 팀은 연패를 끊어낼 수 있게 될 텐데요. 과연 어느 팀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지만. 소영준에게는 다른 어떤 날보다 힘든 날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몇 배는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한 탓이었다.
고등학생 때도 이 정도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가서 수비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
워밍업을 하는 동안에는 다리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분까지 들었다.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마치고 힘겹게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나 8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플레이 볼!”
잠시 후, 펠리컨즈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펠리컨즈의 1회 초 공격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으며 소영준까지 타석에 들어설 기회는 오지 않았다.
득점 없이 공격이 끝나고 1회 말로 넘어가자 소영준은 글러브를 챙겨 수비 위치로 향했다.
투수와 타자가 사인을 주고받기 시작하자 소영준도 오른손에 송진 가루를 충분히 묻히고 준비했다.
‘후-‘
투수가 던질 구종에 따라 날아오는 공을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속도와 방향으로 날아올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투수의 의도와는 다르게 실투를 던진다면 공이 예상하지 못한 코스로 날아올 수도 있었다.
때문에 투수가 공을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고도의 집중을 해야만 했다.
띡!
공이 배트에 맞자마자 몸을 날릴 준비를 했는데,
‘뜬공이네.’
타구는 높게 떠오르며 2루수가 서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무난하게 아웃됐다.
‘이런 공은 얼마든지 날아와도 별거 아니지.’
승부는 계속되었다.
띡!
이번 타구는 바닥에 여러 번 튀며 2루 베이스 방향으로 빠르게 굴러왔다.
소영준이 잡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소영준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공이 지나갈 코스로 향하고 있었다.
-빗맞은 땅볼인데요. 코스가 좋습니다. 유격수가 잡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오! 소영준 선수가 빠른 스텝으로 쫓아가서 잡아냈어요.
‘마무리까지 정확하게!’
소영준은 글러브에 들어있는 공을 재빠르게 꺼내서 1루수 미트를 보며 힘껏 던졌다.
“아웃!”
1루심이 주먹을 앞으로 뻗으며 아웃을 선언했다.
-이야! 소영준 선수의 그림 같은 호수비가 나왔습니다.
-땅볼이긴 했지만 코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충분히 내야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하지만 소영준 선수가 이걸 쫓아가서 잡아내네요.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공이 배트에 맞자마자 소영준 선수가 첫 스텝을 잘 끊었어요.
-거기에 글러브에서 빠르게 공을 빼고서는 1루로 정확한 송구까지. 군더더기 없는 수비였습니다.
“와아아아-”
펠리컨즈 팬들은 호수비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이닝이 마무리되자 펠리컨즈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펠리컨즈 선발 투수가 소영준을 향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영준아 고맙다.”
소영준은 투수와 글러브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더그아웃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소영준 파이팅!”
가까운 곳에 있던 팬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진 2회 초.
앞선 펠리컨즈 선수들이 안타를 때려내면서 소영준의 타순이 돌아왔다.
2 아웃에 주자는 1, 2루.
득점권 찬스였다.
-8번 타자 소영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벌써 좋은 수비를 하나 보여줬는데요, 타석에서는 어떨까요.
-현재까지 팀 내 홈런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타율은 0.230으로 높지 않습니다. 득점권에서 타율도 그리 높지 않고요. 투수 입장에서는 소영준 선수와 적극적으로 승부를 하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소영준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강현우와의 훈련에서 중점을 두었던 건 수비였지만, 타격 훈련량도 만만치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기계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공을 보며 얼마나 배트를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대신에 다양한 구속에 변화구까지 상대하다 보니 감각이 달라지는 기분은 있었다.
“소영준 홈런! 소영준 홈런!”
펠리컨즈 팬들은 시원한 홈런을 기대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팬들의 기대에 맞춰 큰 스윙으로 홈런을 노렸을 텐데.
하지만, 훈련하는 내내 강현우가 지겨울 정도로 반복했던 말이 있었다.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해라.’
강현우는 타격 훈련을 하면서도 그냥 스윙을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을 하게 했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아웃 카운트에 따른 상황 그리고 감독의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까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기초 상식과 같은 내용이었는데도, 강현우는 세뇌에 가깝게 반복했다.
그렇다면 지금 팀에 가장 필요한 타격은 무엇일까.
스코어는 0:0.
홈런을 쳐서 3점을 낸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확률이 높지 않다.
선취점을 확실하게 뽑아내서 리드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팀과 선발 투수를 위해 좋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투 아웃 상황이기 때문에 안타 하나에도 1루 주자까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여기서는 밀어서 오른쪽으로 안타를 쳐내자.’
생각을 정리한 소영준은 타석에 서서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투수가 공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소영준도 배트를 힘껏 쥐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펑!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곳으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였다.
너무 좋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이라 휘두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건 맞았어도 파울이었을 거야.’
소영준은 다시 타격 자세를 취했다.
준비를 마친 투수가 다시 공을 던지는데,
펑!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스트라이크였다.
‘후……. 이런 공을 던지면 어떻게 치라는 거야.’
바깥쪽 공에 이어 몸쪽 공까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공이었다.
0 볼 2 스트라이크.
완벽하게 타자가 불리한 카운트였다.
‘천천히 하자. 할 수 있다.’
소영준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다시 타석에 섰다.
-투수가 정말 좋은 공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아무래도 타자가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죠. 이럴 때일수록 유인구에 속지 않으려면 스트라이크 존을 좁게 보고 타격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헛스윙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투수는 포수의 사인을 보더니 여러 차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 번째 사인 만에 고개를 끄덕이며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구가 될지도 모를 공을 던졌다.
‘어, 설마?’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를 던지려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공이 생각보다 가운데로 날아오고 있었다.
소영준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몸은 스윙을 시작했다.
딱!
“와아아아아!”
“달려 달려!”
타구가 맞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펠리컨즈 주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제대로 밀어쳤습니다!
-주자들이 다 들어올 수 있겠는데요?
-2루 주자와 1루에 있던 주자까지 편안하게 홈 베이스를 밟습니다. 그리고 소영준 선수는 2루 베이스까지 안전하게 도착합니다.
-소영준의 2타점 적시 2루타로 펠리컨즈가 앞서 나갑니다!
“소영준! 소영준! 소영준!”
벌떡 일어나 응원 막대를 신나게 흔들어대는 펠리컨즈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나이스!”
소영준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를 힘들이지 않고 결대로 밀어쳤어요.
-소영준 선수가 평소에는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많이 했는데요. 이번에는 가볍게 밀어치는 타격을 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펠리컨즈가 2:0으로 앞서나간 이후로도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5회 말이 끝난 시점에는 5:3으로 팽팽하게 이어지다가, 7회 말에는 호크스의 실책을 틈타 펠리컨즈가 대량 득점에 성공하며 12:6까지 스코어가 벌어졌다.
그렇게 무난하게 승리를 거둬가는가 싶었는데, 8회 말과 9회 말에는 호크스의 공격이 거셌다.
-펠리컨즈 불펜이 오늘도 어김없이 흔들리네요. 선발 투수가 내려간 이후로 리드는 지키고 있습니다만,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끝낸 이닝이 없어요.
-아……. 말씀드리는 사이에 이번에도 볼넷이네요.
9회 말. 안타과 볼넷이 이어졌다.
스코어는 12:10.
아직 아웃카운트를 하나밖에 잡지 못한 상황에서 주자는 다시 만루였다.
-결국 볼넷으로 만루를 허용합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펠리컨즈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펠리컨즈 팬들은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웃지 못했다.
그사이 호크스의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주자가 가득 찬 상황이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과감하게 승부해야 해요.
펠리컨즈의 마무리 투수는 긴장된 표정으로 투구를 준비했다.
이를 보고 있던 수비수들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공이 투수의 손을 벗어나자,
호크스 타자의 배트가 과감하게 돌아갔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은 빠른 속도로 뻗어갔다.
호크스 주자들은 전력을 다해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와! 소영준 선수가 몸을 날리면서 팔을 쭉 뻗어 잡아냅니다. 바운드되기 전에 잡았어요!
-주자들은 다시 원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해요!
주자들이 다급하게 방향을 돌려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많은 거리를 달리고 난 뒤였다.
소영준은 여유 있게 일어나 2루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아웃!”
-경기 종료! 9회에 펠리컨즈가 병살타를 이끌어내며 지긋지긋한 연패를 끊어냅니다!
-오늘 소영준 선수의 호수비가 빛나는 경기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소영준과 펠리컨즈 선수들은 한국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 것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필승불패 무적 펠리컨즈!”
“영원토록 사랑한다 최강 펠리컨즈!”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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