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다시 만난 인연 (1)
“샷 추가도 해달라고 했는데. 어때 괜찮아?”
나는 김민환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역시 회사 앞 커피숍 커피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김민환은 만족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근데 말이야…….”
방금까지 미소를 보이던 김민환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네……?”
갑자기 쎄한 기분은 뭐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현우 씨는 혹시 무슨 초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켁. 켁. 켁.
하마터면 입에 머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거지?”
김민환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오석훈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소영준까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특히나 소영준은 나도 그렇지만 대표님까지도 손 놓게 만든 선수였는데. 그리고 그것 말고도 선수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뤄주고 있잖아.”
“제가 그랬나요?”
“도대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뭐가 있기는요……. 세상에 초능력 같은 게 어딨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럼 어떻게 한 건데?”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다 선수들이 한 거지.”
“무슨 말이야?”
끈질기게 묻는 걸 보니 궁금증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석훈이나 박성주, 소영준은 원래 잘하는 선수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야구를 잘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게 있겠어요? 저는 그냥 그 선수들한테 필요한 작은 변화를 만들어 줬을 뿐이죠.”
“음……. 정말 그게 다야?”
원하는 수준의 답이 아니었는지 김민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그런 초능력을 진짜 가지고 있었으면 저도 현역 때 야구 잘했어야죠.”
“……하긴 그것도 그러네.”
김민환은 이제야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공세를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 장수영은? 장수영이 원하는 트레이드도 성사시켰잖아. 정말 짧은 시간 만에.”
“그거야 그냥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트레이드라는 게 수많은 상황이 딱 맞아야 하는 거잖아요.”
“허……. 그게 그냥 운이라고?”
“초능력이 필요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요. 트레이드라는 걸 제가 최초로 성사시킨 것도 아닌데요.”
물론 정보창 덕분에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었긴 했지만.
“그 말도…… 듣고 보니 일리는 있네.”
의문이 남기는 해도 이제 더 이상 반박할 만한 부분은 없는지, 김민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소영준은 그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이제까지는 왜 그랬던 거야?”
“아무래도 팀 분위기라는 것도 무시하기는 어렵겠죠.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훈련하는 분위기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긴 펠리컨즈 감독이 그렇게 여러 번 바뀌어도 하위권 탈출이 어려운 거 보면 그렇긴 한가 봐.”
“그러게요.”
펠리컨즈가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시즌이 언제였는지는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 어디 다녀와야 한다고 했지?”
잠시 반차를 쓰고 다녀올 곳이 있었다.
“이따가 미국에서 친구가 오기로 해서요.”
“미국에 친구가 있었어?”
김민환이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럼요.”
“남자야 여자야?”
김민환이 나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누구일 거 같으신데요?”
“보나 마나 남자겠지.”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김민환이 한숨을 내뱉었다.
“아휴. 핸드폰에 여자 번호가 있기는 해?”
“당연히 있죠.”
“누구?”
김민환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임 대표님 계시잖아요.”
“됐다. 말한 내가 죄인이지.”
“그러는 팀장님은 있어요?”
“그럼.”
“누구요?”
“우리 와이프 있잖아.”
“팀장님 결혼했어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오자 내 눈이 한껏 커졌다.
“그럼, 아들도 있는데?”
“네?”
결혼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아들까지 있다고?
“응.”
김민환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내 반응에 놀란 기색이었다.
“이제까지 왜 얘기 안 했어요?”
“현우 씨가 안 물어봤잖아?”
“와……. 너무 당황스럽네.”
최근 몇 년 사이에 들은 말 중에서 나를 가장 깜짝 놀라게 한 말이었다.
* * *
나는 직접 차를 몰아 인천 공항까지 갔다.
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늦지 않게 잘 도착했다.
비행기도 문제없이 거의 제시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입국 게이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더니 걸어 나오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주혁 씨!”
나는 이주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이주혁에게 다가갔다.
이주혁도 나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얼마 전 스프링캠프 때 미국에서 만난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이주혁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캐리어를 밀며 다가왔다.
“먼 길 왔는데 당연히 나와야죠.”
“감사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트라이아웃을 위해 훈련한 시간이 후회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테스트를 앞두고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된다.
이주혁은 얼마 뒤에 있을 트라이아웃 테스트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이제까지 성실하게 연습을 해온 선수라 지난 몇 달 동안에도 열심히 했을 거라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캐리어 주세요. 제가 밀게요.”
“괜찮아요. 가벼워서요.”
“어서 주세요.”
나는 이주혁이 끌고 있던 캐리어를 대신 집었다.
그러고는 함께 차가 세워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국에서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그럼 완전히 정리하고 온 거예요? 졸업도 하고?”
“네. 이제 졸업도 했고 필요한 것도 다 정리하고 왔어요.”
“고생 많았어요.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대학 다니면서 졸업하는 것도 대단해요. 저라면 못했을 텐데.”
“별말씀을요.”
이주혁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숙소 가면 며칠 동안 재밌을 거예요. 석훈이랑 성주도 착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근데 제가 에이전시 숙소에서 지내도 괜찮을까요?”
트라이아웃 준비를 제대로 도와주려면 가까이에서 지내는 게 아무래도 좋았다.
“몇 년째 우리 에이전시랑 같이 일하기도 한 사람인데, 설마 며칠 머무르는 걸로 뭐라고 하겠어요?”
“그렇다면 저야 감사하기는 한데…….”
“사실 에이전시에도 이미 허락받아 놨어요.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준비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얻어봅시다.”
나는 숙소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 * *
“우와!”
이주혁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시설 좋죠?”
“진짜 좋네요. 훈련 시설까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야외 말고도 지하에도 있어요.”
“지하도요?”
이주혁의 입은 떡 벌어진 채로 닫힐 줄을 몰랐다.
“어서 들어가요.”
나는 캐리어를 밀며 숙소로 걸어갔다.
띠리릭.
현관에 신발들이 놓여 있는 걸 보니 다들 숙소에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이 휴식일이라 아마 다들 쉬고 있을 거예요.”
“진짜 긴장돼요. TV에서만 보던 선수들하고 직접 지낸다는 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불러올게요.”
나는 1층과 2층을 돌아다니며 두 사람을 불렀다.
고지훈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방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2층에서 내려오던 박성주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이주혁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근데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박성주가 이주혁을 이리저리 보며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스프링캠프 때 봤을 거야. 그때 나랑 같이 다녔거든.”
“아, 맞다! 이제 생각났네. 반가워요.”
내 말을 듣고 기억을 되살린 박성주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톤이 한껏 높아졌다.
“두 사람 중에 누가 형이지?”
“제가 기억하기로는 동갑일 거예요.”
이주혁이 나를 보며 답했다.
“정말 우리 친구예요? 그럼 친구인데 말 편하게 해도 되죠?”
“그럼요. 우리 편하게 해요.”
“석훈이도 저랑 동갑이에요. 우리 셋이 다 친구네.”
박성주는 새 친구가 생겨 즐거운지 이주혁과 어깨동무를 하며 밝게 웃었다.
그사이 오석훈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석훈아, 빨리 와봐.”
박성주가 손짓하며 오석훈을 불렀다.
“무슨 일인데?”
“여기 이분 누군지 기억나지?”
“어? 어디서 만나긴 한 거 같은데?”
오석훈도 이주혁을 보며 긴가민가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스프링캠프 갔을 때, 현우 형 옆에서 통역해 주시던 분.”
“아, 기억났다! 안녕하세요, 오석훈이라고 합니다.”
“근데 우리랑 동갑이야. 말 편하게 하기로 했어.”
“정말요? 반가워요.”
오석훈도 이주혁과 악수를 나누었다.
“집 구하는 며칠 동안 여기서 지내게 하고 싶은데. 혹시 불편하지는 않지?”
“당연하죠. 친구 하나 더 생긴다는데 싫을 리가 있겠어요.”
내 말을 끝나자마자 박성주가 신났다는 건 감추지 않으며 답했다.
“저도 좋아요.”
오석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지훈 선배도 계신데, 지금은 잠시 어디 가신 거 같아서 들어오면 인사 시켜 줄게요.”
“네.”
이주혁이 실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띠리리링.
어디선가 스마트폰 알람이 들려왔다.
“아……. 훈련 시간이다.”
소리를 듣자마자 박성주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을 리가 있나……. 시계가 잘못된 거 같은데?”
오석훈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마 스마트폰 시계가 잘못될 리가 있겠어?”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저희는 이제 내려가 봐야겠네요.”
“그래. 나도 짐 옮기는 것만 도와주고 내려갈게.”
나는 이주혁의 짐 하나를 들어 올렸다.
“같이 옮겨야죠.”
말이 끝나자마자 오석훈과 박성주도 짐을 하나씩 들고 옮겼다.
순식간에 방 안이 짐으로 가득해졌다.
“주혁 씨, 그럼 편하게 정리하고 저녁 식사할 때 만나요.”
“혹시 저도 훈련하는 모습 봐도 될까요?”
이주혁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거리 오느라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요?”
“비행기에서 충분히 자서 괜찮아요.”
“그럼 같이 갑시다.”
내가 나가자는 손짓을 하자 이주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우리 네 사람은 함께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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