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다시 만난 인연 (2)
위이잉-
탕!
위이잉-
탕!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이 오석훈의 배트에 맞을 때마다 타격 소리가 실내 연습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한참 시즌 중인 데다 최근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타구의 질이 훌륭했다.
“우와! 역시 프로는 확실히 다르네요.”
내 옆에서 지켜보던 이주혁은 감탄사를 내뱉느라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석훈이는 기본기가 탄탄한 편이에요. 확실히 자세가 안정적이긴 하죠.”
“제가 프로 타자하고 승부를 할 수 있을까요?”
이주혁의 얼굴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여기 두 명은 리그에서도 최고 타자들이잖아요. 당장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그렇겠죠?”
“그럼요. 그리고 구속이나 구위가 실력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자신감 가져도 돼요.”
나는 이주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실어줬다.
위이잉-
탕!
“끝!”
마지막 스윙까지 마친 오석훈이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오늘도 타구 질이 좋은데?”
“요즘 공이 잘 보이긴 해요.”
“고생 많았어.”
오석훈이 나가자마자 교대하듯 박성주가 배트를 들고 들어왔다.
“이제 제 차롑니다.”
가볍게 배트를 몇 번 휘두르며 몸을 풀고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위이잉-
탕!
위이잉-
탕!
박성주도 시원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역시 맞춰나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나는 박성주가 타격하는 모습까지 보고 이주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혹시 괜찮으면 공 몇 개 던져볼래요?”
“아…… 그럼요! 방에서 글러브 가져올게요!”
이주혁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올라갔다.
글러브를 가지고 내려온 이주혁은 나와 가볍게 캐치볼을 몇 번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나는 글러브를 내려놓고 이주혁의 투구를 보기 위해 그의 옆에 섰다.
“패스트볼부터 던져볼게요.”
나는 이주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혁은 투구할 자세를 잡고서 깊은 호흡을 몇 번 내쉬었다.
준비를 마치고는 벽에 걸려 있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힘껏 던졌다.
펑!
엉덩이를 쭉 밀고 나가면서 체중을 이동하는 것부터 스트라이드에 팔로스루까지 이전보다 부드럽게 이어졌다.
“오, 지난번에 말했던 부분은 훨씬 좋아졌네요?”
지난 스프링캠프 때는 공을 던지면서 왼손을 뒤로 빼는 듯한 동작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바꿔보려고 열심히 하긴 했어요.”
“대단한데요.”
“별말씀을요.”
이주혁은 내 칭찬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공을 공을 하나 더 집어 들며 이주혁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변화구 한번 던져볼래요?”
“네.”
나는 공의 궤적을 보기 위해 이주혁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이주혁은 잠시 준비를 하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펑!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보니 슬라이더를 던진 것 같았다.
아주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펑!
펑!
이어서 체인지업과 커브를 던졌다.
음…….
두 구종은 아직 실전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포심하고 슬라이더 위주로 연습해 볼까요?”
“체인지업이랑 커브는 많이 부족할까요?”
이주혁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체인지업의 핵심은 패스트볼과 똑같은 투구 폼과 팔 스윙으로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패스트볼의 느린 버전이 되면서 타자들이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좋은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던지기 어려운 공이었다.
“커브는 보여주는 공으로 사용할 수 있긴 하겠는데, 지금 체인지업으로 승부하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러 구종을 던진다는 게 쉬운 건 아닌가 봐요. 연습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주혁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짙게 내려앉았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패스트볼이랑 슬라이더만 제대로 던질 수 있어도 경쟁력은 충분할 거예요.”
“네, 말씀해 주시는 대로 연습해 봐야죠.”
“요즘 구속은 얼마나 나오고 있어요?”
“제가 구속은 재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요? 그럼 일단 구속부터 재 봐야겠네.”
나는 구석에서 스피드건을 가져왔다.
“다시 던져볼래요?”
“패스트볼부터 던질까요?”
“열 개 정도 이어서 던져봐요. 평균으로 계산해 볼게요.”
“네.”
“스피드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너무 오버페이스 하지 말고요. 30구 이상 던지는 상황이라고 상상하면서 던져보세요.”
이주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펑.
133km/h.
펑.
135km/h.
펑.
138km/h.
공을 하나둘씩 던져갈수록 몸이 풀리는지 구속이 높아졌다.
대략 평균 구속은 135km/h, 최고 구속은 142km/h까지 나왔다.
국내 프로 투수들 평균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빠르면 물론 좋긴 하지만, 구속이 투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결정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며칠 훈련한다고 해서 당장 구속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니, 지금 가지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잡아가면서 해볼까요?”
이주혁은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훈련을 하게 됐다.
투구 훈련이 끝나고 나서도 밸런스를 위한 하체 훈련과 함께 유연성 훈련까지 소화했다.
먼 길을 온 첫날부터 만만치 않은 훈련 일정이었을 텐데도 이주혁은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나는 이주혁과 함께 버팔로즈 경기를 보러 왔다.
“와아아아-”
“오오오. 승리를 위하여. 버팔로즈 파이팅!”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응원가는 언제 들어도 짜릿했다.
“한국에서 경기 보러 온 것도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주혁이 감회가 새로운지 경기장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얼마 만에 온 거예요?”
“미국으로 대학 가고 나서부터는 못 왔으니까 못해도 5년은 넘은 것 같아요.”
“한국 선수들은 많이 알아요?”
“그동안에도 종종 경기를 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모르는 선수들이 더 많을 거예요.”
“미국 메이저리그랑 비교하면 선수들의 피지컬은 부족할지 몰라도 충분히 재밌을 거예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경기가 시작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주혁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노트와 펜을 꺼냈다.
흘끗 보니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특별한 건 아니고요. 그냥 경기 보면서 투수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몇 가지 적어본 거예요.”
“잠깐 봐도 돼요?”
“그럼요.”
이주혁은 선뜻 나에게 노트를 건넸다.
나는 노트를 한 장씩 넘겨봤다.
투수별로 투구 폼과 구종의 특징과 강점 약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그 투수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도 기록돼있었다.
게다가 타자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배트를 잡는 그립의 위치가 어떤지, 배트를 길게 잡는지 짧게 잡는지,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서는지 멀리 서는지, 스탠스가 넓은지 좁은지 등등 타자의 특징에 따라서 어떻게 승부를 가져가야 할지 정리되어 있었다.
경기 기록지로 보이는 페이지부터는 투수가 승부해가는 과정과 결과도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것도 다 기록해서 가지고 있네요?”
“각 팀에서도 잘한다는 투수들은 타자 유형이나 상황별로 어떻게 승부를 해나가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기록한 게 맞나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이걸 다 혼자 만든 거예요?”
“다들 영업 비밀이라 공개를 안 하길래요. 그래서 자료나 선수들 인터뷰 찾아보면서 만들어봤어요.”
“대단하네요.”
새삼 이주혁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타고나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이렇게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더라고요.”
“잘될 수 있을 거예요.”
나와 이주혁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경기가 시작됐다.
오늘 유니콘즈의 선발 투수는 팀 내 2선발로 꼽히는 용병 투수로. 이번 시즌 처음으로 한국 무대를 밟은 선수였다.
아직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만 보면 충분히 팀의 중심 투수로 꼽힐 만했다.
펑!
펑!
역시나 시작부터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와, 타자들이 저 투수한테서 안타를 칠 수는 있을까요?”
“힘이 너무 좋아서 초반에는 공략하기가 어렵겠어요.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나야 그나마 노려볼만하겠는데요.”
버팔로즈 타자들이 배트를 휘둘러봐도 제대로 공에 맞추기가 어려워 보였다.
처음 보는 투수라 낯선 데다 투수의 구속과 구위가 너무 좋았다.
띡.
앞선 두 타자는 물론이고 세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오석훈도 마찬가지로 뜬공으로 물러났다.
“구속이 좋은 투수들은 정말 부러워요. 일단 절반은 이기고 가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투수들의 구속은 타고나는 것이 더 많았다.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기는 했지만, 슬프게도 그 한계는 명확했다.
“저도 조금만 더 타고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이주혁이 말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닝이 바뀌고 다시 버팔로즈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다가가는 선수는 4번 타자 박성주였다.
“성주는 여기서 봐도 체격이 크네요.”
“파워 하나만큼은 당장 메이저리그 데려다 놔도 안 밀릴 거예요.”
“웨이트 할 때 보니까 살벌하더라고요.”
“날려보내는 타구도 얼마나 무서운데요.”
박성주가 타석에 들어서자 팬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박성주 홈런! 박성주 홈런!”
연속 안타를 때려내기 어려운 투수에게는 한 방으로 점수를 뽑아내는 게 오히려 가능성 높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 투수는 국내 리그에서 뛴 세 경기에서 아직 단 한 개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다.
사인 교환을 마친 투수는 다리를 들어 올리며 힘껏 공을 던졌다.
따악!
박성주의 배트는 공을 때려낸 이후에도 힘껏 돌아가고 있었다.
“어?”
“넘어가는 거 같은데요?”
나와 이주혁을 포함해서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날아가는 공을 향했다.
타구는 결국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홈런!”
“와아아아아-”
내가 홈런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날아가는 타구를 지켜보던 박성주는 3루심의 홈런 시그널을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내야를 돌았다.
그리고 뜨거운 환호를 보내는 팬들에 화답하듯이 들고 있던 배트를 멀리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아아아- 박성주! 박성주! 박성주!”
박성주의 세리머니에 버팔로즈 팬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경기장의 모두가 이 순간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박성주가 두 손을 벌리며 하늘 높이 내던진 배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얼굴이 붉어진 투수가 1루 베이스를 지나 2루로 향하는 박성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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