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마지노선 (1)
임예지와 고지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음…….”
임예지는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료를 받고 나서도 변화가 없다는 말인가요?”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확실히 줄어든 것 같은데요.”
고지훈이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공을 던질 때는 어떤가요?”
“병원에 다녀오는 날만 괜찮고, 그 이외에는 훈련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렵네요.”
“그렇군요…….”
임예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혹시 지금 다니는 병원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볼 수 있을까요?”
“다른 병원으로요?”
“변화를 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지금 진료 봐주시는 교수님이 국내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의사이긴 하세요.”
“그거야 잘 알고 있기는 한데…… 계속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경기 소화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고지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럼 우선 제가 교수님과 직접 이야기 나눠볼게요. 그래도 몇 년 동안 고지훈 선수를 봐왔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 나서도 변화가 없으면 그때 다른 곳으로 옮겨보죠.”
“음…….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요?”
고지훈은 답변이 탐탁지 않은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빛을 확인한 임예지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숙소 생활은 괜찮나요?”
“네, 만족스럽습니다.”
“불편한 점은 없나요?”
“딱히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훈련 시설도 잘되어 있고, 식사도 좋고, 자는 것도 편하고 다른 선수들이 착하기도 하고요.”
고지훈이 숙소에서 보냈던 순간을 되살리며 말했다.
“요즘 집에는 자주 가고 있나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갔는데, 요즘은 격주로 한 번씩만 가고 있습니다.”
“딸이 많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와이프 얘기 들어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요즘에는 제가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네요.”
고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도 여러모로 힘든 건 사실이긴 하지만 올해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해봐야죠. 중요한 시기니까요.”
“그래요. 올해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저도 최대한 좋은 방법을 찾아볼게요.”
임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내일이 선발 등판이죠?”
“네.”
“내일 우리 선수들하고 맞대결 기대되는데요? 오석훈, 박성주 선수랑 1군에서 상대하는 건 오랜만이죠?”
임예지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라서요.”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스럽네요.”
“두 선수도 워낙 좋은 타자들이라 저도 최선을 다해서 승부해봐야죠.”
고지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훈련 시간이 다 돼서 이제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병원 문제는 내일 선발 등판 마치고 다시 이야기 나눠요.”
“네, 알겠습니다.”
고지훈은 짧은 답변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예지도 미소를 지으며 고지훈을 배웅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럼 오늘 컨디션 조절 잘해서 내일도 좋은 경기 보여주세요.”
“네.”
고지훈은 짤막한 답변을 남기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임예지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 번 울리고 난 뒤에 통화가 시작됐다.
-임 대표, 오랜만이야.
“교수님, 통화 괜찮으시죠?”
-그럼. 바쁘더라도 임 대표 통화가 우선이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고지훈 선수 지금 몸 상태가 어떤가요?”
-아, 지훈이……?
잠시 적막이 흘렀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지금 지훈이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아. 허리 쪽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쉬지도 않고 계속 등판을 하니 괜찮아질 틈이 없지.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고지훈 선수 말로는 점점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요.”
-음,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어제 얘기를 나누기는 했는데 말이야.
“…….”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야. 이것 이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지금으로서는 몇 달 쉬면서 치료를 받는 게 최선이야. 그편이 가장 확실하면서도 빠른 방법이기도 할 테고.
“당장 몇 달 쉬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음……. 글쎄. 그거 말고 다른 방법들은 전부 임시방편 수준이라서 말이야. 잠깐 유지하는 정도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증이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이번 시즌만이라도 소화할 수 있게 만들어줄 방법은 없을까요?”
임예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나는 이주혁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지하 훈련장에서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워밍업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스트레칭을 먼저 진행했다.
본격적인 피칭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주혁의 운동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럼 이제 피칭으로 넘어가 보죠.”
“네.”
이주혁이 거친 숨을 내쉬며 답했다.
“힘들면 잠깐 쉬었다 할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 곧 나가야 하잖아요.”
몸이 힘들 법도 했지만 글러브를 집어 드는 이주혁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지난번에도 보니까 변화구는 확실히 슬라이더가 제일 괜찮은 거 같더라고요. 슬라이더 위주로 연습해 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른 구종들도 같이 연습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트라이아웃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게 아니라서 당장 수준급으로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당장은 패스트볼이랑 슬라이더만으로도 충분하기도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조언해 주신 대로 해야죠.”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그럼 패스트볼부터 가볍게 던져보세요.”
나는 이주혁에게 들고 있던 공을 건넸다.
이주혁은 공을 건네받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투구할 준비를 했다.
“후-”
깊은 심호흡과 함께 힘껏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던졌다.
펑.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났다.
“다시 던져볼게요. 힘을 최대한 빼려고 해보세요.”
“네.”
나는 이주혁에게 공 하나를 더 건넸다.
“최대한 편하게 호흡하면서.”
“후- 후-”
편하게 하라는 말이 오히려 더 부담됐는지 이주혁의 호흡은 아까보다 더 거칠어졌다.
“천천히 해요. 괜찮아요.”
나는 두 손을 아래로 천천히 내렸다 올리며 진정시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주혁은 몇 번 더 호흡을 내쉬고 나서야 공을 던졌다.
펑.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이전보다는 가까운 코스로 들어갔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오늘 좀 긴장했나 봐요.”
이주혁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그날도 마운드 올라가면 많이 떨릴 거예요. 그래도 최대한 평정심 유지하면서 던질 수 있도록, 공 하나 던질 때마다 머릿속으로 잘 던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던지기 전에 어깨 회전 먼저 교정해 볼게요.”
“어깨 회전이요?”
예상하지 못한 훈련이었는지 이주혁의 표정에서 궁금증이 번져갔다.
“트라이아웃 같은 테스트에서 투수를 볼 때는 아무래도 구속을 먼저 보게 되거든요.”
“아……. 그렇긴 하겠죠.”
“당장 150km/h를 던지는 투수가 될 수는 없어도, 지금보다 2, 3km/h라도 더 올려보는 게 아무래도 더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구속을 그 정도로 올리는 게 가능한가요?”
“원리는 간단해요. 지금 주혁 씨는 본인이 가진 힘을 100% 쓰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걸 조금이라도 더 쓰게 만드는 훈련을 할 거예요.”
내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이주혁의 눈에서는 레이저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몸의 회전이랑 어깨 회전을 분리시킬수록 몸에 부담이 덜해서 부상 가능성도 줄일 수 있고 구속도 빠르게 할 수 있어요.”
“아하……!”
“몸이 회전할 때 어깨 회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그만큼 무게 중심이 앞으로 가버려서 몸의 힘을 제대로 못 쓰잖아요. 몸이 회전해서 앞으로 나가더라도 어깨 회전을 늦추게 되면 중심이 여전히 뒤에 남아있겠죠? 그 힘까지 더해서 어깨를 회전해 주면 몸에 있는 힘을 훨씬 효과적으로 쓰면서 던질 수 있어요.”
나는 피칭 자세까지 취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투수 몸이 유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죠”
그리고 나는 이주혁과 함께 옆에 있는 벽 앞에 서서 설명을 이어갔다.
“본인이 스트라이드 하는 발 각도를 놓고 벽에 붙여보세요. 그리고 왼쪽 무릎을 펜스에 닿게 하고요. 다음으로는 왼 팔꿈치도 닿게요.”
나는 이주혁의 자세를 교정해 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른발을 최대한 돌려서 포수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만들어보세요. 이때는 균형 유지하면서 골반하고 어깨는 최대한 안 돌아가는 게 핵심이에요.”
“으…… 으윽.”
“그리고 공 던지는 것처럼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려서 벽에 붙여보세요. 척추, 가슴, 머리까지 꼿꼿하게 세워서요.”
“으윽…….”
“이렇게 5초만 더 해볼게요.”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잡아줄 때마다 이주혁이 버티면서 터트리는 신음은 커졌다.
“하……. 이거 정말 힘드네요.”
“앞으로는 투구 들어가기 전에 이 훈련 충분히 하고, 그 감각대로 투구해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대답은 씩씩한 이주혁이었다.
저벅. 저벅.
또 한 세트 더 진행하려는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선배 오셨어요?”
나는 고지훈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
하지만 고지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잠시 훈련장 좀 비워줄 수 있을까? 내가 이따가 선발 등판을 해야 해서.”
아무리 선발 등판을 앞두고 있다고는 해도 훈련장까지 비워달라고?
“아, 그러시면 저희가 나갈게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이주혁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미안, 오늘만 좀 부탁할게.”
“아니요, 괜찮습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인데요. 편하게 하셔야죠.”
이주혁은 급하게 짐을 챙기며 말했다.
“그럼, 주혁 씨 우리는 1층 가서 할까요?”
“네, 그러죠.”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이주혁과 함께 훈련장을 나섰다.
고지훈 옆을 지나면서 살짝 접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등판 준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매우 예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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