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마지노선 (4)
고지훈의 아내가 식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내려놓았다.
“이걸로 괜찮겠어?”
“그럼, 충분히 훌륭하지.”
고지훈은 대답하자마자 밥을 한 숟가락 먹었다.
“온다고 미리 얘기하지. 그럼 좋아하는 걸로 음식 해놨을 텐데.”
아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반대편에 앉으며 고지훈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나도 갑자기 결정한 거라서.”
“그럼 이제 숙소로는 안 들어가는 거야?”
“그건 아니고…… 며칠만 쉬다가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지금 몸은 어때?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어?”
아내의 표정에서는 걱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는데, 잠깐 쉬면 괜찮아질 거야. 별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고지훈은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경기 보니까 몸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푹 쉬면서 치료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시즌 치르면서 몸 온전한 선수가 어딨겠어. 다들 이러면서 해가는 거지.”
고지훈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해도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운동이 전부는 아니잖아.”
“그럼, 걱정하지 마.”
“내일은 여보 좋아하는 음식들로 만들어야겠다.”
“근데 수아는 어디 갔어?”
고지훈은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미술 학원 갔어, 이제 데리러 가야 해.”
“나도 가야겠다. 같이 가자.”
“정말?”
“갑자기 데리러 가면 좋아하겠지?”
“엄청 놀라서 뛰어올 것 같은데?”
“시간 얼마 안 남았지? 빨리 먹을게.”
말을 끝내자마자 고지훈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 * *
버팔로즈와 더블즈 3연전의 마지막 경기.
이주혁은 오늘도 마찬가지로 빼곡히 적힌 노트를 꺼냈다.
“오늘 선발 등판하는 투수가 지난번 캠프 때 봤던 선수 맞죠?”
“정환이요? 맞아요.”
몇 달 전, 스프링캠프 때 스치듯이 봤던 선수까지 기억하다니.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어서 어떤 선수인지 찾아봤거든요.”
“정말요?”
“야구 실력도 실력인데, 현우 님하고 인연이 깊던데요?”
“그렇긴 하죠.”
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하고 올해를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구속이나 패스트볼 회전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스트라이크 비율이 확실히 높아졌어요.”
이주혁이 노트를 몇 장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까 볼넷 비율도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닝 소화 능력도 좋아졌고요. 실점이 줄어든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겠고요.”
“맞아요.”
“대신에 변화구는 스트라이크 비율이 아직도 낮아요. 특히 포크볼이요. 패스트볼은 피안타율이 1할대 초반인데, 변화구로는 3할에 가깝게 높아지고요. 그러다 보니까 패스트볼 위주로 승부하는 초반에는 거의 완벽하다가, 변화구를 섞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피안타율이 높아지는 편이에요.”
“정확한 분석이네요.”
나는 이주혁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최정환 선수도 현우 님을 만난 이후에 이렇게 좋아진 거죠?”
“에이, 아니에요.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선수를 뚝딱 좋아지게 만들겠어요.”
내가 최정환에게 해준 거라고는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기록을 정확하게 보여준 게 전부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한데요?”
“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된 거겠죠.”
나는 그냥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됐다.
펑!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최정환은 시작부터 위협적인 패스트볼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타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틱.
겨우 배트에 맞춰봐도 전혀 뻗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높은 코스로 던진 패스트볼로 타자의 배트를 유도해 아웃 카운트를 올렸다.
“최정환! 최정환! 최정환!”
150km/h를 넘는 시원시원한 패스트볼로 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니 더블즈 팬들이 환호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와, 저 정도면 변화구 제구 안 돼도 충분하죠.”
“시즌 첫 경기보다 공에 힘이 더 붙었네요.”
“150km/h 던지는 건 타고나야 하는 거 같은데. 그런 선수들 볼 때마다 부러워요.”
이주혁의 눈빛에서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3번 타자 오석훈이 타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흥미로운 매치업이었다.
과연 오석훈은 최정환의 패스트볼에 어떤 타격을 보여줄까, 그리고 최정환은 오석훈이라는 타자와 어떻게 승부를 해갈까?
“오석훈 안타! 오석훈 안타!”
“삼진! 삼진! 삼진!”
경기장의 분위기도 1회부터 고조되고 있었다.
최정환이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표정이나 투구 자세는 평소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펑!
“스트라이크!”
최정환이 던진 공은 확실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무엇보다 전광판에 구속이 155km/h로 찍혔다.
1, 2번 타자를 승부하면서 던졌던 공이 150km/h 초중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정환도 오석훈을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오석훈도 초구는 지켜보려고 했는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공이 지나간 자리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할 뿐이었다.
곧이어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날아가는 궤적으로 확인해 보면 이번에도 패스트볼일 확률이 높았다.
이번 공에는 오석훈의 배트가 힘껏 돌았다.
틱.
하지만, 배트에 제대로 맞지 못하며 3루수 방향으로 높이 떠서 날아갔다.
더블즈 3루수가 공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파울.”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며 파울볼이 선언됐다.
배트를 만지작거리는 오석훈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어느덧 0 볼 2 스트라이크.
최정환의 포크볼 제구가 부족하더라도 볼 카운트가 유리하고 주자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던져볼 만한 상황이었다.
포수에게서 사인을 받은 최정환은 다시 한번 힘껏 공을 던졌다.
펑!
후웅-
오석훈의 배트는 공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돌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마 변화구를 하나쯤 던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최정환은 이번에도 패스트볼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 높은 코스로 날아왔지만, 이런 공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구속이 무려 157km/h였다.
자신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을 보여줬다.
오석훈은 입을 벌리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정환! 최정환! 최정환!”
최정환은 주먹을 불끈 쥐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1회에 세 타자에게서 모두 삼진 아웃을 잡아내는 쾌거였다.
더블즈의 공격이 끝나고 다시 버팔로즈의 2회 공격이 이어졌다.
최정환이 마운드에 올라오는 동안, 이번 타석에는 4번 타자 박성주가 들어섰다.
최정환의 패스트볼 구위가 박성주의 파워마저도 넘을 수 있을까.
“주혁 씨, 두 선수가 힘 대 힘으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구위 좋은 강속구 투수 최정환이냐, 홈런 타자 박성주냐……. 너무 어려운데요? 현우 님 생각은 어떠세요?”
이주혁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환이가 오버 페이스만 안 하면, 아무래도 투수가 이길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3할 타자라고 하더라도 70% 가까이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박성주 홈런! 박성주 홈런!”
박성주의 파워를 기대하는 버팔로즈 팬들의 함성이 커지고 있었다.
박성주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듯이 타석에 서기 직전에 배트를 몇 번 힘껏 휘둘렀다.
최정환도 글러브에 있는 공을 만지며 승부를 준비했다.
“플레이 볼!”
심판의 콜과 함께 둘의 승부가 시작됐다.
최정환도 박성주의 한 방이 신경 쓰이는지, 공을 쥔 채로 한 템포 늦게 움직였다.
그러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박성주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틱.
배트가 공 아랫부분을 때리며 위로 날아갔다.
박성주는 표정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맞붙어본 최정환의 힘을 제대로 느낀 듯했다.
0 볼 1 스트라이크.
승부는 계속 이어졌다. 두 번째 공.
박성주의 배트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돌아갔다.
딱!
“어?”
박성주의 배트에 맞은 타구는 하늘 높이 날아갔다.
배트를 내려놓은 박성주는 1루를 향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최정환도 몸을 돌려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잠시 숨을 죽였다.
좌익수만이 펜스 끝까지 공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와아아아-”
그러다가 더블즈 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3루심이 좌익수가 펜스 앞에서 타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웃!”
1루를 지나 2루로 가려던 박성주는 아쉬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다른 경기장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 같은데요?”
이주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펜스 바로 앞에서 잡은 거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예요.”
“어찌 되었건 아웃 된 거니까 최정환 선수가 이겼다고 봐야 할까요? 구위 좋은 패스트볼을 쳐서 펜스 앞에까지 보낸 거면 성주도 못 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데.”
“그러게요. 둘 다 이겼다고 보는 게 맞겠는데요.”
나는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후로도 최정환은 무시무시한 패스트볼을 보여줬다.
종종 허를 찌르는 변화구로 타이밍을 뺏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어느덧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난 이후에는 조금씩 슬라이더와 포크볼의 비율을 늘려갔다.
그리고 다시 맞붙은 최정환과 오석훈.
오석훈은 아까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듯 최정환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타석에 섰다.
펑!
펑!
최정환의 패스트볼에서는 여전히 묵직함이 느껴졌다.
턱.
다만, 결정구로 던지려던 포크볼은 스트라이크 존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닥에 꽂혔다.
결국 1 볼 2 스트라이크에서 최정환의 선택은 패스트볼이었다.
펑!
부웅-
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오석훈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두 번 연속 삼진을 당해 분통이 터지는지 오석훈이 배트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박성주가 타석에 들어왔다.
마운드에 있는 최정환의 입가엔 미소가 드리워 있었다.
오석훈과의 두 번째 승부까지 판정승을 거두자 자신감이 생긴 표정이었다.
최정환은 이번에도 박성주에게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거의 홈런에 가까운 타구를 날려 보냈기 때문인지, 박성주도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딱!
배트에 맞은 타구는 총알 같은 속도로 유격수를 향해 날아갔다.
“어, 어?”
유격수는 자세를 낮추며 타구가 날아올 위치로 글러브를 갖다 댔지만, 타구가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튕겨 나왔다.
유격수가 재빠르게 공을 다시 잡고 1루를 향해 던져보지만,
“세이프!”
이미 박성주가 1루 베이스를 밟은 다음이었다.
안타인 것 같기도 하고, 에러라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황이었다.
기록원의 공식 판단은 에러로 기록됐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최정환이 세 번째 타순을 앞두고는 교체되며, 아쉽게도 승부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다음 대결이 기대되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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