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
9화>
문제는 그게 아니야 (1)
사무실로 돌아온 김민환은 곧장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님!”
“김 팀장님? 경기장 가시지 않았나요?”
갑자기 나타난 김민환을 본 임예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강현우 씨 말이에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무슨 특별한 문제라도 있나요?”
임예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김민환은 속에서 분통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신입이면 신입답게 기본적인 일부터 배워야죠. 아무리 선수 생활을 해봤다고 해도 이쪽 일은 아는 게 하나도 없을 텐데. 오자마자 싹 건너뛰고 석훈이를 전담시킨다니요. 그것도 3개월씩이나.”
“지금 오석훈 선수의 성적을 끌어올리려면 이제까지 했던 거랑은 완전히 다른 뭔가가 필요한 상황이지 않나요? 그리고 요즘 김 팀장님이 많이 바빠져서 힘들다는 얘기도 하셨던 거 같은데요?”
“그, 그렇긴 하지만 이런 식은 말이 안 되죠. 다른 선수들이 알면 아마 난리가 날지도 모릅니다.”
“난리요? 이제 막 입사해서 아직 일도 제대로 모르는 신입 직원이 옆에서 몇 달 도와준다고 해서 회사에 난리가 날까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임예지의 말에 김민환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 그건.”
“팀장님은 기존 선수들 관리에 더 집중해주세요. 지금 하고 계신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더 설명 안 해도 잘 알고 계시죠?”
“그럼…… 다른 선수를 그 신입한테 맡기고 제가 석훈이한테 더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추천해서 영입한 선수잖습니까.”
김민환의 말을 들은 임예지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
침묵이 길어지자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팀장님.”
이윽고 임예지가 다시 입을 열자 김민환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예, 대표님…….”
“팀장님이 이 회사 대표인가요?”
“예? 아…… 그, 그건 아니죠.”
“알고 계시니 다행이군요. 팀장님이 저와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팀장님을 포함해서 우리 회사 직원들이 무슨 일을 맡아서 할지는 회사 대표인 제가 결정하는 겁니다.”
임예지가 말하는 동안 김민환은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프로라면 감정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결과로 증명해내세요. 성과를 보여주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나가보세요.”
김민환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올 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대표실을 나가는 김민환에게 임예지가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앞으로 대표실 들어올 때는 노크하는 거 잊지 마세요.”
* * *
플레이 볼!
내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시작됐다.
“오늘은 오석훈이 6번 타자 3루수구나.”
어제 경기를 포함해서 최근에는 우익수로 출전하는 경기가 종종 있었는데, 오늘은 다시 3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야구에서 수비는 포지션에 따라 필요로 하는 능력이 다르다.
외야수는 넓은 외야에 서서 높이 날아오는 공을 처리해 줘야 하는 포지션이다.
따라서 공이 배트에 맞자마자 타구가 어디쯤 떨어질 것인가를 빠르게 예측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중요하다.
반면 내야수는 베이스를 중심으로 상대 팀 선수를 직접 수비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그러니만큼 경기 상황과 상대 선수의 스타일에 따른 수많은 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른 수비 작전을 이해하고 경기에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 있는 위치가 타자와 가까워서 공이 빠르게 날아오기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 중요하고, 불규칙하게 바운드되어 날아오는 까다로운 공도 잘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포지션마다 요구하는 능력도 다르고 움직임도 다르다.
그런데 오석훈은 내야수와 외야수 포지션을 날마다 번갈아 가며 출전하고 있었다.
더구나 경기 중에 포지션을 이동하는 날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헷갈리지 않는 게 더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경기 내내 오석훈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다행히 오늘은 상대 팀이 내 소속팀이었던 재규어즈여서 분석하기가 꽤 수월했다.
딱!
상대 선수가 친 공이 오석훈이 서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맞자마자 공이 바닥에 튀며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오석훈이 빠르게 이동해서 글러브를 갖다 댔지만, 그의 앞에서 한 번 더 바운드가 된 공이 생각보다 높은 위치까지 튀어 올랐다.
“어, 어?”
한 번에 글러브로 잡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몸으로 공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오석훈이 자기 앞으로 떨어진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했다.
“휴…….”
깔끔하게 잡아내지 못해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워낙 어깨가 좋은 선수여서 타자를 아웃시키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잠시 후, 버팔로즈의 공격 순서가 됐다.
앞에 있던 타자들이 안타를 치고 나간 덕분에 6번 타자인 오석훈도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다.
2아웃이기는 했지만 주자가 모든 베이스에 가득 차 있었다.
오석훈이 여기서 안타 하나만 제대로 친다면 단숨에 3점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경기를 지켜봤다.
‘어, 타격 자세가 조금 달라진 거 같은데?’
무릎을 어제보다 더 굽히고 배트를 지면과 수평이 될 정도로 눕히고 있었다.
언뜻 보면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 달라져 있었다.
스프링 캠프 때는 물론이고 시즌 중에도 타격 자세에 변화를 주는 건 프로 선수들에게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시즌 중에 자신의 타격 자세를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부진한 성적을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변화이거나,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거나.
지금 오석훈의 경우는 전자였다.
‘타격이 마음처럼 잘 안 되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심정이겠지…….’
내 머릿속에 아까 본 정보가 떠올랐다.
-자신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매일매일 경기를 뛰는 게 두렵다.
타격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하고, 수비에서는 매 경기에 하나씩 실책이 나오니 누구라도 비슷한 생각이 들 것이다.
‘얼마 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오석훈과 상대하는 투수는 얼마 전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였다.
공이 빠르거나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는 강점을 가진 선수였다.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쉬울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투수가 오히려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이었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투수가 공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오석훈도 타격할 준비를 마쳤다.
팡!
초구부터 높고 빠른 공이 포수 미트에 꽂혔다.
경기 초반이지만 대량 실점을 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라 그런지 전력을 다한 투구였다.
부웅!
오석훈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지만 이미 공이 지나간 뒤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심판의 우렁찬 콜이 들렸다.
공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이런 유형의 투수를 상대로 초구를 노리는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포수가 반쯤 일어나서 받아야 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공이었다.
오석훈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시 투수와 타자가 자리를 잡았다.
두 번째 공은 오석훈이 서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였다.
타자가 속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유인구였다.
그러나 오석훈의 몸이 살짝 움찔했을 뿐 배트가 돌아가지는 않았다.
“볼.”
1 볼 1 스트라이크.
지금 투수를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가 된다면 그다음에 승부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만큼, 오석훈 입장에서는 이번 공을 적극적으로 노려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 투수와 포수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투수가 던진 세 번째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것 같더니 급격하게 속도가 줄어들며 아래로 살짝 떨어졌다.
빠른 공이라고 판단한 오석훈은 이미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틱
“아…….”
공이 배트 밑부분에 맞으며 힘없는 땅볼이 되었다.
오석훈이 최선을 다해 1루까지 달려봤지만, 공이 먼저 1루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아웃이었다.
1루를 지나치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는 오석훈의 뒷모습에서 실망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경기가 특별할 것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문제는 4회였다.
3루 수비를 하던 오석훈에게 타구가 날아왔다.
그리 까다롭지 않은 타구였다.
하지만 공이 살짝 빗맞으면서 속도가 줄어 잡는 데까지 시간이 의외로 오래 걸렸다.
게다가 상대 타자는 스피드가 매우 빠른 선수였다.
오석훈이 침착하게 위치를 잘 잡는 듯했지만, 발 빠른 상대 타자를 의식해서인지 공이 글러브에 들어오기 전부터 표정과 움직임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헉.”
공을 잡자마자 1루로 던졌는데, 너무 과도하게 힘을 줘서인지 공은 1루수가 점프해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높게 날아갔다.
단순한 실책으로 끝났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공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를 확인한 주심이 타자에게 2루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오석훈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책하고 있었다.
오석훈의 실책으로 출루한 주자가 결국 홈으로 들어오며 실점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5회가 시작되면서 어느새 오석훈의 포지션이 우익수로 바뀌어있었다.
“오늘도 결국 포지션을 바꿔 버리는구나.”
수비에서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4회에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기 때문에 감독이나 코치 입장에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실책을 범하자마자 포지션이 바뀌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익수로 나와서 나머지 경기를 무난하게 마쳤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타석까지도 오석훈의 안타는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1:0으로 버팔로즈의 패배로 끝났다.
오석훈의 실책으로 비롯된 한 점이 오늘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모든 선수가 한곳에 모여 팬들을 향해 인사했다.
유일하게 모자를 푹 눌러쓴 오석훈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오늘 경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다음 오석훈을 만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금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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