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마지노선 (5)
“이게 병원의 공식 소견입니다.”
김민환은 임예지에게 병원에서 받아온 소견서를 건넸다.
임예지가 소견서를 다 읽어갈 때쯤 김민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최소 3개월 정도는 훈련을 멈추고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개월이요……?”
“네, 3개월도 최소 기간이고, 혹시라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
아무 말 없이 소견서를 내려놓은 임예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방법은요?”
“저희랑 제휴되어있는 미국 병원에도 촬영본 보내서 의견을 구해봤는데요. 그쪽에서 보내온 소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이것도 원하는 답이 아닌지 임예지가 깊은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었다.
김민환은 나에게 눈빛을 보내며 대화를 이어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뚫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말했다.
“회복 기간이랑 다시 경기력을 올리는 기간까지 3개월 정도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시즌이 많이 남은 상황이라 괜찮지 않을까요.”
“고지훈 선수가 지금부터 3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복귀하면 이번 시즌에는 몇 경기 정도 등판할 수 있을까요?”
“대략 10경기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음…….”
혹시 이 내용을 모르는 건가?
임예지라면 알고 있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
“10경기만 소화한다고 해도 이번 시즌에 FA 요건을 채우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국가대표로 소집됐던 날까지 계산해 보면 남은 시즌 동안 추가로 30일 정도만 1군 등록이 되어있어도 요건을 채우는 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치료받고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도 문제가 없을 테고요.”
“물론 FA 요건을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겠죠…….”
역시 임예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 문제 될 게 없지 않나요?”
“이번 시즌에 10경기를 뛴다면 그동안 소화할 수 있는 이닝이 얼마나 될까요?”
“고지훈 선수의 커리어 통산 경기당 평균 이닝이 5이닝이 조금 넘으니까요. 50이닝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고지훈이 꾸준하게 6, 7이닝 이상을 소화해 주는 투수는 아니었으니까.
“이번 겨울에 FA 계약을 한다면 고지훈 선수의 가장 큰 리스크가 뭘까요?”
“아무래도…… 부상이 잦다는 것과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겠죠?”
“그럼 이번 시즌에 50이닝을 겨우 소화하고 FA를 맞게 된다면 협상을 진행하는 데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50이닝이면 신인 때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죠. FA를 앞둔 시즌에 그 정도 성적을 거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임예지는 단순히 FA 요건을 채우는 게 아니라, 효과적인 FA 협상을 위해 이번 시즌 성적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50이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텐데요.”
“그거야 기본인 거고요.”
임예지는 앞에 내려놓았던 소견서를 다시 집어 들며 말을 이어갔다.
“50이닝을 100이닝으로 만들 수 있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100…… 100이닝이요?”
올해 100이닝을 던질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상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생각에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 *
고지훈의 문제만큼이나 또 하나 중요한 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이주혁의 트라이아웃까지 딱 하루.
나는 고민 끝에 이주혁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바로 오석훈과 박성주를 상대로 피칭을 해보는 것이었다.
얘기를 꺼내기 직전까지도 계속 고민이었다.
리그 최고 타자들을 상대로 던지는 경험을 해본다면 이후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상대로 수월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괜히 자신감만 떨어트리는 것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결론은 매를 먼저 맞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석훈과 박성주가 각각 좌타자와 우타자로 달라서 훈련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나의 부탁에 오석훈과 박성주도 흔쾌히 응해줬다.
트라이아웃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오석훈과 박성주와의 승부를 앞두고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워밍업을 하는 이주혁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워밍업이 끝나가는 것 같자 나는 조심스럽게 이주혁에게 다가갔다.
“주혁 씨, 준비 다 됐어요?”
“네, 이제 다 됐습니다.”
“내일 피칭해야 하니까 많이 던지는 건 오히려 무리가 될 것 같고요. 가볍게 연습 투구하고 석훈이랑 성주한테 각각 10개씩 해서 총 20개 정도만 던져보죠.”
“네”
이주혁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대하는 두 선수가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라는 거 알고 있죠?”
“물론이죠.”
“오늘 결과가 좋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해 보세요.”
“네.”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오석훈과 박성주가 훈련장에 들어왔다.
“영광이에요. 주혁이랑 승부도 해보고.”
박성주는 입가에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주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보는데, 긴장한 탓인지 이주혁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주혁이가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은데요?”
머쓱해진 박성주가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손짓을 하며 오석훈과 박성주를 불러 모았다.
“내일 주혁 씨가 테스트 보러 가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오석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주혁 씨를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줘. 실전 경기 앞두고 타격 훈련한다는 생각으로 해줬으면 좋겠어.”
“걱정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
대답과 동시에 박성주가 배트를 집어 들었다.
이주혁이 마지막 연습 투구를 마치자, 박성주가 타석으로 다가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주혁의 짤막한 한마디로 연습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실전 경기처럼 바뀌었다.
타석에 선 박성주도 실전처럼 타격 준비를 했다.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 같으면서도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주혁은 글러브에 있는 공을 몇 번 만지고는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다리를 힘껏 들어 올리며 그물에 그려져 있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던졌다.
펑!
“볼!”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났다.
첫 번째로 던지는 공이라 긴장했는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박성주는 배트를 휘두를 것처럼 하다가 겨우 멈춰 세웠다.
“몸에 힘 빼고요!”
나는 이주혁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던질 준비를 했다.
호흡을 몇 번 고르고는 힘껏 공을 던졌다.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갔다.
띡.
박성주의 배트가 여지없이 돌아갔지만 제대로 맞추지는 못했다.
나는 투구를 지켜보는 동시에 스피드건으로 날아오는 공의 구속을 재고 있었다.
패스트볼 구속은 평균 140km/h 정도.
아쉬움이 남기는 해도 이전보다 확실히 높아진 상태였다.
이주혁이 투구에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 가나 했는데,
딱!
딱!
이제는 박성주가 이주혁의 공에 적응했는지 날카로운 타구들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이 상당히 많았다는 건 긍정적이었다.
이제 변화구 차례였다.
슬라이더와 커브.
“아…….”
이주혁은 슬라이더를 던지자마자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턱.
만약 포수가 있었다고 해도 잡기 어려웠을 공이었다.
던질수록 조금씩 제구가 잡혀가기는 했지만,
딱!
딱!
박성주에게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자, 이제 성주는 이 정도로 하고요. 석훈이 상대로 해볼게요.”
“벌써 끝이에요? 아쉽네요.”
이제 몸이 풀리기 시작했는지 박성주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타석을 벗어났다.
그사이 오석훈이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는 좌타자였다.
“잠깐 호흡 고르고요. 준비되면 이야기해 주세요.”
이주혁은 옆에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고는 다시 투수판을 밟고 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리며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타석에 선 오석훈도 타격 자세를 취했다.
펑!
“스트라이크.”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지만,
딱!
딱!
오석훈도 배트를 여지없이 돌렸다.
이번엔 변화구 차례.
좌타자를 상대로 우투수의 슬라이더가 의미 있기 위해서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프로선수에게도 쉬운 피칭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주혁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 보였다.
준비를 마치고 힘껏 공을 던지는데,
딱!
딱!
제대로 꺾이지 못한 슬라이더는 타자에게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피칭까지 마무리됐다.
“조금 더 던져봐도 될까요?”
“주혁 씨, 오늘 많이 던지면 내일 전력으로 던지기가 어려울 거예요.”
“그렇겠죠……?”
이주혁의 표정에서는 깊은 실망이 느껴졌다.
“방금은 리그 최고 타자들이에요. 내일은 이것보다 당연히 좋은 결과 나올 테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이주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후에는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과 피칭 이미지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그렇게 이주혁의 트라이아웃 준비는 마무리됐다.
* * *
박정준 교수는 연구실 화면에 걸린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임예지를 바라봤다.
“임 대표, 지난번에 통화하면서도 얘기했지만, 이건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야.”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박정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임예지가 직접 찾아와서까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지?”
“교수님께서도 아시잖아요. 고지훈 선수가 이제까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요.”
“그거야 물론 잘 알고 있지.”
박정준이 진료 기록을 넘겨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선수 본인도 동의한 거지?”
“거절할 이유가 없죠.”
임예지가 알듯 모를듯한 미소로 답했다.
박정준은 임예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수님, 이번 한 번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음……. 본인이나 에이전시에서 그렇게 원한다고 하니, 우선 그렇게 해보자고.”
박정준은 고민 끝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반드시 치료는 빠지지 말고 받아야 해. 내년에 문제 생기지 않으려면 병행해 줄 필요가 있어.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물론입니다.”
임예지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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