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2
92화>
트라이아웃 (2)
나와 이주혁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숙소 조리사분들께 등판에 무리되지 않을 식단으로 도시락을 부탁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도 안 되고, 컨디션 조절이 안 될 정도로 부족해서도 안됐다.
어려운 부탁에도 기꺼이 준비해 주신 덕분에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차밖에 안 됐는데도 생각보다 많이 탈락했네요.”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지켜보니까 거의 절반 정도는 탈락한 거 같던데요.”
“하……. 정말 안타까워요. 저랑 똑같은 마음으로 여기 왔을 텐데.”
“그러게요.”
기본적인 1차 테스트였지만 탈락자는 의외로 많았다.
나 또한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었다.
기본기 자체가 부족한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너무 긴장해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라운드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긴장한 선수를 배려해 주는, 그런 따뜻한 인간미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으니까.
프로 무대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2차 테스트에서는 대진운도 필요하겠죠?”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상대 타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투수와 타자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건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보다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우타자 상대로는 슬라이더를 던질 자신이 있는데, 좌타자가 많이 나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주혁의 얼굴에 걱정이 내려앉았다.
“좌타자 상대로는 몸 쪽 승부가 핵심이라는 거 잊지 않았죠?”
“그럼요.”
“커브로는 스트라이크 넣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볼로 던지세요. 오늘 같은 경기에서는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스윙하려고 할 테니까, 급해지면 떨어지는 공에 배트 나오는 경우도 생길 거예요.”
이미 훈련하면서도 여러 번 얘기했던 내용이지만 테스트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보니 끊임없이 당부에 가까운 말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나는 이주혁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여기 경기장에서 주혁 씨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어요. 주혁 씨는 충분히 자신감 가져도 되는 선수예요.”
“……네.”
이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다졌다.
* * *
이미 예고했던 대로 2차 테스트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진행됐다.
절대평가였던 1차 테스트와는 달리 2차 테스트는 실전 경기처럼 진행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안타를 치거나 삼진을 잡는다고 해서 합격이고, 그렇지 못했다고 탈락하는 건 아니었다.
프로 구단의 관계자들이 선수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영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적 이외에도 정성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반영되는 셈이었다.
2차 테스트에 참가할 선수들이 시간에 맞춰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아까 전달 사항을 전해주던 관계자가 다시 등장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뮬레이션 게임을 진행하겠습니다. 4개 조로 나눠서 진행할 예정이고요. 모든 선수들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해 드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평가가 끝났다고 판단되면 조기에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관계자는 앞에 있는 보드판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어떤 조에 포함됐는지는 앞에 걸어놨습니다. 바로 확인해서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경기는 정각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계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은 보드판으로 다가가 자신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이주혁도 자신의 조를 확인했다.
2조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이었다.
“진짜 실전이구나.”
이제 정말 결전의 순간이었다.
“플레이 볼!”
4개 구장에서 동시에 시뮬레이션 경기가 시작됐다.
모든 경기장에서는 포스트시즌 경기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부터 그라운드에서 수비를 준비하는 야수들 그리고 타석에 선 타자까지.
사소한 플레이 하나라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선수들의 매서운 눈빛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꿈에 도전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를 지켜보는 프로 구단 관계자들의 눈빛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펑!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이 울려 퍼질 때마다 투수와 타자의 희비가 엇갈렸다.
딱!
타자는 공을 배트로 맞추자마자 전력을 다해 1루 베이스를 향해 달렸다.
“세이프!”
두 팔을 벌리고 있는 1루심을 확인하고 나서야 타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빠른 발을 과시하려는 듯, 투수가 다음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순간 과감하게 2루를 향해 도루를 시도했다.
“아웃!”
2루심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판정을 내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타자는 아쉬움에 2루심에게 어필을 해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대신 이번에는 도루 저지에 성공한 포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투수는 이제 비교적 여유롭게 투구를 이어갔다.
펑!
후웅-
“스트라이크 아웃!”
날카로운 변화구에 타자의 배트가 속절없이 돌아갔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주먹을 불끈 쥐는 반면, 헛스윙을 한 타자는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와야 했다.
딱!
공이 외야를 향해 높이 날아오르자 투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웃!”
공을 끝까지 잘 따라간 중견수가 잡아내면서 결국 아웃 판정을 받았다.
중견수는 미소를 지으며 잡은 공을 들어 올렸고, 홈런을 기대했던 타자는 아쉬움에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웃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필요한, 잔인한 승부 그 자체였다.
안타가 터질 때마다 타자와 주자는 전력을 다해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렸고, 투수는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경기는 그렇게 치열하게 진행됐다.
점점 더 그라운드에 열기가 더해지다 보니,
“아악!”
어떻게 해서든 날아오는 공을 잡아 아웃시키려던 3루수와 전력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오던 주자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3루수는 다리를 부여잡고 넘어졌고, 주자는 어깨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있었다.
결국 앰뷸런스와 의료진이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관계자들도 쓰러져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두 선수는 모두 일어나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점을 의료진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절뚝거리는 다리와 고통스러워 보이는 어깨의 통증을 완전히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료진은 두 선수에게 더 이상 경기를 뛰는 건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두 선수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데도 관계자는 벤치에 사인을 보내 교체를 요청했다.
아쉬움에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던 선수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와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조기 교체가 탈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이후로도 그중 한 선수는 구석에 앉은 채로 한참 동안 슬프게 흐느꼈다.
어느덧 이주혁의 등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주혁은 옆에 마련된 연습 피칭장에 들어가 연습 투구를 시작했다.
만약 첫 이닝에 공 개수가 30개를 넘어간다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기회는 단 1이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제대로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는 생각으로 공 하나하나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초구는 반드시 스트라이크로 던져야 한다.’
이주혁은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으로 넣는 데 집중했다.
펑!
펑!
펑!
종종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이 나올 때마다 이주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집중했다.
‘집중하자, 집중.’
펑!
펑!
몸이 어느 정도 풀린 듯하자 연습투구를 마무리했다.
여기서 더 던져서 혹시라도 체력이 떨어지면 막상 등판해서는 최고의 공을 던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주혁의 시선은 경기장으로 향했다.
어느덧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며 상대 팀 수비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주혁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지금 바로 등판하시면 됩니다.”
“후우-”
이주혁은 숨을 깊게 내쉰 다음 마운드를 향해 천천히 달려갔다.
드디어 이주혁은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마운드에 섰다.
프로 선수들이 뛰는 경기장의 마운드는 아니었지만, 그것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후회 없이 보여주고 내려가자.’
오늘 목표는 무실점, 무피안타 같은 완벽한 기록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준비해왔던 대로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홈런을 맞더라도 후회 없는 피칭을 하고 싶었다.
경기장 한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강현우가 보였다.
그의 확신에 찬 눈빛과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 여기서 내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다.’
이주혁은 속으로 강현우가 해줬던 말을 되뇌며 오른쪽 다리로 투구판을 밟고 섰다.
연습 피칭장에서 밟았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연습 투구를 시작했다.
펑!
펑!
이주혁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오늘 패스트볼 제구는 괜찮다.’
일정하게 던져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변화구.
슬라이더와 커브는 어떨까.
어?
패스트볼과는 다르게 원하는 코스로 들어가지 않았다.
‘확실하진 않겠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다 보니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턱!
결국 포수 글러브에 닿기도 전에 땅에 꽂히는 공까지 나왔다.
연습 투구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깔끔하게 스트라이크로 마지막 남은 한 번의 연습 투구를 하려는데,
“플레이 볼!”
심판이 경기를 시작하라는 신호와 함께 콜을 외쳤다.
상대해야 할 타자도 이미 타석에 들어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습투구 하나 더 남은 거 아닌가요?”
이주혁은 용기 내서 심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하지만 심판의 표정은 단호했다.
“연습 투구 수 끝났습니다. 피칭 시작하세요.”
연습에 집중하다 보니 연습 투구 수 계산을 잘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주혁은 심판에게 새로운 공을 받아들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패스트볼 제구는 괜찮았으니까, 자신 있게 해보자.’
“후우-”
이주혁은 공을 오른손에 쥔 채로 숨을 깊게 내쉬며 투구판을 밟고 섰다.
이제까지 준비해왔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이주혁이라는 선수의 가치를 보여줘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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