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3
93화>
트라이아웃 (3)
마운드에 선 이주혁과 타석에 선 타자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포수도 이주혁이라는 선수가 어떤 유형의 선수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인 사인을 줄 수 없었다.
온전히 이주혁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첫 번째로 만난 타자는 다행히 덜 부담스러운 우타자였다.
타자도 투수를 모르고 투수도 타자를 모르는 상황이다.
아무리 과감한 스타일의 타자라도 해도 이런 상황에서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연히 초구는 패스트볼이다.’
이주혁은 스트라이크 존만 바라보면서 힘껏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심판은 오른쪽으로 손을 뻗으며 우렁차게 콜을 외쳤다.
‘나이스. 원하는 데로 들어갔다.’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초구 스트라이크에 성공했다.
구속은 141km/h로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코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타자가 배트를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0 볼 1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까지는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도 자신 있게 하자!’
이주혁의 시선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하고 있었다.
펑!
“스트라이크!”
역시나 이번에도 스트라이크로 들어갔다.
타자는 이번에도 기다릴 생각이었는지 전혀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속은 142km/h.
첫 번째 공보다 조금은 빨라졌다.
0 볼 2 스트라이크.
투수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두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결정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우타자였기 때문에 이제 슬라이더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연습 투구 때처럼만 하면 삼진도 가능하겠다.’
이주혁은 글러브 안에서 조심스럽게 그립을 바꿔 잡았다.
결정구가 과연 실전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오석훈과 박성주도 이주혁의 슬라이더를 처음 상대할 때만큼은 좋은 타격을 하지 못했다.
이주혁은 중지로 힘껏 회전을 주며 슬라이더를 던졌다.
후웅-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며 다급함을 느끼던 타자는 공이 스트라이크처럼 보이자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의 배트는 공을 맞히지 못했고, 공은 살짝 바깥쪽으로 빠져 앉아있던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첫 번째 타자를 상대로 공 세 개 만에 잡아냈다.
첫 번째 탈삼진!
이주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들뜨지 말자. 이제 시작이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해 보려고 노력해 봐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쉽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삼진을 잡고 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마운드에서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사이 두 번째로 상대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좌타자였다.
체격이 크지 않은 대신 달릴 때 다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날렵한 몸이었다.
이주혁이 공을 던지기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타자가 배트를 짧게 쥐었다.
‘헉.’
번트를 대려는 것 같았다.
이미 투구의 과정을 시작한 상황에서 변화를 주는 건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처음 생각했던 대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타자는 번트를 한두 번 대본 건 아닌지 간결하게 공을 맞혔다.
속도가 적당히 줄어든 공이 3루 방향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타자는 전력을 다해 1루 베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이주혁은 투구 자세를 마치자마자 주변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번트에 대비한 수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 탓에 3루수가 공을 잡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내가 잡는 게 가장 빠를 것 같다.’
이주혁이 직접 굴러가는 공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공을 잡자마자 1루수를 바라보는데, 타자 주자는 이미 1루 베이스에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다.
“세이프!”
고민 끝에 송구는 하지 못했다.
아웃 시킬 가능성도 희박했던 데다, 혹시 급한 마음에 악송구를 하면 더 나쁜 상황이 만들어질 테니까.
결국 두 번째 타자에게는 내야 안타를 허용했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스피드가 빠를 것 같은 타자라는 걸 예상했을 때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야수들에게 번트 가능성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언급해 줬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경기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기 때문에 언제까지 자책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주혁은 다시 마운드로 올라갔다.
“후우- 후우- 후우-”
방금 전력으로 달렸던 탓에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섰다.
이번에도 좌타자였다.
아까 선수와 달리 체격이 있는 선수였다.
게다가 등 뒤에는 발 빠른 주자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2루로 달릴 것처럼 리드폭을 길게 가져가고 있었다.
‘견제는 한 번 하고 가야겠다.’
이주혁은 1루 주자를 흘끗 바라보고 빠른 속도로 몸을 돌려 1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세이프!”
날렵한 주자는 1루로 돌아가는 속도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 번 견제를 하고 나니 리드폭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이제 타자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패스트볼을 힘껏 던졌다.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틱!
공은 배트의 아랫부분에 맞으며 유격수를 향해 바운드되며 굴러갔다.
‘에러만 없으면 병살타 코스다!’
1루에 있던 주자는 이를 악물고 전력으로 2루 베이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유격수는 침착하게 공을 잡아 2루 베이스를 밟고 있는 2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아웃!”
2루수는 1루 베이스를 밟고 있는 1루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아웃!”
2루심은 물론 1루심까지 주먹을 내밀며 아웃을 선언했다.
순식간에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예스!”
이주혁은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치듯 글러브와 오른손을 맞부딪쳤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안정적인 수비를 해준 내야수들에게 모자를 벗어 감사의 표시도 잊지 않았다.
꼭 해보고 싶었던 액션이었다.
일단 첫 번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안타를 허용한 것치고는 투구 수도 많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혁은 두 번째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라인업을 보니 이번 이닝에는 대부분 좌타자가 타석에 설 예정이었다.
정말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내 피칭에만 집중하자.’
두 번째로 서는 마운드다 보니 처음보다는 심리적으로 훨씬 여유가 생겼다.
마운드에 선 이주혁은 포수의 사인을 확인하자마자 패스트볼을 힘껏 던졌다.
하지만,
딱!
타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휘둘렀다.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깔끔한 1루타였다.
‘패스트볼 제구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주혁은 의아했지만 표정의 변화를 드러내진 않았다.
무사 1루.
“후우-”
숨을 깊게 내쉬고서는 다음 타자와의 승부를 준비했다.
펑!
“볼.”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패스트볼이 높게 날아갔다.
‘천천히 하면 괜찮을 거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다시 투구판을 밟았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대로 이번에도 패스트볼 그립을 잡았다.
그리고 공을 어느 때보다도 힘껏 던졌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주혁의 고개는 날아가는 공을 향해 돌아갔다.
‘제발 밖으로 나가라, 제발.’
이주혁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타구는 페어 지역에서 펜스를 넘어갔다.
공을 끝까지 확인한 1루심이 손가락을 돌렸다.
“홈런이다…….”
이주혁은 그 자리에 잠시 굳은 채 서 있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피홈런을 경험해 보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 봤지만, 이어지는 경기에서 패스트볼이 쉽게 공략을 당하면서 이주혁은 또다시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수비수들의 도움을 받아 실점을 최소화하며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2이닝 6피안타 3실점.
그렇게 2차 테스트가 마무리됐다.
* * *
나는 이주혁과 함께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테스트 경기에서 확인한 능력을 토대로 각 구단이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게 될 것이다.
이주혁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결과 나왔습니다. 확인하세요!”
관계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주혁 씨, 같이 가서 확인해 볼까요?”
이주혁이 벌떡 일어났다가 넘어지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무 떨려서 도저히 못 보겠는데요. 혹시 가서 보고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요. 금방 다녀올게요.”
나는 결과가 기록되어 있을 보드판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선수들도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선수는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렇지 못한 선수는 조용히 이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앞에 있던 선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자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이…… 주.”
이 씨 성을 확인하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데.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찾아봤지만, 확실히 없다.
잠시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이주혁에게로 다가갔다.
숨기려 노력했는데도 티가 났는지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
“안 됐나요?”
“……네.”
짧은 한 단어를 꺼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후- 그렇군요.”
“다시 한번 도전해 봐요. 이렇게만 준비해 가면 내년에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요.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네? 괜찮다니요?”
“오늘 마운드에서 공 던져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정말 즐거웠어요.”
이주혁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아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달렸나 봐요. 더 이상 아쉬운 것도 후회도 없어요. 그리고 이제 저도 선수치고 어린 나이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화려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저는 오늘 제 꿈을 이뤘습니다.”
“…….”
“현우 님, 제가 꿈꾸게 해주시고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주혁이 갑자기 나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고생 많았어요.”
나는 이주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그동안 식단 조절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네.”
이주혁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주혁과 함께 트라이아웃이 열린 경기장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