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4)
“와아아아-”
“오오오. 승리를 위하여. 더블즈 파이팅!”
심장을 뛰게 만드는 관중의 함성과 웅장한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경기장의 열기는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워밍업을 마친 고지훈은 불펜에서 피칭을 하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펑!
펑!
2군 경기 등판 때와 마찬가지로 공을 던지는 동안에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컨디션은 최고다.’
던질 때마다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공이 좋은 날이었다.
부상에서 복귀하는 경기라는 이유로 투구 수 제한이 걸려있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투구 수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피칭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지훈 선수가 최근 경기에서 0.2이닝 동안 7실점으로 데뷔 이후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는데요. 부상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2주도 되지 않아서 복귀를 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2군 경기이기는 했습니다만 지난 두 번의 등판에서 정말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더블즈 팀에게도 고지훈 선수 본인에게도 최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 경기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고지훈 선수의 복귀전, 잠시 후에 시작합니다!
경기 시간이 되자 고지훈은 마운드를 향해 다가갔다.
“고지훈! 고지훈! 고지훈!”
팬들은 부상에서 복귀한 고지훈을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내줬다.
“플레이볼!”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어느 때보다 자신이 최고의 컨디션이라는 것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고지훈은 포수와의 사인을 주고받고 나서는 힘껏 공을 던졌다.
펑!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은 우렁찬 목소리로 콜을 외쳤다.
날아온 공의 궤적을 다시 살펴본 타자가 볼이 아니냐며 어필을 해봤지만 심판은 단호하게 스트라이크가 맞다며 돌려보냈다.
그만큼 제구가 완벽했다.
-이야! 첫 타자부터 과감하게 승부가 들어가네요.
-공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이 느껴지는데요?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 맞나요?
1회에 만난 두 번째, 세 번째 타자와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띡!
다음 타자가 겨우 배트에 맞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빗맞은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웃!”
고지훈은 1회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와아아아아- 고지훈! 고지훈!”
오랜만에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상대 팀 타자들은 고지훈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후웅-
꿈틀거리며 날아오는 변화구에 속절없이 배트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고,
펑!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패스트볼에는 꼼짝 못 하고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고지훈의 가장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구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리와 몸에 통증이 없으니 일정한 밸런스로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게 가능했다.
-3회까지 단 한 번의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퍼펙트게임을 펼치고 있습니다.
-투구 수도 38개밖에 되지 않아요. 감독이 경기 전 인터뷰에서 5이닝이나 80개 정도 던지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이런 페이스라면 더 던지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제 4회에 접어들며 1번 타자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슬슬 변화구의 비중을 늘려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펑!
펑!
우선 패스트볼 두 개를 코너에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이제 결정구를 던질 차례였다.
상대가 왼손 타자이지만 몸쪽으로 휘어가는 슬라이더를 던져서 헛스윙을 유도해 볼 계획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 아니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전략이었다.
고지훈은 슬라이더 그립으로 바꾸고 힘껏 공을 던졌다.
“아…….”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생각과는 다른 코스로 날아갈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윽!”
공은 타자의 허벅지를 맞췄다.
타자는 표정에서 고통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고지훈은 1루를 향해 천천히 달려가는 타자를 향해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몸에 맞는 볼이 나오네요.
-퍼펙트게임은 아니지만 아직 노히트 노런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괜히 무리를 했나.’
오늘 경기에서 첫 번째로 출루를 허용했다.
몸에 맞는 볼로 인한 출루일 뿐, 아직 안타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고지훈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곧이어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땅볼을 유도하기만 한다면 병살타로 연결시킬 수도 있었다.
포수와 신중하게 사인을 주고받은 고지훈은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기를 기대하며 공을 던졌다.
타자는 소망대로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날아오는 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때려내지는 못했다.
띡!
빗맞은 공은 여러 번 바운드되며 유격수를 향해 날아갔다.
타구 속도도 느리지 않아서 충분히 병살타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격수가 공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다가가 글러브를 갖다 댔다.
글러브로 공이 들어오자마자 2루수를 보는데,
“헉!”
너무 마음이 급했던 나머지 공이 글러브에서 빠지며 뒤로 굴러가버렸다.
급하게 다시 공을 잡아보지만, 1루 주자는 물론 타자 주자도 베이스에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다.
유격수는 어느 곳으로도 공을 던지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주자 올 세이프! 여기서 치명적인 에러가 나오네요.
-유격수가 너무 급했어요. 아무래도 1루 주자와 타자가 스피드가 있는 선수다 보니까 빠르게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몸에 맞는 볼에 이어서 실책까지 나오면서 고지훈 선수가 안타 하나 맞지 않고도 무사 주자 1, 2루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블즈가 3:0으로 리드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이닝에서 실점을 한다면 경기 분위기는 또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더블즈 관중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에 빠졌다.
“괜찮아, 자신 있게 해!”
고지훈은 무거운 짐을 진 듯 어깨가 축 처진 유격수를 향해 외쳤다.
무사 1, 2루의 상황에서 고지훈은 투구를 이어갔다.
고지훈이 여유를 부리다 시작된 위기 상황이었다.
스스로 만든 위기라면 스스로 해결해야지.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먼저, 코너를 찌르는 공으로 삼진 아웃을 잡아냈다.
띡!
다시 한번 나온 빗맞은 땅볼에는 유격수를 포함한 내야수들의 완벽한 호흡으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무사 1, 2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고지훈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유격수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고지훈이 던지는 공의 위력은 변하지 않았다.
6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도 투구 수가 80개를 넘지 않아 7회에도 등판했다. 이번에도 아웃카운트 두 개까지는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7회까지도 직접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되는 순간,
딱!
실투가 나와버렸다.
제한된 투구 수가 가까워진 상황에서 결국 2루타를 허용했다.
동시에 더블즈 더그아웃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고지훈 스스로도 교체될 거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바꿔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예고했던 투구 수가 되기도 했고, 고지훈 선수도 힘이 빠진 것 같아 보여요.
-이번에는 투수코치가 아니라 감독이 직접 올라가네요. 최고의 경기력을 펼쳐준 에이스에 대한 예우 차원일 것 같습니다.
-6.2이닝 무실점. 고지훈 선수가 이번 시즌 들어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고지훈은 가지고 있던 공을 1루수에게 던져주고는 마운드를 내려왔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고지훈은 더그아웃 앞에서 더블즈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지훈! 고지훈! 고지훈!”
팬들은 열렬한 환호로 화답했다.
뒤를 이어 등판한 투수들도 호투를 하며, 더블즈는 리드를 이어나갔다.
동료들이 9회까지 좋은 경기를 펼쳐준 덕분에 고지훈은 또 하나의 선발승을 추가할 수 있었다.
최고의 복귀전이었다.
* * *
오늘 회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고지훈이 1군 복귀전을 가진 것도 모자라서 이전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니 당연한 상황이었다.
“다들 고지훈 선수 경기 보셨나요?”
임예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당연히 봤죠. 정말 대단하던데요. 마지막 공이 가운데로 몰리지만 않았어도 7이닝까지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김민환도 들떠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좋은 결과로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임예지가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로 답했다.
“근데 대표님, 어떻게 했길래 지훈이가 이렇게 빨리 복귀할 수 있었던 거죠?”
김민환의 물음에 임예지가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박정준 교수님께서 해결책을 주셨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치료받으면 무리 없이 시즌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박 교수님이 소견서에 3개월은 쉬어야 할 거라고 보내주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김민환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결과가 중요하죠. 회복 기간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짧아진 거니까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요.”
뭔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던 임예지라면 왜 처음부터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는지를 파악하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의료진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곧바로 교체하자는 얘기까지 꺼냈을 것 같은데.
“좋아진 거면 된 거긴 하지만…….”
김민환은 적절한 반박이 떠오르지 않는지 말끝을 흐렸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였다.
“어떻게 해서 좋아졌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임예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리가 의료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의료 분야라는 게 비전문가가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요. 맡길 부분은 맡겨야죠.”
“선수가 지금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에이전트의 의무인 것 같은데요?”
내 물음을 들은 임예지가 고민에 잠기자 회의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에이전트가 해야 할 일은 선수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거죠.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
이제까지와는 분명히 뭔가 달랐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짙게 들었다.
이후로도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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