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Agent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6)
응급실로 실려 갔던 고지훈은 다행히 밤사이 정신을 차려서 일반 병실로 이송되었다.
나는 그 옆에 내내 붙어 있다가, 고지훈이 완전히 정신을 차린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
출근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있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의문을 없애기 위해 우선 김민환을 찾았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김민환은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다 사실이라는 거지.”
“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롭니다.”
“임 대표님이 좋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스타일이라는 거야 알고 있었는데…….”
김민환은 복잡한 심경을 얼굴에 드러내며 말끝을 흐렸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요?”
“FA 앞두고 여러 전략을 세우는 건 항상 있었던 일이지. 등급을 낮춰서 계약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시즌 중에 트레이드 추진했던 적도 있고, 반대로 구단이 추진하려던 걸 막은 적도 있었지. 그게 선수를 위한 전략 중 하나였으니까.”
이미 얼마 전에 장수영의 트레이드에서도 경험했었다.
“이번 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팀장님은 어디까지 알고 계셨어요?”
“나야 전혀 몰랐지.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으면 분명히 말렸을 거야.”
김민환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팀장님은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민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이번 건은 납득하기가 조금 어렵긴 하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해도 안 되고.”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이네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김민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한테 직접 얘기해야죠.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만약에 달라지는 게 없으면? 임 대표님 스타일이라면 여기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같은 이슈를 보면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
인생에 정답과 오답이 확실하게 나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는 모든 의견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분명히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바꿀 수밖에 없죠.”
“현우 씨가 바꾸겠다고?”
김민환은 내가 한 말의 의미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야죠.”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 *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현우 씨, 지훈 선수 몸은 괜찮아졌나요?”
고지훈에 대한 임예지의 걱정은 진심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까 의식이 돌아와서 이제 일반 병실로 이동해서 회복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임예지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혹시 고지훈 선수가 왜 쓰러졌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정확한 건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훈련하다가 몸에 무리가 온 게 아닐까요? 워낙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니까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제가 알아보니 고지훈 선수가 느끼고 있는 극심한 현기증은 진통제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진통제의 부작용이요?”
임예지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듯했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고지훈 선수가 진통제를 계속 맞고 있다는 거, 대표님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그게…… 무슨 말이죠?”
“정확하게는 대표님께서 일방적으로 진행하신 거 맞으시죠?”
“지금 현우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네요.”
임예지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박정준 교수님과도 직접 이야기 나누고 왔습니다. 고지훈 선수랑도 마찬가지고요.”
“…….”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자 임예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대표님께서 얼마 전 회의에서 전달해 주신 내용과는 다르게, 박정준 교수님은 고지훈 선수가 휴식을 취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진통제의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하셨고요.”
“운동선수들이 시즌 소화하면서 몸에 통증 느껴서 병원 진료를 받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그렇지 않은 선수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번처럼 쓰러질 정도로 과하게 진통제를 맞으면서까지 뛰는 경우는 없죠. 주치의가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소견을 보내온 상황에서는 더더욱이요.”
내 목소리는 분노로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FA 같이 중요한 상황을 앞두고 있으면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경기를 소화할 방법을 찾아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중요한 경기가 눈앞에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시즌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고지훈 선수에게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한두 경기가 아니라 이번 시즌 전체니까요.”
임예지의 목소리에서는 단호함이 담겨있었다.
“몇 경기 덜 뛴다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요. 분명히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겁니다.”
“아무리 차이가 있다고 해도 선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라도 멈추시죠.”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온다면, 잠깐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현우 씨. 제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는 고민 안 해봤나요?”
임예지는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제가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당연히 에이전트로서 선수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안겨주기 위함이죠.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한 선수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릴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입니다. 어떻게 그게 선수한테 가장 좋은 결과일 수 있다는 건가요?”
“그래서 치료를 같이 받고 있잖아요.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빈도수도 이전보다 훨씬 늘렸다는 걸 현우 씨도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요.”
물리치료를 자주 받는 것도 도움이야 되겠지.
하지만 주치의가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 본인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고지훈 선수는 자기가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왜 자기 몸에 이상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고 있던데요.”
“고지훈 선수가 모든 걸 알게 된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네?”
“이번 시즌만 잘 마치면 대형 계약을 맺으면서 당장 계약금으로만 수십억 원이 들어올 텐데요.”
“지금 돈이 문제입니까? 올해를 이렇게 보내면, 내년 시즌에 더 힘겨운 재활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장 눈앞의 돈을 볼 게 아니라 선수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죠.”
“올해 재활하는 것과 내년에 재활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죠?”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어차피 지금 재활을 시작해도 앞으로 몇 달간 경기를 뛰지 못한다는 건 사실 아닌가요? 그걸 내년으로 잠시 미뤄두자는 것뿐인데요. 어차피 그동안 경기를 못 뛴다는 건 똑같으니까요.”
“만약에 이번 시즌 무리해서 경기를 소화하다가 내년에 부상의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면요?”
“그래도 선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일 텐데요.”
“네……?”
예상치 못한 답이 나오자 나의 두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투수는 타자보다도 나이의 영향을 많이 받죠. 아무리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선수라고 할지라도, 한 살씩 나이가 더 많아질 때마다 몸값은 뚝뚝 떨어질 겁니다. 미래에 보여줄 퍼포먼스의 기대치가 낮아지니까요.”
“…….”
“특히나 고지훈 선수는 내년이면 33세죠. 투수로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에요. 혹시라도 FA를 미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34세. 투수로서 대형 계약을 맺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죠. 아무리 고지훈이라도 구단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지훈 선수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맺는 게 중요한 거죠. 아닌가요?”
“그동안 부상이 심해져서 한 시즌을 통으로 날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생긴다면요?”
“그때는 여유 있게 치료를 받아도 되죠. 계약이 다 끝난 다음이니까요.”
“허…….”
대형 계약을 맺자마자 재활을 한다면 먹튀 선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돈을 위해서 선수가 수십 년을 노력해서 쌓아온 명예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임예지가 비웃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현우 씨가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어쩌실 건데요?”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꺼내 음성녹음 중인 화면을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언론에 공개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표님은 물론이고 YJ 에이전시의 평판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겠죠? 이제 저도 에이전트로서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라서요. 대표님께서 아무리 힘을 쓰신다고 해도 이 뉴스가 그냥 조용히 묻히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건가요?”
임예지의 눈빛이 매섭게 바뀌었다.
“선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이렇게라도 해야죠.”
“그래도 제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쓰는 수밖에요.”
나는 스마트폰을 흔들며 답했다.
“결국 저를 무너뜨리는 게 목표인 건가요?”
“설마요. 저는 선수들을 위한 길을 선택하려는 겁니다.”
“에이전시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게 어떻게 선수를 위한 선택이죠?”
“저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선수들은 제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선수들은 제외할 거고요. 그것만 방해하지 않고 협조해 주신다면 이번 사건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에이전시를 따로 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네. 저는 이제 더 이상 대표님의 철학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전혀 예상 못 한 답이었는지 당황한 듯했지만, 임예지는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선수들이 우리 YJ 에이전시를 떠나려고 할까요? 이곳은 국내 최고의 에이전시인데요. 신생 에이전시랑은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건 선수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현우 씨가 여기서 멈춘다면 오늘 일은 다 잊을게요. 고지훈 선수 FA 협상을 잘 마친 뒤에 현우 씨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 주는 것도 물론이고요.”
임예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며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현우 씨가 직접 에이전시를 만든다고 해도, 우리 YJ 에이전시가 있는 이상 대한민국에서 자리를 잡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제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하면서 돈과 명예를 얻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선수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예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도 대표님 덕분에 많은 것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표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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