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
1화. 나는 버려진 아이였다
*본 작품에는 강압적이거나, 다소 폭력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소재는 소설 전개상 필연적인 부분이오나, 글에 등장하는 범법 행위를 실제로 행할 시, 형법상 저촉될 수 있습니다. 작품 감상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
나는 버려진 아이였다.
다섯 살 즈음이었나.
희미한 기억 속의 그 날은 눈이 펑펑 내렸었다.
엄마는 그 추운 겨울날 고아원 문 앞에 나를 두고 가버렸다.
마지막 말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엄마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았지?
당시의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설마 나를 버렸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섯 살의 나는 그렇게나 순수했었다.
-얘야, 이름이 뭐니?
어른들의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낯을 많이 가렸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하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실어증에 걸려버린 것이다.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그렇게 되었다.
-실어증? 쯧, 염병할 부모가 버린 새끼 아니랄까봐 가지가지 하는구만.
-제 소견으로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일시적인 언어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치료받으면 호전될 거예요.
-치료는 니기미. 그냥 장애인으로 해주쇼. 그럼 나라에서 지원금도 더 많이 나올 거 아뇨.
-규정상 그건 안 됩니다.
-안되긴 뭐가 안 돼! 언어장애라며! 그럼 장애인 맞잖아!
-일시적일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고아원 원장은 의사와 그렇게 실랑이를 하더니 내 뒷덜미를 잡아끌고 병원을 나가버렸다.
결국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야 했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데 말까지 못하니 의사소통의 수단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후회는 금방 찾아왔다.
원장이 제멋대로 이름을 짓고는 출생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왜 당시의 나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이름이라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무적자(無籍者)가 아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원장이 지은 이름은 거의 욕이나 다름없었다.
염병한.
술 처먹고 염병할이라고 적으려다 손이 미끄러져서 염병한이 되었다고 한다.
장애인 보조금을 못 받게 된 것이 그렇게 열 받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사람 이름에 염병을 넣은 걸 보면.
***
미소고아원.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아원을 설립한 사람이 지었다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도무지 웃음 지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미소를 짓긴 해야 했다.
매일 밤마다, 억지로.
-퍽, 퍼퍽.
엉덩이가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이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가슴 졸였다.
“표정관리 안 해? 아파?”
“아……니요.”
“미소.”
원장의 말에 엎드려뻗쳐 있던 형이 고개를 들고 입꼬리를 귀에 걸었다.
전민성.
올해 중학생이 된 형으로 입학기념이라는핑계로 평소의 두 배를 맞고 있었다.
“좋아. 마지막 세 대.”
-퍼억. 퍽. 퍽.
원장의 몽둥이질이 작렬할 때마다 윽윽거리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표정은 기계처럼 스마일을 유지했다.
일그러지면 더 심하게 맞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
원장의 호령에 아이들이 연달아 웃는 표정과 함께 엎드려 뻗쳤다.
-퍽. 퍽. 퍽.
아이들은 표정관리에 안간힘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음.”
후우, 내 차례다.
-퍽, 퍼억, 퍽.
매일 맞아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한 대, 한 대 꽂힐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아래로 향했다.
이제 고작 여덟 살.
하지만 미친 원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풀스윙을 했다.
“염병! 잘못 맞으면 허리나가. 엉덩이 들어.”
-끄덕, 끄덕.
“표정.”
-씨익.
원장의 매질이 곧바로 날아들었다.
소리 나지 않게 이를 악 물었다.
엉덩이가 터져서 피가 주르륵 흘렀지만 참고 또 참았다.
‘으윽.’
이러다간 골병이 들 것 같다.
실제로 잘못 맞아서 불구가 된 아이들도 있으니.
“후우우, 이제 좀 기분이 상쾌하네. 염병할 노무 새끼들.”
드디어 매질이 멈췄다.
원장은 거친 숨을 뱉으며 내 눈앞에서 몽둥이를 흔들었다.
다 때렸으니 옆으로 나오란 뜻이다.
절뚝거리며 자리를 옮기자 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내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남자는 말이다.
“어디보자아.”
원장이 여자아이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뱀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 앞에 여자아이들은 개구리가 되어 바짝 움츠려들었다.
원장은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올해 중학교 입학한 사람, 손.”
그 말에 다섯 명이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서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느 것을 고를까 알아 맞춰 보자……”
한 자, 한 자 뱉을 때마다 두꺼운 손가락이 이리저리 오고 갔다.
그때마다 누나들은 흠칫흠칫 떨었다.
“딩동댕동! 흐흐, 미연이로구나. 그래, 우리 미연이가 벌써 중학생이란 말이지……”
“……!”
지목당한 누나, 최미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늘 수업 끝. 소등하고 취침한다, 실시. 미연이는 와서 원장님 어깨 좀 주물러주고.”
“……네.”
원장은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고 원장실로 사라졌다.
우리만 남게 되자 모두의 시선이 최미연에게 향했다.
어깨만 주무르는 게 아니라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최미연.”
그때 가장 연장자인 누나, 한설아가 입을 열었다.
“애들 데리고 방으로 가.”
그녀는 나와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누나다.
고아원생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았고, 달리 엄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가 아이들을 보듬어 주기에 그나마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이곳의 어른들은 모두 원장과 한통속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끼리 뭉칠 수밖에.
“뭐하고 있어? 빨리 가. 원장실에는 언니가 가볼 테니까.”
“나, 나도 이제 중학생이야. 그냥 내가 갈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애들 데리고 방에 가, 빨리! 언니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언니……흑.”
한설아는 안쓰러운 눈으로 최미연을 안아주었다.
원장이 지목했으니 언제 들어가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라도 늦춰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언니는 괜찮아. 아무렇지 않으니까 어서 애들 데리고 가.”
말과는 달리 전혀 괜찮은 표정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을 리도 없고.
***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좌우로 눈을 굴렸다.
뒤척이는 아이들이 몇몇 보였다.
‘휴우, 다들 안자네.’
잠이 올 리 없다.
남자아이들은 엉덩이가 쓰릴 테고, 여자아이들은 한설아의 뒷모습이 미래의 자신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삼십 분이라······ 지금쯤 시작했을 거야. 더는 못 기다려.’
원장은 그 짓을 하기 삼십 분 전까지 온갖 이상한 짓을 한다.
계획을 실행하려면 적어도 그 짓이 끝나기 전까지 원장실로 가야 했다.
-스윽.
모포를 내리고 상체를 세웠다.
자연스럽게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병한아, 어디 가?”
최미연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하체를 가리켰다.
오줌이라는 표현이었다.
“좀 참아. 원장님이 이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도리도리.
고개를 젓자 최미연이 페트병을 내밀었다.
“저기 구석에 가서 이걸로 해결해.”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해 미치겠다.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병에 걸린 걸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지금의 현실이 더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
아무런 감정도 없다.
나는 내 본명조차 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의 자식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더는 못 참아. 오늘 끝낼 거야.’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여러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큰 거였구나. 빨리 갔다 와. 알았지?”
최미연이 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원장이 그 짓을 하는 동안에는 괜찮다는 걸.
-끄덕끄덕.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삐걱. 삐걱.
걸음을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낡은 목조식 마루바닥 때문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괜찮아. 그 짓 하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까치발을 들고 빠르게 원장실로 향했다.
-끼익. 끼익.
원장실 앞에 도착하니 규칙적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벌써 시작한 것이다.
머리를 문틈에 가까이 가져갔다.
미세한 틈이지만 원장실 내부가 어느 정도 보였다.
가운데 ㄷ자 모양으로 놓인 소파, 가장 안쪽에 놓인 집무용 책상.
왼쪽 벽에는 진열장이 있었다.
원장과 한설아는 진열장 바로 앞, 길다란 소파에 있었다.
‘다행이다.’
지난번에는 진열장 반대쪽이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오늘은 운도 나를 따르는 모양이다.
“헉, 헉, 헉.”
-끼익. 끼익. 끼익.
번들거리는 원장의 대머리가 앞뒤로 움직이며 창밖에서 비친 달빛을 반사했다.
나는 시선을 그 위쪽으로 가져갔다.
정확히는 소파 뒤, 진열장에 놓인 돌이었다.
저 돌들은 원장의 취미로 ‘수석(壽石)’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나는 그 중 가장 위쪽에 놓여있는 수박만한 크기의 돌을 바라보았다.
‘연습은 충분히 했어. 할 수 있다.’
나에겐 아주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물을 움직이는 능력.
알아보니 염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처음엔 개미 한 마리 옮길 정도의 힘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다른 사람들 몰래 훈련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움직여라, 움직여.’
눈알이 빠져라 집중했다.
그러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무게의 돌로 연습한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진열장 끝단에 돌을 걸쳐놓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대로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헉, 헉, 헉.”
-끼익. 끼익. 끼익.
원장의 움직임에 정확히 맞춰야 한다.
한방에 뒤통수를 가격해야 골로 보낼 수 있다.
자칫 어깨나 등에 맞는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하나, 둘······’
다행인 건 원장의 움직임이 규칙적이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타이밍을 맞추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셋!’
돌덩어리가 호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낙하거리와 속도는 충분했다.
-콰직.
완벽한 한방이다.
원장의 몸뚱이 덕분에 한설아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말이다.
‘주, 죽었을까? 허억, 허억……’
심장이 쿵덕쿵덕 미친듯이 뛰었다.
힘을 너무 쓴 탓일까.
호흡도 가빠지고 의식마저 흐려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된다고 되뇌이며 버티는 그때였다.
‘어? 뭐지?’
무언가가 반짝하는 빛이 보였다.
달빛에 반사된 모양인데 뭔지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다.
-푸욱.
날카로운 무언가로 찌르는 소리.
헉헉 대는 소리도, 끼익 거리는 소리도 없어 그런지 그 작은 소리가 천둥처럼 귀에 꽂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소리의 진원지에 대해 생각하는 그때였다.
원장을 옆으로 밀쳐내고 소파에 앉은 한설아가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칼 탓인지 보이는 것은 코와 입밖에 없었다.
그 중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희미하게 올라가 있는 입매였다.
‘……!’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잦아들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흐릿하던 의식이 또렷해지고, 뇌리에 그녀의 미소가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마치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원장실에서 눈을 떼고 천천히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왔지만 원장이 죽은 이상 개의치 않았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뛰지 말라고, 소리 내며 걷지 말라고 X랄하던 원장의 모습이 교차되며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
어라?
방금 웃음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아, 아.”
작게 소리를 내니 정말 나온다.
감격한 나머지 손으로 목울대를 잡았다.
나쁜 일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더니.
마치 오늘밤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그때가 여덟 살, 내가 첫 살인을 저지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