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너 왜 이렇게 집에 빨리 왔어?
-퍼억.
아흔에 가까운 노인치고는 힘이 상당했다.
조명호는 가슴에 책을 얻어맞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정해도 너무 정정한 아버지였다.
임박사의 연구성과가 저 몸에도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버지! 돈이 있어야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돈 받아 처먹는 돼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돼지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나라가 돌아가도록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앞으로 몇 조나 더 퍼줘야 하는 겁니까?”
“그깟 돈?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퍼줄 수 있다.”
나라만 머릿속에 가득한 고집불통.
그것이 조명호가 생각하는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신화를 통째로 넘기지 그러셨어요!”
“지금 네 모습을 보니 그게 낫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
그룹의 후계자로서 많은 1세대 경영자들을 만나왔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정말 별종이었다.
다들 피땀 흘려 세운 제국을 지키고 더 키우는데 집중하는데 그는 오로지 국방이었으니.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라는 뜻에서 널 신화디펜스 사장에 앉혔다. 그래야 내 뜻을 이어 신화그룹을 경영할 것이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넌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신화(身火)’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구나.”
조차신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넌 해고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해고······ 좋습니다. 다 좋아요. 대신 어머니만 고칠 수 있게 해주세요.”
“허락할 수 없다.”
“아버지!”
정말 빈틈없는 아버지였다.
조명호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다른 카드를 꺼냈다.
“허락해주지 않으면 폭로할 겁니다.”
바로 협박이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아버지에게 배운 가르침 말이다.
“……뭐?”
“인체실험 말입니다. 그럼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는 나라꼴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
“돈? 포기하겠습니다. 대신 어머니만 고칠 테니 방해하지 마세요.”
조명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서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조차신은 코웃음을 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네 눈에 물욕이 가득한데 어미 핑계를 댄다고 그게 먹히겠니······”
아내가 가진 지분.
그거면 그룹의 절반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이 분명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한낱 종이쪼가리에 눈이 머는 게지. 쯧쯧.”
조차신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앱을 실행시켰다.
그러자 아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녹음된 것이 아닌 현재 통화 중인 내용이었다.
-여보, 어떻게 됐어요?
-지금 서재에서 나오는 길이야. 역시 예상한 그대로고.
-아버님도 참 변하지 않으시네요.
-자료는 잘 보관하고 있지?
-네, 당신이 말만하면 각 언론사, 포털, 뉴튜버에게 전부 전달될 거예요.
-아직은 보내지 말고 쥐고만 있어.
-그럼요. 폭탄은 터지기 전이 가장 무서운 법 아니겠어요?
조차신은 나직이 읊조렸다.
“명호야, 협박은 약자를 상대로 써야한다고 하지 않았니. 헛배웠구나, 쯧쯧.”
그는 앱을 종료한 후 단축번호 1번을 눌렀고 연결음이 들리자 입을 열었다.
“양실장, 날세.”
나라를 위협하는 폭탄.
조차신에겐 제거대상일 뿐이었다.
설사 그것이 아들일지라도.
***
이한성은 연구소를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한강뷰가 보이는 압구정의 레스토랑이었다.
“예약하셨습니까?”
카운터 직원의 물음에 이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행 있습니다.”
이한성은 거침없이 복도를 지나 프라이빗 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요원이 지키고 서있었다.
“실장님 안에 계시지?”
“누구십니까?”
“에이전트 엘이라고 전하면 아실 거다. 아니면 그 귓구멍에 연결되어 있는 윗선에 물어보든가.”
“……”
잠시 위아래를 훑어보던 그는 인이어를 통해 상관에게 보고했다.
이한성은 잇새로 쯥소리를 내며 이죽거렸다.
“요즘 애들은 참 젠틀해. 우리 때는 총부터 겨눈 다음에 대화를 나눴는데 말이야.”
“……”
그 말에 다른 한 명의 요원이 미간을 좁히고 이한성을 노려보았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 봐? 내가 암살자였으면 니들 벌써 다 죽었어.”
“……”
“이리 느슨해서야. 쯧쯧.”
그때 상관에게 보고를 했던 요원이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가시죠.”
“방금 보고한 상관 누군가? 김과장? 박차장?”
“김과장님입니다.”
이한성은 그의 귓구멍에서 인이어를 뺀 후 입가에 대고 말했다.
“김과장아, 애들 교육 좀 잘 시켜야겄다. 비린내가 왜 이렇게 많이 나냐?”
그리고는 다시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
“왜? 무슨 비린낸지 궁금해?”
이한성은 피식 웃고는 호주머니에 오른손을 찔러 넣은 채 미닫이문을 밀었다.
-드르륵.
내부는 열 평 남짓.
격리된 공간은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좋게끔 구조가 짜여져 있었다.
그곳에는 발을 테이블 밑에 넣을 수 있는 좌식형 공간이 있었고 양경환과 삼십대 후반 가량의 남자가 식사 중이었다.
“이차장? 여긴 어쩐 일이야?”
양경환의 물음에 이한성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오랜만에 실장님과 밥 한 끼 하려고 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뭐 오다가다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김중령님도 계셨네요. 총장님은 잘 계십니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냅킨으로 입을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께서 나누실 말이 있는 모양인데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한성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룸을 나가버렸다.
“김도진 중령은 여전하네요.”
“자네 손에 저 친구 팀원들이 죽었으니 그렇지.”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꽁해 있답니까? 공과 사를 구분 못하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기 힘들 텐데.”
“헌데 무슨 일인가? 자네답지 않게 말도 없이 찾아오고.”
이한성은 김도진이 앉았던 자리에 앉으며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비웠다.
“크흐, 좋네요.”
안주 하나를 손으로 집어 먹은 그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
“연구소에 갔다 오는 길인데 방향을 바꿨다고 하더군요.”
“자네도 봤나? 그만하면 대단한 성과지. 참 오래 걸렸어, 여기까지 오는데 말이야.”
“혹시 김도진 중령이 여기 있었던 거, 그것과 관련해서 얘기 중이었던 겁니까?”
“……뭐?”
“대단한 성과긴 한데 어르신들 눈에는 안 찰 수도 있으니 그 친구와 미리 입을 맞추고 있던 거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그 말에 양경환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언짢다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역시 실장님께선 슈퍼솔져 프로젝트가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하시나보네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알과 에스,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그 친구들 행방을 왜 나한테 묻는 거지?”
“블룸에 남은 두 개 팀이 거의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전멸했습니다. 알과 에스의 시체만 발견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상대의 기척을 살폈다.
“블룸의 내부정보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저를 제외하면 딱 한 명 있죠.”
이한성은 바로 당신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
“그럼 정황만 가지고 나를 찾아온 거군.”
“언젠가 실장님께서 그러셨죠. 증거보다 중요한 게 정황이라고.”
양경환은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젓가락 위에 손을 올렸다.
이한성은 그 모습을 예의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저한테 전민성 검사 얘기를 하셨죠?”
“그래.”
“그땐 별 거 아니라고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한낱 평검사가 서병국 박사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누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근데 그걸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세상에 그걸 아는 사람은 남지웅과 저밖에 없는데.”
“……”
“그래서 내가 아니라면 남지웅이다? 그럼 남지웅이 전민성에게 알려줬다? 흐음, 너무 단순한 논리 아닙니까? 심지어 그 두 사람은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
“근데 그걸 함정이라고 생각하면 단순하지 않죠. 전민성을 노리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고스트팀을 처리한다면 말입니다. 알아보니 전민성이 속한 남부지검 금융수사팀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조사하고 있더군요. 이왕 미끼로 쓸 거, 평검사 하나 조져서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겁니까?”
“오핼세. 그랬다면 그 검사를 죽인 후에 움직이게 했겠지.”
“계획이란 게 그렇게 짜놓은 대로 흘러가나요. 일석이조를 노리게 만들어놓고 최소한 하나는 얻는 것. 그게 국정원 방식이잖습니까.”
이한성은 핸드폰의 사진을 띄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오와 이, 그리고 그들이 관리하는 킬러들의 시체사진이었다.
“킬러들은 온갖 이상한 함정에 빠져서 독약 깨물고 자살했고, 오와 이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것도 내가 한 거다?”
“죽은 놈들, 그리고 현장에서 총을 맞은 전직 형사의 것 외에는 혈흔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방적으로 당한 거죠. 게다가 그날 용산 전자상가 내 CCTV가 전부 다 지워졌고요.”
“……”
“어디서 많이 보던 방식 아닙니까?”
양경환은 인정할 수 없지만 국정원의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만큼은 인정했다.
부정한다면 이한성의 오해를 더 살 것이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근데 백번 양보해서 제 추측이 다 틀렸다고 해도 한 가지 의문이 남더라고요.”
“또 뭐가 있지?”
“이정구 청장이 실장님께 전달한 내용, 왜 나한텐 알려주지 않은 겁니까?”
“……!”
“강남서에서 오와 이의 팀이 움직인 걸 포착했고, 경찰특공대를 요청했다죠?”
“그, 그거야 그쪽에서 출동지연을 시켰다니까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지.”
“언제부터 오피스에서 현장요원의 판단을 대신하게 된 겁니까? 정보원의 행적이 노출된 상황인데 그걸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거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잖습니까.”
“오, 오해야 이 사람아. 나는 그런 뜻이······”
그 순간 양경환의 손에 닿아있던 젓가락 하나가 핑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이한성은 그 타이밍에 탁자 밑으로 몸을 숙이고 총을 꺼냈다.
-퓽, 퓽퓽. 퓽퓽퓽.
“컥, 억억억!”
총알은 양경환의 배와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고, 그 소리에 밖에 있던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퓽퓽, 퓽퓽.
이한성은 그들의 머리에도 바람구멍을 낸 다음 예의 인이어를 빼 귀에 꽂았다.
“아아. 김과장, 들려?”
-이차장님.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계신 겁니까?
“잘 알지. 날 솥에 삶으려던 놈을 담근 거잖아.”
-실장님은 그러실 분이······
“먼저 암기를 던졌어. 녹화도 했는데 보여줘?”
-……!
“애들 올려 보내서 시체 치워, 깔끔하게.”
-어쩌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이게 다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라 그런 거 아니겠어? 그래서 양실장 자리에 내가 좀 앉으려고. 나 그만한 자격 있잖아, 안 그래?”
이한성은 인이어를 빼서 다시 죽은 요원의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때였다.
-삐리리리.
벨소리가 양경환의 자켓에서 들려왔다.
이한성은 총을 집어넣고 자켓 안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양실장, 날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어르신 중 한 명, 신화그룹의 조차신 회장이라는 것을.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양실장은 전화 받기 곤란한 상황이라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
신화그룹 본사에서부터 조민철의 뒤를 미행했다.
염력은 걸어놓았으니 죽일 기회만 노리는 것이었다.
‘어디서 처리하지……’
이미 최철진을 죽인 이후라 더 조심스러웠다.
경찰에 박인섭 같이 촉이 좋은 사람이 또 있다면 프로골퍼인 내 신분 주변에 일어난 연쇄 사망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증거가 없는 살인이라도 그것이 쌓이면 꼬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틈을 엿보는 사이 조민철을 따라 그의 집, 조명호의 자택까지 와버렸다.
나는 호주머니 속에서 사슴벌레 몰카를 꺼내 놈의 뒤에 따라 붙였다.
역시 집안에서 죽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죽음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응? 뭐야 이거······”
그런데 핸드폰 화면에 비치는 광경이 심상치 않았다.
조민철도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이어지는 핏자국.
불이 꺼진 적막한 대저택의 내부.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여인.
조민철의 입에서 그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어, 엄마! 엄마아아!”
그때 구둣발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너 왜 이렇게 집에 빨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