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라운드 투, 파이트!
조차신 회장의 요구.
그것은 아들 내외의 죽음이었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천륜을 저버리는 행위.
하지만 이한성은 이해했다.
그가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 해주면 내 자네가 원하는 대로 국정원 기조실장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힘을 써 줌세.
-저야 어려울 것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죽음이어야 해.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게.
-그러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겁니다.
-안 돼, 서둘러야 해. 그 애들이 가진 자료는 그만큼 위험하니까.
-그럼 이렇게 하시죠. 흔적을 남기되 다른 놈에게 덮어 씌우는 겁니다.
-다른 놈이라니?
-청부조직 본거지에 들어가서 수십 명을 학살한 놈이 있습니다.
-눈깔 말인가?
-네, 그놈이 한 짓으로 위장하면 세상 사람들은 깡패, 청부업자나 죽이던 놈이 가진 자들을 향해 살인을 시작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쁘지 않군. 그렇게 하게.
-손주분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 애들은 놔둬. 아는 게 없을 테니까.
-돌발상황일 때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건 자네가 알아서 판단하게.
-알겠습니다.
시나리오는 그게 전부였다.
조명호 사장의 자택에 침입해 손자, 손녀를 제외한 모두를 죽이고 눈깔의 짓으로 위장한 후 방치하는 것.
이한성은 총기는 차에 놔둔 채 투척용 단검이 장착된 띠를 챙겼다.
지난 사건으로 보건대 눈깔은 총이 아닌 칼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동규 박사에게 받은 케이스를 꺼내 몸에 주사했다.
약효가 발휘되는 건 한 시간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기다린 후 단검으로 팔뚝을 쿡쿡 찔렀다.
마치 방검복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각성제의 효과는 알약일 때보다는 못하지만 대신 지속시간이 길어진 듯 했다.
‘슬슬 가볼까.’
저녁 8시.
조민철과 조세연이 집에 오려면 이른 시각을 택했다.
놀기 좋아하는 두 젊은 년놈이라면 이 시간에 집에 기어들어올 리 없었다.
이한성은 품속에서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작동시켰다.
일종의 소형 EMP.
인근 100미터 이내 CCTV와 방범센서를 비롯한 모든 첨단기계를 무력화시키는 장치였다.
-띵동.
그는 담을 넘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곧이어 인터폰에서 보안요원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조명호 사장님께 임동규 박사가 보낸 사람이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전하면 아실 겁니다.”
보고가 들어가고 잠시 후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가 들어가자마자 정장을 입은 세 명의 남성이 주변을 에워쌌다.
“소지품 검사를 할 테니 양팔을 벌려주십시오.”
“이런 거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한성은 팔을 벌리는 척하며 단검으로 검사를 하러 다가온 보안요원의 목을 찔렀다.
그 순간 나머지 요원들은 권총을 꺼내 겨눴다.
“움직이지 마!”
“쏴봐, 고무탄 아냐?”
-푹, 푹.
“꺽, 꺽!”
이한성은 이죽거리며 그들의 눈앞에서 동료의 목덜미를 장난스럽게 찔렀다.
그리고 뒷덜미를 잡아 옆의 수풀로 집어던졌다.
앞을 가리던 동료가 사라지자 두 사람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탕! 탕탕탕! 탕탕!
얼굴을 가린 팔과 가슴에 집중적으로 꽂힌 총격.
놀랍게도 사설 보안요원의 총에서 발사된 건 고무탄이 아닌 실탄이었다.
각성제 덕분에 근력이 증가했다지만 그래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고통.
다만 CX-01의 효과는 확실했다.
생체기조차 나지 않았으니.
-쉿, 쉿!
단검띠에서부터 빛살이 뻗어나갔다.
이한성의 반격에 두 사람의 목에서 퍽하고 피가 튀었다.
“끄르륵!”
신음소리와 함께 비틀거리자 이한성은 순식간에 다가가 발차기를 날렸다.
-우드득.
미들킥을 맞은 요원은 방탄복을 입었음에도 옆구리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튕겨나갔다.
“끄억! 어윽!”
이한성은 나머지 한 명의 뒷덜미를 잡고 그를 방패막이 삼아 계단을 올라갔다.
-탕! 타탕! 탕탕탕!
곧바로 보안요원들의 총격이 쏟아졌고 몇 발이 몸에 꽂혔지만 이한성은 개의치 않았다.
-쉭.
“꺽.”
-쉬쉬쉭.
“억.”
“컥.”
“윽.”
투척이 장기인 것처럼 단검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정원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인 그는 시체를 정원수 밑으로 던져 놓았다.
CCTV를 다시 작동시킬 때 신화시큐리티에서 이상현상을 알아차리는 걸 늦추기 위함이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실크파자마를 입은 중년여인이 얼굴에 팩을 한 채로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시끄러……!”
그녀는 곧 이한성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다, 다, 당신 누구야? 여, 여보! 여보!”
이한성은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단검을 심장에 쑤셔 박았다.
“억! 으으으!”
“사모님, 쉿. 저 시끄러운 거 안 좋아합니다.”
“하악, 아윽! 사, 살려주세요.”
“조사장님 어디 계세요?”
“……”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입을 다물었다.
정략결혼을 했지만 오랜 세월 살을 맞대고 살아온 정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이거 이대로 살짝만 비틀어도 과다출혈로 죽어요. 말하면 사모님은 살려드릴게.”
목숨을 위협 당하자 얄팍한 정은 곧바로 박살나버렸다.
“이, 이층······ 서재······”
“X년이네 이거.”
-푹, 푹, 푹, 푹, 푹.
칼침을 놓은 그는 숨이 끊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잡고 단검손잡이로 뒤통수를 때렸다.
마스크팩은 한 방에 떨어졌지만 눈알은 잘 빠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빠져.”
몇 번을 내려친 후에야 눈알을 뺀 그는 덜렁덜렁한 신경을 칼로 자른 후 걸음을 옮겼다.
서재에는 조명호가 리클라이너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날로그 축음기였기에 EMP의 충격에도 망가지지 않고 기능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고상하시네. 사람이 다 죽어나가는데도 클래식이나 듣고 자빠져 있다니.”
그의 말에 조명호가 눈을 뜨고 몸을 바로 세웠다.
“헉! 누, 누구냐!”
“누굴 거 같으십니까?”
이한성은 빙글빙글 웃으며 단검을 손안에서 돌렸다.
그리고 축음기로 다가가 단검을 LP판 위에 꽂았다.
그 순간 음악이 끊어지고 두 사람 사이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일부러 이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그분께서 손주분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셔서요.”
“아, 아버지께서……”
“장남이면서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도 모릅니까?”
“……!”
“자료 어딨습니까?”
조명호는 리클라이너의 손잡이를 붙잡고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일 정도로 비정할 줄은 상상도 못한 그였다.
-푹!
그 순간 단검이 왼쪽 쇄골 아래를 파고들었다.
“크으윽!”
“다른 생각은 마시고 하나만 기억하세요. 그분께선 손주분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료를 얻지 못하면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선택하세요, 자료인지 자식들인지.”
“……”
“선택 안 할 겁니까?”
“아내가 숨겨놔서 나도······ 몰라.”
“젠장, 벌써 죽였는데.”
“우리 말고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죽고 나면 폭로될 일도 없을 거다.”
“아니면 당신 자식들, 죽을 겁니다.”
조명호는 체념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을 읽은 이한성은 쇄골에 박았던 단검을 사선으로 움직이며 목을 그었다.
-촤악!
“꺼억······”
그리고는 조명호의 뒤통수를 때려 눈알을 뽑은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어휴, 피비린내.”
너무 오래 현장을 떠나있었는지 피냄새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는 피 묻은 마이를 벗어 바닥에 던지고, 탁자 위에 있던 물티슈를 왕창 뽑았다.
그리고는 온몸에 뒤집어 쓴 피를 대충 닦은 후 복면을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리고 소형 EMP 기계의 스위치를 내렸다.
CCTV가 정상작동 되어 저택의 상황이 찍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한성은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후 천천히 1층으로 향했다.
“어, 엄마! 엄마아아!”
그때 현관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민철이 분명했다.
조세연도 아니고 조민철의 귀가가 빠를 줄이야.
“너 왜 이렇게 집에 빨리 왔어?”
이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복면으로 가린 덕분에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영상으로 남는 것과 사람의 기억으로 남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영상은 고작 체형, 몸무게 따위를 예측할 뿐이지만 사람은 체향, 눈빛, 분위기 등 종합적인 정보가 뇌리에 남기 때문에 언제고 마주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결국 돌발상황의 선택지는 살인멸구.
-쉭.
이한성이 오른손을 떨치자 단검이 조민철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유단자인 보안요원들도 피하지 못한 투척이었다.
그런데,
“응? 그걸 피해?”
조민철이 상체를 움직여 가볍게 피해냈다.
심지어 자신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시선이 공격대상인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조민철의 눈동자는 본인의 몸뚱이를 보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
게다가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얼음 위에 있는 것처럼 미끄러지는 듯한 스탭.
상체를 살짝 숙인 채 빠르게 접근해온 놈이 오른손 숏어퍼를 배를 향해 날렸다.
-뻐억!
‘허억, 무슨 힘이······’
피부가 강화되고 각성제의 효과가 남아있음에도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숏어퍼에 몸이 들썩이며 공중에 떠올랐다.
그런데 오른손 숏어퍼가 다시 똑같은 자리에 작렬했다.
-뻐어억!
“끄어······”
모션 없이 취해진 숏어퍼라기엔 너무 엄청난 위력이었다.
다시금 몸이 붕 뜰 정도로.
공중에 떴던 이한성이 바닥에 발을 닿을 때였다.
이번엔 조민철이 낮은 자세에서 바닥을 쓸듯 하단차기를 해왔다.
-퍼억, 쿵.
공중에 뜬 상태에서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한성은 꼴사납게 바닥을 굴러 거리를 벌렸다.
2단 숏어퍼에 하단차기.
어디서 본 듯한 콤비네이션이었다.
‘이게 뭐더라. 크라브마가? 사바테? 아닌데······’
그런데 이상한 게 또 있었다.
“아악! 내 팔! 아흐흑!”
조민철은 울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자세는 확실하게 잡고 스탭을 밟으며 간격으로 견제를 했다.
‘저 새끼, 설마 약 한 건가?’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상황.
어떻게 보면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야,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저러는 건지도 모르지.’
힘과 스피드, 그리고 아까의 콤비네이션을 생각하면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착. 착.
단검을 꺼내 양손에 쥔 이한성은 하나는 똑바로, 다른 하나는 역수로 쥐었다.
진심으로 죽이겠다 마음먹은 것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
화면에 보이는 광경.
그리고 엄마를 부르짖는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조민철의 앞에선 괴한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냥 부잣집도 아니고 신화가의 저택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저놈, 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재벌가의 일원을 건드릴 리가 없다.
그런데 화면에 비친 여인의 머리 앞에 하얗고 동그란, 구슬처럼 보이는 물체 두 개가 보였다.
실마리가 될까 싶어 확대해보았다.
그런데,
‘눈알?’
신체의 일부일 줄이야.
그걸 보는 순간 나에게 붙여진 별명인 눈깔이 떠올랐다.
중년여인의 얼굴 근처에 핏자국이 없는 걸 보니 칼로 눈을 째서 도려낸 것도 아니었다.
‘뽑았구나.’
혹시 모방범죄인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방산비리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신화디펜스에서 차세대 전투기 선정과 관련해 군 장성들에게 뇌물을 먹였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런 놈들이 나왔구나.’
눈알을 뽑지 않고 자제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용산 전자상가에서 다시 한 번 일을 저질렀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눈깔에 대한 찬양글이 봇물 터지듯 올라왔었고, 개중에는 자기도 눈깔이 될 거라는 광신도 같은 놈들이 더러 있었다.
‘저 새끼를 본보기로 삼아야겠네.’
나는 염력으로 조민철의 몸을 제어했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엄마를 죽인 놈을 잡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죽이려고 쫓아온 놈을 영웅으로 만들게 생겼네.’
이래서 세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나는 괴한이 날린 단검을 피하게 만들고 조민철을 오른쪽 사각으로 미끄러지듯 이동시켰다.
풍신스텝.
염력으로 몸 전체를 띄워 초저공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어지는 초풍신.
-뻐억!
한 번 더.
-뻐어억!
여기서 한 번 더, 초풍신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조민철의 오른 팔목이 두 번만에 부러진 것이었다.
‘약해 빠졌네.’
결국 나락쓸기로 마무리한 후 패턴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염력으로 부러진 팔을 고정하면 주먹을 날리지 못할 것도 없지만 고통 때문에 조민철이 발작하면 움직임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리면 역시 태권도지.’
나는 조민철의 몸으로 가벼운 발차기를 하며 말했다.
“라운드 투, 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