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석훈이가 이걸 보면 좀 달라질까?
조차신은 유치장을 나오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신경 좀 써주게.”
“걱정 마십시오. 감히 신화가를 건드린 놈이니 검찰로 넘기기 전에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서장의 아부에 조차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공무를 그런 식으로 보면 되겠는가.”
“……?”
“최대한 편의를 봐주게. 다른 말 나오지 않도록.”
“아……!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직접 챙길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래, 알아들었으면 되었네.”
“살펴 가십시오!”
그는 조차신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숙였던 허리를 펴지 않았다.
“서장님, 가셨는데요.”
“그래? 크흠.”
“근데 정말 공사가 확실한 분이시네요. 자기 아들 죽인 놈의 편의를 봐주라니. 저 같으면 반병신이 아니라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으로 만들어버리라고 할 텐데.”
“쯧쯧, 넌 한참 멀었다 한참 멀었어.”
“네?”
“지금이 칠팔십 년대냐? 저 새끼가 반병신으로 나가면 기레기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럼……”
“잘 먹여서 때깔 좋게 만들어, 대신 티 안 내게 괴롭히고. 잠을 안 재우든지 발가벗겨서 추위에 떨게 만들든지 방법은 알아서. 이해했어?”
서장은 형사계장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뒷짐을 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나직한 욕이 흘러나왔다.
“알아서? 지가 챙긴다더니, 니미……”
***
광화문 지하연구실.
조차신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회장님. 어쩐 일로 이렇게 직접 행차하셨습니까.”
임동규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바짝 숙였다.
“뉴스 봤지?”
“아, 예. 아드님 일은······”
“됐네. 내가 엘에게 시킨 일이었으니 신경 쓰지 말게.”
아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말에서 일말의 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임동규는 몸을 잘게 떨며 다시금 회장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꼈다.
“뉴스 봤으니 알겠지만 엘을 잡은 게 내 손자네. 허구한 날 사고나 치고 다니던 놈이 말이야.”
“……”
“심지어 엘은 개량형 CX-01까지 주사한 상태였다더군.”
“저, 정말입니까?”
“이제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알겠는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눈빛이었다.
그걸 본 임동규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회, 회, 회장님! 오해십니다!”
“……”
“조명호 사장에게 별도의 지시를 받자마자 회장님께 보고 드린 접니다. 그런 제가 다른 마음을 품다니요.”
“나도 자네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아.”
“그, 그리고 개량형 CX-01은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바꾸고 나온 첫 시제품입니다. 다른 약물은 아직 유전자 설계도 되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
조차신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불신이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본 임동규는 다시 머리를 바닥으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이전트 엘이 개량형 CX-01까지 사용했다면 설사 오리지널 세포의 주인이라 해도 상대가 안 될 겁니다.”
“……?”
“피부의 방어력만큼은 저희 결과물이 훨씬 우수하니까요. 이, 이걸 좀 보십시오.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시연회의 리허설 결과입니다.”
그는 책상 위의 노트북을 가져와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허허, 재밌는 방식을 택했구먼.”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흥미와 재미, 그리고 변경한 방향성의 발전가능성을 알 수 있도록 준비해봤습니다.”
“근데 저 실험체는 결국 죽은 건가?”
“네, 피부는 뚫리지 않았지만 워낙 힘의 차이가 크다보니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동귀어진이라······”
조차신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임동규는 그 고민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설명을 곁들였다.
“이걸 보여드린 이유는 설사 제가 회장님을 배신하고 다른 약물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개량형 약물을 사용한 엘을 압도할 수 있는 건 못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섭니다. 잘 해봐야 리허설 결과처럼 같이 죽겠지요.”
“허면 손자가 어떻게 엘을 그 지경으로 만든 거지?”
“그, 그건 저도 잘 모르지만······”
“뭐든 좋으니 말해보게.”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눈앞에서 부모의 죽음을 목도하고 이성을 잃은 나머지 평소 이상의 힘을 발휘했거나.”
“또 하나는?”
“손자 분께서 신력을 타고 났는데 그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민철이는 그런 걸 숨길 성격이 아닌데······”
“그럼 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히스테리칼 스트랭스라……”
Hysterical Strength.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이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걸 의미한다.
정확한 원리와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이지만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소년이 차를 들어 올린다거나,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아이를 무리 없이 받아낸다거나 하는 등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거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안 되고 있지 않나?”
“네, 잠깐 발휘되고 사라져버리는 능력이니 표본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이번 시연회에 내 손자를 세우게.”
“예?!”
“다친 건 RX-01이면 시연회 전까지 나을 거고, 개량형 CX-01 주사한 다음 시연회에 세우면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고 여기겠지. 한 번 경험했으니 위험에 처하면 그 힘이 또 나올 수도 있잖은가.”
“……”
임동규는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들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아들을 죽인데 이어 손자까지 실험체로 만드는데 주저함이 없다니.
조차신 회장은 정말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내 손자를 희생하는 이상 데이터 확실하게 챙기게. CX-01에 히스테리칼 스트랭스까지 구사할 수 있다면 프로젝트는 완성이나 다름없으니.”
***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김도진 중령은 그곳을 찾아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허허, 거참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네.”
박철우는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탁탁 두드렸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을 하던 그가 김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죽은 양경환 실장은 유전자 개조를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었다는 거지?”
“네, 그리고 총장님께서도 거들어주시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때?”
“국정원이야 블랙요원들에게 사용할 생각이니 유전자 개조를 해도 문제될 건 없을 겁니다. 다만 저희는 공작원만이 아니라 특수부대 전체에 적용할 계획이니 분명 말이 나올 겁니다.”
인체실험만큼 유전자 개조도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특히 그 대상이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의 방향을 고수하면 언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잖나. 아니, 영영 결과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지.”
“……”
“이런 걸 계륵이라고 하는 건가. 허허. 골치 아프군.”
그저 신화의 연구원들이 그 방향으로 진행했다면 골치 아플 일도 없었다.
문제는 세 명의 어르신.
그 중 한 명인 조차신 회장이 그렇게 정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가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꾸었고, 양자택일이라는 상황으로 AFK를 몰아넣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십년 넘게 프로젝트를 끌어오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십년대계라는 말도 있는데 조바심이라니, 쯧.”
“반대하셔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명분도 명분이지만 조차신 회장과 한 배를 타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조회장이 노망이 나긴 한 모양이지. 엘을 시켜서 자기 아들을 죽이다니 말이야.”
“AFK에 들어올 때도 말이 많았잖습니까. 워낙 극단적인 분이니.”
그때 소파 옆에 놓인 전화기에서 따르르릉하고 벨이 울렸다.
소리도 그렇고 디자인도 엔틱한 80년대 다이얼식 유선전화기였다.
-날세, 박총장.
“네, 각하.”
그는 어르신 중 한 명으로 박철우가 모시는 이도환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말했다.
“자네는 그만 나가보게.”
“네, 총장님.”
김도진이 밖으로 나간 후 박철우는 다시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었다.
“말씀하십시오.”
-내 방금 뉴스를 보고 연락했는데.
“네.”
-조차신이 아들을 죽인 게 엘인 것 같던데 자네도 알고 있었나?
“저도 일이 벌어지고 나서 들었습니다.”
-엘이 왜 그런 게지?
“조회장이 지시를 내린 걸로 확인했습니다.”
-허허허, 조차신이가? 그 친구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군.
“각하께서 우려하신 대로 옆을 돌아볼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맨손으로 신화를 그만큼 키운 게지.
“네.”
-헌데 그런 친구도 그 프로젝트는 다루기 어려운가보이. 여태 감감무소식인가?
박철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 시연회가 있을 것이라 대답했다.
하지만 연구방향과 결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시연회라······ 그런 거창한 걸 준비한 걸 보니 문제가 있나보군.
역시 귀신같은 눈치였다.
“각하께서도 참관하시겠습니까?”
-자네 말하는 걸 들어보니 해야겠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거 아닌가.
“하하, 정말 각하는 못 속이겠습니다.”
박철우는 이어서 나머지 한 명의 어르신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헌데 박이사장님은 좀 쾌차하셨습니까?”
-박여사? 허허, 자네 그 할망구 입도 보태야 한다고 보는가보이.
“크흠…… 죄송합니다.”
-아닐세, 조차신이 견제하려면 필요하겠지. 그 할망구야 나이 들어서 골골대는 것이니 내 잘 말해보겠네.
그 말에 박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도환의 거처가 있는 방향으로 거수경례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
염석훈과 약속을 잡은 당일,
전민성은 카페에서 기다리며 손에 든 USB를 만지작거렸다.
‘석훈이가 이걸 보면 좀 달라질까?’
그는 며칠 전 이혜선의 병실에서 있었던 대화를 상기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었다.
안소미.
실종된 서병국 박사의 조수, 그 사람이 자신이라 밝힌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비사에 대해 들려주었다.
-서, 석훈이가 서병국 박사의 아들이라고요?
-그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얄궂은 운명이죠.
당시 전민성은 충격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설아의 죽음에서 시작된 일이 염석훈의 과거와도 이어져 있었다는 말이었으니.
-전 박사님의 아들인 석훈 씨가 그 상태로 있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어요. 검사님도 알고 계시죠? 석훈 씨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
-사실 그날 이후로 몰래 사람을 붙였었어요. 세 분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때 거절했는데도 그랬단 말입니까?
-이해해주세요. 전 설아 씨의 지인인 당신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
-어쨌든 그 과정에서 석훈 씨가 살인을 했다는 걸 알았고, 그때 전검사님을 찾아갔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후······ 당신 정말······
-속여서 죄송해요.
다시 생각해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전민성은 거짓말이라는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와 함께 쥐고 있던 USB를 내밀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용물은 서병국 박사 가족의 일상을 찍은 영상이었다.
“휴우······”
알아본 결과 안소미라는 여자는 분명 존재했었다.
그녀의 말대로 십칠 년 전에 서병국 박사 일가족이 실종될 당시 마찬가지로 행방불명이 된 상태였고.
하지만 이혜선이 안소미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죽하면 USB에 남은 지문까지 떴었다.
문제는 이혜선의 지문이 심하게 뭉개져 일치여부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지만.
“여전히 수상한데 이 영상은 또 진짜란 말이야.”
영상분석전문가의 말로는 조작된 부분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전달하려는 이유도 염석훈을 위하는 것이었고.
-왜 이걸 직접 전해주지 않고 저한테 주는 겁니까?
-좀······ 밉보였거든요. 제가 주면 이 영상도 조작 아니냐고 의심할 거예요. 알아보니 검사님께서 박사님 유해를 인계할 사람을 수소문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그 과정에서 구했다고 하고 전해주세요.
분명 녀석의 성격이라면 이혜선을 의심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보다 저 여자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으니까.
‘그래, 날 이용하면 어때. 석훈이를 위한 건데.’
USB 속 영상을 보면 염석훈의 삭막한 마음에 변화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녀석이 나타났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후드를 뒤집어 쓴 모습은 여전히 어두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