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태어나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잘 지냈어?”
전민성은 억지로 입가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녀석에 대한 안쓰러움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네, 근데 전해줄 게 뭐예요?”
“뭐가 그렇게 급해. 일단 앉아.”
대뜸 주는 것보다 어떻게 입수했는지, 왜 이걸 주는지 설명을 하고 납득을 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의심부터 하고 볼 테니까.
고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다.
“자 이거부터 마셔. 너 올 때 됐다 싶어서 미리 시켜놨어.”
전민성은 카페모카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민성이 형 오늘 뭔가 좀 다르네요?”
“뭐, 뭐가?”
“매번 내꺼 뺏어먹거나 자기 것만 딱 시켜놓더니 어쩐 일이래요?”
“내가 그랬냐?”
“네.”
“크흠, 뭘 또 그런 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그러냐?”
“어쨌든 잘 마실게요.”
염석훈이 커피를 마실 동안 그는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거기에는 몇몇 인사들의 이름과 직책이 적혀 있었다.
“핸드폰으로 보내면 기록이 남을까봐 적어왔어. 일단 이정구 서울경찰청장이 이한성의 구속영장청구를 미루고 있고, 중앙지검장이 직접 나서서 이 사건 챙기고 있어. 신화그룹 일이니 지검장 정도 되는 사람이 챙기는 게 이상하지 않겠지만 중앙지검 내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화가 아니라 이한성에게 유리하게 수사하는 것 같대. 그리고······”
“잠깐만요. 전해줄 거라는 게 이거였어요?”
“아, 아니.”
“이런 건 그냥 리스트만 넘겨줘요. 내가 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설명을 들을 필요 없잖아요.”
“으, 응……”
“뭔데요? 뭔데 이렇게 빙빙 돌리는 거예요?
눈치가 더 빤해졌다.
전민성은 어쩔 수 없이 본론을 꺼냈다.
“서병국 박사님 말이야.”
“……?”
“그분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실종됐잖아.”
“네.”
“그래서 보통 이런 경우엔 시신의 DNA를 바탕으로 국과수에서 보관하고 있던 DNA와 대조를 해보거든. 신원미상인 시신들 중에 실종된 가족이 있는지.”
“……”
“너 그때 설아누나 건으로 국과수 갔던 거 기억하지? 출입할 때 DNA 채취했잖아.”
“……!”
“네가 친자라고 나오더라.”
이혜선이 미리 알려줬다는 게 사실인지 염석훈의 표정은 담담했다.
일단 자신이 출생배경을 알고 있다는 점은 잘 설명된 것 같았다.
“근데 이걸 너한테 알려주고 서병국 박사님 시신을 인계하면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지웅은 죽었지만 블룸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놈들이 네 정체를 모르고 상대하는 것과 알고 상대하는 건 또 다르잖아.”
“……”
“그래서 일단 네 말대로 학계 쪽 인사를 수소문해서 장례 치르고 납골당에 모셨어. 언제까지 그 상태로 둘 수도 없고.”
“네…… 잘 하셨어요.”
또 한 번의 고비를 잘 넘겼다.
이제 마지막 고비인 USB를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병국 박사님의 집에 갔었어.”
“집이요? 아직······ 남아있어요?”
“있어, 사망처리가 된 게 아니라 실종된 상태니까. 전기나 수도도 다 끊겼고 폐가나 마찬가지지만 그대로 있어.”
“……”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이걸 찾았어.”
쥐고 있던 USB를 염석훈의 앞에 내려놓았다.
“거기서 찾은 건 CD였는데 여기 담아온 거야. 이게 전해주려고 했던 거고.”
“안에 뭐가 있어요?”
“너희 부모님, 그리고 어린 시절의 너.”
“……”
“집에도 가볼래? 주소 알려줄까?”
“……네.”
전민성은 핸드폰을 꺼내 주소를 찍어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USB를 바라보는 염석훈을 보며 말없이 기다렸다.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심경이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스륵.
갑자기 염석훈이 의자를 밀며 일어나자 전민성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바로 가보려고?”
“네. 일단 그 집에 가볼 생각이에요.”
“이거 가져가. 너희 집 카드키야.”
“고마워요.”
카드키를 받아든 염석훈은 떠나기 전에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민성이 형,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눈빛.
전민성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어떻게 알았지?’
***
한남동.
레인지로버를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부촌에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백색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고급주택.
거의 이십 년째 관리되지 않았을 텐데 밖에서 볼 때는 담벼락 때문인지 다른 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삑. 철컹.
카드키를 대자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작은 계단 몇 개를 걸어 올라가니 잡초가 무성한 정원이 보였고, 담벼락 쪽으로 무성하게 자란 덩쿨과 제멋대로 자란 정원수의 가지가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한쪽에는 망가진 그네의자와 서너 살 되는 아이들이 타고 놀 법한 장난감 자동차가 널브러져 이 집에 아이가 있었음을 암시해주었다.
나는 색이 바래고 바퀴가 덜렁거리는 장난감 자동차를 염력으로 움직이며 정원을 한 바퀴 돌게 했다.
저 차 위에 어린 시절의 내가 앉아있음을 상상하며.
하지만 뭐 하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람.’
풀썩 웃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삐삐삑. 철컥.
카드키를 대자 대문과는 다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조명호의 집 못지않게 넓고 근사했다.
비록 먼지가 쌓여있고 온갖 가재도구들이 부서진 상태였지만, 집 자체는 대리석 바닥과 밝은 인테리어가 주가 되어 지금 보아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저벅, 저벅.
거실을 시작으로 부엌, 안방, 드레스룸, 2층에 위치한 방들을 개조한 연구실, 발코니, 옥상테라스까지 살펴본 후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확실히 이혜선의 말대로 이 집에서 연구라는 걸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뇌파검사기기, MRI 등 다양한 의료기계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후우······”
염력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 앞은 TV가 아닌 거실창 쪽이었고, 그 너머로 정원이 보였다.
여기서 부모님은 내가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을까.
-달칵.
젠더를 핸드폰에 연결하고 USB를 꽂았다.
곧바로 영상이 재생되었다.
신생아인 아기의 모습이었다.
-이상한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병국 박사, 젊은 시절 아버지가 분명했다.
-뭐가?
-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지?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아기들이 다 그렇지 뭐.
-먹고 자기만 하잖아.
-원래 그런 거야.
-어? 훈이 토한다. 왜, 왜 이러지?
-아까 트림 안 시켰어?
-응?
-트림 시키라고 했잖아.
-했는데.
-트림소리 들었어?
-아, 아니······
-근데 뭘 했다는 거야.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더니 등을 아래에서 위로 툭툭 두드렸다.
-여보, 그러면 너무 세잖아.
-뭐가 세. 이 정도는 해야지. 당신은 어떻게 했는데?
-이, 이렇게?
-그러니 트림이 되겠니? 재우는 거랑 뭐가 다른데?
-아플까봐 그러지.
-됐으니까 훈이 토한 거나 치워.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파일이 넘어갔다.
화면 속의 나는 돌 즈음 되어보였다.
-여보, 와서 이것 좀 봐.
아버지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떼며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훈아, 까꾸웅!
-꺄르르륵.
-좋아? 재밌어?
-바바?
-어? 아빠라고 했지? 당신도 들었어?
-바바라고 한 거 같은데.
-파파잖아, 파파. 벌써 영어로 말하네. 우리 아들 천재 아니야?
-뭐래.
-으하하하. 역시 나 닮아서 우리 아들도 천재인 거야.
-됐으니까 훈이 데리고 놀고 있어. 이유식 만들어 올게.
영상이 끊기고 다음 파일로 넘어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장난감 자동차 좌석에 앉아있었다.
정원에 있던, 색이 바래기 전의 장난감 자동차였다.
-부우우웅!
-오, 우리 훈이 운전 잘하는데. F1 드라이버 시킬까?
-아빠, 빨리.
-더 빨리?
-응!
-좋았어. 갑니다아! 부아앙!
-야호!
-부아아앙!
-아빠, 빨리이.
-전속력으로 갑니다아! 붕! 붕!
그러다가 내가 갑자기 핸들을 틀었고 쾅소리와 함께 자동차 옆으로 뒤집어져버렸다.
-으아아앙!
-훈아!
-조심 좀 하지. 어휴!
-미, 미안.
그 이후로도 영상은 더 있었다.
물론 주인공은 나였고 밥을 먹는 모습, 목욕하는 장면, 여름에는 정원에 수영장을 만들어놓고 물놀이를 하는 것부터 겨울에 눈사람을 만드는 것까지.
꼼꼼하게 영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몰라도 초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
그리고 마지막 영상파일이 재생되었다.
장소는 처음으로 집이 아니었고, 배경으로 보건대 여관이나 민박 같은 숙박업소의 느낌이었다.
화면 속의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가냘픈 손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코맹맹이 소리도 들렸다.
-밥 잘 먹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
-쿨······
-손발 깨끗하게 씻고 다니고, 옷은 단정하게 입고.
-으음, 엄마아···…
-항상 예의를 갖추고, 하지만 너무 자신을 낮추고 양보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쿨······
-엄마랑 아빠 닮아서 머리는 좋을 테지만 공부가 안 맞으면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돼. 좋아하는 일을 찾고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도록 해.
화면 속 내 얼굴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엄마의 손이 지나가며 그걸 닦았다.
-크흠,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고 충동적인 소비는 하지말구. 그런데서 자존감을 느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거든. 돈에 의존하지 말고 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줘.
-……
-여자는, 우리 아들 인물이 좋으니까 많이 따를 거야. 훈이는 잘 고르기만 하면 돼. 양다리나 바람은 피지 말고, 네가 안 좋은 상황에 있어도 믿고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해.
-쿨……
-아빠 같이 멋있는 남자가 돼, 가족을 아끼고 희생할 수 있는. 우리 훈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지만 아빠 아들이기도 하니까 될 수 있을 거야.
점점 화면이 내 모습에 가까워져가며 초점이 흐려지고 어두워져갔다.
엄마가 나를 끌어 앉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렴. 엄마, 아빠는 그것 말고는 바라는 거 없어.
이혜선에게 들은 말이었다.
초능력을 가진 내가 평범하게 살게 만들기 위해 부모님께서 희생했다는 말.
그걸 화면을 통해서지만 엄마에게서 전해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랑해, 사랑해 훈아. 우리 아들, 엄마가 너무 사랑해.
새카만 화면에서 나오는 마지막 목소리.
마치 저 너머에서 엄마가 지금의 나를 향해 말하는 듯 했다.
“……”
목이 메이더니 눈에 습막이 차올랐다.
나는 한 손으로 눈가를 부여잡은 채 아이라도 된 것 마냥 엉엉 울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박철우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던 중에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찰랑찰랑찰랑.
컵 속의 물, 그리고 국그릇에 담긴 된장국이 위아래로 마구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반찬이나 그릇들은 이상이 없었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래. 지진인가?”
반찬을 나르던 중년여인 역시 그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찰랑거리던 물과 국은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머니는 뭐 느꼈어요?”
“아뇨.”
“이상하네……”
박철우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어, 김중령. 난데”
-네, 총장님.
“혹시 방금 기상청에서 지진 관련해서 자료 넘어온 거 있나?”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기상청에 확인 좀 해봐. 여기 한남동에서 느낄 정도의 지진이 감지된 거 있는지.”
-알겠습니다.
“확인내용은 문자로 보내.”
통화를 끊은 후 1분 정도 되었을까.
곧바로 문자로 지진관측현황에 대한 내용이 날아왔다.
-총장님. 진도 2.5의 지진은 있었답니다. 그런데 2.5면 사람이 느끼진 못하고 지진계로 탐지되는 정도입니다.
이상했다.
그럼 물은 왜 그렇게 찰랑거렸던 것일까.
박철우는 숟가락으로 국을 한 수저 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아주머니, 여기 이것들 다 버려요. 기분 나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