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내일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나니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이혜선의 말대로 감정을 느끼며 전두엽이 자극된 것일까.
염력을 사용함에 있어 체계부터 떠올리는 게 아닌 그저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었다.
-스스스.
집안의 먼지가 공중에 떠올라 회오리치듯 한 곳으로 뭉쳐들었다.
그리고 부서진 가재도구를 정원으로 모으고 내부를 깔끔하게 비웠다.
청소를 말끔하게 하고 나니 슬펐던 감정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그게 되려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가능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해달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내 말 들려?
-어?
-나다.
-어?
-나라고.
-서, 석훈 씨?
-그래.
-이, 이건 또 뭡니까?
-텔레파시.
-염력도 모자라서 이젠 텔레파시라고요? 헐······
-박계장님 퇴원시키고 다 데리고 내가 불러주는 주소로 모여.
-계장님 아직 다 안 나았어요.
-그때 먹은 약 하나 더 줄 테니까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일행들이 저택에 도착했다.
박인섭은 공돌이와 육손이가 들것에 실어서 데려온 상태였다.
“이 으리으리한 집은 뭐야?”
박인섭이 물었다.
“저희 집입니다.”
“허, 자랑하려고 불렀어?”
“AFK 없앨 때까지 여기서 다 같이 지내려고 불렀어요.”
“뭐?”
“방은 많으니까 알아서 하나씩 고르세요.”
내 말에 박민영이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오빠 제 방도 주는 거예요?”
“그래.”
“꺄악! 오빠 최고!”
박민영은 곧장 2층으로 달려갔다.
공돌이와 육손이도 들것을 내려놓고 그 뒤를 따랐다.
상기된 표정으로 보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들 집도 아닌데 말이다.
“근데 프로골퍼가 이런데 살 정도로 돈을 잘 벌어? 여긴 재벌들이나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박인섭의 물음에 내 부모님이 누군지 말해주었다.
그분들이 AFK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도.
다만 내 초능력과 관련되었다는 건 제외했다.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냥 악연일 뿐이니까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근데 여기 살면 네가 서훈이라는 게 드러날 거 아냐? 그래도 괜찮아?”
“제 신분을 안 이상 숨길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고 얼른 털고 일어나세요. 이제부터 계장님 할 일이 많을 겁니다.”
나는 박인섭에게 마지막 남은 치료제를 건넸다.
저거면 남은 총상은 빠르게 나을 것이다.
“할 일이라니?”
“어이, 해달. 메인서버 해킹한지가 언젠데 자료파악은 아직 안 됐어?”
“거의 다 됐습니다. 여기로 이사하고 곧바로 회의 하시죠?”
“그래. 계장님 할 일은 회의에서 말씀드릴게요.”
***
돈이 좋다는 게 이런 걸까.
이사와 함께 저택 내부를 정돈하고 새로운 살림살이로 채우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해달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화그룹 메인서버를 해킹한 결과물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슈퍼솔져 프로젝트?”
육손이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물었다.
녀석의 표정에서 어떤 기분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런 것이다.
그거 영화에서나 나오는 얘기 아니야? 라는 의미.
“터무니없다고 생각해?”
해달이 되묻자 육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 같은 걸 만든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한 거야?”
“초인적인 육체를 가진 강화군인을 만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
“정말?”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 731부대가 대표적이야. 그들이 한 생체실험 중에는 강화군인에 대한 연구도 있었거든.”
“그럼 AFK도 똑같은 짓을 한 거야?”
“비슷해. 블룸이 사람을 공급하고 신화의 연구원들이 인체실험을 한 거지. 강화군인을 개발하기 위해.”
나 역시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미래 전쟁의 게임체인저 중 하나가 슈퍼솔져라는 것을.
그만큼 향후 국방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차라리 핵폭탄 개발을 하는 게 더 낫잖아.”
“야,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쓸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그냥 자폭장치야, 전쟁 억제력밖에 없는.”
“……”
“반면에 슈퍼솔져는 여러모로 유용해. 국지전이 대부분인 현대전에서 전투원은 빠질 수 없는 요소거든. 공격, 방어, 구출, 경호, 암살, 첩보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단 말이야.”
해달은 화면에 슈퍼솔져 프로젝트가 시작된 배경자료를 열었다.
국제협약에 의해 금지된 생체실험과 시신을 대상으로 한 비인도적 인체실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음지에서 강화군인의 개발을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인접국가인 중국과 북한이 있고,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무려 공식적으로 생체공학군인(Bionic Soldiers)의 양성을 허용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비록 유전적 개조는 아니라지만 각국에서 슈퍼솔져가 얼마나 조명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AFK에서 봤을 때 조급했겠지. 다른 나라는 차근차근 슈퍼솔져에 대한 개발을 진행 중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난리를 칠 테니까.”
해달의 말이 맞았다.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 시절에 인체실험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다.
목적이 무엇이든, 그리고 과정이 어떻든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박계장님 왜 그러세요?”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박인섭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해달의 입에서 생체실험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저런 표정이었다.
“21세기에, 우리나라에서 그런 짓이 벌어졌다는데 내가 고개를 들 수 있겠어? 내가 형사생활 한 게 25년 가까이 되는데 그 안에 저런 X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고개 드세요, 마주해야죠. 모르고 있었던 걸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박인섭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때리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할 일이 뭐야? 뭘 도와주면 돼?”
나는 전민성에게 이한성과 관련해 수작부리는 놈들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요청한 걸 먼저 말해주었다.
“몸통 빼고 곁다리들은 민성이 형과 계장님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솔직히 다 죽이고 싶은데 슈퍼솔져 프로젝트와 인체실험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죗값을 받을 대상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그래, 전검사와 내가 맡으마.”
“단, 맡기는 대신에 사람들 입에서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말이 나오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어쩌려고?”
“사건과 관련된 형사, 검사, 판사 모두 쇠방망이에 대가리가 터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 챙기세요.”
“그, 그래.”
나는 해달에게 시선을 돌리고 시연회 참석자 명단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화면을 띄웠다.
“어마어마하죠?”
“뭘, 이 정도는 돼야지.”
전직 대통령 이도환.
육군참모총장 박철우.
정보사령부 첩보부대장 중령 김도진.
서울경찰청장 이정구.
전직 법무부 장관 최두관.
경기도 도지사 고병진.
신화그룹 회장 조차신.
신화케미칼 사장 조광호.
일해일보 사장 방응모.
일성대 초대총장 노덕술.
일영재단 이사장 박춘금.
그리고 신화바이오 소속 임동규 박사 외 4명의 연구원.
총 16명이 시연회 참석자였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없네?”
“그 사람도 AFK예요?”
“민성이 형이 그러는데 이한성 사건에 발을 담갔다고 하더라고. 박계장님, 곁다리네요. 챙기세요.”
나는 다음으로 시연회 장소에 대해 물었다.
곧바로 화면에 3D로 된 모델링이 나왔다.
“광화문역 아래에 있어요. 옛 조선총독부 지하방공호를 개조해서 만든 연구실이에요.”
“설계도는?”
“확보했죠. 입구는 두 군데, 거기만 틀어막으면 그놈들 독안에 든 쥡니다.”
“해킹도 되겠어?”
“신화그룹 본사 메인서버랑 이어져 있으니 가능할 거예요. 작업은 좀 더 해야겠지만.”
해달은 화면에 다른 자료를 띄우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최신연구결과를 보면 이번 시연회가 뭔지 대충 알 것 같아요.”
“뭔데?”
“아르마딜로의 세포를 융합한 강화군인을 보여주는 자리가 분명해요.”
“아르마딜로?”
“네,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었겠죠. 시연회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자료는 없어서 어떤 식으로 보여줄 건지는 모르겠고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 후 화제를 돌렸다.
“혹시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는 세포에 대한 자료는 없어?”
“음······ 세포X, 이걸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요? 이런 게 있는지?”
나는 짐짓 모른 척 말했다.
“남지웅에게 들었어. 그 세포X의 출처는 있어?”
“아뇨, 없어요.”
제일 중요한 게 빠졌네.
뭐 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만.
“그래서 시연회가 언제야?”
***
박춘금.
그녀는 친일파의 후손이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삶을 살아왔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기가 일쑤였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핏줄을 이었으니까.
손가락질을 하는 이유는 알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었고, 선조는 그랬을지언정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친일파의 후손들이 가진 힘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발전은 없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6.25 전쟁 후 모든 것이 파괴되어 아무것도 없던 나라였다.
그때 자신들은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부어 이 나라를 재건시켰다.
물론 막대한 이득을 쓸어 담고 더욱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란 박춘금이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은 명동 사채시장이었다.
70년대까지 ‘제 3금융권’의 중심으로, 그녀를 비롯한 명동 큰손들은 재벌기업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많은 현금을 융통하며 그 위세를 떨쳤다.
집안의 재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린 시기였다.
90년대에 들어서는 금융실명제로 인해 그 세가 유명무실해졌다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규모 사채시장은 몰락했을지언정 한국의 스위스은행이라 불리는 ‘블랙뱅크’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박춘금이 놓은 두 번째 신의 한 수였다.
블랙뱅크는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검은돈을 세탁하고 관리했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부동산까지 진출해 사실상 양지에 버금가는 규모의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뭉쳤고, 그들이 만든 아성은 난공불락이나 다름없었다.
친일파 재산환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잘 막아왔는데 역시 올 것이 왔나봅니다.”
박춘금의 오른쪽에 앉은 노덕술이 포문을 열었다.
“예, 전범기업의 국내재산 강제환수라니요.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노골적인 행태 아니겠습니까.”
왼쪽에 앉은 방응모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박춘금을 향해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역시 대모님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무려 이십 년 전부터 지금을 준비했으니까요.”
“아무렴요. 전직 대통령이 주도한데다 AFK에게 찌꺼기 받아먹는 잔챙이들까지 더하면 감히 우릴 상대로 재산환수 얘기는 못할 겁니다.”
그 말에 박춘금은 나직이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친일파 재산환수에 대한 말이 처음 나왔던 그때부터 준비한 일이었다.
사실 자신들이 가진 힘이라면 막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후대.
그들이 죽고 나서도 재산환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준비를 한 것이다.
친일파의 재산환수를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 정부에 치부를 만들 준비를.
“참 이번 시연회 말인데 두 분만 참석하도록 하세요.”
박춘금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친일파 후손들을 영원히 지켜줄 성벽을 학수고대한 것이 그녀였는데 참석하지 않겠다니.
그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지 염려되는 것이었다.
“여전히 몸이 안 좋으십니까?”
“지금은 괜찮은데 거기 가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그래요.”
“예?”
“이도환, 그 영감이 전화가 왔더라고요. 조차신이 견제해야하니 어지간하면 시연회에 참석하라면서 말이에요.”
“허허, 두 어르신은 늘 티격태격이군요.”
“그 늙은이들 사이에 끼면 골치 아프니까 노총장이 알아서 둘러대세요. 나는 여기서 화상으로 시연회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모님.”
“헌데 시연회가 언제였죠? 늙으니 기억력이 가물가물하군요.”
그녀의 물음에 방응모가 답했다.
“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