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일어나라
시연회 당일.
박인섭과 그의 딸, 박민영만 집에 남겨둔 채 광화문으로 향했다.
차량은 공돌이의 승합차를 이용했다.
내부는 도청을 비롯한 각종 통신장비와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이 많았기에 8인승임에도 무척이나 좁았다.
해달은 이동 중에도 연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지하연구실 중앙통제실을 해킹하기 위해.
“아직 안 끝난 거야?”
육손의 물음에 해달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밤을 새워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고 있지만 아직 뚫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게 쉬운 줄 아냐? 통제실 보안이 아주 첩첩산중이야.”
“신화그룹 본사보다는 쉽다며?”
“그쪽 메인서버를 장악해서 쉽다고 생각했지. 근데 방화벽이 만만찮네.”
“이제 도착하려면 한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그러니까 말 걸지 마라, 바쁘다.”
해달이 다시 작업에 몰두하자 나는 육손이, 그리고 운전 중인 공돌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인이어를 귀에 꽂고 있었다.
“너희들은 잘 할 수 있겠어?”
“그럼요. 맡겨주세요.”
“신분확인증은?”
“여기요.”
육손이가 ID카드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그것은 시연회 보안요원을 증명하는 것으로 신화그룹 메인서버를 해킹한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소속은?”
“국정원 대테러 특수작전팀입니다.”
“무슨 일로 왔지?”
“상부의 지시로 이곳을 경호하러 왔습니다.”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저희들의 차출은 국정원에서도 일급기밀이라 별도의 정보공유는 없었을 겁니다. 보안 관련 전산리스트가 변경되었을 테니 확인해보십시오.”
“이제는 좀 괜찮네.”
“저번에 똥 싸는 연기는 제 스타일이 아니었다니까요. 제가 한 때 007이 꿈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하긴 좀도둑이나 007이나 몰래 들어가서 좀스러운 짓 하는 건 비슷하네.”
내 말에 육손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는 사이 차는 경복궁 앞에 멈춰섰다.
공돌이와 육손이는 그곳에서 내렸다.
그들은 경복궁 오른편 서울역사박물관의 주차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곳에 있는 경희궁 방공호가 광화문 지하연구실과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는 놈들 다 확인하고 명단에서 빠진 놈 있는지도 체크해.”
내 말에 공돌이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형님.”
“내가 소란을 일으키면 보안요원들 대부분은 연구실로 모일 거야. 그래도 입구 지키려고 남는 놈들이 있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알아서 제압하고 입구 걸어 잠그겠습니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나는 영 미덥지 않아서 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건넸다.
“이건 왜요?”
“염력 걸어놨어. 혹시 제압하려다가 실패하면 그거 상대에게 겨누고 머릿속으로 외쳐. 너희들 다 텔레파시 연결해놨으니까.”
“뭐라고 외치면 돼요?”
“음······ 발사? 쏘세요? 아무거나 신호만 주면 돼.”
“우와! 대박.”
공돌이는 히죽 웃으며 동전을 받았다.
표정을 보니 또 이상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참, 형님. 저도 드릴 게 있어요.”
공돌이는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냈다.
양손으로 어깨부분을 들고 펼친 그것은 검은색 롱코트였다, 후드가 달린.
나는 혹시 무슨 이상한 심벌이나 로고가 있을까 싶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냥 시중에서 샀어요.”
“혹시 이런 거 입는 캐릭터 있어?”
“아뇨, 없어요.”
“없는데 네가 이런 걸 샀다고? 말해, 거짓말하면 죽는다.”
표정 굳히고 노려보자 공돌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실직고했다.
“그게······ 망토 같아서······”
“하아, 그러니까 망토를 걸치게 하고 싶은데 그건 내가 안 입을 테니까 롱코트로 산 거다?”
“……네에.”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두 손으로 바치듯 들고 있는 공돌이를 보다가 마지못해 코트를 받았다.
그러더니 눈치 보던 녀석은 내가 무슨 말을 할까봐 육손이를 재촉하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형님, 몸조심하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코트를 몸에 걸쳤다.
그러자 차에 앉아있던 해달이 힐끔 보며 말했다.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가? 그런 것도 꽤 잘 어울리네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작업이나 끝내. 광화문 코앞이야.”
내 말에 해달은 두 손을 들고 답했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거긴 제 손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
광화문 지하연구실.
조민철은 실험대 위에 팔다리가 결박된 채 누워있었다.
할아버지와 삼촌을 따라왔는데 갑자기 제압을 당해 이 꼴이 된 것이었다.
“이익! 당장 풀지 못해!”
“도련님,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날 테니까.”
임동규는 에어타카처럼 생긴 총을 가져와 옆의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빨간 빛이 반짝거리는 침을 장전했다.
“뭐, 뭐하려는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알면 너 가만둘 줄 알아?!”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얌전히 계세요.”
“하, 할아버지가? 그럴 리 없어. 할아버지를 불러줘! 불러달라고!”
임동규는 한숨을 쉬고 왼쪽 벽을 향해 고갯짓 했다.
“저기 벽 너머에서 보고 계십니다.”
“뭐?”
“여기서 보면 벽이지만 특수처리 된 유리창이거든요.”
그 순간 실험실 내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나왔다.
-민철아, 임박사 말대로 가만있어.
“하, 할아버지?”
-그래, 할아버지가 준 약 먹고 다친 거 싹 나았었지? 검사 하나만 하면 되니까 얌전히 있거라.
조민철은 조차신의 목소리를 듣자 다소 긴장이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총처럼 보이는 장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에 해로운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도대체 뭔데?”
“도련님의 운동능력, 반응속도, 신진대사 등을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이 침 내부에 나노칩 같은 게 들어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마······”
“네, 그 사건 때문에 검사를 해보는 겁니다.”
그제야 조민철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자신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때 내 몸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는 거야?”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이 장치가 측정할 겁니다. 그럼 분석할 수 있고 원인도 알 수 있겠죠.”
“똑같이 일이 언제 일어날 줄 알고?”
“아마 오늘 일어날 겁니다.”
“뭐?”
“일단 맞고 나서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설마하니 회장님께서 도련님께 해를 가하겠습니까.”
“……아, 알았어.”
조민철은 긴장을 풀고 몸을 늘어뜨렸다.
“따끔할 겁니다.”
-푸슉!
“으악! 따끔은 무슨! X나 아프잖아!”
“참으세요.”
“마, 마취제 놓고 해줘. 아프단 말이야!”
“안 됩니다. 마취제 약효가 측정기준에 오차를 발생시킬 수 있거든요.”
“X발, 몇 대나 더 맞아야 해?”
“발바닥, 종아리, 허벅지, 옆구리, 배, 가슴, 어깨, 팔, 팔목, 손바닥, 등, 엉덩이, 그리고 머리에 총 다섯 대 맞으면 됩니다.”
“……!”
너무 많아서 전부 몇 대인지 들으면서 세지도 못했다.
조민철은 방금 발바닥에서 있었던 고통을 상기하자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갑니다.”
“자, 잠깐만!”
-푸슉!
“우악!”
-푸슉! 푸슉! 푸슉!
“아악! 사람 살려!”
-푸슉! 푸슉! 푸슉!
“꾸엑!”
한 번에 끝내려는 듯 임동규의 손길은 주저함이 없었다.
조민철은 온몸을 쑤시는 통증에 잠재력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싶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됐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맞으면 됩니다.”
물론 그 한 번은 한 번이 아니었다.
***
“광호야, 표정이 안 좋구나.”
조차신 회장의 물음에 그의 차남, 조광호가 말없이 침만 꼴깍 삼켰다.
유리벽 너머 조카의 모습에 좋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 형이 아버지를 협박한 것도 들었고······ 그런 형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민철이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내 손자의 몸에 대한민국을 위대하게 만들 단초가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
“내가 이 모습을 왜 너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네 형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인 게다.”
“……!”
“명호가 그렇게 됐고, 오늘 민철이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거다. 그러니 신화를 이을 사람이 이제 너 뿐인 게야.”
조차신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너마저 나를 배신한다면 아직 어리지만 너의 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협박도 담겨 있었다.
‘민철이를 본보기로 삼는 거구나.’
장손을 실험대에 올리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자신의 아들이라고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조광호는 아버지의 광적인 집착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명호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이젠 네가 맡거라. 시연회 전까지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연구실을 둘러보며 차근차근 설명해주마.”
조차신은 고통에 신음하는 장손에게서 몸을 돌려 바깥으로 향했다.
그를 뒤따르던 조광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조민철을 바라봤지만 짧은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
차에 해달을 남겨두고 광화문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개찰구를 통과해 지하연구실로 향하는 문 근처에서 대기했다.
그때였다.
-형님, 관람객 전부 입장했습니다.
공돌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명단에서 빠진 사람은?
-세 명입니다. 박춘금, 최두관, 고병진요.
나는 곧바로 해달에게 말을 걸었다.
-해달아, 외부에서 접속한 놈들은 어때?
-세 명이네요. 접속코드로 보면 박춘금 일영재단이사장, 최두관 전 법무부 장관, 그리고 차기 대선주자인 고병진 경기도 도지사예요.
-일치하는군. 그럼 시작하자.
말려 있던 검은색 목티를 펴서 코까지 끌어올렸다.
코와 입을 가리고 모자를 쓴데다 공돌이가 준 롱코트의 후드까지 눌러쓰니 얼굴은 완벽히 가려진 상태였다.
나는 행인들 사이에 섞여 지하연구실 문까지 걸어갔다.
-5, 4, 3, 2, 1. 잠금 해제.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해달의 신호대로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달린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앞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띵동, 엘리베이터 도착했습니다.
저절로 문이 열렸다.
이런 걸 보면 해킹이 참 편하다.
해달이 장악한 내부는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였다.
-지하 10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동으로 B10이라 적힌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아래로 향했다.
-CCTV도 전부 장악했어?
-네, 중앙통제실에서 석훈 씨, 아니 서훈 씨 모습은 안 보일 거예요.
-그럼 난 현장에 있는 놈들만 마크하면 되는 건가?
-음, 소란이 일어나면 그쪽은 더 손 못 댈 거 같아요. 화면에 안 나오면 분명 의심하고 방화벽 체크에 들어갈 테니까요. 전원 차단하고 재부팅이라도 해버리면 기껏 장악한 게 물거품이 되거든요.
-그럼 이제 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이 엘리베이터 작동불능 시키고 아까 그 문 안 열리게만 만들어.
-알겠습니다.
그때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곳에는 하얗고 길다란 복도가 앞으로 쭉 뻗어 있었고 두 사람의 보안요원이 자동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소총을 겨누며 외쳤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신분을 밝히십시오.”
나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그대로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멈추십시오. 서지 않으면 발포합니다.”
“……”
“마지막 경고입니다.”
그 순간 염력을 가해 총구가 서로를 가리키도록 만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어억!
“끄악!”
나는 피를 뿌리고 쓰러진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다시 염력을 가했다.
이 안에 있는 놈들은 그냥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 후 잔인하게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
“일어나라.”
염력의 힘으로 시체들이 관절을 기괴하게 꺾으며 몸을 세웠다.
이빨을 딱딱 거리게 연출하는 건 덤이었다.
‘아귀처럼 서로 뜯어먹게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