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내일 구치소로 이동할 예정이라네
룩셈부르크(Luxembourg).
스위스와 미국을 제외하면 GDP에서 차지하는 지하경제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는 유럽에서도 유명한 조세회피처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자금흐름을 가진 나라.
이곳에서도 수도인 룩셈부르크 시티에 스컬의 은거지가 있었다.
도시 외곽 중세유럽풍의 고성.
스컬의 수장 제이크 반은 조직을 후원하는 로드 라이언의 성을 찾았다.
내부로 들어가자 벽에는 섬유예술품 태피스트리(Tapestry)가 장식으로 걸려있었다.
태피스트리에는 명화를 대신하는 듯 다양한 그림이 문양으로 짜 넣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예술품으로 기분 좋게 볼 수는 없었다.
태피스트리에 새겨진 모습은 전부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고, 누군가가 고통에 절규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음침한 복도를 지나 제이크 반은 서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노인이 돋보기를 쓰고 고서를 읽고 있었다.
“로드, 보고드릴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노인은 고서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소파의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어지간한 건 전부 자네 선에서 처리하라지 않았나.”
“로드의 조언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조언? 설마······ 퀸시가 뿌린 것들이 열매를 맺은 건 아니겠지?”
“그 판단을 하기 위해 당신을 찾은 겁니다.”
“말해보게.”
제이크는 테이블 위에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의심되는 장소는 한국입니다.”
“한국이라······ 선진국 중 한 곳이긴 한데 그 나라는 바이오기술이 그리 발전한 나라가 아닐 텐데. 퀸시가 그 나라에도 ‘네오 셀’을 뿌렸나?”
“직접 뿌리진 않았지만 인접국가인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있었습니다.”
“그럼 스컬의 킬러를 파견했겠군?”
“네, 킴이 당시 일본에 뿌려진 네오 셀을 없앤 후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킴이면 들어본 적이 있지. 실력이 괜찮은 친구라고 기억하는데 그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나?”
“죽었습니다.”
로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기억에 있다면 스컬의 킬러 중에선 최상위에 해당하는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면 의심을 키울 근거로 충분했다.
“추가파견으로 또 누굴 보냈지?”
“중국에서 활동 중이던 리우를 보냈습니다.”
“리우?”
“흑사회 출신으로 조직 내에서도 빠르게 등급을 올리던 친굽니다. 참고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킴과 타입이 달라서 배정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킴에 대해서도 가물가물하군. 어떻게 달랐는가?”
“킴은 근거리 격투술이 장기에 히스테리칼 스트랭스를 끌어낼 수 있었고, 리우는 원거리 저격에 플로우를 사용할 수 있는 타입이었습니다.”
장기도 그렇지만 인간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방법도 차이나는 두 암살자였다.
“임무수행의 성향은?”
“킴은 스파이로 잠입하여 임무를 처리하고 정기보고를 빠짐없이 하는 철두철미한 성향입니다. 반대로 리우는 정면돌파를 선호하고 중간보고 없이 결과만 통보하는 성향으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죠.”
“허허, 성향도 반대로군. 그럼 리우라는 그 친구는 현재 연락이 안 되는 겐가?”
“네,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들 정도의 실력자들은 현장상황에 따라 본인의 판단 하에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니 결과통보만 하는 리우의 성향에 따르면 연락이 없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른 단서가 또 있는 게로군.”
“이걸 좀 보시죠.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동향입니다.”
태블릿에는 외신들이 보도한 뉴스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4개월 사이에 수백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살인, 그리고 고문, 화형 같은 공개적인 살인행위도 있었습니다.”
“풀링 아이(Pulling Eye)? 이건 또 뭔가?”
“죽은 사람 중 절반 정도가 눈알이 뽑히고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붙여진 용의자의 별명입니다.”
“흐음······”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여기 명도병원이라는 곳의 현장사진을 좀 보십시오.”
엉망이 된 현장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하지만 로드의 눈썰미는 그 원인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곳에서 네오 셀을 실험한 건가?”
“그랬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폭탄이 아님에도 이런 상태로 만들었다는 건 네오 셀과 연관이 있지 않겠습니까?”
“……”
“어찌 그러십니까?”
“영 믿기지 않아서 그렇네. 수백 년 동안 네오 셀을 이용해 초능력자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있어 왔어. 비단 퀸시, 그놈들만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나라도 성공한 적이 없었단 말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간 퀸시가 뿌린 네오 셀을 연구하던 곳을 다수 없앴지만 초능력을 만들어낸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
제이크는 태블릿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료를 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프로필이었다.
“한국이 바이오기술에 있어 선진국은 아니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닥터 서, 생명공학자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인물입니다. 원래 미국에서 활동하던 학자였는데 이십년 전쯤에 고국으로 돌아갔었습니다.”
“흐음······”
“그리고 십칠 년 전에 실종됐는데 최근 시체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것도······”
제이크는 프로필에서 뉴스로 넘겼다.
화형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포함된 기사였다.
“이 사람의 집, 지하실에서 말입니다.”
“닥터 서의 시체가 나온 집의 주인을 불에 태워 죽였다? 원한이로군.”
“네. 대단히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닥터 서가 네오 셀을 이용해 초능력자를 만들었고, 그는 죽은 닥터 서의 복수를 위해 이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
기술의 발전.
그것도 세대를 뛰어넘고 혁신이라 이름 붙여지는 경우는 백 명, 천 명의 범인보다 한 명의 천재가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바이오 산업은 유전자 지도, 조작, 인공수정, 복제인간, 냉동인간 등 과거에는 상상만으로 존재했던 기술들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
그 토대 위에 나타난 한 명의 천재가 네오 셀의 비밀을 풀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들이 수백 년 동안 염려해왔던 그 일을 말이다.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네, 로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능력자든, 아니면 새로운 네오휴먼이 나타났든 찾아서 죽여야 하네. 그것이 스컬의 존재 이유니까.”
로드는 책장으로 가더니 숨겨진 비밀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사자의 문양이 장식된 케이스를 가지고 와 제이크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입니까?”
“네오휴먼은 두 가지 계열로 구분되는 거 알고 있지?”
“네. 사이킥 계열, 그리고 네오 셀을 가진 피지컬 계열이잖습니까. 지금은 사이킥 계열만 남았지만요.”
스컬은 수백 년 전부터 네오휴먼을 사냥해왔다.
그중에서도 네오 셀이란 유전적 특징, 구분하기 쉬운 신체능력을 가진 피지컬 계열이 주된 대상이었다.
덕분에 피지컬 계열은 멸종되었는지 몇 십 년 동안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에 사이킥 계열은 겉으로는 특징도 없고, 본인이 숨기면 알아보기 힘들기에 찾는 것도 힘들고 상대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이걸로 사이킥 계열 네오휴먼의 능력을 막을 수 있다네.”
“……!”
“사이킥 계열은 대부분 예지, 텔레파시 같은 보조적인 능력이라 누군가를 죽이는데 적합하지 않지. 그러니 찾기만 한다면 스컬의 킬러를 상대로 그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네.”
“그건 그렇습니다. 과거 제가 죽인 네오휴먼의 능력도 리모트 뷰잉이었죠.”
“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살상력이 있는 사이킥 계열도 존재했어. 대표적인 게 정신지배, 염동력이고 거기서 파생된 염화력, 염수력, 염철력 따위가 있지.”
“그럼 이게 그 사이킥 능력을 막아준다는 말입니까?”
케이스에서 꺼낸 것은 사자의 얼굴이 조각된 검은색 반지 두 개였다.
“수백 명을 죽인 걸 보면 극히 드물지만 대량살상능력을 가진 네오휴먼일 가능성이 있네. 그 반지는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능력을 막아주는 건 물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이킥 능력을 약화시킨다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그 반지를 만든 재질에서 특수한 파장이 나온다더군. 수백 년 전, 염동력을 사용했던 마녀를 죽였을 때 이후로 처음 꺼내는 거라네.”
“이런 걸 더 많이 만들 순 없는 건가요?”
“왜 시도를 안 했겠는가. 하지만 그 재료를 구할 수가 없어. 지질학자 말로는 운석에 섞여서 지구에 떨어진 희귀금속 같다고 하더군. 그리고 사실 사용할 일이 거의 없기에 굳이 더 만들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있고.”
제이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오휴먼은 희박할 정도로 그 수가 적지만 그 중에서도 살상력을 가진 능력자는 더욱 드물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스컬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헌데 이번엔 누굴 보낼 생각인가?”
제이크는 반지를 손에 끼며 답했다.
“저와 사이먼이 함께 갈 겁니다.”
***
한남동 저택.
시연회 현장을 몰살한 후 그곳에서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대상은 화상으로 접속한 박춘금, 최두관, 고병진, 그리고 종로서에 갇혀있는 이한성이었다.
“이제 몸통은 네 사람만 남았구만.”
박인섭이 턱을 긁적거리며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그게······ 너희들이 작전 나간 사이에 전검사와 통화를 좀 했거든.”
“네.”
“근데 아무리 시나리오를 짜도 곁다리만 가지고 네가 원하는 수준으로 처리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아. 몸통 하나만 남겨주면 안 될까?”
“……”
“이미 잡혀 있는 이한성 어때? 블룸의 수장이기도 했으니 딱인 거 같은데.”
“절대, 안됩니다. 그 새끼가 저희 부모님을 죽였어요.”
다른 놈들은 양보해도 이한성은 직접 찢어죽일 생각이다.
그래도 성에 찰까 싶지만.
“그, 그래? 그럼 셋 중 하나는······ 줄 수 있어?”
박춘금은 제외다.
그 여자는 세포X에 대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니 잡아서 알아봐야 한다.
남은 건 고병진 도지사와 최두관 전 법무부 장관.
한 명은 차기 대선주자로 주가가 높은 인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적합하다.
다른 한 명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법조계의 거물.
국민들 앞에 세운다면 최두관이 나을 것 같았다.
물렁한 대한민국 법에게 상징적으로나마 한 방 먹일 수 있을 테니까.
“최두관으로 하죠.”
“의외네. 고병진이 내줄 줄 알았는데.”
“서울중앙지검장과 엮는데도 유용하잖아요. 그리고 고병진은 그 X짓거리를 하면서 대선에 나간 놈이에요, 염치도 없이.”
“맞아. 염치가 없긴 하지. 국민을 실험대에 올린 놈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꿈꾸다니 말이야.”
“그럼 고병진이 먼저 시작할 거야?”
“아니요. 이한성, 그놈 먼저 해야죠. 전 맛있는 거 먼저 먹지 아껴먹는 스타일 아닙니다.”
박인섭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해는 간다.
놈이 지금 경찰에게 체포되어 있는 상황이니.
잘못되면 관련 담당자들은 문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할 건데? 죽일 거야?”
“아니요. 납치할 거예요. 물어볼 게 있어요.”
“뭘 물어보려고?”
“어머니 시신요.”
“……아!”
“아마 태웠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아버지처럼 어딘가에 시신의 일부가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확인은 해봐야죠.”
“그래, 확인해야지. 납치를 할 거면 이동 중인 상황이 낫겠네.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언제 가는지 물어볼게.”
박인섭은 곧바로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비록 은퇴한 사람이지만 형사생활 25년이다.
일급기밀도 아니고 그 정도 정보는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내일 구치소로 이동할 예정이라네.”